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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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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4.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과 함께 화려한 황금유물로 유명한 호흘라치 유적은 노보체르카스크 시에 위치한다. 이곳은 돈강 유역의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사르마트 문화의 또 하나 쿠르간이 잘 알려져 있다. 사도브이 유적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고분의 높이는 2.2m, 직경은 44~48m가량이다. 중앙에 무덤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은제 쟁반과 청동제 솥과 금을 도금한 청동제 쟁반, 펠레라, 토기, 철제투구 등은 무덤의 경계 안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다차 유적처럼 유물을 숨겨두는 별도의 공간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봉분의 경계 안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사도브이 유적의 평면도, 기원후 1세기

 

유물 중에 일부는 의례행위때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물을 한 곳에 모아두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해서 이곳저곳 매장하는 방법도 일종의 도굴방지에 대한 대책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니면 매장된 주인공의 성격이 사르마트 문화 보다는 다른 문화에 더 가깝다는 추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제 쟁반은 모두 8점(그림2)으로 바닥 중앙에는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그림 3)와 관련된 형상이 주조된 것이었다. 신화와 관련된 유물 가운데는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장면도 남아 있다(그림 4). 그런데 이 유적의 이름은 ‘사드브이(정원 주로 과수가 있는 정원을 의미)’이고, 유적이 발견될 당시에 포도재배연구소의 연구부지 내에서 발견되어서 상당히 상징적이다. 금도금한 청동쟁반(그림 2)은 뒤집어졌고 그 아래에서 은제 쟁반 8점이 발견되었다.

 

은제 쟁반 외에도 그리스의 특징적인 암포라(그림 5)도 출토되었다.

 

그림 2. 사도브이 유적의 금도금 청동쟁반(가장 큰 것)과 은제 쟁반

 

그림 3. 사도브이 유적의 은제 쟁반 세부

 

그림 4. 사도브이 유적의 은제 쟁반 세부

 

그림 5. 사도브이 유적 그리스 토기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솥과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팔레라도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6. 사도브이 유적의 팔레라

 

그림 7. 사도브이 유적의 청동솥

 

무덤방은 텅비어 있었기 때문에 피장자(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출토된유물이나 부장방법은 사르마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의 그 어느 중간 쯤에 있는 무덤이다.

 

참고문헌

Клейн Л.С. Первый век.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ских курганов, СПб.: Евразия, 2016. (클레인, 2016, 1세기, 사르마트 문화 쿠르간의 보물)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2.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은 호흘라치 유적과 함께 화려한 유물로 인해서 유명하다. 기원후 1세기경 유적으로 사르마트 문화의 후기에 해당된다. 사실 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발견당시에 이미 도굴당해서 그곳에서는 많은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따로 마련된 감실에서 화려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주로 마구와 말 장식과 관련된 유물들이었다.

 

특히 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적인 기법인 유색돌을 황금으로 된 장식판에 감입해서 만든 것으로 말의 재갈과 팔레라(Phalera)라고 하는 원판형 장식품(그림 1-4, 5, 6)도 여러점 출토되었다. 팔레라는 대부분 말을 장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 1. 다차 유적 1호분의 감실 유물 출토

 

팔레라는 사실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출토된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없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적에서는 간간히 보인다. 대부분 금속제로 만들어지다가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다차 유적과 같이 매우 화려하게 변화된다. 다음에 소개할지도 모르겠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팔레라 중에 아주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는 유물도 있다.

 

암튼 팔레라도 다차 유적에서는 팔레라도 여러 점 나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팔찌(그림 1-7)이다. 팔찌는 사슴 4마리로 구성된 것인데, 3부분으로 나누어져서 걸쇠로 연결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완전한 형태의 2마리는 마주보고 있도록 만들어졌고, 각각 별도로 만들어졌다. 나머지 한 부분에는 사슴의 머리가 있는 전반부를(몸통의 반통) 반대방향으로 붙여서 만든 것으로 전신으로 만들어진 부분과 걸쇠로 연결되어 있다. 황금으로 제작되었고 터키석과 홍옥수석도 감입되었다.

 

이 팔찌는 그냥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사르마트 문화의 팔찌이지만 도굴된 무덤에 대한 여러 단서를 제공한다. 우선 무덤의 주인공은 최소 여성일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알려진 스키타이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의 팔찌는 대부분 환상의 동물(그리핀)이 대부분이었으나 사슴을 주요한 주제로 했다는 점은 큰 차이가 있다. 페르시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품(포스팅 참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2020.12.07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으로 알려진 유물의 대부분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인간형상물(입체), 팔찌와 목걸이, 반지, 원판형 장식판, 평면금판(인간형상). 토기, 동전 등 1300여점이 알려졌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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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동물장식 팔찌

 

스키타이 동물장식 팔찌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은 현재로는 타지기스탄과 아파카니스탄의 국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강의 우안에 위치해서 타지기스탄 국경 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는 발견된 황금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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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다차 유적 1호분의 팔찌

