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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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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22.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기원전 4~기원후 2세기)의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에는 특별한 금박장식이 붙은 관이 발견되었다. 주인공은 여성인데, 관과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특히 목걸이는 화려하기도 하지만 사료적 가치가 큰 유물로 여겨진다.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의 목걸이, 기원후 1~2세기

 

중앙의 남성 좌우로 몸통이 긴 용을 타고 있는 기마전사가 궁수와 창을 들고 있는 전사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기마전사, 궁수, 창을 든 전사는 반인반수이다.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인간이다. 그리고 이들이 입고 있는 것은 갑옷이다. 판 모양으로 이어 붙인 상부와 하단은 스커트 모양이다.

 

그림 2. 그림 1의 세부

 

중앙의 남성이 입고 있는 옷과 잔은 스키타이 시대 부터 알려져 있다. 유목민의 전통적 특징을 증명한다(그림 3).

 

그림 3. 그림 1의 세부

 

그런데 이 남성이 무릎에 얻은 검과 검집은 스키타이 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문화의 검을 아키나케스라고 하는데, 검날멈추개(손잡이와 검의 경계)가 튀어나온 것인데, 목걸이 속의 남성은 그렇지 않다.

 

 

그림 4. 기원전 6~4세기 스키타이 문화(하단)와 기원전 4~3세기 사르마트 문화(상단의 검과 겁집

 

 

어찌되었던 목걸이에서는 여러 단서를 찾을 수가 있는데, 우선 그 중에 하나는 중앙의 남성은 잔과 검을 보여주기 때문에 군대의 우두머리와 제사장을 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러시아 연구자들은 남성의 자세에 주목한다.(왜냐하면 양반다리하는 자세가 매우 불편한 서양인들이 많다.) 일종의 명상자세로 신성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목걸이는 아마도 의례를 위해서 특별히 제작되었을 것이고, 평생동안 무덤 주인공이 착용했던 것이다. 일부 목걸이가 결실되었고 재사용흔적이 있다.

그리고 이 목걸이를 착용한 여성은 매우 높은 지위의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관과 목걸이 때문만은 아니고 이미 소개한 향수병과  풍뎅이, 숫양이 달린 그릇, 태양과 식물을 상징하는 여러 물건(텍스트로만 소개) 등이 있는데, 주인공이 제사장이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혹은 전설적인 사르마트 여왕과 가까운 지위에 있는 지도자의 아내일 수도 있다.

 

사르마트 문화에서 1~2세기 초에 대형 쿠르간(높이 1~3M, 무덤 구덩이의 깊이 3M)이 등장하는데, 그때 특별한 ‘왕/여왕(?)’이 등장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1.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에서 황금관은 호흘라치 유적의 유물이 잘 알려져 있다. 북방의 상징과 그리스 문화가 함께 결합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관의 상단에는 세계수를 중심으로 양쪽에 동물장식이 있는 모티프 인데, 같은 주제로 된 황금관이 코비야코프스키 무덤에서도 발견되었다(포스팅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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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 [사르마트 문화] -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의 나무숭배 의식 관(冠)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주인공

 

 

가죽으로 된 띠에 황금 장식판을 붙인 것이고 이 장삭판은 일종의 모자로 된 장식판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은 기원후 1~2세기부터 로마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11개의 무덤가운데 사르마트 문화의 것은 5개이다.

 

코비야코프스키 유적에서 화려한 황금관을 썼던 주인공은 호흘라치와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이 무덤은 유적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았던 무덤이다.

이 여성은 매우 화려한 목걸이(그림 2)를 착용하고 있었다. 잠금장치가 있는 것으로 남성이 중심에 있고 양쪽에는 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용을 타고 있는 기마병이 창을 들고 있는 남성, 궁수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중심에 있는 남성은 수염을 길렀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의복인 카프탄을 입고 있었다. 여밈이 있는 있는 상의이다. 남성은 앉아서 다리를 교차해서 앉아 있는데, 무릎에는 검이 들어 있는 검집이 놓여 있었고, 손에는 잔을 쥐고 있었다.

 

그림 2. 코비야코프스키 10호 무덤의 목걸이

 

 

 

다리를 교차해서 앉은 모습은 기원전 4000~3000년기로 이란에서 유래했다(자세츠카야 1986).그리고 기원전 1000년 후반 중앙아시아에 자주 등장한다(루덴코 1962). 그리고 로만 조각에서도 도상적 규범으로 등장인물들이 양반다리 자세를 하는 것이 자주 보인다.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스키타이 문화부터 전해져 온 잔과 같은 모습으로 사르마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잔 가운데 한쪽으로 된 손잡이가 달린 잔이다.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된 기원전 2세기 무덤에서 나무로 된 잔이 발견된 유적도 있다. 스키타이 신화 혹은 문화는 고대 이란어를 사용하는 유목민들 사이에 신성한 의식 용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В.К. Гугуев Кобяковский курган (К вопросу о восточных влияниях на культуру сарматов I в. н.э. — начала II в. н.э.). // ВДИ. 1992. №4. С. 116-129.(구구예프 1992, 코비야코프스키 무덤(1000년기~2000년기 사르마트 문화에서 동쪽 영향에 대한 질문)

Засецкая И.П. Зооморфные мотивы в сарматских бляшках. // Античная торевтика. Л., 1986. С. 130-132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20. 09:22 사르마트 문화

스키타이 문화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그 이전과 다른 물건도 생겨나지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도 있다.

