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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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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지대 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삼림지대인 타이가 지역에는 아나닌스카야 문화가 스키타이문화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다. 필자가 이 지역을 포스팅한 이유는 동물장식 때문이다. 특히 곰 때문이었는데,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곰 장식(굴레장식)이 이곳에서 먼저 생겼을 수 있다는 굴랴예프(2019)의 연구를 보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문화가 번성한 곳은 볼가-카마 강 유역으로 사르마트(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볼가강 유역의 스키타이 지역문화)의 유적지인 필리포프카 유적과도 비교적? 가깝기 때문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목제그릇을 곰 장식으로 마무리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곰이 공양당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장식이 굴레장식으로 제작된 것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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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7 - [스키타이 동물장식] - 기원전 4세기 유라시아 초원의 곰 장식

 

기원전 4세기 유라시아 초원의 곰 장식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간두령 혹은 (막대)끝장식은 기원전 7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이후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 나온다.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에는 지역 청동기시대 코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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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프카 유적의 곰장식 그릇

2021/02/06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스키타이 문화의 곰 장식 나무그릇

 

스키타이 문화의 곰 장식 나무그릇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시베리아의 아르잔-2유적, 기원전 7세기 중반부터 출토되기 시작한 목제잔은 기원전 5~4세기에 동유럽 초원에서 발견된다. 새나 환상적인 동물의 이미지가 각인된 금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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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가 동쪽 어느 곳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학자(로스토프체프 1929, 테레노시킨 1971, 알렉세예프 2003, 그 외 다수)는 어찌되었건 스키타이 문화권 전체에서 볼 때 스키타이 문화는 독자적으로 생겨났다고 한 것이다. 문화권 안에서 생성된 스팟(투바, 알타이, 카자흐스탄 북쪽으로 알타이 인접지역)이 어느 지역인지 의견이 다를 뿐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서 발생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아나닌스카야 문화가 이 논의에 끼어들게 된 원인은 크게 두가지 때문이다. 곰 장식 뿐만 아니라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 때문이다. 아르타모노프(1971)와 츨레노바(1971)는 흑해지역에서 발생한 곰과 늑대장식은 이 지역(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먼저 발생해서 흑해로 영향을 주었다고 보았다. 굴랴예프(2019)는 특히 곰 장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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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흑해지역에서 ‘공양당하는 곰’이 나오는 기원전 4세기 이전에 이미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7세기) 은제 거울에 곰이 있다. 그런데 굴랴예프는 이 현상만 설명하고 별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흑해 지역의 것이 주둥이가 많이 튀어나온 동물이어서 호랑이 혹은 표범이라기 보다는 늑대(아르타모노프 1971, 츨레노바 1971, 페레보드치코바 1994)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맹수장식도 흑해유물과 비슷하다. 바실레프(1994)는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5세기경에 이 지역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유물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필자는 또 한가지 유물에 눈길을 둘 수 밖에 없었다. 검의 손잡이에 동물장식이 달린 검 때문이다(그림1). 그리고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갈고리 모양의 철제품에 달린 동물장식은 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검, 1~5 아나닌스카야 문화, 6~13: 스키타이문화의 검

 

 

참고문헌

Гуляев В.И. Культ медведя и элитные курганы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7 № 3 2019с. 85 – 93.(굴랴예프 2019,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곰 의례의 요소)

Тереножкин А.И. Скифская культура // Проблемы скифской археологии. – М.: Наука, 1971. – С. 15–23. –(МИА; № 177).(테레노시킨 1971, 스키타이 문화)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Rostovtzeff M.I. The Animal Style in South Russia and China. –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1929. – 112 p. –(Princeton Monographs in Art and Archaeology; vol. XIV).

Артамонов. Скифо-сибирское искусств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ПСА. М., 1971, стр. 24.(아르타모노프 1971, 스키토-시베리아 동물장식)

Н.Л. Членова. К вопросу о первичных материалах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ПСА. М., 1971, стр. 213-214 (츨레노바 1971, 동물장식의 기원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점)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가 스키타이 단검에 다시 끼워 맞춰진 것이다. 검자루의 끝에 달린 두 마리 동물은 소인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소를 문양으로 쓰지 않는다. 손잡이에는 연꽃 문양대를 중심으로 사냥장면이 서로 대칭이 되도록 표현되어 있다. 페르시아 옷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이 활을 들고 영양에게 화살을 쏘는 장면이다. 소머리 장식, 소머리의 목에 단 목걸이 장식, 사냥장면은 순수하게 기원전 5세기 아케메니드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검코(혹은 검날 멈추개)는 하트 모양인데,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검과 같은 모양이다.

검의 손잡이는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었으나 검날 멈추개는 스키타이 스타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 출토 검자루와 검

 

그림 2. 그림 1의 손잡이 디테일

 

이 유물의 검집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남성 11명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인이 이방인과 전투중인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부조로 처리되어 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남성은 코린트식 갑옷과 투구, 칼, 창,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리스 지휘관이다(그림 3). 그 바로 옆에는 옷으로 보아 페르시아 남성(그림 4의 가장 첫번째 남성)으로 오른손에 수건을 들고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는 말에서 떨어져 죽은 페르시아 병사가 고삐에 매달린 채 말에 끌려 다니고 있다(그림 5).

