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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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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금요일에는 중부고고학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저도 발표할 기회가 생겼는데, '환동해문화권 쪽구들 유라시아 확산현상에 대한 검토'라는 제목입니다.

 

러시아 연해주의 철기시대 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는 최초로 쪽구들(온돌의 초기모습)이 집안에서 발견됩니다. 이 문화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인접한 중국에서도 발견되는데,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라고 하고, 옥저로 비정되고 있습니다. 필자가 유학할 때 이 문화에 대해서 2편 가량의 논문을 적은적이 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발표할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이 문화에서 나타나기 시작해서 기원전 3세기경에는 북한의 청천강 유역과 우리나라 남해안의 방지리와 늑도 유적 기원전 2세기경에는 자바이칼(바이칼 호수의 우측 및 아래쪽) 흉노 유적에서 확인됩니다. 기원후 2세기에는 북한강 유역에서도 집안에서 발견됩니다. 연해주에서 발생한 초기 온돌(쪽구들)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쪽구들은 3000년 전 알래스카의 에머크낵 유적에서도 발굴되었고, 서주만기 화북성의 동흑산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산발적인 자료입니다. 이 외에도 다수의 지역에서 쪽구들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보다 먼저 생겨난 지역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발생한 이후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야만 문화적 특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쪽구들은 단결-크로우노프카 문화에서 나타나서 고구려, 발해를 거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남북한에서도 북방의 쪽구들을 수용하면서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현대까지 온돌로 발달되었습니다. 북방에서도 발해 이후에 금, 원 시대 그 이후 북방민족들 및 현존하는 나나이족 등 여러 민족도 사용하고 있어서 발생된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어서 문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환동해문화권은 러시아 연해주(인접한 북한, 중국)와 한반도 중부지역(때에 따라서 남부지역 포함)이 신석기시대 이후로 남북국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역사적 관련성을 가지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강인욱 2006)용어입니다.

 

 

초청장 상단: 북한강 유역에 위치한 율문리 유적의 쪽구들 집자리

 

참고문헌

김재윤 ,2022,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쪽구들 유라시아 확산 현상에 대한 검토 : 우리나라 북한강 유역, 청천강 유역, 자바이칼 흉노」, 2022년 중부고고학회 학술대회 발표자료집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고대 인도언어로 씌여진 리그베다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하지만 안드로노보 문화를 연구한 쿠즈미나,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을 발굴한 게닝은 리그베다에 언급된 의례행위와 신타시타 유적에서 남겨진 의례모습을 비교한다. 그래서 소개만 한다.
(리그베다 가운데 가장 오래전에 씌여진 부분은 ‘가타’라고 하는 부분으로 기원전 1200~1000년경에 작성되었고, 원전은 기원전 1500년경 보다 이전에 씌여졌다고 한다. : 데이비드 앤서니)

신타시타 유적의 SB쿠르간은 불룩한 봉분 아래에 나무구조물로 된 매장 주체부 위를 돔형 지붕이 덮고 있고 사방에는 나무구조물이 이를 받치고 있는 구조였다(어제 포스팅 참고).

그림 1. 신타시타 유적 SB 쿠르간 복원도


그런데 리그베다에는 “그들에게 망자를 이 언덕 아래로 묻도록 하라”라는 구절은 쿠르간을 의미한다고 보았고, 지붕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도 있다고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뿐만 아니라 신타시타 남쪽의 SB 무덤군에서 발견된 동물희생구덩이를 리그베다의 구절에서 찾기도 한다. 희생구덩이를 상기하면 말, 소, 양의 머리가 2열로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토기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서 두었다. 그리고 동물의 두개골 사이에는 말의 발 부분의 뼈가 놓여 있었다(그림 2).

