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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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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8.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에서 스키타이 문화 이후 기원전 4세기경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봉분이 있는 무덤이 만들어진다. 땅에 직사각형 혹은 정사각형 구덩이를 파고 다시 벽을 동굴처럼 파들어간 형식이 많다(그림 1).

 

 

그림 1. 질료니예 마을 부근의 2호 쿠르간, 기원전 4세기, 1: 무덤 평단면도, 2~11: 여성무덤 부장품, 12~18: 남성무덤 부장품

 

 

무덤은 여성, 남성 무덤이 구분되어 있고 따라서 부장품도 다르다. 주로 여성 무덤에는 거울, 귀걸이, 구슬 및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장신구와 화장도구 들이 발견된다. 또 그릇이나 생활용 송곳, 바늘 등도 있다. 남성무덤에는 주로 무기와 마구 및 남성의 장신구(목걸이 및 반지)등이 부장되었다. 무기에는 활과 창, 갑옷, 굴레장식 등이 있고 간혹 청동솥도 매장되었다. 남성여성할 것 없이 나무접시나 쟁반에 고기와 쇠칼을 올려두었고 다양한 그릇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들 부장품 가운데는 여성용품과 무기가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성이 무기와 함께 부장되는 무덤을 두고 기록 속의 ‘아마존’이라고 추정하고 있다(팔코 2013). 여성들만 사는 부족의 명칭으로 알려진 이들은 헤로도투스 뿐만 아니라 히포크라테스, 스트라보, 등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에서 아마존의 존재가 전해진다.

 

아마존은 매우 아름답고 재능있던 존재로 묘사된다. Kallisthenes(그리스 역사가)에 따르면 Alexander Macedonsky가 그의 어머니에게 아마존이 키가 크고, 아름답고, 매우 건강하고 날카롭고, 재치있다는 편지를 썼다. 또 Diodorus Siculus도 아마존의 힘, 지능, 기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런데 헤로도투스와 스트라보, 히에로니무스가 묘사한 그들의 복장은 일치하지 않았다. 헤로도투스는 아마존들이 남자들이 입는 것과 같은 매우 화려한 복장을 입은 것으로 기록했다(IV, 116). 스트라보는 야생동물의 가죽으로 헬멧, 외투, 벨트를 만들어 입은 것으로 묘사했다.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Eusebius Hieronymus, II, 37)는 아마존이 가슴을 드러내고 팔과 다리로 남성 적을 유인했다고 적었다.(팔코 2013).

(아마 히에로니무스는 아마존 여성에게 당한경험을 적은게 아닐까..ㅋㅋㅋ, 뭐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한 듯. )

 

 

공통적인 점은 활, 화살, 전투도끼, 창, 창과 올가미로 무장했고, 방패도 사용한 것은 동일하다. 사실 이 무기들은 스키타이 시대부터 전해져온 전통적인 무기이다. 여성 무기를 위해서 따로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 그냥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후반~기원전 6세기경 여성의 무덤에서 남성 무덤에 보이는 무기들이 있는 유적들이 상당수 발견된다. 이런 무덤은 사르마트 시기인 기원전 2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대로 여성들만 사는 아마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상흔이 남아 있는 여성 인골과 무기의 존재는 흥미롭다.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아르잔-2 유적에서도 여성전사가 머리에 큰 상처를 입고 매장된 예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녀의 어깨 근육이 비대하게 발달해서 궁수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녀의 두개골에는 죽음으로 갈 수 있는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헤로도투스가 왕의 장례식에 묘사한 미라와 같이 여성전사의 존재는 시베리아에서도 확인된다(포스팅참고).

 

2020.06.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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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Fialko E. E. 2013 a Ukrasheniya v kostyume skifskikh amazonok. In: V. V. Klyuchnikov (ed.), Pricherꠓnomorye v antichnoye i rannesrednevekovoye vremya. Sbornik nauchnykh trudov. posvyashchennyy 65-letiyu prof. V. P. Kopylova (pp. 231–241). Rostov-na-Donu: Nauchno-metodicheskiy tsentr arkheologii YuFU.

