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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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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에 해당되는 글 27

  1. 2020.01.29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3
  2. 2020.01.28 시베리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과 고깔모자
  3. 2020.01.27 시베리아 얼음공주 치마 아래의 타이즈
  4. 2020.01.26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얼음공주의 상의와 치마
  5. 2020.01.25 시베리아 얼음무덤에서 나온 꼬리달린 모피코트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위약금이 줄어들었다. 필자는 아직 제주도를 경계로 그 보다 밑으로 가본적이 없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다.ㅋ

 

어제 잠시 알릴레오를 시청했는데, 신종바이러스의 이름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처음에 언론에서 창궐하는 병의 이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이야기 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나 했다. 어제 의사선생님 말씀이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는데, 코로나 라는 말이 영어 크라운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척을 쫌 하면 맞는 말씀이다. 코로나는 러시아어다. 영어로 하면 crown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맥주 이름 중에도 ‘시베르스카야 코로나(сибирская корона)’ 라고 맥주가 있는데, 시베리아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어디서든 파는 맥주다.

 

 

어제는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나온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있는 여성미라가 쓴 고깔모자를 보았다. 높은 고깔에 챙이 붙은 것인데,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도 출토되어서 그런 스타일은 여성이 썼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고깔모자 속에 화려한 머리장식을 넣고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그럼 남성은?

현재 우리가 살피고 있는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주인공이 여성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남성무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앞서서 이 여성의 문신을 설명할 때 같은 기술자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남성미라를 설명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어깨에 문신이 그려진 남성미라가 나온 베르흐-칼쥔 2유적에서도 변종의 고깔모자가 출토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고깔모자도 양모펠트로 제작되었지만,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과 1호분에서도 남성용모자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문신이 새겨진 채 확인된 남성무사의 미라가 나온 3호분에서 나온 고깔모자 2점이 확인되었다. 한 점은 펠트로 제작된 것인데, 고깔 정수리에 새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그림1). 다른 한 점은 목제로 된 새머리와 산양 조각들만 남아 있다. 역시 펠트제 고깔모자의 장식품으로 생각된다(그림2).

 왜냐하면 알타이의 다른 유적(그림 3)에서 출토된 고깔모자 중에서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고깔모자의 목제장식과 거의 유사한 목제장식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새머리고깔모자(그림2)에는 말이 아니라 화려한 뿔이 달린 산양이 붙어져 있다. 그럼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는 목제와 펠트로만 만들었을까?

그림1. 베르흐 칼쥔 2유적 3호분 고깔모자

 

 

그림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머리는 금색이지 않은가? 모든 목제 장식은 아주 얇은 금박으로 덧입혀졌지만, 잘 남아 있지 않다. 발굴과정에서 얼음이 녹으면서 금박은 쉽게 떨어졌다고 한다.

 

새머리 고깔모자만 있을까?

베르흐 칼쥔-2 유적의 1호분에서는 고깔모자가 아닌 펠트제 모자가 출토되었다.

펠트 2장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를 ‘투구’형이라고 부른다.

아무장식 없이 귀만 덮게 되어 있고 정수리는 높지 않고, 머리에 딱 맞게 제작되었다(그림 4).

 

그림 4. 베르흐 칼쥔-2 유적 1호분 출토 투구형 모자

 

 

투구형?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흑해 북안에서 출토되는 청동제 투구가 있다. 이 투구는 원래 흑해북안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그 곳의 지명 중에 하나인 ‘쿠반’형 투구라고 한다.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정도의 유적으로 생각된다(그림 5).

너무 비약이 심한거 아니냐고? 흑해 북쪽이면 지금 우크라이나인데, 시베리아 알타이와 너무 멀지 않냐고?

 

그런데 여러분은 그림 6과7의 유물을 보셔야 된다(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어디서 출토되었을까? 이 유물은 중국의 요서지역(영금하 주변) 청동기시대 가운데서도 하가점상층문화에 속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7세기 가량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그림5. 켈레르메스 2호분, 에르미타쥬 소장, 190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Scythians 2017)

그림 6. 서삼가촌(西三家村) 출토(동북아역사재단 2007)

 

그림 7. 북산취(北山嘴) 유적 7501호(동북아역사재단 2007)

 

 

이 정도 되면 스키타이 문화의 역동성의 한 부분이라도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투구형 모자는 장식이 없는 것만 있을 까? 그것도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또 다른 고분인 파지릭 유적에서는 ‘코로나’라고 불리는 투구형 모자가 확인되었다(그림8).

