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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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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인 타스몰라 I유적은 여성의 무덤으로 타스몰라 문화의 이른시기를 대표한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카자흐스탄 중부지역 문화를 타스몰라 문화이고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한다.

 

이 여성의 무덤은 일명 ‘콧수염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무덤 속에 매장되었는데, 무덤구덩이 속에는 양머리 2개체와 말이 매장되었다. 무덤의 남동쪽 방향으로 돌이 1m가량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무덤이다. 그럼 무덤속으로...

 

 

그림 1. 타스몰라 I유적 19호

 

여성의 머리 아래에는 돌로 만든 장식을 깔고 눕힌 것인데, 모자장식이 아니라 돌베개의 이미테이션이다.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엉덩이뼈 부근(오른쪽)이다. 오른쪽 종아뼈 아래에는 말의 견갑골과 두개골이 있었다. 말의 두개골은 청동제 굴레장식(그림 2-1~8, 그림 3-5)과 재갈, 재갈멈치(그림 4-2), 동물장식(그림 4-1)가 있었다. 반대편에는 양 머리 2개체가 있었고 그 위에는 철제칼(그림 2-9)과 함께 칼을 가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무덤 19호 재갈멈치와 연결하기 위한 구멍의 모양이 사다리꼴 인점이 시베리아 아르잔-2호에서 발견되는 재갈과 유사하다.

 

 

그림 2. 타스몰라 I 유적 출토유물

 

그림 3. 타스몰라 유적 마연석, 1-타스몰라 I, 19호, 2-타스몰라 II 24호, 3-타스몰라 VI, 1호, 4-카라무룬 I유적 5a

 

그림 4. 타스몰라 유적 마구, 1,2,5-타스몰라 I유적 19호, 3-톨라가이 4-타스몰라 I유적 24호

 

무덤 19호에서 나온 재갈의 모양은 분명히 아르잔-2호과 유사하다. 청동거울도 뒷면에 꼭지가 하나만 달린 점, 거울 가장자리에 테를 두른 점도 아르잔-2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잔-2호 5호묘 주인공 여성과 비교해 볼 때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고, 청동거울의 위치도 머리위가 아닌 엉덩이 뼈 부근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의 장법과는 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무덤구덩이 속에 말 뼈를 부장하는 점도 다르다.

 

아르잔-2호를 발굴한 추구노프 박사는 ‘유물 중에서 이미 발견된 타스몰라 문화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의미는 아르잔-2호의 수많은 유물 중에서 몇 몇 유물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아르잔-2호와 타스몰라 문화는 몇 몇 유물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덤 구조가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유물은 동산적인 것이어서 옮겨다닐 수 있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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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지역 가운데 카자흐스탄 중부에는 타스몰라 문화라고 하는 지역문화가 있다. 마구와 일부 유물은 투바의 아르잔-2호와 유사하지만 무덤구조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은 ‘수염이 있는 쿠르간’이라고 불린다. 독특하게 생긴 외형 때문인데, 쿠르간의 동쪽으로 20~200m 길이로 긴 띠가 연결되는데 이 부분이 마치 수염과 같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긴 띠는 돌로 쌓은 것으로 부채꼴 모양인데 2개가 서로 마주보는 모양이다.

쿠르간은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와 말과 토기를 매장하는 방법에 따라서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쿠르간이 2개가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장주체부의 동쪽과 남쪽에 따로 말을 매장하는 곳을 따로 두는 것이다(그림 1-1, 2).

그렇지 않고 매장주체부의 상단에 말과 토기를 묻는 경우(그림 1-3)와 말을 시신과 같은 구덩이에 묻고 토기는 구덩이의 바깥에 묻는 경우가 있다(그림 1-4).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 형식

 

카자흐스탄 라브로다 지역의 아토가이 지구에 위치한 타스몰라 유적이 대표적인데, 지점에 따라서 타스몰라 I, 타스몰라 V, 타스몰라 IV 유적 등이 있다. 각 유적에는 여러 무덤이 있는데 크게 기원전 7~6세기 무덤과 기원전 5~3세기 무덤으로 구분된다. 이 시간단위 구분은 타스몰라 문화의 시간단위 구분(편년)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 유적명은 주로 행정구역명을 기반으로 하며, 찾아진 유적마다 번호를 붙인다. 타스몰라 I, 타스몰라 II 등등.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은 대부분 단독 무덤이 아니라 여러 무덤이 군을 이루기 때문에 번호가 다른 유적은 다른 무덤군 좀 더 확장하면 다른 유적이다. 각 유적에는 무덤 여러기가 있는데,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여러 시기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스몰라 I 유적에는 36기의 무덤이 있고 그중에 기원전 7~6세기 무덤은 19~24호 무덤이고, 나머지 무덤은 기원전 5~3세기 무덤이다.)

