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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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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에는 2700년 전  무덤(혹은 의례복합체)인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초기 스키타이문화로 생각된다. 아르잔-1호는 기원전 9세기 정도의 유적이고, 아르잔-2호는 이 보다 늦다. 스키타이 문화권은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흑해 북쪽까지 아주 넓은 지역에서 나타나는 유물 때문에 하나의 문화권역으로 설정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 무기, 마구를 일컬어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는 점을 이미 여러분은 알고 있다.

 

아르잔-2호에서 나오는 동물문양장식은 호랑이, 염소, 산양, 양, 사슴, 멧돼지가 있다. 염소는 뿔의 모양에 따라서 여러 종류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금속제품에 새겨졌다. 하지만 금속판 뿐만 아니라 돌판에도 동물이 그려졌다. 

 

돌판?

사슴돌인가? 사슴돌은 대체로 생긴 모습을 ‘비석’을 생각하시면 된다. 비석에는 글이 적혀 있지만 그 대신해서 사슴돌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진 것이다. 아르잔-2호에는 사슴돌도 확인되지만, 더 흥미로운 유물이 발견되는데 그것이 동물문양이 그려진 납작한 돌판이다. 돌판에는 박트리아산 낙타, 사슴, 말 그림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4번이 그림1과 동일)

 

낙타는 기원전 3천년기 초반에 중앙아시아에서 길드여졌으며 운반에 아주 유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트리아산 낙타는 최대 250kg까지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한번에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양이 다른 동물과는 비교불가이다. 뿐만 아니라 낙타털과 우유, 고기도 제공하는 아주 유용한 동물로 알려졌다.

사실 낙타는 무덤방 5호 여성의 머리장식에도 새겨진 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차를 끄는 장면도 확인된다. 바퀴가 달린 전차 혹은 마차를 세 마리 말이 앞과 뒤에서 끄는 장면이 그려진 것이다. 그런데 돌판의 상단이 결실되어서, 전차의 운전석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의 알타이 파지릭 유적 5호에서는 실제로 마차가 통째로 들어갔다. 아르잔-2호의 돌판 그림으로 보아서도 이 시기에도 마차가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는 이미 청동기시대 후기인 카라숙문화의 암각화에서 마차그림이 확인되어서 스키타이문화 이전에 이미 마차는 존재했다.

설마 없는 물체를 상상해서 그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

아르잔-2호의 마차그림(그림 3-3 그림 4-3)도 카라숙문화 암각화와 그리는 방법이 같아서 아르잔-2호 이전에 이미 그려진 유물을 설치했을 수 있다.

 

 

그림3.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3

 

 

그림4. 아르잔-2호 출토 암각화 돌판 4(3번이 그림 3과 동일유물이다)

 

그림이 그려진 돌판은 모두 15점 확인되는데, 무덤에서 동쪽 구역에서 가장자리 부위에서 확인되었다. 돌판에 그려진 암각화는 낙타처럼 동물의 면을 쪼아서 표현한 것(그림 2-4)과 선을 쪼아서 그린 것(그림 2-2~5)으로 구분된다. 면을 쪼은 것 보다 선을 쪼아서 그린 그림이 더 이른데, 이는 신석기시대부터 내려오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르잔-2호에서 확인된 그림 돌판은 최소 아르잔-1호 시기에 제작된 것과 그 보다 더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잔-1호와 유사한 시기라고 하는 것은 그림 가운데서 사슴의 등에 난 혹이 그려진 그림이(그림 4-4) 있는데, 이것은 아르잔-1호에서 확인된 사슴돌 그림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것은 선을 쪼아서 그린 산양(그림 2-2)멧돼지(그림2-3), 사슴(그림 2-5) 등이 있다.

 

2020/05/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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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암각화가 확인되는데, 특히 영남에서는 독특한 주제가 확인된다. 검파형이라고 불리는 방형계통의 암각화 이다. 검파는 동검이나 석검의 손잡이와 유사해서 붙인 명칭이다. 검파라고 해석하면서 청동기시대에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형계통(검파형)의 암각화와 함께 확인되는 것이 동심원문양인데, 안화리 유적에서는 방형문양 보다 먼저 동심원문양이 그려졌다. 동심원문양이 단독으로 확인되는 유적도 있는데 그 중에서 지석묘 유적인 밀양산인, 진천동 유적에서 확인되면서 동심원문양도 청동기시대에 그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안화리 유적의 예를 보면 동심원문이 이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석묘에 그려졌다고 해도 지석묘를 만들면서 이미 그려진 문양이 있는 돌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동심원문양을 반드시 청동기시대로 볼 수는 없다(김재윤 2019).

