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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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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알타이의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는 남녀가 각각 다른 통나무관에 매장되었다. 통나무관 1기는 뒤집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여성의 관으로 추정된다. 여성미라는 훼손된 상태로 무덤방 여기저기서 발견되었다. 이 관에는 앞서 살펴본 남성관과는 달리 동물문양이 거의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통나무관 덮개 조각에 나선문양(그림1)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통나무관 자체에는 동물문양이 장식되지 않았다. 이 통나무관에도 남성통나무관과 마찬가지로 청동못이 박혔던 구멍이 20cm간격으로 있었다. 청동못의 머리는 3cm가량으로 13점이 무덤방 바닥에서 확인되었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 2호분 통나무관(여성)의 덮개장식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이 새겨진 통나무관은 어떻게 남성의 관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무덤방 안에서는 남성시신의 흔적 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통나무관 안에서 남성신발 1짝(그림 2)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이 미라로 처리되었기에 남성도 같은 방법으로 장례를 치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림 2.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 출토된 남성용 신발

 

신발은 소개해 드린 펠트로 만든 스타킹과는 다르다. 비슷한 유물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나왔는데, 여성의 것이었다. 루덴코(1953)는 파지릭 2호분의 여성이 안에 긴 스타킹(양말이 붙어 있음)을 신고 그 위에 그림 3의 신발을 신었을 것으로 보았다.

 

그림 2는 일종의 부츠로 발 부분과 다리(부츠레그) 부분의 재질이 다르다. 신발 부위를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고 부츠레그 부위는 모피로 만들었다. 이 부츠는 무릎 약간 위에까지 오는 길이로, 신발과 부츠레그 사이에는 양모끈으로 이음줄이 만들어졌고, 부츠레그는 앞(60cm)이 뒤(43cm) 보다 길다. 부츠레그 부분은 3.5×5cm의 모피조각(갈색과 검은색)을 이어서 바둑판처럼 만들었다. 검은색 모피는 안감이 없고 이 보다 밝은색(갈색)의 모피는 가죽안감을 덧댄 것이다. 사각형 가운데서 4~5개의 같은 재질의 조각을 이어서 큰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신발,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무덤방안에서는 남성용 신발 한 짝이 더 출토되었는데, 부드러운 밑창이 확인되었다. 가죽으로 모자이크 처리되었는데, 붉은 색 가죽을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이 신발은 발목이 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먼저 소개한 그림 2의 유물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바사댜르 유적 2호분의 남성과 관련된 유물로 단검의 검집이 출토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유물이다. 검집(그림 4-2,3)과 함께 펠트로 제작된 벨트(그림 4-1) 일부가 확인되었다. 검집은 검의 날 모양으로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추정할 수 있는 검의 길이는 30cm보다 짧지 않다.

 

 

그림 4.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 출토된 펠트제 벨트(1)와 가죽검집(2,3)

 

바샤다르 유적 2호에서는 남성 주인공이 착용한 유물은 신발과 검과 관련된 유물(검집과 벨트)을 제외하고는 남아 있지 않았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남성미라는 활과 화살로 보아서 기마전사였을 것으로 러시아학계에서는 생각하고 있다.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는 활과 화살 외에도 검과 투부라고 하는 전투용 도끼가 이 시대 군인의 필수품이었다.

 

이 남성전사도 전투용도끼와 검이 있는데, 재밌는 사실이 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의 투부

 

 

전투용 도끼는 길이 76cm의 나무 자루에 철제로 된 도끼머리이다. 길이는 20~24cm가량으로 철제로 된 실제크기의 전투용도끼이다(쿠바레프 1992).