 

기원전 7~6세기 타스몰라 문화를 대표하는 무덤은 타스몰라 I유적의 19호이다.

 

그림 2. 타스몰라 I유적 19호, 1-19호 무덤 평면도, 2-단면도,3-무덤바닥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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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무덤이 일렬로 열을 이루는 현상이 확인된다. 그런데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해발 2000m이상의 기원전 5세기 이후인 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이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가량의 발르익-소오크 (1, 2) 유적, 보르탈 (1,2) 유적 등에서는 아직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해발 1000m가량에 위치한다.

 

그런데 해발 2000m이상에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알라-가일-3 유적(그림 3)에서는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발견된다. 무덤이 일렬로 서 있는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 이후로 바르부르가지 I 유적,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무덤이 일렬로 서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기원전 6~5세기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거대 고분은 해발 1500m 가량의 높이에서만 발견되며, 무덤을 열로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 보다 높은 해발 2500m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3 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이제까지 유적을 종합한 결과로 쿠바레프, 폴로스막, 루덴코, 그라즈노프 등(위 유적의 저자)은 언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라-가일-3 유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재갈멈치이다.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화살촉,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등으로 유적의 늦고 빠름을 판단했다. 알라-가일-3유적의 5호(그림 1)와 알라-가일 유적의 11호묘 출토의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2)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빠른 형식으로 보았다.

알라-가일 유적 11호 재갈을 연결하는 구멍(그림 1-1)은 크기가 다른 2개로 큰 구멍의 형태는 원형이라기보다는 약간 네모꼴에 가까운 것과 다른 쪽은 원형이다. 구멍이 2개인 재갈멈치, 양쪽 구멍의 형태가 다른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른 재갈멈치(그림 1-4)의 단면은 원형이고,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와 다르다.

 

 

그림 1. 알라-가일 유적 11호, 1- 무덤 평면도, 2-청동제 재갈과 부착된 가죽, 3-청동과 철로 만든 검의 손잡이, 손잡이의 프레임은 청동, 안쪽 줄기는 철제로 제작됨. 4, 철제 칼, 5-가죽 옷 조각, 6,7-목제 재갈멈치, 8-유적 6호 무덤의 평면도와 단면도

 

 

알라-가일-3유적 5호묘의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하는 부위의 구멍(그림 2-2)좌우가 다르며, 재갈멈치 역시 장식성이 가미된 것이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5호, 1-청동재갈멈치, 2,3-뿔제 끈 연결고리, 4-뿔제 재갈멈치, 5-두께운 금판, 찍은 문양, 6-8: 청동제품, 9-황금 장식판, 10~12: 홍옥제 구슬 

 

 

그림 3. 알라-가일-3 유적 무덤 배치

 

쿠바레프는 이러한 정황을 들어서 알라-가일 유적 11호와 알라-가일-3 유적 5호가 알타이에서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라-가일’ 유적은 이 명칭이 붙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인데, 유적명 뒤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알라-가일-1 유적이다. 모두 7기의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1호를 포함한 4기가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명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행정구역명칭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알라-가일-3 유적과 같은 해발고도에 위치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Мартынов А.И. (ред.). Южная Сибирь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ую эпоху, 1985 (마르티노프 외 1985,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시베리아 남부)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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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용역 발굴이 있다. 러시아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사고’발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계획에 없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유적이 발견되고 급하게 유적을 발굴해야 하는 경우이다. [대개는 도로나 건물을 지을 때 생기는 경우인데, 알타이에서도 이런 발굴이 1984년에 있었다. 러시아학계에서 주장하는 러시아의 문화재보호법은 표트르 1세 이후로 생겼다. 표트르 1세의 칙령으로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황금유물들을 그냥 녹이지 못하게 하고 가져오면 상금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다.]

 

엘로-2 유적(엘로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km, 우르술 강의 좌안 단구대)은 출토된 유물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무덤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돌널무덤이긴 한데, 장방형으로 반듯하지 않고 평면형태가 사다리꼴로 넓은 쪽이 머리쪽(78cm)이다(그림 1-4). 무덤구덩이는 장방형(2.3×1.4m)이다. 관은 납작한 돌 3개와 덩어리돌 6개로 덮었으며 북쪽벽은 작은 돌로 채워진 상태이다(그림 1-3). 하지만 덮개 돌 1개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도굴의 흔적이다.