 

암각화는 절벽과 같은 곳에 그려지기도 하지만, 작은 돌에도 새겨지기 때문에 유적의 연대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절벽과 같은 큰 도화지에 그려진 그림도 아주 오랫동안 그려지기 때문에 그린 방법을 통해서 연대를 추정한다.

그러나 작은돌에 그려진 그림은 유적의 연대와 일치하면 안되고, 유적의 연대를 가장 마지노선으로 삼아야 된다. 이 유적이 만들어진 이후에 그림이 그려졌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유적보다 먼저 작은 돌에 그림이 그려졌고, 유적이 만들어지면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암각화의 연대추정에서 좀 유연하게 대처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유적의 연대와 일치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하다. 사실 이 정도만 되도 다행이다....너무 허무맹랑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어서...화가 날 때도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에서는 직경 80m의 거대한 무덤이 축조되었다.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제례의식을 알 수 있는 제단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주인공의 무덤방인 5호에는 금속제로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는데, 금, 청동, 철제품이 모두 확인된다.

 

특히 주인공 남녀 모두 철제로 만들어진 철검과 철칼이 있고 남성은 체칸이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도 사용했다. 여성무덤에서 투부와 활과 화살이 발견된 경우는 없다. 그런데 철검과 철칼에는 주로 새의 날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이는 소용돌이 문양 혹은 나선형 문양이 금으로 장식되었다. 투부와 화살촉에도 나선형 문양은 장식되었다.

 

나선형문양이 새의 날개를 형상화 했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새가 필요하다.

 

그럼 실제 새 모양과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곳은 없을까?

 

무덤방 5호는 아니지만, 나무방을 만든 또 다른 무덤인 2호에서 출토된다. 무덤의 북쪽에 위치하고 구덩이 안에 나무 무덤방(1.4 × 1.8m, 깊이 1.2m)을 설치했다. 통나무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직경 15~20cm의 통나무로 덮고 다시 그 위를 석판으로 덮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방과 구덩이 사이에는 수직으로 돌을 세워서 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의 빈공간을 채웠다(그림 1-1,2).

 

무덤방 바닥은 납작한 나무판을 깔아서 만들었다. 무덤에서는 인골은 확인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나무판을 드러내자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점이다(그림 1-6).

 

그림1.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대부분 금판으로 제작된 유물인데, 새의 머리모양(그림 2-2), 물고기모양(그림 2- 1,3), 을 형상화 한 것, 긴 막대 모양의 금판(그림3-1)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제작된 유물들도 확인되는데 청동조각이 붙은 것(그림 3-4)과, 금판이 붙은 유물(그림 4)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1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2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3

 

모든 유물이 상태가 매우 않 좋지만 특히 목제품(그림 3-2, 그림 4)은 상태가 좋지 않다. 그런데 이 유물은 무엇이었을까? 나무로 된 유물은 목제 안장의 일부로 생각한다. 목제품 가운데서 금판이 남아 있는 유물(그림4-1)은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된 안장덮개에 부착되었던 물고기의 장식에서 비늘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물고기모양 장식은 파지릭 유적 뿐 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 모두 안장덮개의 장식이었다. 또 다른 예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우측 다리에 문신이 물고기 문양이었다. 

 

2020/02/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말 안장 덮개와 그리핀 그리고 물고기

 

2500년 전, 말 안장 덮개와 그리핀 그리고 물고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말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말 9마리가 묻혔다. 7마리분의 마구가 확인되었는데 5마리는 착장된 채 였고, 2벌은 말 옆에서 확인되었다. 말을 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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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스키타이 문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처리하는 장례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필자가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에 다녀간 적인 있는 시베리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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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호 출토품(그림 2-1과 동일)

 

새(그림 2-1, 그림 5-1)(높이 3.8cm, 길이 3.8cm, 너비 4.9cm, 두께 0.03cm, 무게 5.78g)는 머리를 날개쪽으로 뒤돌리고 있는 상태이다. 어떤 새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스키타이문화에서 가장 일반적인 새는 독수리이다. 새머리모양의 금박은 그 아래에 목제로 된 구조물이 따로 있었고 이를 덮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에 금속제였다면 남아 있었겠죠? 새머리 금판 덮개의 형태로 모아서 아래에는 어떤 원판형의 용기와 같은 물체가 아닐까?