 

그림 3. 그림1의 검집, 길이 54.4cm

 

그림 4. 검집 디테일

 

그림 5 . 검집 디테일

 

이 장면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의견이 있다. 그리스인이 마라톤에서 페르시아인과 싸우는 장면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른 의견은 인물들 가운데 투부를 들고 있는 인물(그림 6)이 여성적인 얼굴로 여성전사였던 아마존사람(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전사 종족)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6. 그림 3의 디테일

 

검집을 허리띠에 걸기 위한 구멍이 있는 부분에는 독수리 머리와 사자의 몸통인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찢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7).

그림 7. 그림 3의 디테일

 

두 유물(그림 1, 그림 3)은 드레프르강 하류의 스키타이 무덤인 체르토믈리크에서 함께 출토되었으나  유물의 제작연대는 다르다. 검집은 검 보다 늦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이 유물이 스키타이 왕묘에 부장되기 전에 검의 주인은 여러 명이었고, 그 중 한명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3세)도 포함된다. 그가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때 개인적으로 스키타이와 접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용으로 검집이 제작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집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에 페르시아 검에서 검자루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에 끼우고, 그리스에서 제작된 검집에 이 검을 보관된 채 드네프르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단검 자루에서 손잡이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으로 끼운 사람은 누구일까? 검집에 묘사된 전사는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이지만, 이 유물을 마지막에 허리춤에 찬 사람은 그리고 이 유물이 마지막으로 부장된 곳은 스키타이 사람이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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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8. 12:50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유적에서는 남성인물상이 표현된 유물이 많이 확인된다. 후기구석기시대 이래로 유적에서 출토되는 인간형상물은 여성이 많지만, 아무다리야 유적에서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입체상과 평면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평면상은 금판에 남성이 새겨진 것인데 모두 43점이 확인되었고 크기는 제각각이다. 모두 같은 스타일의 남성이 아니라 의상이 달라서 다양한 민족을 표상하고 있다. 제작된 기술의 수준도 같지 않고 어떤 유물은 세밀하고 어떤 유물은 대충 그린 것도 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남성전사도 포함되는데, 가장 잘 묘사되고 가장 큰 평면판에 새겨진 남성 이다(그림1, 그림 3). 고깔모자를 쓰고 있고, 통이 넓은 바지에 발목은 끈으로 조여 강조했으며 부드러운 부츠를 신고 있었다. 상의는 무릎까지 오는 긴 상의에 소매가 꽉 끼는 카파탄 종류와 키르바스(어깨 부위가 뒤로 젖혀짐) 스타일을 겹쳐 입은 듯 하다. 허리에 벨트를 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턱수염을 길렀다. 오른쪽에는 스키타이 인의 단검인 아키나크를 차고 있었는데, 검집과 벨트로 연결되는 부위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다. 같은 형태의 검은 멜구노프와 켈레르메스 유적 등 흑해 스키타이 유적에서 확인되었고 이 유물이 확인된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도 1점 발견되었다(그림 1). 스키타이 남성들은 대부분 턱수염을 기른채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쿨-오바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 등에서 확인가능하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2호에서는 턱수염만 따로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턱수염을 기르는 것이 일종의 스키타이 특징으로 보았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불을 피우기 위한 혹은 불을 옮기기 위한 장면으로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성직자 혹은 마술사일 것으로 추정한다(커닝햄 1881, 아르타모노프 1973). 43점의 평면판에 새겨진 남성들은 모두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막대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같은 형상(고깔모자, 아키나크 검)의 스키타이 인들이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의 동쪽벽에서도 확인된다(그림 2). 아파다나 궁전 외에도 다리우스 무덤의 비문에 스키타이 남성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있다. 페르세폴르스 근처의 다리우스 무덤의 비문에는 Saki-tigrahauda, Saki-haumavarka, Saki-taradaraya의 세 그룹의 사카족(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중앙아시아에 있던 민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무덤입구의 부조에 그림이 묘사되어 있고 비문설명에도 남아 있는데, 제일 처음의 그룹은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르타모노프 1973).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평면판에 새겨진 스키타이 남성

 

그림 2.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의 동쪽벽, 스키타이 대표단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평면 금판

 

이 유물은 길이가 15cm인데, 인간형상물이 그려진 평면금판은 크기가 각기 다르다(그림 3). Barnett(1968)은 구부러진 흔적(우측 하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건축물(사원)의 틈새나 용기 안에 넣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시만은 아무다리야 퇴장지가 일종의 신전 혹은 사원이며 신자들이 봉헌 제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제이말 1979).

 그런데 이 평면판들이 같은 수준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어서 같은 시대에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의심도 있다. 그러나 Barnett는 금이 풍부한 중앙아시아에서 충분히 제작될 수 있었다고 보았다. 

