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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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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숭배의 대상: 신화 속의 여신상 2

 

 

 스키타이 전통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는 기원전 5~4세기에 대체로 관자놀이 장식 속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그리스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은 마면장식, , 벽 장식 등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이런 유물이 출토되는 쿨-오바(Куль-оба, Kul-oba) 유적, 가이모노바(Гайманова, Gaimanova) 유적, 볼쇼야 블리즈니차(Большая Близница,Bol'shaya Bliznitsa) 유적 등에서도 스키타이 칼라프가 출토되어서 기원전 5~4세기 흑해 북안은 스키타이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뒤섞여서 대단히 복잡했던 양상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 여성 외에도 단일 용도로만 사용된 여성형상물(그림 17)이 기원전 5~4세기에 새롭게 발견된다.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이 각배를 든 남성과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여성형상물도 스키타이 칼라프를 착용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기원전 5~4세기 아르김파사는 왕급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출토되지만, 이 유물은 대형 무덤에서만 출토된다.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 장식판 속의 여성을 스키타이 신화 속의 또 다른 여성신 티파티로 추정한다. 이 여성형상물과 함께 스키타이 칼라프(그림 18)가 출토되는데, 대표적인 유적이 체르토믈리크(Чертомлык, Chertomlyk) 이다.

이런 여성형상물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신()을 재현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실제 무덤의 주인공이 입은 복장과 여성형상물이 비슷하며,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시에 특정 여성에 대한 숭배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무덤의 주인공은 그를 모시던 사제였을 수도 있다.

 

 

남성형상물도 기원전 5~4세기에 나타난다. 여성형상물들과는 다른 점은 금속제 항아리에서 표현된다. 대표적인 것이 쿨-오바 유적(그림 18)과 차스티예(Частые, Chastyye) 유적에서 출토된 금항아리은항아리이다. 세부적으로 차이는 있지만 신화 속의 한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키타이의 시조라고 알려진 타르기타우스를 묘사한 것이라는 의견들도 있지만 일상생활을 묘사한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알렉세예프 2012).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까지 이 지역에서 여성형상물이 독보적인 존재였고, ‘다산을 염원하는 마음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순동시대 쿠쿠테니-트리폴리예 문화 후반기 부터는 무덤에 부장되면서 변화가 생겼고, 기원전 7세기부터 연속해서 발견되는 여성형상물은 그 누군가를 향한 숭배와 관련되었다.

남성형상물의 존재감이 뚜렷해지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여성형상물에 비해서는 늦은 시기에 나타나며 그 양도 많지 않다. 하지만 스키타이 신화 속의 7신 중에 5명은 남성신이고, 스키타이 땅에서 처음 태어난 사람도 남성이며, 그의 후계자도 막대아들이다. 또 스키타이 왕으로 이름이 알려진 사람(알렉세예프 2003)들도 남성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3. 09:13 스키타이 동물장식

 

파지리크 유적 2호와 5호에는 말을 사슴처럼 보이도록 하는 꾸미개인 말 머리 장식이 발견된다. 유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말의 머리에 씌워서 사슴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같은 유적의 2호 남녀의 미라에게도 말형 그리핀 문신이 새겨져 있다. 머리까지 독수리 머리를 달아서 변형이 극대화 되도록 했다. 이들 말형 그리핀에게는 모두 사슴뿔이 장식되어 있고 그 끝에는 새머리를 달았다. 실제의 사슴뿔은 나뭇가지처럼 뻗은 모양이지만, 시베리아 청동기시대부터 사슴돌에 새겨진 사슴은 뿔이 2개의 가지를 뻗은 모습이다. 말형 그리핀도 기본적으로 2개의 뿔이다.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요란한 남성모자장식도 사슴뿔을 베이스로 한 모양이다.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벽에 걸어둔 캐노피 장식에는 인간이 사슴처럼 보이도록 둔갑한 문양도 발견된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심지어 호랑이가 사슴뿔을 달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 컬렉션에서 동물투쟁문의 동물은 대부분 사슴과 관련이 없지만 문신속의 말형 그리핀과 같이 머리에 뿔을 달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동물 말, 호랑이의 머리 상단 심지어 사람의 머리에도 사슴뿔이 장식되어 있다.

 

 

더보기

사슴에 대한 숭배이다.