투구형이지만, 정수리에 사슴 뿔과 같은 아플리케 장식을4개를  붙였다. 역시 2장의 펠트를 이어 붙은 것으로 올리브 색이었다. 귀 옆에는 붉은색으로 동물장식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반짝이는 옻 칠 장식을 붙였다. 동물의 종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림8. 파지릭 유적 출토 모자, 에르미타쥬 소장(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중에서도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 뿐만 아니라 투구형 모자는 여성모자와는 달리 귀를 덮고 있다. 여성은 화려한 가발을 쓰고 단순한 고깔모자를 썼으며, 남성은 대체로 화려한 모자를 썼다. 파지릭 유적의 모자()나 금박을 입힌 목제장식을 모자에 달고 다닌 행위는 코로나, 크라운의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코로나, 크라운의 의미는 단순히 머리장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순동시대에 머리장식을 하는 관습이 무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코로나, 크라운은 국가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보다 더 빠른 코로나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의 유물이 있는지 앞으로 살펴봐야 겠다.  그리고 스키타이문화의 더 화려한 모자를 앞으로 소개할 날을 기대한다.

 

*2500년 전은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이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 아크 알라하-3유적 얼음공주가 죽었던 시기가 그때 쯤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돌려말하면, 2500년 전과 코로나의 기원연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림 9.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위치(Scythians 2017), 어제 언급했던 쿨 오바 유적, 오늘 소개된 헬멧이 출토된 켈레르메스 유적 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동북아역사재단 2007, 『하가점상층문화의 청동기』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이라고 불리는 유적에서 1호분에서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여성미라가 발굴되었다.

그녀는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쓰고, 정수리 장식을 높이 한 것으로 앞에서 포스팅했다. 가발을 쓴 후에 검은색 펠트로 정수리 장식을 올렸는데, 15마리의 새가 부착되었다. 14마리는 날개표현이 없었고, 가장 가운데 새만 날개 표현이 있었다.

 

시베리아의 원래 주민들에게는 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을 상징한다. 나나이족들은 사람의 영혼은 작은 새에 깃들어 거대한 나무에 자란다고 믿는다(킬레 1976). 씨족 또는 가족의 나뭇가지에 있는 새들은 그 씨족이나 가족의 미래 구성원들을 상징한다(이바노프 1976). 셀쿠프족(현재 러시아의 튜멘과 톰스크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 에게 새는 태양시 사람에게 주는 영혼을 의미한다(토밀로프 1992)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복원도

 

가장 높은 정수리 장식 앞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꼭대기를 사슴모양장식을 올린 정수리 장식도 했다(그림1). 그 내부에는 사슴머리 장식이 새겨진 목제 나무판이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필자가 앞에서 올린 사진이 있다(그림2). 그러나 그 내부에 목제판을 넣은 것은 맞지만, 필자가 올린 사진은 다른 용도였다. 보고서에는 그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필자가 그림3을 보고 삐져나와 있는 목제판을 그 용도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찍은 사진은 그림 1에서 머리의 뒤를 장식하는 나무판이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머리뒤 장식 나무판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

 

 

그림 2처럼 길지는 않지만 목제장식판은 정수리 장식 앞쪽에도 양쪽으로 붙어 있다. 두 마리 그리핀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은 산양인데, 부리는 독수리로 그리핀이 새겨졌다. 부리가 대각선이 되도록 조각되어 있는데, 2단으로 조각되어 있다(그림 4). 그림 2에 조각된 나무판에도 사슴머리가 아닌 산양머리에 독수리 부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동물인 그리핀이 새겨졌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 그림 5에서 보면 착장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얼음공주 머리 복원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매우 높은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착용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수의’의 일부로 혹은 축제, 의례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머리장식은 어떻게 하고 다녔을까? 물론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이야기 한다.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시베리아의 파지릭 문화에서든지,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든지 고깔모자를 썼던 정황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다른 유물에 스키타이 인을 묘사할 때 꼭 고깔모자를 써서 표현한 것이다.