 

 

필자가 무덤 2호는 애매하다고 한 부분이 인골과 동물뼈가 없는 상태에서 무덤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다. 발굴자들은 일단 유물을 안장의 구조물로 해석하면서 말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나무로 무덤구조물을 만들었다면 인간도 함께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무덤의 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가 설치류 때문이라고 한다. 쥐가 파 통나무 목재를 손상시킨 흔적이 많다.

수수께끼 같은 무덤방이다...나무바닥아래에 유물을 두다니...예나 지금이나 바닥 아래에 뭔가 넣어두는 것은...계획된 일이다. 

 

아르잔-2호 무덤방 2호의 바닥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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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2700년 전 무덤인 아르잔-2호는 직경이 80m나 되는 거대한 무덤이다. 무덤을 둘러싼 경계석 아래에서도 무덤이 발견되었다. 22호 무덤에서는 여성의 두개골에 구멍이 4개나 뚫린 채로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다. 호석아래의 무덤은 24호를 포함해서 5기인데, 24호에서도 투부에 머리를 맞아서 구멍뚫린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외에도 유적에는 여러 시설물이 무덤 경계석 안에 있다.

 

그림 2에서 아르잔-2호의 평면도에는 호석 담벼락을 따라서 특히 동쪽벽에 노란색 점들이 발견된다. 그 곳은 호석 사이에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매납지 혹은 ‘퇴장’지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주로 마구가 출토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출토 유물퇴장지1호

 

 

아르잔-2호는 매우 간단하게 구조를 설명하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벽을 두른 후, 점토로 단을 쌓고, 가장 마지막에 돌을 쌓아서 채운 구조이다. 그림 2에서 각 지점의 벽 구조를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 경계석의 구조

 

5호 무덤을 중심으로 무덤의 경계에 두 줄로 높이 1m가량의 벽을 쌓았다. 그림 1-2~6에서 각 지점의 벽 단면도인데, 벽을 쌓는 방법을 알 수 있다. 그림 1-4는 그림 1-3과 같은 지점의 사진이다.

 

그림 2-6은 A-G라인을 찍은 사진인데, 납작한 판석을 빼곡히 채워서 무덤을 덮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3-2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아르잔-1호와 비교해보면, 무덤방을 지상으로 쌓은 점은 아르잔-2호와 가장 큰 차이점 이지만, 납작한 판석을 채워서 무덤상부를 덮었다는 점은 같다.

 

그런데 그림 2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필자가 아직 모든 무덤을 다 설명하지 않았다.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은 말무덤과 무덤방 13호, 무덤방 20호 등은 좀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주인공 5호 뿐만 아니라 구조상 알아야 할 부분은 다 설명을 했다.

 

왜 이렇게 빈 공간이 많을까?

 

아르잔-1호에서는 주인공 무덤방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뻗어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부분 무덤과 관련된 시설물이 있고 그 위를 판석(납작한 돌)으로 덮었다. 아르잔-2호는 무덤의 경계 안에 주인공 무덤 및 여러 무덤을 제외하고 공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그림 3-1에는 필자가 붉은색 화살표와 주황색 화살표를 표시해 놓은 곳이 있다. 붉은색 화살표가 가르키는 곳은 점토가 짙은 색을 띄고, 주황색 화살표는 흙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무덤평면도를 보면, 무덤 평면도 안에는 점선으로 된 라인이 있는데, 1번은 점토가 바닥에서 확인된 라인이다. 2번 라인은 무덤의 단면상에서 확인된 점선라인이다. 1과 2번 점토라인이 다른 이유는 무덤경계벽이 무너지면서 점토로 채운 구조물이 허물어지면서 생기게 된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림 3.아르잔-2호, 무덤의 구조

 

즉, 무덤은 단순히 무덤경계에 벽을 쌓고 납작한 돌을 채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내부에 점토를 쌓았던 구조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굴책임자인 추구노프가 생각하는 무덤의 완성된 모습은 그림 4의 첫 번째이다. 기억하시겠지만 무덤 경계벽 바깥에 있던 동그랗게 돌아가는 돌도 무덤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1단계에서는 북쪽 가장 안쪽에 위치한 주인공 무덤이 만들어졌다.