 

파지리크 유적 5호 여성 목걸이(그림 2)에는 그리핀 장식이 달려 있는데, 사자 머리라고 생각되어서 페르시아 계통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른데, 눈이 강하게 표현되어서 그렇지 뿔을 달고 있는 호랑이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물의 발톱은 알타이 맹수들에게서 늘 발견된다. 이미 투엑타 유적에서도 뿔 달린 호랑이가 출토되고(그림 1), 호랑이형 그리핀도 있었다. 어짜피 100% 같은 유물은 존재하지 않으니 좀 더 가까운 유물과 관련성을 살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이 여성과 같은 형식의 목걸이를 착용한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도 맹수형 그리핀(그림 3)을 착용했다. 알타이에서 유행 혹은 사용된 동물장식일 것이다.

(그렇다고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페르시아 혹은 이란계통의 문양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1. 기원전 6세기 알타이 투엑타 유적의 사슴뿔 달린 호랑이, 가죽

 

그림2. 기원전 5세기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 여성목걸이

 

그림 3. 기원전 5세기 아크 알라하-3 유적 여성 목걸이 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문양으로 사용된 굽동물의 대부분은 가축화 되었으나 사슴은 유일하게 현재에도 야생이다. 사슴 중에서 아주 추운곳인 툰드라에 사는 순록(소목 사슴과)은 기원후 15세기 이후에 유목되었는데, 이들을 기르는 민족은 축치, 코략, 추반치, 에벤키 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순록유목으로 먹고 산다. 19세기에 러시아인이 이곳을 차지하기 전까지 대부분 순록을 길러서 생업을 유지했다(김재윤 201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2. 16. 13:53 스키타이 동물장식

볼가-카마 강 유역의 타이가 지대에 있던 초기철기시대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일찍부터 등장하는 동물장식은 날개를 편 새 장식이다. 이들 유물은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일찍이 날개 편 새가 등장하며, 이곳에서 타이가 지대로 새 장식을 수입했을 것이다. 타이가 지역의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취락 유적과 무덤 유적에서 출토된다.

 

흑해지역의 새 장식은 날개를 펴고 머리를 돌린 스타일이지만 이 지역의 유물은 대부분 정면을 향하고 있다. 흑해 지역의 새 장식 유물은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서부지역의 특징적인 이다(갈라리나 2006).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새 장식이 유행한 시기는 기원전 7~5세기이다.

그런데 흑해지역에서 출토된 새 장식은 독수리 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독수리 보다는 제비를 닮은 형상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새 형상은 아나닌스카야 문화(볼가-카마강 유역)의 특징도 있지만 오비 강 유역의 타이가 지대에 있던 우랄-이르티스 문화에서도 출토된다.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새 장식(청동제품), 1~54:그랴데노프스코예 뼈유구, 55-바르쉬 마을 부근에서 출토

 

볼가 강, 오비 강은 시베리아 전체에서 볼 때 서부에 해당한다. 새는 이 지역에서 토템으로 많이 사용되며 중세시대인 7~9세기 투르크 시대에서도 출토된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제비로 추정되는 새 장식이지만 오비 강 유역에 사는 현존하는 우고르 족 사이에서는 부엉이를 우상화하는 풍습이 있다. 이 민족에게 부엉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몰래 날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신화에는 샤만이 저승의 통치자인 토룸에게 갈 때 타고 가는 동물이 맹금류라고 전해진다.

 

이 지역에서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지역 민족들은 곰 축제를 즐겼다. 또한 새도 토템으로 여긴 민족지 자료로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최근?의 특징이 최초로 보이는 것은 초기 철기시대인 아나닌스카야 문화이다. 이 문화의 초기(기원전 7세기)부터 새 장식은 발견됨으로 최소한 곰과 새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직된 그들의 전통인 것이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새 모양 가운데서 가슴에 동물의 얼굴(26, 27, 28)을 표현한 복합 형상이 있다. 이 얼굴을 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힘든데, 투르크 시대의 중세시대 유물에는 날개 편 새의 가슴에 사람얼굴을 새기고 새의 얼굴은 곰의 형상을 한 유물이 출토된다.