Fialko E. E. 2012 b Skifskiy kurgan s antichnymi importami u s. Zelenoye. Bosporskiye issledovaniya, XXVI, pp. 218–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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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가 흑해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보스퍼러스 왕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기원전 5세기 경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의 해협)에 위치한 이 국가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를 많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 문화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포스팅 참고).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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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의 지도자 이름 가운데 아스푸르그, 파르조이 등 이란 출신의 이름이나 사브로마트라고 하는 민족명도 있었다. 아마도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기원전 1세기에는 특히 보스포러스 왕국 인구의 인종 구성은 크게 혼합되었던 것고 생활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유목생활방식과 흑해 북안의 대초원의 호전적인 성향이 유물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된 벽화는 유르트를 묘사하고 있다. 또 케르치 해협에서는 이 시기의 4바퀴의 수레 점토모형도 발견되었다(그림 1). 유목민의 텐트는 펠트로 만들어졌고 마차에 부착되었고, (그림 2) 소는 텐트 주변에서 풀을 뜯고 치즈와 우유를 먹었다.

 

사르마트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축업을 했는데 특히 유목생활을 했다. 지리학자는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이동했던 것으로 기록했다. “ 그들은 무리를 따라가며 항상 가장 좋은 목초지가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데 여름에는 평야, 겨울에는 아조프 해 근처의 늪에서 지낸다.

 

 

그림 1. 기원전 1세기경 보스포러스 지하의 벽화 그림

 

 

 

그림 2. 기원후 1~2세기 케르치반도. 수레모형, 토제품, 1900년도에 구입함.

 

스키타이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유사성은 쿠르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때로는 무덤이 일렬로 늘어져서 언덕 위에 축조되거나 가장 높은 지역 주위에 그룹화되어서 발견되었다. 사르마트 사람들도 사후 세계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대 무덤에 개인 소지품, 생활용품과 의례용품, 음식(고기 및 음료) 등을 넣었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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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5. 09:22 사르마트 문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강역을 언급하면서 8개의 강을 이야기 했다. 그 중에 한 곳은 타나이스로 지금의 돈 강 유역이다. 그 강을 넘어 가면 사우로마트 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는 것으로 이야기 했다. 스키타이 문화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시기는 기원전 4세기인데, 이 때의 상황을 이야기 한 것이다.

실제로 볼가강과 돈강 중간 지점에서 발견되는 유적지는 흑해북안과는 비슷하지만 지역적 특징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사르마트 문화는 기원전 4~3세기경 동쪽에서 들어와서 돈 강유역의 사우로마트 문화와 결합했고 이 문화는 그대로 사르마트 문화로 통칭된다. 이 문화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1세기이고, 기원후 1세기경에 흑해북안의 드네프르강까지 다 차지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작가 Diador는 사르마트 사람들이 다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Aorses, Siraks, Roxolans, Yazygs라고 불리는 부족들이 연합했다고 알렸다. 특히 지리학자인 Strabo는 사르마트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남겨 놓았다. 이와 함께 고고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기원전 2~1세기 부터 러시아 남부 대초원에 어떤 민족들이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기원후 볼가 하류에는 카스피해 북부와 서부 해안을 따라서 오르세스(Aorses)0 부족이 살았는데, 가장 큰 부족이다. 이 부족의 남쪽과 서쪽 이웃은 아조프 해안을 따라서 살던 시라크스(Siraks)이다. 드네프르와 돈강 사기의 광대한 공간은 록솔라니의 소유 였다. 기원후 1세기 후반에는 시라크스의 남동쪽인 카스피해와 아조프 해 사이도 그들이 차지 했다. 아랄 북쪽에는 알라니, Yazygs는 다뉴브 강주변, 메오트Meot 부족의 문화는 쿠반지역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의 각 부족

 

 

지리학자인 Strabo는 사르마트 전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은 생소가죽으로 만든 투구와 껍질을 쓰고 나뭇가지로 짠 방패를 쓰고 창, 활, 칼로 공격무기로 사용했다.”

 

그런데 비슷한 모습을 한 사르마트 전사가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기원후 2세기 유적인 타나이스 출신(돈강 하류의 그리스 식민지)의 총독 Tryphon이 대리석으로 된 조각에서 확인된 바 있다(그림 2). 총독은 펄럭이는 망토를 착용하고 어깨에 브로치를 달고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다. 비슷한 전사의 이미지는 기원후 1세기 보스포러스 해협의 지하실 벽화에서도 발견되었다(그림 3)

 

그림 2. 트리폰이 묘사된 대리석

 

그림 3. 보스포로스 해협의 기원후 1세기 지하실 벽화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Сарматы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자세츠카야, 2008, 흑해 북안의 사르마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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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4.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에 홀연히 등장하는 사르마트 문화는 흑해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몰아내었다고 헤로도투스가 묘사했지만 여러모로 연속되는 점등이 많다. 특히 동물문양장식이 그러하다.