흑해 북안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인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그림 6,7)으로 된 항아리에도 스키타이인이 표현되어 있다.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페리세폴리스의 아파다나(Apadana)의 동쪽벽에 새겨진 스키타이인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8).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스키타이 인을 사키족이라고 불렀다. 4명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에 조각된 스키타이인 가운데 타이즈를 들고 있는 사람도 발견되었다(그림9).

 

 

그림 6.쿨오바 출토 황금항아리(알렉세예프 2012)

 

그림 7. 쿨오바 출토 황금항아리에 조각된 스키타이 인, 그림6과 같은 유물, 다른 편에 새겨진 스키타이인의 모습이다(알렉세예프 2012)

 

그림 8.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동쪽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인(Scythians 2017)

 

그림 9.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에 조각된 스키타이 인. 타이즈를 들고 있다(폴로시막 2001)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주도 고깔모자가 있었다. 높이가 84cm나 된다(그림 10-b). 그렇지 않겠는가? 저 높은 가발을 씌우려면...

 

 

 

그림 10.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b)와 파지릭 2호분의 고깔모자(a)(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두 고깔모자는 단순히 고깔뿐만 아니라 챙이 붙어 있다.

 

 

그런데 무덤관 속에 고깔모자가 있었던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필자는 이미 무덤 관속에서 출토된 유물의 위치를 다 공개했다.

그럼 고깔모자는 어디에?

 

필자도 무덤관 속에서 고깔모자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폴로시막이 쓴 다른 책에서 찾았다. 이 유물이 어디서 나왔는지....‘고깔모자는 무덤방과 관의 벽 사이에서 출토되었다’(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이바노프 1976, Иванов С.В.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найцев о человеке и его жизненном цикле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М.: Наука, 1976. С. 161-189.(이바노프 1976, 나나이족의 사람과 인생순환에 대한 표현)

킬레 1976, Киле Н.Б. Лексика, связанная с религиозными представлениями нанайцев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Л.: Наука, 1976. С. 189-203. (킬레 1976, 나나이족의 종교적 믿음과 관련된 단어)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토밀로프 1992, Томилов Н.А. Астраль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рымских селькупов // Ранние формы религии народов Сибири / Материалы III советско-французского симп. СПб.: МАЭ РАН, 1992. С. 166-173.(토밀로프 1992, 나림지역의 셀쿠프 족 우주관에 대한 표현)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 스키타이문화의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 해당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실크제 상의와 양모로 직조한 천을 이용해서 만든 치마를 착용했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치마 상세 사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리고 그 치마 아래에는 타이즈를 신었다. 알타이 산맥의 스키타이문화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서는 베르흐 칼쥔-2유적의 1호와 3호 남성고분에서 발견되었고,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남성무덤이다. 이 타이즈는 남성무덤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성별과 관련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타이즈를 신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치마 아래에, 남성은 짧은 바지위에 입었는데, 이 타이즈가 어떻게 달라붙게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기마문화와 관련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마 아래에는 양모펠트로 제작된 타이즈 한 쌍이 공주에게 신겨져 있었다. 흰색 양모펠트로 제작되었고, 발 바닥에는 붉은색으로 천이 덧대워져 있고, 발의 반대쪽 방향인 즉 넓적다리 부분에는 붉은색 양모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발목에도 덧양말을 신은 것처럼 붉은 색 천을 덧대었다. 넓적다리 부분에 아플리케 장식이 있었던 것은 여성용이다(그림 2,3). 아플리케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이 양모펠트 아플리케로 제작되었다. 발의 길이는 21~22cm, 스타킹의 길이는 89cm이다. 발의 바닥에 댄 붉은색 발모양은 20cm가량이다. 

 

그림 2.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타이즈, 필자촬영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타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림 2와 같은 유물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기원전 4~3세기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의 의상과 직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고분 중 가장 최상급이라고 여겨지는 파지릭고분을 발굴한 루덴코는 남성이나 여성의 상의가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여밈없는 셔츠 스타일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고분에 묻힌 여성이 입은 셔츠는 매우 길어서 무릎까지 내려온다. 등쪽 길이는 113cm, 앞쪽은 110cm, 넓이는 80cm이다. 소매는 어깨끝을 기준으로 60cm가량으로 손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셔츠는 앞과 뒷부분은 각 각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이다. 목과 어깨, 소매끝, 셔츠의 중앙은 붉은색 양모로 꼬은 끈을 달았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얼음공주의 상의, 필자촬영