그림 2. 신타시타 유적 SM 무덤군의 희생구덩이 1호


리그베다에는 희생물을 자르는데 다리를 손상시키지 말고 가지런히 놓을 것을 주문하는 장면도 적혀 있다. 뿐만 아니라 경주마를 요리하고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내용도 적혀 있는데, 장례식에 온 손님을 대접하는 장면을 서술한 것이다. 또한 희생구덩이에서 항아리를 엎어놓은 것은 세상의 왕이 대지를 적시기 위해서 바루나가 통을 뒤집는다는 구절과도 연결시키기도 한다(데이비드 앤서니).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1960)가 자신이 경험한 중앙아시아민족의 장례식 장면을 묘사했는데, 매우 거대했고, 손님 접대를 어떻게 했는지 상세하게 적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발굴한 기원전 5세기경의 유적들도 비슷한 장면으로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신타시타 유적에서도 거대한 장례식 뒤풀이가 있었을 것이다. 아래 포스팅에서 루덴코가 경험한 장례식에 대한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2020.07.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샤다르 유적] -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알타이의 장례식과 미라

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는 높은 곳에 깊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고 말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이 행해졌다. 2600년 전 이전에도 장례식 이후에 축조된 결과물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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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타시타 유적이 위치한 토볼 강변은 매우 평지인데, 높이 4.5M의 쿠르간이 만들어졌다면 꽤 인상이 깊었을 것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안드로노보 문화의 세력범위는 꽤 넓었다. 안드로노보 문화의 아류작이 아프카니스탄 북부(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까지 발견된다고 보고되었다., 당시에 전차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면, 리그베다를 지은이가 자신의 책에서 서술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본다.

얼마 전에 시인 톨스토이(안나 카레리나를 쓴 소설가 아님)가 1840년에 쓴 ‘쿠르간’이라는 시도 발견했다. 쿠르간은 인상깊은 고대의 유산이었기에 아주 오랫동안 문학의 소재로 이용된 듯 하다. 인도 유럽 공통조어를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아리아인이라고 불렀다던지 이런 것은 전혀 잘 모르겠다.
신타시타 유적에서 발견된 이상한 쿠르간과 의례행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참고문헌
Генинг В.Ф., Зданович Г.Б., Генинг В.В. Синташт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памятники арийских племен Уральско-Казахстанских степей. Часть 1. Челябинск. Южно-Ураль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1992. - 448 с. (게닝, 즈다노비치, 게닝. 1992. 신타시타 유적: 우랄-카자흐스탄 스텦지역 아리아 인의 고고학 유적)
데이비드W. 앤서니. 『말, 바퀴, 언어』. 에코리브르. 201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크라이나 드네프르강의 유역(좀 더 정확하게 남부그 강)에는 쿠쿠테니-트리폴리예 문화라고 하는 매우 지속력이 강한 농경문화가 자리 잡았다. 문화는 기원전 5200~5000년경에 시작된다. 이 문화의 후기인 기원전 3700년경에는 대형 집락이 들어선다.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둥글게 지어진 것이다. 마이단네츠케, 탈얀키, 도브로보디 유적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을 일컬어서 도시라고 하지는 않았다. 도시에는 행정관청이나 사원 혹은 매우 집중화된 권력이 나타나야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점에 흑해의 우안에 위치한 코카서스 산맥의 북부 쿠반 강 유역에서는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취락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매우 강력해 보이는 권력을 가진 남성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높이가 11m가 넘고 직경이 100m가량의 남성 무덤이다. 이 남성은 코카서스 보다 남쪽의 우루크 지역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 마이코프 남성의 의복과 일부 부장품은 거기서 가져온 물건이기 때문이다. 목걸이로 사용된 구슬은 더 먼 동쪽 타지기스탄, 파키스탄 등에서도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마이코프 문화를 메소포타미아 문화의 유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화적 코드는 무덤인데, 쿠르간이다. 기원전 4400~4200년경 드네프르강 유역에 말을 타고 나타났던 스레드니 스톡 문화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쿠르간은 동유럽 전체에도 퍼졌고, 일부 엘리트 집단들은 부장품을 풍부하게 묻었다. 이 문화는 기원전 3700년까지 영위되다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고 그 이후에는 미하일로프카 I문화가 들어섰다. 이때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마이코프 문화가 생겨나면서 쿠르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미하일로프카 I문화에서도 쿠르간이 만들어지지만 훨씬 더 큰 쿠르간은 코카서스 지역에서 생겨났다.

 

그림 1. 코카서스 북쪽 마이코프 문화의 쿠르간

 

그림 2. 드네프르 강 하류의 미하일로프카 I 문화의 쿠르간

 

마이코프 문화 이전에는 스보보드노예 문화가 있었고, 집이나 토기 제작기술은 이곳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무덤양식의 변화만 마이코프 문화에서 있었다. 마이코프 문화는 재지의 문화이지만, 인접한 지역에서 유행하던 매장방법을 따르면서 쿠르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혹은 사람들이 왔을 것이다.