 

 

그림 3. 다차 유적 1호분의 팔찌

 

또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왜 감실에서 팔찌가 출토되었을까? 피장자가 착용한 유물은 피장자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팔찌와 황금검은 피장자와 떨어진 곳에서 출토되었다. 어쩌면 감실을 만든 이유와도 상통할지 모르겠다.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들이 대거 도굴당하는 것을 사르마트 문화의 시기(기원전 4~기원후1세기)에도 알았다면 전통에 따라서 봉분이 있는 무덤은 만들었지만 뭔가 대책을 세웠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덤에 감실을 만드는 행위가 기원전후에 많이 성행했다. 뭔가 주인공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유물은 별도의 공간에 따로 두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문화 마지막시기에 나타나고 있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유난히 복잡한 구조로 무덤을 만든 것이 발견되었다(포스팅 참고).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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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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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 09:22 사르마트 문화

오늘날 우크라이나인 흑해 북쪽읜 초원지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점과 사르마트 문화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무덤이 아주 많아진다. 봉분이 있는 무덤, 혹은 없는 무덤 등 매우 많은 무덤이 생긴다. 그 중에 마마이-고라(Mamay-Gora)라고 불리는 유적에는 무덤이 317개가 확인되었고 그 중에 12개가 여성무덤이었다. 남성은 110명, 여성은 135명이 확인되었고, 일부 여성들은 무기를 부장한 여성전사들이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스켈키 라고 불리는 유적은 봉분이 없는 무덤이다. 53개의 무덤에서 22명의 전사가 남아 있었다. 그 중에 절반은 여성인데, 11명 가운데 무기를 가지고 있는 여성은 4명이다. 팔코는 전사 22명 가운데 두 번째는 여성 전사이고, 세 번째는 무기를 소지한 여성전사로 계산하기도 한다. 스켈키 유적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돈 강 유역에서도 엘리자페토프스코예 유적에서 147개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5개는 여성의 집단 무덤이다(팔코 2010).

 

이 시점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전사들은 연령도 다양했다. 절반은 25~25세의 여성이지만 가장 어린 여성은 16세 정도이고 가장 나이든 여성은 60세도 있었다. 젋은 여성가운데 어린아이와 함께 매장된 경우가 4명 정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혼으로 판명되었다.

 

여성전사들이 발견되는 유적은 주로 아조프 해 연안에서 많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에 자리 잡았던 사르마트 사람들이 서쪽으로 몰려 오면서 처음 정착한 곳이 드네프르강 하류의 아조프해 지역으로 여겨진다. 특히 여성전사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헤로도투스에 따르면)

고고학적으로도 이곳에서 여성전사 무덤들이 집중되어서 기록과 비슷하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발굴이 많아지게 되면서 돈 강 유역에도 여성전사들의 무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팔코 2010). 그냥 여성들 무덤이 (남자들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질료니예 2 유적의 남녀합장 무덤 가운데 여성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고 여겨진다(그림 1). 남성보다 많은 부장품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여성가운데 권력자의 존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유적 뿐만 아니라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매우 거대한 무덤 속의 주인공은 여성이었다. (포스팅)

 

그림 1. 질로니예 2유적의 2호 쿠르간 2호묘, 북쪽이 여성무덤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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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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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군인으로써 전쟁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몸에 있는 상처이다. 크게 3가지 상흔이 남아 있다. 화살에 맞은 상처, 사자의 손실 또는 골절, 두 대골과 사지가 모두 잘린 상처 등이다. 화살에 맞은 상처는 주로 두개골의 관통상처가 치명적인 것이다.

무기 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뼈에 남은 상처로 인해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군인으로써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팔코 2013)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남성전사들은 주로 기원전 7세기 초부터 발견된다. 여성전사는 주로 기원전 7말 혹은 기원전 6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아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는 기원전 4세기경 무덤으로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경계상에 있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여성전사 부족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묘사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매우 혼란한 시점에 남성은 모두 전장에 나갔을 테지만 여성은 집(노인과 어린아이)을 지켜야 했다. 그 과정 중에 여성들은 똘똘 뭉쳐서 집단으로 대항했을 수 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역사가는 오해를 한 것은 아닐까. 혹은 여성들에게서 얻고 싶은 것을 못 얻었거나. 또 일부는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전쟁에 참여했는데, 이를 용감한 여성대신 잔인한 여성으로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초원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니 삐딱하게 보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Андрух С. И. 2001. Могильник Мамай-Гора. Кн. 2. Запорожье(안드루흐 2001, 마마이 고라 유적)

Фиалко Е. Е. Погребения амазонок из могильника Мамай-Гора // Stratum plus. Археология и культурная антропология. — 2010. — № 3. — С. 187—196.(팔코 2010, 마마이-고라 유적의 아마조너스 여성무덤)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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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30.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 동유럽의 고대 여성 전사들의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 하류, 돈강 하류, 우크라이나 초원, 코카서스 지역 등에서 발견된다.

