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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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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 강의 계곡을 따라서 무수히 존재하는 무덤 중에서 쿠바레프는 ‘울란드리크’ 유적을 조사했다. 이 명칭으로 불리는 유적은 찾은 순서에 따라서 번호를 붙였다. 그 중에서 울란드리크-1 유적에서는 물싸리 꽃이 실제로 매장된 것이 분석되었다. 물싸리 꽃은 늦 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때 무덤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투르크 전통에 ‘절벽 위에 노란 꽃이 피었을 때, 죽은 사람을 매장한다’는 어록이 전해진다. 아시다시피 알타이의 무덤은 늦봄이나 늦가을에 축조되지만. 그 중에서 많은 무덤은 특히 늦 봄에 집중해서 무덤을 축조했을 것으로 폴로스막은 생각했다. (아크 알라하-3유적을 발굴조사한 연구자).

 

꽃이 활짝 핀 물싸리 줄기는 약초로 사용된다고 한다. 또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물싸리 꽃이 의미하는 바는 부활을 상징한다. 물싸리꽃은 '쿠릴차' 라고도 불리는데 시베리아 서부의 산악지대에서 주로 바위절벽, 산악의 계곡에서 자란다. 장 안에 박테리아가 번식하는 것을 막아주고 신진대사를 정상화 하는 작용이 있다고 전해진다.

 

또 알타이의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는 '고수씨앗'이 발견된 바 있다. 해발 2500m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미라와 함께 부장된 석제 그릇에는 담긴 채 였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와 5호에서도 고수씨앗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석제 그릇과 고수풀

 

알타이에서 발견된 고수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것으로 진귀한 풀로 한정된 사람들만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루덴코 1953). 실제로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향을 맡기 위한 도구(청동솥과 천막)등이 그대로 출토되어서 향을 맡는 의식 혹은 향을 맡는 치료 등은 있었다.

고수씨앗을 이용하는 이유는 향을 맡고 신과 접신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치료 혹은 시신 부패 냄새를 없애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현존하는 시베리아와 극동의 소수민족들은 치료의 목적으로 여러 향기나는 풀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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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2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의 해발 1500m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고대 오리엔트 지역(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으로 의심케 하는 유물들이 있다. 그런데 앞서서 밝혔지만 대게 그 보다 이른 앗시리아에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발견되었다. 그 이 후에 기원전 5세기경에 알타이에서 발견되었다. 이 시점에는 이미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 몽골서부까지 스키타이 문화권이 서로 공유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문양이 구지 고대 오리엔트 지역일까 싶다. 더욱이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연꽃 문양(그림 1)이 확인된다. 대부분 펠트 소재로 정교하게 재단된 것으로 양모로 된 제품(의복, 안장덮개)등에 붙여서 사용되었다. 특히 2호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이 문양도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알타이에서 고쳐서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기원전 4세기 흑해 지역의 유적인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철제 검의 손잡이에도 연꽃 문양이 발견되었다. 특히 이 유물은 스키타이 단검과는 다른 것으로 아케메니드 왕조와의 관련성을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포스팅했다(포스팅참고).

 

2020.12.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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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 발견된 연꽃

 

 

알타이에서 발견된 기원전 6~5세기 무덤에서는 주로 물싸리 꽃이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 바샤다르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등에서 실제로 발견된 바 있다. 폴로스막은 투엑타 유적과 파블로프 유적에서 발견된 굴레장식 가운데는 실제 식물을 모델링한 유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에 무덤에서 발견된 피장자의 머리맡에는 금박 장식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대부분 모자장식으로 물싸리 꽃을 형상화 했거나 동물장식이다. 실제로 울란드리크-1 유적에서도 물싸리 꽃이 분석되었다(포스팅 참고).

 

2020.10.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자연교통로가 된 추야 강에는 북쪽으로 유스티드 강, 남쪽방향으로는 울란드리크 강이 흐른다. 울란드리크 강 유역에는 8개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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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갯잎을 채운 식물 가운데는 타임과 지지포르(Ziziphora interrupta)가 있다. 후자가 향이 훨씬 강한데 멘솔향과 가깝다고 한다. 타임은 알타이 전 지역에서 자라고 지지포르는 알타이에서는 딱 한 곳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알타이의 무덤에서 발견된 동물과 식물은 알타이의 자연을 반영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연꽃 문양은 어떻게 된 것일까?

 

실제로 연꽃은 무덤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물 속에는 남아 있다. 특히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 물건(신발, 의류, 주머니)과 무덤 벽을 장식한 일종의 프리즈에도 있다.