 

마이코프 문화의 토기는 붉은 색으로 광을 내서 만드는 항아리형 토기이다(그림 3).

 

그림 3. 마이코프 문화의 토기

 

마이코프 문화에서는 토제 원통형 인장(그림 4)도 발견되었다. 크라스노바르데이스코예 유적에서 발견된 것인데, 사슴과 나무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4000년경에 비슷한 문양이 아나톨리 지역에서 점토판에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코카서스 남쪽 도시의 우루크 중~후기에 돌로 되어서 메소포타미아 상인들이 사용했을 것이다.

 

그림 4. 원통형 토제 인장

 

기원전 3700~3400년경 마이코프 유적이 위치한 코카서스 지역에서는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권력자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는 동시대의 다른 이들은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했던 흔적을 남겼다.

 

참고문헌

데이비드W. 앤서니. , 바퀴, 언어. 에코리브르. 201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3.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경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알타이의 높은 곳에서는 말을 변형시킨 동물문양이 발견된다(그림 1). 미라의 문신에게서 발견되는데, 살아 생전에도 문신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말을 변형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흑해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이 시대에 변형동물은 대개 그리스 신화속의 장면이 표현된 유물에서 보인다. 그리스 사람들이 흑해지역에서 많이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 1.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전사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 유물 가운데서 말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러나 스키타이 동물장식처럼 ‘양식화(스타일)화 되지 않았다(그림 2).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말 탄 전사가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말을 동물장식을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림 1. 쿨-오바 유적의 말 탄 전사

 

말이 양식화 되어서 나타나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이고, 알타이에서 가장 극대화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알타이 주변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 기원전 5~4세기 유적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크게 변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말을 무덤에 부장하는 전통, 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전통, 말을 변형시키 동물문양의 전통은 확실히 시베리아의 지역적 특징이다.

초원을 달리는 민족에게서 가장 중요한 동물은 말이었을 것이다.

왜 다른 지역에서는 말을 양식화 한 동물문양장식은 없을까?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와 이를 변형시킨 늑대는 많은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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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3. 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필자는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안장의 옆에 달린 장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려하게 꾸민다는 점에서는 일정정도 이해가 갔지만, 필요 없는 유물을 만들지 않는 알타이 사람들의 특징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5세기 보다 이른 말 장식을 찾으면서 약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의 5호의 9번 말은 무덤의 가장 아래에 매장되었다. 이 말은 사슴뿔이 달린 가면(그림 1)까지 쓴 화려한 말이다. 필자는 이 말 장식은 살아 있는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꾸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림 1.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말 가면

 

그림 2.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IX번 말 복원

 

그런데 그때는 머리만 집중했지만 전체적인 것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가면을 쓴 말의 안장에는 양 옆으로 길게 늘어지게 장식을 붙였다. 펠트로 된 것인데, 주로 동물문양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장식은 변형된 말의 날개 표현일 수 있다. 말의 변형은 기원전 7세기 유적에서 처음 발견되는데 날개를 달면서 시작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5호에서 말의 가면은 IX번 말에서만 발견되는데, 이 말의 안장장식이 길게 늘어진 것이다. 말의 안장 옆에 장식을 단 말들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늘어지지는 않는다. 비 실용적이기 때문이다(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는 길게 늘어진 의미심장한 말 안장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4)

 

그림 3.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의 말 안장

 

그림 4. 알타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말 안장장식

 

합성된 말은 알타이 미라의 문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몸통은 말이지만 얼굴은 독수리, 사슴뿔이 달려 있고, 그 끝에는 새머리가 달려 있는 동물은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아래포스팅참고).

2022.03.05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 고유의 동물문양

고대 알타이에는 드넓은 스키타이 문화지역과는 좀 다른 점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동물문양장식이다. 특히 문신을 한 미라는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드넓은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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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는 변형된 말 그림만 문신으로 남아 있어서 다른 미라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지워진 머리 옆에 날개 표현도 남아 있는데 아마도 하나의 문양이었을 것이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의 남성전사

 

파지리크 5호의 남성과 여성미라는 변형된 말 문양이 문신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대신 5호 남성미라의 오른쪽 손목 위에는 변형되지 않는 말과 호랑이가 문신으로 남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문신을 포함한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지역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은 기원전 4~3세기 흉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그들은 동물장식을 집안의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