 

그림 2. 새-곰-인간의 합성 청동장식, 기원후 7~9세기

 

그림 3. 페름 지역의 동물인간 합성장식, 기원후 11~12세기 (페름은 카마 강 유역의 도시 이름이다)

 

 

참고문헌

Косарев М.Ф. Западная Сибирь в древности. — М.: Наука, 1984.(코사로프 1984, 시베리아 서부의 고대문화)

Ю.П. Чемякин, С.В. Кузьминых. 2009, Металлические орнитоморфные изображения эпох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и Урала//У истоков археологии Волго-Камья (к 150-летию открытия Ананьин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체먀킨, 쿠지미니흐 2009, 우랄과 동유럽 초기철기시대 금속제문양장식)

В.А. Оборин, Г.Н. Чагин Чудские древности Рифея. Пермский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Пермь: Аврора, 1988 (오보린, 차긴, 1988, 페름 지역의 동물 장식)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속에 사람 뿐만 아니라 말도 함께 매장했다. 이런 무덤이 확인되는 곳은 해발 1500m의 파지릭 계곡, 2500m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다. 전자에는 파지릭 유적, 후자에는 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자아이의 무덤인데도 말이 부장되었다. 유목을 기본으로 하는 생업환경에서 동물은 그들의 재산이자, 문화 전반에 동물에 대한 표식이 남아 있다.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은 9마리 매장되었다. 9마리 가운데서 1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갈을 비롯한 굴레, 안장, 머리장식을 착장했다. 말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가장 아래에서 확인된 IX번 말이 머리장식까지 있어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무덤안에 4륜 마차가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끌던 말이라고 생각하면, IX번 말은 가장 선두였을 가능성이 크다.

 

무덤구덩이는 기본적으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남는 공간을 이용해서 매우 좁다. 말 9마리와 마차를 부장하기 위해서 층층이 쌓아서 넣었다. 무덤방의 바깥에 무덤위의 돌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직으로 세운 세 개의 기둥이 기준이 된다. 무덤구덩이의 북쪽에서 동쪽 절반은 세 마리 말이 머리 방향이 동과 서로 교차되게 해서 묻혔다. 가장 아래의 말은 IX번 말로 머리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배는 바닥에 깔고 있고, 그 위에는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등을 아래말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다시 그 위의 말은 머리가 서쪽으로 향하고 등을 아래로 향하도록 배치되었다. 기둥 뒤에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IV번 말만 넣었다. 기둥을 넘어선 서쪽에는 말 3마리가 쌓였는데, 가장 아래의 VIII번 말은 배를 바닥에 깔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 위의 말은 등을 바닥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동향이다. 말 위에는 마차가 분해한 채로 부장했고, 그 남은 공간인 가장 서쪽에 말 2마리가 서로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해서 부장되었다. 위에 있는 말은 말 머리가 무덤구덩이의 입구로 향하고 등이 하늘로 보도록 하는 자세이다.

 

말은 매장할 때 관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매장된다(그림 1, 그림2). 관의 방향이 동서방향이면, 말도 동서방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 통나무관은 모두 동서방향이고, 사람의 두향은 동향이다. 5호를 제외하고는 말의 머리장식이 있는 다른 무덤의 말은 모두 동향을 향하고 있다. 1~3호분에서는 말 머리 장식이 2개체분 출토되었고, 4호와 5호는 하나씩만 출토되었다. 그러나 5호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말 머리 장식이 있는 IX번 말의 두향은 서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말과 인간의 두향에서 규칙성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루덴코의 설명은 관이 동서방향인데, 말이 남북방향으로 매장되지 않는 것이다(그림 1, 2).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말의 두향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루덴코가 상트페테르부르그 출신이고 유럽인이어서, 동양인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자는 자는 방향을 바꾸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꿈을 심하게 꾼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자는 방향을 바꾸면 더 심해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옛날에도 있었을 테고, 두향에 대한 관념도 정해져 있었을 텐데....이런 부분은 알 수 없다.

 

 

     말 번호->

말 장식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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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안장

 

 

 

 

 

머리장식

 

 

 

 

 

 

 

 

표1. 파지릭 5호분의 말 장식(김재윤 편집)

 

위의 표는 루덴코의 서술에 따라서 말과 관련된 마구를 표로 만들었다. 의문점은 말을 부릴 때 가장 핵심인 재갈에 대한 설명이 애매하다. 애매한 부분은 물음표로 표현했다.

 

그림1.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내부

 

 

그림2. 파지릭 5호분의 무덤 구덩이 단면도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고학 환경에서는 무덤의 두향방향은 거의 연구되지 않는다. 전 시대는 아니고 선사시대가 특히 그렇다. 왜냐하면 토양특성상 인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몇 몇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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