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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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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astsearoad.tistory.com

 

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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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4.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에 홀연히 등장하는 사르마트 문화는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몰아내었다고 헤로도투스가 묘사했지만 여러모로 연속되는 점등이 많다. 특히 동물문양장식이 그러하다.

 

볼가강 하류의 베흐네 포그놈노예 마을에서 발견된 무덤(기원전 1세기)에서 부조된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가죽띠에 붙여서 장식판으로 사용한 것이다. 일종의 ‘동물투쟁문양’이다. 말을 맹수가 공격하는 장면이다. 스키타이 동물투쟁문양은 주로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를 물어뜯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식자는 주로 양, 염소 등인데 이 유물에서 공격당하는 동물은 약변형되어 있다. 말의 머리와 몸통이지만 귀 옆에 염소의 뿔이 붙어 있다. 공격하는 맹수의 얼굴은 유물이 부러지면서 결실되어서 잘 알 수 없다.

 

그림 1. 베르흐네 포그롬노예 쿠르간 2호 안의 2호묘, 기원전 1세기

 

 

어깨와 엉덩이의 근육, 뿔과 지골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유색 감옥이 삽입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감입부만 남아 있다.

 

그런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 한 유물이다.

 

앞서서 여러번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 중에 말을 공격하는 그리핀이 표현된 버클 장식과 비교할 수 있다. 이때 맹수는 염소의 뿔을 달고, 날개를 달고 있는 그리핀이었다. 하지만 그림 2의 말 사지골 사이에 표현된 <▽○∇ 문양은 사르마트 문화의 유물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사실 이 모양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펠트로 된 동물투쟁문양에서도 있었던 표현법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가운데 1점, 기원전 5~4세기로 추정.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투쟁문에서 공격하는 맹수는 얼굴은 잘 알 수 없지만 목이 길고 몸통이 매우 길게 표현된 동물이다. 앞서 소개한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의 목걸이에도 몸통이 길게 표현된 용이 있었다. 그 유물은 기원후 1~2세기 유물로써, 그림 1의 베르흐네 포그롬노예 유적보다 200~300년 늦은 것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황금유물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동쪽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와 귀결된 듯하다.

 

참고문헌

Королькова Е.Ф. 2008 : Сарматские украшения и сибирское золото древних кочевников.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코롤코바 2008, 사르마트 장식품과 고대 유목민의 시베리아 황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2.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기원전 4~기원후 2세기)의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에는 특별한 금박장식이 붙은 관이 발견되었다. 주인공은 여성인데, 관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특히 목걸이는 화려하기도 하지만 사료적 가치가 큰 유물로 여겨진다.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의 목걸이, 기원후 1~2세기

 

중앙의 남성 좌우로 몸통이 긴 용을 타고 있는 기마전사가 궁수와 창을 들고 있는 전사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기마전사, 궁수, 창을 든 전사는 반인반수이다.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인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갑옷이다. 판 모양으로 이어 붙인 상부와 하단은 스커트 모양이다.

 

그림 2. 그림 1의 세부

 

중앙의 남성이 입고 있는 옷과 잔은 스키타이 시대 부터 알려져 있다. 유목민의 전통적 특징을 증명한다(그림 3).

 

그림 3. 그림 1의 세부

 

그런데 이 남성이 무릎에 얻은 검과 검집은 스키타이 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의 검을 아키나케스라고 하는데, 검날멈추개(손잡이와 검의 경계)가 튀어나온 것인데, 목걸이 속의 남성은 그렇지 않다.

 

 

그림 4. 기원전 6~4세기 스키타이 문화(하단)와 기원전 4~3세기 사르마트 문화(상단의 검과 겁집

 

 

어찌되었던 목걸이에서는 여러 단서를 찾을 수가 있는데, 우선 그 중에 하나는 중앙의 남성은 잔과 검을 보여주기 때문에 군대의 우두머리와 제사장을 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러시아 연구자들은 남성의 자세에 주목한다.(왜냐하면 양반다리하는 자세가 매우 불편한 서양인들이 많다.) 일종의 명상자세로 신성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목걸이는 아마도 의례를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을 것이고, 평생동안 무덤 주인공이 착용했던 것이다. 일부 목걸이가 결실되었고 재사용흔적이 있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착용한 여성은 매우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관과 목걸이 때문만은 아니고 이미 소개한 향수병과  풍뎅이, 숫양이 달린 그릇, 태양과 식물을 상징하는 여러 물건(텍스트로만 소개) 등이 있는데, 주인공이 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혹은 전설적인 사르마트 여왕과 가까운 지위에 있는 지도자의 아내일 수도 있다.