 

그림 1. 엘로-2 유적의 무덤과 출토유물, 5-7: 청동검과 청동허리띠, 8-목제칼, 9-멧돼지 송곳니, 10-곰뼈로 만든 펜덴트, 11-철제품, 12-토기

 

무덤내부의 상태는 매우 심하게 인골이 흩어진 상태였고, 관 밖에도 유물이 떨어진 상태였다.

돌널무덤의 형태(평면형태 사다리꼴)는 스키타이시대 인가 의심스럽지만, 출토된 유물 중에 청동검(그림 1-4)은 스키타이 시대 남성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무덤 상부를 덮은 돌은 3중으로 큰 돌을 돌린 후 그 안을 작은 돌로 채워서 마무리했다. 가장 중심의 직경은 3.5m, 그 다음은 6m, 가장 마지막 원의 직경은 8m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의 상부 적석은 가장 마지막 호석(직경 8m)이고, 그 중앙에 위치한 2열의 호석은 후대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 내부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되고, 양뼈, 심지어는 사람의 두개골과 뼈, 청동칼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알타이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덮개 바로 위에 후대의 무덤을 썼는데, 엘로-2 유적에서는 좀 다른 양상이다. 출토된 유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 무덤인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원래의 무덤에 덮개가 열리면서 흘러 들어간 흙 위에 후대의 무덤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도굴한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꽤나 귀찮은 후손들이었나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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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기원전 7세기 쿠르간은 헴칙 강변에서도 발견된다. 헴칙 강은 예니세이 강의 지류이다.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있는 우육분지는 평면형태가 삼각형으로, 그 보다 남쪽에 만들어진 동서방향으로 길쭉한(좀 더 자세하게는 눈썹처럼 약간 굽은 형상) 분지를 따라서 여러 유적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 한 곳이다.

 

헴칙-봄 III유적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1,2호 쿠르간의 9호묘이다.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수께끼 동물장식(그림 1-1)’이 그려진 골제 빗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 1,6: 1,2호 쿠르간의 9호묘 출토품, 3-1,2호 쿠르간의 13호묘, 4-1,2,호 쿠르간의 1호묘, 2: 헴칙 봄 V유적

 

그림2.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9호묘

 

그림 3. 헴칙-봄 III 유적, 1-퇴장지, 2-1호묘 출토품, 3-3호묘 출토품, 4-9호묘 출토품, 5-8호묘 출토품, 6-13호묘 출토품

 

9호는 왼쪽으로 누운 시신이 무릎을 굽힌 채 확인되었다. 머리는 서향이다. 청동제품은 칼(그림 2-7, 그림 3-4), 송곳(그림 2-28), 바늘(그림 2-22), 클립(그림 2-2, 18,19), 중앙에 꼭지 달린 거울(그림 2-26, 그림 3-4), 골제 빗(그림 2-13)이다. 금제품은 귀걸이(그림 2-21, 1-6)가 있고, 석제품(그림 2-6)과 터키석제 구슬 8점(그림 2-1,5,15,16,23,32), 칼세도니제 구슬 2점(그림 2-3,12), 구슬 8점(그림 2-4,9-11, 7,24,27,39), 석제 구슬 10점(그림 2-8,20,25,31,33), 목제 그릇편(그림 2-5)이 나왔다. 목제 그릇편은 인골의 우측 어깨뼈 부위에서 나왔고, 청동칼(그림 3-4)은 우측 골반뼈 옆에서 땅에 꽂힌 채 나왔다.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 아래에는 재갈과 재갈멈치 및 고삐를 장식한던 유물이 발견되었다(그림 4-1). 무덤시설이 남아 있지 않고, 인골도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이곳을 퇴장지라고 생각했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의 1,2호 쿠르간

 

헴칙-봄 III유적에서 발견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3-1), 9호묘에서 나온 청동칼과 청동거울(그림 3-4) 등은 이미 아르잔-2호에서 나온 적이 있다(아래 포스팅 확인). 발굴된 순서로 하면 아르잔-2호(2000~20004년 발굴)가 헴칙-봄 III유적(1957년~1960년대) 보다 늦게 알려졌지만, 시간적 순서로 하면 헴칙-봄 III유적에서 축조된 무덤과 유물은 아르잔-2호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9호묘에서 나온 사람의 청동거울과 청동칼은 아르잔-2호의 석관묘에서 나온 유물과 유사한데, 서로 유사한 사회적 배경(계급?)에 있던 사람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동물장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큰 쿠르간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유물을 가지고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 속의 남성보다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알 수는 없다. 

 

2020.06.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두 명이었을까?

 

두 명이었을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직경 80m 안에 주인공 무덤을 제외하고도 무덤 25기가 함께 매장되었다. 주인공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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