일찍이 부냐탼(1982)은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1/4이 여성무덤이라고 밝혔다. 특히 여성전사로 판명된 사람들은 270명 가량이다. 물론 이 숫자는 우크라이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다. 여성전사 들은 형질인류학적으로나 무덤의 장례방법으로나 그간 스키타이 인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과 동일하다(팔코 1991).

 

여성전사들의 무기는 활과 화살(그림 1-1~5)세트 혹은 창, 투석이다. 질료니예 2유적의 5호에서는 활통이 여성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비슷하게 활통이 발견된 유적은 니크로폴 유적의 20호 쿠르간 내의 2호 분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많은 화살이 부장된 무덤(류비모프카 유적 38호 쿠르간)은 135개까지 있었다.그런데 화살의 양에 대한 규칙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활과 화살세트가 매장된 경우는 여성, 남성 통틀어 많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사 무덤에는 창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 자루에 철제깃봉(그림 1-8)을 달아서 사용했는데, 출토될 당시에 그 장식의 위치로 나무자루의 길이를 대략 추정할 수 있다. 여성 무덤에서 나온 창의 길이는 유적(노비예 쿠르간과 스테블레브스키 무덤)의 예로 보아서 대략 2.07~2.1m인데, 스키타이 남성 전사의 창 길이와 비슷하다. 여성 무덤에서 창은 대부분 1~2자루 부장되었으나 3자루가 나온 경우도 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출토된 여성 무덤의 무기

 

 

 

투석(슬링)(그림 1-11)은 1~5개가 무덤에서 발견된다. 투석기는 발견되지 않고 같은 크기의 동근 돌만 확인된다. 아마도 이 무기는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근접무기인 전투용도끼와 검은 2~3곳을 제외하고는 여성 무덤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이나 철제 갑옷이 있는 무덤도 여성 무덤에는 거의 없다. 물론 어제 소개한 질로니예 2유적의 5호의 십대소녀의 예는 제외한다.

 

 

여성의 무덤에 근접무기와 갑옷 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들이 경무장한 기병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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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8.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봉분이 있는 무덤이 만들어진다. 땅에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을 동굴처럼 파들어간 형식이 많다(그림 1).

 

 

그림 1. 질료니예 마을 부근의 2호 쿠르간, 기원전 4세기, 1: 무덤 평단면도, 2~11: 여성무덤 부장품, 12~18: 남성무덤 부장품

 

 

무덤은 여성, 남성 무덤이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부장품도 다르다. 주로 여성 무덤에는 거울, 귀걸이, 구슬 및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화장도구 들이 발견된다. 또 그릇이나 생활용 송곳, 바늘 등도 있다. 남성무덤에는 주로 무기와 마구 및 남성의 장신구(목걸이 및 반지)등이 부장되었다. 무기에는 활과 창, 갑옷, 굴레장식 등이 있고 간혹 청동솥도 매장되었다. 남성여성할 것 없이 나무접시나 쟁반에 고기와 쇠칼을 올려두었고 다양한 그릇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들 부장품 가운데는 여성용품과 무기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이 무기와 함께 부장되는 무덤을 두고 기록 속의 ‘아마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팔코 2013). 여성들만 사는 부족의 명칭으로 알려진 이들은 헤로도투스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스트라보, 등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아마존의 존재가 전해진다.

 

아마존은 매우 아름답고 재능있던 존재로 묘사된다. Kallisthenes(그리스 역사가)에 따르면 Alexander Macedonsky가 그의 어머니에게 아마존이 키가 크고, 아름답고, 매우 건강하고 날카롭고, 재치있다는 편지를 썼다. 또 Diodorus Siculus도 아마존의 힘, 지능, 기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런데 헤로도투스와 스트라보, 히에로니무스가 묘사한 그들의 복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들이 남자들이 입는 것과 같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입은 것으로 기록했다(IV, 116). 스트라보는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헬멧, 외투, 벨트를 만들어 입은 것으로 묘사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II, 37)는 아마존이 가슴을 드러내고 팔과 다리로 남성 적을 유인했다고 적었다.(팔코 2013).

(아마 히에로니무스는 아마존 여성에게 당한경험을 적은게 아닐까..ㅋㅋㅋ, 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한 듯. )

 

 

공통적인 점은 활, 화살, 전투도끼, 창, 창과 올가미로 무장했고, 방패도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사실 이 무기들은 스키타이 시대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무기이다. 여성 무기를 위해서 따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냥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후반~기원전 6세기경 여성의 무덤에서 남성 무덤에 보이는 무기들이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무덤은 사르마트 시기인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대로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흔이 남아 있는 여성 인골과 무기의 존재는 흥미롭다.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아르잔-2 유적에서도 여성전사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매장된 예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깨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해서 궁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개골에는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헤로도투스가 왕의 장례식에 묘사한 미라와 같이 여성전사의 존재는 시베리아에서도 확인된다(포스팅참고).

 

2020.06.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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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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