 

2단계에서는 만들어진 무덤방 안으로 주인공이 들어가고 이때 많은 무덤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무덤방 10호도 같이 만들어졌다. 무덤방 9호와 10호는 아직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아르잔-2호에서 도굴되었던 무덤이다. 이 곳의 위에는 사슴돌이 있었는데, 아마 도둑에게는 표지석처럼 보였을 것이다. 원래 사슴돌은 마운드의 중앙에 있었고, 무덤벽이 무너지면서 사슴돌도 이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방 9호에는 남서쪽에 복도처럼 터널이 있고, 무덤방 10호 부근에서 인골과 호박제 구슬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 인골은 무덤 15호의 것으로 도굴당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그림 4. 아르잔-2호 의례복합체의 장례식 단계 및 복원도(추구노프)

 

 

3단계는 장례식이 끝나는 단계로 무덤의 중앙에 직경 45m로 점토구조물을 쌓아올렸다. 가장 높은 사슴돌을 중앙에 배치했고, 중앙의 제단을 둘러싸나 원주모양에도 다른 사슴돌을 세워서 표시했다. 이 단계에서 무덤방 11호의 9달 된 아이의 매장(순장)이 이루어졌다. 추구노프는 어린유아는 희생물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3단계에서 여러 무덤방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네 번째 단계에는 말이 의식이 있었는데, 이 위해서 남동쪽 벽을 일부 허물어뜨리고 다시 재건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말을 매장을 위한 무덤방 16호를 만들었다. 내부는 나무로 된 무덤방이고 그 위를 점토와 돌로 덮었다. 말 매장을 끝낸 후에 무덤전체를 판석으로 둥글고 납작한 모양이 되도록 채웠고, 그 위를 점토로 덮고, 다시 돌로 마지막에 마무리했다(그림 5-1). 그 중앙 상부에는 사슴돌을 배치했다. 아르잔-2호는 이후의 시대에도 무덤으로 이용되었다(무덤배치도의 녹색 점은 이후의 시대 무덤이다.) 하지만 후대의 무덤이 스키타이 시대 무덤을 파손하지는 않았다.

 

 

 

그림 5. 아르잔-2호의 단면도

 

아르잔-2호는 단계별로 장례를 치뤘던 흔적이 확인되고, 단순히 무덤 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련된 구조물(제단)이 발견되어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쓴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 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 축조과정 복원과 절대연대에 대한 질문)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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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 무덤의 무덤방 5호 남성은 무기 3종 세트를 지녔다.

1-검과 칼, 2- 활과 화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체칸'이라고 불리는 투부로 전투용도끼이다.

 

어제 소개한 고리트의 오른쪽 옆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와 함께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도끼의 날 부분과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로 만들어졌고, 손잡이(길이 62cm)는 나무이다. 날 앞부분은 원통형(단면은 각이 짐)에 포인트 부분은 매우 날카롭다. 날의 뒷 부분은 납작한 장방형으로 끝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도끼의 신부(몸체)와 손잡이 끝에 전체적으로 나선형 문양이 묘사되었다. 무덤 주인공 남성의 철제검과 철제칼, 여성의 철제검과 가슴장식, 모형솥에서 확인되는 나선형 문양이다. 도끼의 날 아래에 호랑이 머리(그림 1의 화살표)가 달려 있다.  이 부분은 도끼날을 손잡이에 끼운 후 은제 못(그림 1-2, 2-1)으로 고정한 후에 별도로 마지막에 추가되어 달렸다.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 끼우개(그림 2-6)에 금박을 덧입힌 것으로 홈을 내서 상감한 것은 아니다.

 

그림 1.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2.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1과 동일

 

철을 상감하거나 다른 물질로 입히는 기술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아파다나 궁전 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무기를 들고 있는 페르시아인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입수한 것을 들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투부는 페르세폴리스의 ‘백 기둥 홀’ 바닥에서도 발견되었고, 스키타이 문화권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서도 많이 확인된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금박은 없지만 철제 투부(그림 6)가 많이 확인되어서, 일반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슴돌(장방형의 입석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슴 없는 사슴돌도 있다)이라고 불리는 입석에 무기가 달린 무사의 벨트가 그려져 있다(그림 3,그림 4).