 

사르마트 문화에서 1~2세기 초에 대형 쿠르간(높이 1~3M, 무덤 구덩이의 깊이 3M)이 등장하는데, 그때 특별한 ‘왕/여왕(?)’이 등장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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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7.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부터 발생한 사르마타 문화는 여러 요소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동물문양장식이다.

호흘라치 무덤의 여성 주인공은 황금관도 썻지만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팔찌와 목걸이이다. 팔찌와 목걸이는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발견되는 유물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 주인공 남녀도 모두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목걸이도 관(crown)과 마찬가지로 개폐가 가능하도록 된 것이다. 목걸이는 3개의 빈 금관(金管)을 쌓아 올렸고, 그 위아래에는 동물장식을 부착한 것이다. 동물이 싸우 것처럼 보이지만 공격자인 그리핀은 주둥이만 희생물에 대고 있고, 희생물인 엘크는 머리를 공격자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공격하는 동물은 부리가 맹금류이고 신체는 맹수류인 그리핀에 가깝고, 희생물인 엘크는 엘크와 같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보이는 동물문양의 종류와 표현방법에 차이가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특정부분이 과장되거나 간소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호흘라치 유물에서는 사슴과 같지 않지만 그리핀이 공격하는 동물이니 사슴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한 차이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목걸이

 

 

 

이 여성의 팔찌에도 비슷한 동물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3줄로 꼬인 팔찌로 빈 금관의 양 끝에 동물장식판이 부착된 것이다. 목걸이 보다는 좀 더 그리핀이 포식자인 엘크를 물어 뜯고 있다.

 

 

그림 2.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팔찌

 

호흘라치 유적의 황금관만 놓고 본다면 그리스 여성의 얼굴이 상감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적인 요소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목걸이와 팔찌는 오래된 지역 전통의 장신구이다. 하지만 동물문양장식은 확실히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동물장식과는 차이가 있다. 주제와 구성은 비슷해 보이지만 표현방법은 훨씬 간략하다.

 

호흘라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중 많은 여러 요소가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그대로는 아니고 변화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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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되었고, 도굴당한 무덤도 많다.

 

황금관으로 유명한 호흘라치 유적도 어제 소개했다. 그런데 이 황금관과 형태는 다르지만 유사한 컨텐츠로 만들어진 유물이 2점 더 있다.

 

호흘라치 유적과 가까운 로스토프 시 부근의 코비아코프스키(Кобяковский, Kobyakovsky) 유적에서는 무덤 10호에서 가죽으로 된 머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 거기에는 금판을 오려서 만든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가죽 머리띠 장식은 모자에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금판과 가죽띠만 남은 상태였다. 두개골의 머리위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수사슴이 양쪽으로 6마리가 배치되었고 사슴과 나무 사이에는 양쪽에 2마리씩 날개를 편 맹금이 표현된 것이다.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 출토 머리띠 장식, 붉은 색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복원한 것이다

 

또 다른 한 점은 크라스노다르 주의 우스트-라빈스크(Усть-Лабинская, Ust-Labinskaya )역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금판 아플리케 장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7개의 가지가 표현된 것은 나무를 상징화 한 것이다. 사슴과 염소, 토끼(혹은 개)가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장식도 존재했을 것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금 판 뒤에는 고정장치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머리띠 장식인지는 알 수 없고, 무덤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우스트-라빈스카야 역 무덤 출토

 

나무를 중심으로 두고 양 쪽에 동물이 배치된 컨텐츠는 당시에 세계수에 대한 숭배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스키타이 시대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의 탄생, 성장에서 모든 징후에서 삶에 대한 신화적 아이디어를 제공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두 점을 참고로 한다면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황금관은 가장 상단부에 세계수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의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하는게 더 맞다. 운 좋은 호흘라치 무덤의 주인공인 여성이 그리스이 끼어들었더라도..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CaFajXSFeSvu-7eu96jRe4TImmu5nqc&usp=sharing 

 

사르마트 - Google 내 지도

사르마트

www.google.com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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