 

도끼자루의 단면은 타원형이다. 앞에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어린 아이의 무덤에서 발견된 소형 투부도 도끼자루가 타원형이었다. 쿠바레프(1987)는 손잡이가 타원형인 것은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 투부는 머리는 실제 전투용이지만, 자루는 실제 사용하기에는 불편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남성의 우측 허벅지 부근에서 모피코트 안에서 검집에 들어 있는 검(그림 2,3)이 발견되었다. 검집과 검은 모두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목검은 파지릭 문화에서는 아주 드물게 확인되는데, 축소된 크기로 확인된다. 비슷한 유물이 울란드릭 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된 바 있다(쿠바레프 1987).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의 목제 검(오른쪽이 검이 보이는 부분)과 검집(왼쪽)

 

 

 

 

그림 3.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의 목제 검(필자촬영), 그림 2와 동일유물, 하단에 붉은 색 칠한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검집은 앞과 뒤가 같은 모양이 아니라 착용한 사람의 바깥쪽 부분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다.

검집의 반대부분은 검의 날 모양을 그대로 삽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면은 실제로는 직조물 혹은 가죽으로 덮었을 것이다. 검집의 아래 부분은 물방울 모양이고,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단검은 실제 착용 할때에 남성의 우측 허벅지 부근까지 내려오도록 해서 사용했을 것인데, 이는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대부분의 검을 착용하는 방법이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은 실제로는 철제검을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하며, 컷을 것인데, 어제 포스팅한 복원도 가운데서 말을 탄 전사의 검이 철제 검이었던 것은 실제로 출토된 것과는 다르다. 실제 출토품인 목제검을 바탕으로 실제로 사용했을 법한 철제 검으로 복원한 것이다.

  모피를 입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은 목걸이, 새머리 고깔모자, 목제 검은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법한 의례용 혹은 부장용으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투부는 애매한 유물이다. 투부의 자루는 타원형으로 실제사용하면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도끼자루는 실제 전투용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디르크 유적)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에 들어 있다. 이 복합체의 직경은 80m이다. 무덤의 경계벽 직경이 80m라는 것이다.

 

약간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왠지 마을을 그대로 무덤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선사시대에 마을에는 경계벽이 있었는데, 나무로 세우기도 했고, 흙으로 세우기도 했고, 돌로 쌓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으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예전에 신석기시대 집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포스팅한 바 있다.

삶의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01/13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죽음과 고고학

 

죽음과 고고학

지난 해 여름에 중국 산서성에서 발굴된 송나라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바 있다가 적어본다. 그림1. 송나라 벽화무덤 http://www.fnnews.com/news/201708281009572832 뉴스 에서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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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의 경계벽은 마을의 경계벽, 각 무덤방은 묻힌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해보면, 마을과 같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은 활(+화살), 검(+칼), 투부(전투용도끼)를 지니고 묻혔는데, 3종세트라고 생각된다. 기본소재는 철제였으나, 금박으로 장식되어서 의례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걸로 실제 썼을까?

 

그럼 다른 무덤에서는 무기 3종 세트가 발견된 바가 없을까? 실제로 썼을 것 같은..

 

필자가 이미 약간 스포일러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성 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호랑이 동물문양장식을 청동제로 제작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무덤 20호이다.

 

무덤방 20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선 무덤방 20호에는 남성 2인이 매장되었다. 둘 다 22~25세의 남성이다. 한 무덤방에 묻혔는데, 돌(1.8 × 2.2m, 깊이 1.1m)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매장시점이 다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2: BB'라인 단면도, 3: AA'라인 단면도)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인골 2호라고 불리는 남성은 1호 남성의 무덤방(그림 2)을 연장하고 묻힌 것이다. 원래 1호 남성만 매장되었다가 무덤의 동쪽을 연장하면서 벽석도 세로 세우고, 구덩이도 좀 더 파서 만든 것이다. 발굴당시의 덮개돌(그림 1-1)은 인골 2호를 매장한 후에 생긴 것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인골

 

 

그런데 그림 2에서 확인되는 2호 남성(우측)은 먼가 좀 부자연스럽다. (사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호 출토 사진은 출판되지 않았다).

뼈는 해부학적으로 순서대로 매장되었으나, 팔의 상완골과 하완골이 겹쳐졌고, 갈비뼈도 무질서하다. 뼈가 해체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2호 남성의 머리 위에는 목기그릇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청동물체 아래에서도 유기질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었다.