 

볼가강 하류의 베흐네 포그놈노예 마을에서 발견된 무덤(기원전 1세기)에서 부조된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가죽띠에 붙여서 장식판으로 사용한 것이다. 일종의 ‘동물투쟁문양’이다. 말을 맹수가 공격하는 장면이다. 스키타이 동물투쟁문양은 주로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를 물어뜯거나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피식자는 주로 양, 염소 등인데 이 유물에서 공격당하는 동물은 약변형되어 있다. 말의 머리와 몸통이지만 귀 옆에 염소의 뿔이 붙어 있다. 공격하는 맹수의 얼굴은 유물이 부러지면서 결실되어서 잘 알 수 없다.

 

그림 1. 베르흐네 포그롬노예 쿠르간 2호 안의 2호묘, 기원전 1세기

 

 

어깨와 엉덩이의 근육, 뿔과 지골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러 형태의 유색 감옥이 삽입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감입부만 남아 있다.

 

그런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듯 한 유물이다.

 

앞서서 여러번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 중에 말을 공격하는 그리핀이 표현된 버클 장식과 비교할 수 있다. 이때 맹수는 염소의 뿔을 달고, 날개를 달고 있는 그리핀이었다. 하지만 그림 2의 말 사지골 사이에 표현된 <▽○∇ 문양은 사르마트 문화의 유물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사실 이 모양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펠트로 된 동물투쟁문양에서도 있었던 표현법이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가운데 1점, 기원전 5~4세기로 추정.

 

사르마트 문화의 동물투쟁문에서 공격하는 맹수는 얼굴은 잘 알 수 없지만 목이 길고 몸통이 매우 길게 표현된 동물이다. 앞서 소개한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의 목걸이에도 몸통이 길게 표현된 용이 있었다. 그 유물은 기원후 1~2세기 유물로써, 그림 1의 베르흐네 포그롬노예 유적보다 200~300년 늦은 것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황금유물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동쪽에서 왔는가 하는 문제와 귀결된 듯하다.

 

참고문헌

Королькова Е.Ф. 2008 : Сарматские украшения и сибирское золото древних кочевников. //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코롤코바 2008, 사르마트 장식품과 고대 유목민의 시베리아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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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3. 09:22 사르마트 문화

동유럽 사르마트 문화의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는 세계수가 표현된 관을 쓴 여성이 매우 화려한 목걸이를 착용하고 매장된 무덤이 발견되었다.

 

관과 목걸이는 아프카니스탄의 틸랴테페 유적과 비교할 수 있다. 이 여성의 관에 표현된 나무와 동물(숯사슴과 독수리)의 이미지는 틸랴테페 유적의 6호 무덤에서 나온 여성관에도 같은 내용이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틸랴테페 6호관은 앞에서 포스팅한 바 있다.

관에는 5개의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인데, 4개의 장식판은 새와 나뭇잎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그림 1-4).

 

2022.01.11 - [이름없는 왕의 무덤:틸랴-테페유적] - 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북방유목문화

 

아프카니스탄에서 발견된 북방유목문화

아프카니스탄에 위치한 틸랴-테페 유적의 6호 무덤은 여성이 피장자인데, 매우 화려한 옷을 입고 매장되었다. 목 아래에는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 표현된 장식판으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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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관 도식도, 1: 코비야코프스키 유적 10호, 2- 우스트 라빈스키 유적 46호, 3-호흘라치 유적 관의 상부, 4: 틸랴 테페 유적 6호 무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 10호 목걸이에는 청록색 돌인 터키석이 상감되어 있다. 아몬드, 직사각형, 방형, 물방울 모양 으로 상감되어 있는데, 틸랴테페 유적에서도 같은모양으로 상감된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그곳에서는 귀걸이, 버클 등에 상감기법이 가미되었는데 모두 같은 모양으로 잘려진 터키석이 상감되어 있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 10호의 목걸이는 노란 황금색과 청록색의 대비가 강렬한데, 두 재료의 조합은 틸랴테페 유적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틸랴테페 유적은 쿠샨왕조 직전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원전 1~기원후 1세기의 유적이다.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의 사르마트 문화와 틸랴테페 유적 간에 어떤 관련성이 있었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문화에 이어서 사르마트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록에 남겼는데 동쪽에서 온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이 기간에 동쪽에 존재했던 콤마게네, 파르티아, 쿠샨왕조의 신전 속에 고대 도상학 자료는 무역품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가장 유력한 곳이 박트리아 지역이었고 그 곳에 틸랴테페 유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그리스 문화적인 요소가 많이 보이는데, 틸랴테페 유적에서도 그러한 점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엉켰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CaFajXSFeSvu-7eu96jRe4TImmu5nqc&usp=sharing 

 

사르마트 - Google 내 지도

사르마트

www.google.com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