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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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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설명 드린 2500년 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의 여성샤먼은 아크-알라하(Ак-Алаха-3,Ak-Alakh)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알타이 주민들에게 이 여성을 두고 고고학자들이 ‘고고학자료’니 ‘출토되었다’느니 이런 말을 써서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진열해 두고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두번 죽었다고 생각했겠지..그들에게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여성은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확인된 최초의 여성이었다. 1993년에 발굴되었는데, 그 때 찍은 비디오 사진이 유투브에 공개되어 있어서 아래에 링크해 둔다. 1993년에 발굴한 연구소에서 직접 찍은 건데, 러시아말은 모르셔도 그 분위기나 이런 것 등은 한번 보시기 바란다. 인터뷰의 내용은 아래에 간략하게 적어두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7yLwxIkmw9M#action=share

 

(1993년은 러시아가 정말 힘들 때이다.1991년에  페레스트로이카가 있었다.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때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치를 떤다. 나의 지도교수님도 그때 부두에서 바나나를 옮기고 받은 돈으로 겨우 먹고 살았는데, 바나나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바나나를 보면 치를 떠신다. 러시아인들은 고르바초프를 저주한다. 마치 전두환처럼. 그래도 그 때 워낙 중요한 발굴이어서 러시아에서는 이를 지원했다.:필자의 해설

 

러시아에서는 기계로 발굴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고분의 돌도 사람들이 하나씩 다 들어냈다. 깊고 높은 산중(해발 평균 2500m)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냥 차도 못간다. 러시아군용트럭을 이용해야 물건을 옮길 수 있었다. 낮에는 매우 덮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져서 발굴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비디오에 보면 저 텐트에서 영하로 떨어지는 밤을 보냈다고 한다.

인터뷰한 발굴책임자인 폴로시막은 그 때 정말 힘든 발굴의 여정을 설명했다. 이 분은 이 유적을 발굴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두 번째 인터뷰인은 몰로딘인데, 이 발굴 과정에서 고분의 얼음속 사람을 꺼내기 위해서 뜨거운 물을 부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부위는 괜찮지만 이 여성의 얼굴은 그냥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과정이 사진과 비디오로 남아 있다고 하지만 본인도 아쉽다는 표정이다. 나중에 미라처리과정에서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가장 미라 처리과정에서 힘든 부분이 얼굴피부라고 한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상 죽으면 바로 매장하는 게 아니라 장례 치르는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이미 얼굴피부는 없어진다.)

 

 

이 여성의 나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 무덤에서 확인된 여성은 스위스 지리히대학의 의학연구소에서 그녀의 피부를 분석한 결과 그녀가 죽은 뒤 3~6개월 뒤에 무덤에 부장했고, 28~30세의 여성이었다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Хаури, Блаттер, 2000).

 

이 여성의 무덤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말이 6마리 함께 부장되었는데, 그 말의 위를 살펴본 결과 남아 있는 풀의 분석한 결과 6월에 말이 죽었다고 한다.

 

이 여성의 오른쪽 어깨부터 팔목까지 그리핀과 사슴 등 동물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알타이 산맥의 여러 고분에서 미라가 확인되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문신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알려진 것은 파지릭 유적의 2호(남성), 아크알라하-3유적의 1호(여성), 베르흐-칼쥔-2 유적의 남성에서 확인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 샤먼은 61cm나 되는 높은 모자를 썼고, 가발도 썼다. 옷은 치마를 입었고, 그 위에 상의는 여밈이 없는 긴 셔츠를 입었다.

 

아래의 그림은 무덤에서 나온 의복과 가발, 장신구 등으로  그녀를 복원한 모습이다. (출토유물에 대해서도 계속 포스팅해드리겠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출토 여성샤먼 복원도(국립중앙박물관 1995)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서 개최되었던 알타이문명전 도록에 복원도가 소개되었다. 

최근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녀는 유방암에 걸렸고, 두개골과 관절에 심한 외상이 남았는데,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을 가는성이 제기되었다(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두개골 뒤쪽의 큰 구멍은 미라 만들때 뇌를 빼낸 구멍이고, 왼쪽그림의 두개골 오른쪽에 심한 외상이 직접적인 사인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그림은 위의 링크해 둔 잡지에서 본문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샤먼이 묻힌 무덤과 유물, 말 6마리, 말의 장식 등에 대해서 설명드리겠다.

 

 

그런데 비디오에 보면 무덤 속에는 왜 얼음이 차 있는지, 그리고 왜 죽은지 최소 3개월 이후가 되어서야 매장을 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셔야 한다.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