 

그 중에 하나는 청동솥이다. 호흘라치 무덤이 발견된 노보체르카스크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솥은 다리가 높은 청동솥이다. 손잡이가 4개 붙었는데 2개는 염소 모양이다. 입술부위와 동체부에는 돌대가 돌아가는데,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용기 특징이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용기

 

 

이 외에도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손잡이에 동물문양을 달아 놓은 토기도 있다. 검게 칠하고 표면을 반짝이도록 문지른 토기인데, 흑색마연토기라고 한다. 토기의 생김새(기형)는 입술(구연부) 부위가 넓게 벌어지고, 동체부는 길쭉한데, 항아리 모양이다. 손잡이에는 동물이 달려 있는데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주로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돈강 주변과 코카서스 북쪽지역에서 많이 확인된다.

 

사르마트 문화 이전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문화에서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용기는 나무와 금속이었고 손잡이에 동물문양이 달려 있었다. 토제로 된 용기는 시베리아에서 주로 발견되었는데,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달라진다.

 

그림 2. 사르마트 문화의 토제 용기, 항아리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에서 무덤속의 용기가 실제 생활 용기였는데, 기원전 5세기경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의례를 위한 용기가 많아졌고 이러한 분위기는 사르마트 문화로 이어진다.

 

참고문헌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 176 (사르마트 사람들의 보물, 2008, 에르미타주 박물관 전시회 카달로그)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7. 09:22 사르마트 문화

 

기원전 4세기부터 발생한 사르마타 문화는 여러 요소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도 동물문양장식이다.

호흘라치 무덤의 여성 주인공은 황금관도 썻지만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팔찌와 목걸이이다. 팔찌와 목걸이는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발견되는 유물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 주인공 남녀도 모두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목걸이도 관(crown)과 마찬가지로 개폐가 가능하도록 된 것이다. 목걸이는 3개의 빈 금관(金管)을 쌓아 올렸고, 그 위아래에는 동물장식을 부착한 것이다. 동물이 싸우 것처럼 보이지만 공격자인 그리핀은 주둥이만 희생물에 대고 있고, 희생물인 엘크는 머리를 공격자쪽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공격하는 동물은 부리가 맹금류이고 신체는 맹수류인 그리핀에 가깝고, 희생물인 엘크는 엘크와 같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보이는 동물문양의 종류와 표현방법에 차이가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특정부분이 과장되거나 간소하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호흘라치 유물에서는 사슴과 같지 않지만 그리핀이 공격하는 동물이니 사슴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한 차이다.

 

 

그림 1.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목걸이

 

 

 

이 여성의 팔찌에도 비슷한 동물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3줄로 꼬인 팔찌로 빈 금관의 양 끝에 동물장식판이 부착된 것이다. 목걸이 보다는 좀 더 그리핀이 포식자인 엘크를 물어 뜯고 있다.

 

 

그림 2. 호흘라치 유적 여성 주인공의 팔찌

 

호흘라치 유적의 황금관만 놓고 본다면 그리스 여성의 얼굴이 상감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적인 요소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목걸이와 팔찌는 오래된 지역 전통의 장신구이다. 하지만 동물문양장식은 확실히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동물장식과는 차이가 있다. 주제와 구성은 비슷해 보이지만 표현방법은 훨씬 간략하다.

 

호흘라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 중 많은 여러 요소가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지만 그대로는 아니고 변화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6. 1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는 우랄 강부터 볼가 강 유역, 흑해북안까지 퍼져 있던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이다. 스키타이 문화와 여러 모로 연속된다. 스키타이 문화와 마찬가지로 19세기부터 유적이 발굴되었고, 도굴당한 무덤도 많다.

 

황금관으로 유명한 호흘라치 유적도 어제 소개했다. 그런데 이 황금관과 형태는 다르지만 유사한 컨텐츠로 만들어진 유물이 2점 더 있다.

 

호흘라치 유적과 가까운 로스토프 시 부근의 코비아코프스키(Кобяковский, Kobyakovsky) 유적에서는 무덤 10호에서 가죽으로 된 머리띠 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 거기에는 금판을 오려서 만든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가죽 머리띠 장식은 모자에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금판과 가죽띠만 남은 상태였다. 두개골의 머리위에서 발견되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수사슴이 양쪽으로 6마리가 배치되었고 사슴과 나무 사이에는 양쪽에 2마리씩 날개를 편 맹금이 표현된 것이다.

 

 

그림 1. 코비야코프스키 무덤 10호 출토 머리띠 장식, 붉은 색 모자는 남아 있지 않았고, 복원한 것이다

 

또 다른 한 점은 크라스노다르 주의 우스트-라빈스크(Усть-Лабинская, Ust-Labinskaya )역 부근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금판 아플리케 장식만 남아 있는 것이다. 7개의 가지가 표현된 것은 나무를 상징화 한 것이다. 사슴과 염소, 토끼(혹은 개)가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반대편을 향하고 있는 장식도 존재했을 것이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금 판 뒤에는 고정장치가 남아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머리띠 장식인지는 알 수 없고, 무덤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우스트-라빈스카야 역 무덤 출토

 

나무를 중심으로 두고 양 쪽에 동물이 배치된 컨텐츠는 당시에 세계수에 대한 숭배사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스키타이 시대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살아 있는 유기체의 탄생, 성장에서 모든 징후에서 삶에 대한 신화적 아이디어를 제공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의 두 점을 참고로 한다면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황금관은 가장 상단부에 세계수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의 스키타이 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의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하는게 더 맞다. 운 좋은 호흘라치 무덤의 주인공인 여성이 그리스이 끼어들었더라도..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CaFajXSFeSvu-7eu96jRe4TImmu5nqc&usp=sharing 

 

사르마트 - Google 내 지도

사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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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И.П. Засецкая Золотые украшения из кургана Хохлач —классические образцы сарматского полихромног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I — начала II в. н.э.//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СПб; Азов: 2008. С. 29-43(자세츠카야 2008, 호흘라치 쿠르간에서 나온 황금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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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