 

 

 

 

참고문헌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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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미누신스크 분지 지역문화인 타가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주로 무기(검과 칼, 투부)와 마구 등에 함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물론 원형장식, 버클에서도 관찰된다.

산염소(горный козел, Capra), 산양(горный баран, Ovis ammon), 사이가(Сайга, Saiga tatarica), 멧돼지, 사슴(олень, deer), 엘크(Лось, Elk), 말, 반당나귀(Кулан, Equus hemionus), 대형 우제류, 고양이과 맹수, 늑대, 그리핀머리, 새, 물고기 등이 타가르 문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알려졌다. 산염소, 산양, 사이가, 사슴, 엘크 등은 뿔이 있는 동물로 뿔 형태로 동물을 구분한다.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은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였던 카라숙문화의 전통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츨레노바 1967). 청동검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리핀이 서로 머리를 맛대고 있고 검코에는 늑대가 서로 이마를 맛대고 있는 것이다(그림 1).

 

그림 1.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 길이 19.4cm

 

그런데 특히 청동검이나 칼 손잡이 끝에 장식된 동물문양가운데 멧돼지로 분류된 유물이 많다. 하지만 멧돼지로 분류된 것 중에는 꼬리가 매우 짧은 동물은 멧돼지로 보기에는 좀 애매한 동물이라고 생각된다. 멧돼지는 꼬리가 퇴화된 것처럼 짧지 않다.

 

 

그림 2.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 멧돼지형상의 손잡이 끝장식

 

그림 3.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동물형상 손잡이 끝장식

 

그림 4.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멧돼지로 보이는 형상이 청동검의 끝에 날린 것(그림2)은 청동칼에 달린 동물형상(그림3)과는 다르다. 그림 2의 멧돼지는 굽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꼬리가 등으로 올라갔지만 퇴화된 모습은 아니다. 그림 2의 동물은 꼬리가 짧고 굽표현이 없다. 청동칼(그림 3-두번째, 세번째, 그림 4)에 달린 동물형상은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 고양이과의 맹수(호랑이), 늑대, 멧돼지와는 다르다.

어떤 동물이라고 해야할까?

 

참고문헌

Завитухина М.П. 1983 :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на Енисее. Скифское время. /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Л.: Искусство, Лен. отд., 1983. 192 с.(자비투히나 1983, 예니세이강의 고대 예술)

Членова Н.Л. 1967, Происхождение и ранняя история племён тагарской культуры. М.;Л., 1967.(츨레노바 1967, 타가르 문화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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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남부의 스키타이 문화(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골제로 만들어진 말 탄 전사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고리트(스키타이식 활과 화살통)를 차고 있었고, 스키타이 남성의 목걸이를 착장했다. 그리고 모자를 쓰지 않았다. 하나의 예를 전체로 확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는 말 탄 전사를 더 관찰할 수 있다.

 

1호 무덤의 감실 1호에서 출토된 목제 그릇의 장식판 가운데는 말 탄 전사가 묘사되었다. 말은 재갈과 재갈멈치, 굴레를 차고 있었고 남성은 활의 시위를 당기려는 모습이다. 왼쪽 겨드랑이에는 고리트의 끝이 보인다. 남성은 목이 없고 턱수염을 기른 상태이다. 스키타이 남성이 턱수염을 기른 사실은 이제까지 묘사된 남성들 대부분이 비슷하다. 파지릭 유적 2호에서는 수염이 따로 출토되기도 했다. 흑해의 남성 전사들도 대부분 수염을 기른 상태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분 감실1호에서 출토된 목제 그릇 장식판

 

4호 무덤의 2호묘에서는 길이 39.2cm가량의 철제검이 출토되었다. 검은 손잡이와 검날멈추개 및 검날이 화려하게 금과 은으로 장식된 것이다. 대부분 동물문양장식이지만 그 가운데 말탄 전사와 말에서 내린 전사가 묘사되었다.

철검 속의 말 탄 전사는 좌측에 고리트를 차고 긴 삼지창으로 멧돼지를 공격하는 장면(그림 2-5)이다. 반대면에는 말은 전사의 뒤에 있고 검으로 사슴의 뒤를 공격하는 장면(그림 2-6)이다. 철검 속의 전사가 들고 있는 검은 실제 검과 거의 같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4호분 무덤 2호에서 출토된 철제 검

 

골제로 제작된 말탄 전사, 목제 그릇의 장식판 속의 말 탄 전사, 철 검 속의 사냥하는 검사 모두 고리트을 보여준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물론 말의 내부를 타래문양으로 표현한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네 명 다 모자를 쓰지 않았다.

실제 이 유적에서는 알타이의 울란드리크 유적 등에서 보이는 인골 머리 위 모자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2013 : Золото сарматских вождей. Элитный некрополь Филипповка 1 (по материалам раскопок 2004-2009 гг.). Каталог коллекции. Книга 1. М.: 2013. 232 с.(야블론스키 2013, 사르마트 문화 신의 황금,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1 유적, 2004~2009년 발굴품)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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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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