알타이의 모든 유적에서 발견되는 문양은 아니기에 또 흥미롭기도 하다. 연꽃이 유적 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는데, 유물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문양이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갈기가 표현된 사자머리와 같이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온 문양이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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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무덤에는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사용되었다. 주로 맹수와 맹금류 그리고 그들의 먹이가 되는 굽동물이 소재이다. 단순하게 표현되는 동물장식은 많지 않고 변형된다. 사실적이지만 간략화 되며, 2마리 동물 이상이 합성된다. 주로 맹수와 맹금류의 변형을 그리핀이라고 한다. 그리핀은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변형된 동물은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기원전 4~3000년기 청동기시대에도 돌에 그려진 채 발견된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의 연구를 대부분 존중하지만 필자에게는 약간 다른 생각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물장식으로 사용된 ‘수탉’이다.

 

파지리크 유적의 1호의 통나무관(그림 1)과 1호의 말의 장식으로도 사용된 동물장식 중에 ‘수탉’이라고 명명된 것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맹금류의 변형일 것이다. 2호에서 발견된 안장장식 중에는 수탉처럼 생긴 동물이 거대한 큰 사슴을 공격하는 장면이 안장덮개 장식으로 만들어진 바 있다(그림 2, 3). 동물투쟁문양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그린 것으로 수탉이 굽동물을 공격한 장면은 있을 수 없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1호 통나무관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2와 동일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1호 안장덮개

 

 

그림 5. 파지리크 유적 2호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안장덮개 장식(그림 5)과 비교해 보면 수탉이라고 불린 동물의 입모양이나 발모양(그림 1)은 거의 비슷하지만 목의 갈기가 표현되지 않아서 수탉처럼 보일 수 있었다. 1호에서 나온 다른 안장덮개 장식의 동물도 수탉(그림 4)의 입 모양, 발과 밝톱 표현이 같지만 갈기가 있고 없음에 따라서 수탉(그림 1~3)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림 1)은 수탉이라기 보다는 맹금의 변형인데 약간 표현력이 약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특히 1호에서만 (먼가 빠진 듯한) 맹금그리핀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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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해발 1500m 무덤에는 매우 다채로운 물질문화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제작된 유물도 있지만 흑해지역이나 고대 오리엔트에서 들어온 문화도 있었다. 특히 흑해지역에서 들어와서 재해석한 문양은 양모천에 사용되기도 했다.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양도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재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지리크 5호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는 벽을 장식한 캐노피인데, 그곳에는 반인반수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한 것으로 앞다리와 뒷다리의 모양도 다르고, 날개, 꼬리 표현 등 일반적인 알타이 유물과 다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중에서 반인반수

 

반인반수의 전통은 기원전 2000년기(기원전 14세기경)에 고대 오리엔트에서 처음 나타난다. 히타이트 도시의 조각품에 발견된 바 있다. 비슷한 주제는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우라르투에서는 청동상 등 다양한 유물이 있고 앗시리아의 인장 및 시리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시리아(그림 2)에서 발견된 반인반수는 동물의 자세가 파지리크 5호품과 유사한 편이다. 또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그림 3)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시리아의 반인반수

 

그림 3.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투에서도 반인반수가 상당히 유행했고,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이미 흑해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반인반수도 고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던 문양의 재해석일 수 있다.

 

그런데 반인반수가 문양이 그려진 카페트에는 동양인 얼굴을 한 여성과 서양인 얼굴을 한 남성이 만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남성은 스키타이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복장은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남성의 복장과도 달라서 전혀 다른 민족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재해석 된 유물과 함께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3.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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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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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일천년기 유라시아 초원의 문화는 비슷한 듯 하지만 차이가 분명하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권의 중심에 있었던 알타이에는 다양한 문화가 발견되지만 알타이에서 재해석 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에서 필자는 동물투쟁문양 가운데서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은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앗시리아 수입품 가운데 발견되기도 했고, 페르시아 문양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게 두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이미 이 문화권 내에 기원전 7세기경에 이러한 문양이 발견되었다면 이를 구지 페르시아에서 넘어왔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어제 설명한 양모에 표현된 여성들과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에서 지속적으로 문화교류가 있었고 넘어 왔다고 해도 페르시아의 사자 변형동물과는 차이가 있다. 수사의 궁전벽에 그려진 날개 달린 사자 그리핀(그림 1)은 앞다리와 뒷다리 표현이 다르다. 뒷다리는 새의 다리이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투쟁문양의 맹수 혹은 그 변형은 전부 앞다리와 뒷다리가 같다. 말 발굽이나 맹수의 발을 하고 있다.

주로 안장덮개 장식으로 많이 이용되었지만 허리띠 장식(그림 3)으로도 사용된 것이 2호에서 발견되었다. 은제품으로 가죽 벨트에 장식했던 장식이다.

 

그림 1. 수사 궁전의 사자 변형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안장덮개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의 남성벨트 장식

 

그래서 파자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사자 변형동물 중에서 투쟁문양을 하고 있는 동물문양은 알타이에서 재해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완전히 페르시아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유물은 숫사자(그림 4)를 표현한 머리 장식과 같은 것인데 동물투쟁문양처럼 많지 않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1호 출토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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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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