 

1호와 2호 남성은 함께 부장된 유물이 차이가 있다. 2호 남성은 청동칼 1자루(그림 7-3) 뿐이었지만 1호 남성은 투부(청동)의 머리(그림 3-1), 고리트(청동)와 그 부속품(그림 5-3,4), 화살촉(청동) 11점(그림 4-3~13), 칼(청동)(그림 5-5), 귀걸이(금제)(그림 5-1) 등 금속제품과 투부자루(목제) 2자루(그림 3-3,4), 구멍이 4개 뚫린 굽은 장식판(목제)(그림 4-2), 목제그릇의 손잡이(뿔)(그림 4-1), 화살촉(뿔)(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옷으로 보이는 직조물이 확인되었다. 1호 남성의 부장품은 좌측 골반뼈 주변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실측도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유물 사진만으로는 각 부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실측도에는 제작방법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재질

유물

그림번호

금속

청동

투부 대가리

3-1

6-1

고리트와 그 부속품

(그림 5-3,4)

7-2

화살촉

4-3~13

6-4,5

5-5

6-2

귀걸이

5-1

 

나무

투부자루 2자루

3-3,4

6-3

장식판

4-2

 

목제그릇의 손잡이

4-1

7-1

화살촉

4-14,15

 

표1. 아르잔 2호 무덤방 20호 1호 인골의 부장품

 

 

2호 남성의 청동칼(그림 7-3)은 손잡이가 없는데, 유기물질(나무 혹은 뿔)로 제작되어서 따로 끼워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호 남성의 칼(그림 5-5, 6-2)은 손잡이가 날과 함께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

 

 

1호 남성은 투부, 칼, 활(+고리트)라는 기본 3종 세트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무덤방 5호 남성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철제가 아닌 청동제이고, 칼은 있지만 검은 없다. 20호에서 출토된 무기도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투에서 썼을 것을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리고 앞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 포스팅만 보신분들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는 이미 철제 무기가 출토된다. 혹시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하시고 무슨소린가 하실까봐 말씀드린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1,2)와 2호인골(3); 1-뿔, 2,3-청동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검은 짧은 단검으로 보통 허벅지에 착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크 알라하-1유적의 남성전사도 목검이 있었는데, 허리가 아닌 바지주변, 허벅지 주변에서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전사를 복원한 모습을 앞서 포스팅한 바 있다(아래 포스팅참고). 필자는 손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어서 가장 빨리 꺼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 달았다고 생각한다. 허리에 매단 단검은 꺼내기가 쉽지 않다.

 

2020/0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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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잔-2호 주인공은 화려하게 금으로 장식된 철제 검을 허리에 달고 다녔던 것 같다. 고리트와 연결되는 벨트에 달렸을 것이다. 별로 쓸일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성의 철제 검에 장식된 동물문양장식 외에는 새의 날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이는 나선형 문양이 있다. 철제 칼에는 곡선의 V자형 모티브 안에 양과 나선문양이 채워져 있고, 이 문양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었다.

 

어딘가에서 본적이 있지 않은가? V자형 모티브.

 

여성의 가슴장식 혹은 목걸이라고 불리는 장신구의 모티브 문양과 같다.(얼마전에 포스팅 했음)

 

남성 철제 칼의 문양은 여성의 가슴장식과 같은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여성도 철제검과 칼을 지녔다.

얼핏보면 비슷하지만 남성의 것과는 제작방법이 완전히 다르다. 남성의 검은 거푸집에서 철물을 부어서 한 번에 만들어내고, 금장식은 그 후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여성의 검은 날과 손잡이가 따로 제작되어 착장된 것이다. 손잡이((손잡이 : 7.8 cm, 폭 3.8 cm, 1.3 cm 두께; 무게 112.46 g)는 완전히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날(길이 : 15.2 cm , 폭 3.2 cm, 두께 0.5 cm; 무게 83.50 g)은 철로 만들고 금판을 부착한 것이다. 손잡이는 앞뒤면이 같은데, 땜질로 붙인 것이고, 손잡이와 날부분은 금으로 된 리벳(대갈못)으로 고정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1-여성의 검, 2,3-여성의 팔찌