 

 

그림 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출토, 사슴돌, 이 사슴돌에는 사슴이 없다.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입석에는 대부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이 없는 사슴돌도 있다. 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래에 링크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그림 4. 아르잔 출토, 사슴돌, 그림 3과 동일, 투부, 검, 고리트(화살통)가 벨트에 달려 있다. 아래 지도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위치를 알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ll=52.0966411900486%2C93.56780343358592&z=1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투부는 직접전투에서 사용되었다. 도끼의 전단부의 단면이 원형이고, 끝이 뾰족한 형태가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 이 형태가 유지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머리에 투부로 맞은 상처가 3곳이 있었다. 시베리아 남부에서 현재 우크라이나(흑해북안)(그림 7)까지 무덤에서 투부에 맞아 머리터진 사람들이 묻혔다. 뿐만 아니라 말을 죽일 때도 투부를 사용한 흔적이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투부는 그 당시에 치명적인 개인 무기였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투부 복원도(그림 1을 복원)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출토, 투부

 

 

 

그림 7. 흑해 북안의 체르도믹 유적, 투부,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동물문양이 금박에 찍혀 있다. 날과 손끝에 같은 문양이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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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새겨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의 유물 중에서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고 있는 남성전사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서는 고리트가 실제로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활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이 가득 담긴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을 제거한 후 드러난 모습,

 

남성의 좌측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으나 원래는 무덤방의 북동쪽벽에 매달려 있었고 나중에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활이 고리트에서 빠진 채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고리트(그림 3-4)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가죽은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나무는 금박 혹은 금판(크기누락, 필자가 금판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주 소형의 유물에 덮힌 금박보다는 두꺼울 것이기 때문이다)으로 덮였다(그림 3-1), 금으로 고리트의 바닥(그림 3-2)도 만들어졌다, 길이 50cm 나무뼈대에 새겨진 비늘 모양이 금판 위에 그대로 찍혔다. 나무 뼈대가 누르면서 금판의 비늘도 만들고, 고리트도 단단하게 했을 것이다. 나무 뼈대의 반대면은 매끄러운데, 고리트에 연결했던 장식판이 눌러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판에는 24개의 구멍이 있어서 나무핀으로 금판과 연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금판은 고리트의 앞면에만 장식되었고, 금판의 한쪽 끝은 직각이 되게 하단부가 만들어지고, 따로 제작된 금판(그림 3-3)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고리트에는 앞서 남성과 여성의 윗옷에 달린 적이 있는 황금 멧돼지 장식판(두 종류 크기)(그림 12)이 세 곳(그림 4-26,27,28)에 312점이 나눠서 부착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그림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유물평면도, 우측은 남성, 좌측은 여성이다.

 

고리트 위쪽에서는 활이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의 모습

 

활(그림 5, 그림 6-7)은 나무를 세로로 네 조각으로 잘라서 만들어서 단면이 각(그림 5)이 졌다.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을 비스듬하게 감아서 만들어졌다. 활의 윗부분에는 붉은색 염료가 칠해진 금박(그림 7-1~4)이 장식된 것이 있다. 활은 가장 긴 것은 24cm가량이고, 막대는 20개 정도 확인되었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7)과 부속품, 1~4: 활대에 붙은 금박, 5,6:용도미상, 5는 40개, 6은 3개출토되었음, 그림 5에서 가장 우측에서 나란히 놓인 채로 확인되었다.

 

화살은 앞에서 촉은 소개해 드린 바 있다. 활대는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처음 제작당시의 길이는 60cm이다(단면은 0.6~0.8cm). 횡단면은 타원형이고, 끝은 둥그스럼하고 틈을 파서 제작되었다. 어떤 화살대에는 빨간색 세로 줄무늬가 파란색 바탕에 그려졌거나 혹은 그 반대도 칠해진 것이 있다(

 

 

 

 

그림 8.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1,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많이 휘어진 상태인데 화살대이다.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활 아님.

 

 

 

그림 9.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2,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0.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활 아님) ,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활과 화살통) 복원도, 활은 화살통에 넣어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림 12.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파다나 궁전 북벽, 페르시아인이 스키타이 고리트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활은 나무판을 덧 붙인 복합궁이라고 불리면서 아주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론-쿠린-고레-10(Олон-Курин-Голе-10)유적에서 출토된 활은 나무판을 여러겹 덧붙여서 제작된 것이다. 보다시피 아르잔-2호와는 차이가 있다. 그림 6과 그림 6-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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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