 

손잡이가 시작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에는 호랑이가 다리를 직각으로 뻗고 있는 모습인데, 시작부분의 동물이 크다. 얼굴과 손이 맞닿고 있다. 어깨와 몸통에 구멍이 있는데, 뒤가 뚫려 있어서 다른 물질을 감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아래의 손잡이에는 3줄로 동물문양이 구성되었다. 가장 중앙은 뿔이 둥글게 말린 산양(그림 2-2의 세 번째)과 양쪽에는 뿔이 없는 염소(그림 2-2의 첫 번째), 뿔이 직선인 염소kozel(козел)(그림 2-2의 두 번째)가 3마리씩 열을 짓고 있다. 눈물 방울 모양의 함몰 2곳에는 원석이 감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날의 중앙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된 금판이 부착되었다. 검의 집은 삼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칼의 날 뒷면에 흔적만 남아 있고 거의 썩어서 없어진 상태였다.

 

여성도 철제검 뿐만 아니라 2개의 철제칼(그림3-7,8)도 지녔었다. 목제 검집에 함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달린 형태인데, 남성의 칼과 달리 금장식은 없었다. 고리에 가죽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가죽으로 된 주머니 밖에 꺼내진 상태로 목제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날이 직선인 칼(길이 20.3 cm, 너비 1.0 cm, 두께 0.15 cm)은 끝이 뾰족한데, 섬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날이 곡선인 칼(길이 17.3 cm, 너비 1.1 cm, 두께 0.12 cm)은 끝이 부러지고 무딘 상태였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여성의 칼

 

 

여성의 검과 칼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우측 골반뼈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런데 남성의 검과 칼이 출토된 곳 바로 옆에서 아주 흥미로운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으로 만들어진 소형의 솥이다. 출토위치(그림 4, 유물평면도의 71)가 남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출토되어서 애매한 유물인데, 발굴자는 솥에 날린 체인의 모양이 여성 팔찌와 같아서 여성의 것일 확률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남성의 검집에 달려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여성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에 달려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높이 3.5cm의 작은 솥((지름 4cm, 높이 3.5cm, 길이 4.2cm; 무게 70.78g)에는 뿔이 둥글게 말린 숫산양 5마리와 호랑이 1마리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다.

황금으로 제작된 다른 유물과 마찬가지로 밀랍을 녹여만드는 주조기법을 사용했고, 그릇 안과 다리바닥의 빈 부분은 거푸집에 금물을 부은 후, 토제로 만들어진 U자형 물체를 넣어서 빈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다리바닥안에 체인을 연결하기 위해서 막대기를 삽입한 후 땜질했다.

 

 

https://eastsearoad.tistory.com/532

 

2700년전 시베리아 무덤 출토 검 집장식(호랑이모양)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방 5번에서는 금, 철, 청동 등 다양한 금속재질로 제작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그런데 유물 개개는 매우 세밀하고 정밀해서, 유물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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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에서 유물배치도 확인할 수 있음.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여성의 다리와 모형 솥 출토 모습

 

그림 5.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모형 솥

 

모형 솥에 표현된 동물문양과 나선형장식은 여성의 검, 남성의 검과 칼에 표현된 방법과 같다. 누구의 것일까요?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는 2700년 전 시베리아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문화권에서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한다. 유적이 위치한 고원의 이름이다. )앞에서 황금유물과 청동유물을 소개해 드려서 초기철기시대라는 점을 잠시 망각하셨는지 모르겠으나 철기시대이다. 금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장신구 혹은 의식용품이다. 철로 만들어진 것은  무기이다. 특히 무기 가운데서 검, 칼, 투부(전투용도끼)등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어제 21살의 여성도 철제투부로 맞아서 머리에 구멍이 났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남성 우측 골반 부위에서는 철제검과 철제칼 2자루가 확인되었다. 검은 단검(짧은 검)으로 길이가 38.7cm가량(너비 7.5cm, 두께 2.5cm, 무게 930.06g)이다. 발굴당시에는 나무칼집에 들어가 있었으나 썩어 없어진 상태였고, 철 자체도 매우 부식이 심해서 손잡이와 손잡이 끝 장식은 변형이 심했다. 나무칼집은 뒷면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다. 부식 때문에 금속층이 분리되었다. 손잡이는 여러 겹을 붙인 것인데, 4겹으로 땜질해서 부착된 것이다. 손잡이와 검의 중간 부분은 금판으로 장식 된 것인데, 앞뒤면이 동일하게 제작되었다는 것이 복원과정에서 나타났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멈추개)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은 철에 홈을 내고 그 안에 금박을 상감한 것이다.

 

손잡이와 칼날에 붙은 금판 장식은 사실적인 동물문양장식과 추상적인 문양이 금판에 표현되었다. 추상적인 표현은 새의 날개를 풀어서 나선모양으로 묘사한 것이다.

검의 날이 끝나는 부분(검날 멈추개)에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2마리와 손잡이 끝부분(검파두식)에 같은 문양이 감입되어 있다. 호랑이는 몸에 난 줄 문양까지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뿔이 있는 동물은 염소로 보이는데, 두 마리의 호랑이기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다. 손잡이 끝장식 아래에는 작은 호랑이 2마리가 염소를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손잡이 전체 측면(검날멈추개, 두식, 검파두식)에도 동물문양이 배열되어 있다. 손잡이(검파)는 3줄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선은 검날까지 이어지면서 동물문양도 연속되게 배치되었다. 위에서 검파두식 아래에 새겨진 문양 아래에는 염소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 그림이 검날의 중심부까지 5번 반복된다. 검날의 가장 끝 2장면은 크기가 작아진다. 검날중심판의 양쪽 가장자리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는데, 새의 날개를 추상화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 철검의 금판에는 붉은색의 염료가 칠해진 것이 확인된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남성의 철제검(그림1과 동일유물)

 

 

철검이 발견된 곳에서 목제칼집에 붙어서 철제칼이 2점 출토되었다. 칼은 날이 한쪽으로만 있는 것이다. 부엌에서 쓰는 것은 칼이다. 두 철제칼은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둘 다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손잡이 끝까지 금판이 붙은 것(그림 3-1)이 약간 더 크다(길이 28.9 cm, 손잡이 폭 3.5 cm, 날의 폭 2 cm, 두께 0.7 cm; 무게 58.74 g).손잡이의 앞뒤면은 같은 문양이고 측면은 다르다(그림 5-1,2). 앞 뒷면에는 기본적으로 곡선V자형 문양 7개가 번갈아 가면서 표현되었다.

 

철칼에는 동물문양이 있을까?

물어보는 것을 보니 있는 것 같다. V자형 문양은 2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뿔이 둥글게 말린 양 3마리, 다른 V자형에는 나선문양이 표현되었다. 측면에는 새의 날개를 추상화 한 문양이 한쪽에만 표현되었다. 금판에 붉은색의 색깔을 입힌 흔적(그림 3-2b)이 남아 있다.

 

 

다른 철검(길이 24.4 cm, 너비 3.4 cm, 너비 1.7 cm, 두께 0.7 cm, 무게 25.78 g)(그림 3-2)은 앞면의 손잡이에만 금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나선문양인데, 붉은색 염료의 흔적이 있다(그림 3-2b).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그림3과 동일)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철제칼 손잡이 세부, 1은 측면에 붙은 금판이 달라서 앞뒤양측면을 모두 그린것이다.

 

아르잔-1호 유물과 같이 완벽하게 몸을 만 호랑이는 아니지만, 아르잔-2호에서도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이 철제검에서 확인된다. 호랑이가 줄무늬까지 표현된 방법은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장식으로 확인된 바 있다. 나선문양도 문양의 구성요소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문양에 대한 관념이 비슷하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의 철제무기는 장식성이 매우 심하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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