 

상의를 만든 천은 넓이가 130cm이상이다. 이 제품은 실크제품이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고대 중국의 실크는 너비가 48~50cm정도이다. 이 너비는 실크를 짜는 직조기의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이 보다 넓은 실크는 당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것을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와 스위스의 Abegg-Stiftung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산 실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실크는 1㎠를 기준으로 그 치밀도가 80(날실)×33.5(씨실)의 조직으로 짜여졌다. 실크섬유조직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양잠용인 아닌 야생누에에서 뽑아낸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나방고치에서 뽑은 것이다. 당연히 중국 실크는 양잠용에서 뽑아낸 것임으로 중국산이 아니다.

 

이 비중국적 실크는 동투르케스탄(현재의 중국 신강성)혹은 인도 동북부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동투르케스탄에서는 기원전 2~1세기가 되어서야 나옴으로, 이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5세기 임으로 맞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야생실크를 뽑는 기술(Dhamija 1995)에 주목을 했다. 현재까지도 아쌈과 인도의 동쪽 일대에서는 야생실크를 만드는데 누에고치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파먹는 벌레로부터 뽑아낸다(드자야크리쉬난 198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는 하의는 양모로 직조한 천 3단을 이어붙였다. 전체평면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길이는 144cm, 위쪽의 넓이는 90cm, 하단의 넓이는 112.5cm이다. 상단과 하단은 붉은색, 중단은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황색으로 퇴색되었다. 가장 상단의 너비는 52cm, 중앙부의 너비는 51cm, 하부의 너비는 39cm이다. 옆부분의 솔기는 한쪽이고 한쪽으로 겹치게 해서 입었다(그림 2). 

*양모를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가 아닌 직조로 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양모로 하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펠트가 아닌 직조한 천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서 만드는 직조한 양모천이 얼음공주의 치마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와 유사한 치마는 2번 더 발견되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와 중국 신강성에서이다. 알타이 산맥에서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가 붉은색 천과 녹색의 양모펠트를 번 갈라 꿰매어 붙인 것이다. 중국신강성 유적은 수바쉬 유적 6B고분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거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와 거의 복제한 듯 이 똑같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 수바쉬 유적의 6B고분출토품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대로 측정되었다(Mair 1995)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치마

 

 

참고문헌

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Лубо-Лесниченко Е.И. Китай на шёлковом пут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332 с.(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중국 실크의 길)

Джаякришнан Ш. Ткачество // Индия. М.: Прогресс, 1987. С. 67-73.(드자야크르쉬난 1987, 직물//인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Dhamija J. The woven silk of India. Marg Publications, 1995. 156 p.

Mair V.H. Mummies of the Tarim Basin // Archaeology. 1995. March/April. P. 28.3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 온 우리의 주인공 여성은 아직 설명드리지는 않았지만 긴 상의에 긴 치마를 입었다. 상의는 흰색이고, 하의는 붉은색 계통인데, 삼단으로 짠 펠트제품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베리아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뭔가가 있지 않으신가?

추위,,모피코트...러시아인들이 쓰고 다니는 높은 모피로 된 모자 등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999라는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어린 학생들은 많이 모르실텐데, 두 주인공이 여러 별을 기차로 타고 다니는 만화이다. 지금 기억에 그건 일요일 아침인가에 했는데, 난 그걸 보기 위해서 모든 걸었다..그걸 하는 시간을 비우기 위해서, 엄마아빠 잔심부름은 빨리 다 하고,, 밥도 일찍 다 먹고,,‘신성한’ 마음으로 기다렸다..은하철도 999.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2명인데, 메텔이라고 불리는 여성과 한 명 남자의 이름은 기억안난다. 메텔은 키가 크고 금발인 여성이었는데, 검은색이고 높은 모자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모티브가 된 것이 러시아여성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모피코트다. 17세기에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를 삼킨 이유도 사실 모피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소빙기로 혹독한 추위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고, 욕심 많고 많이 돌아다녀서 아는 것 많은 표트르 1세는 시베리아 무주공산에 깃발꽂고 동물잡아 모피로 유럽에 팔아서 돈도 벌고, 고분도 들쭉날쭉 파서 표트르 대제 콜렉션을 만들었다. 그 유물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 유럽여행을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모스크바는 안가시더라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꼭 한번 머무르고 도시를 느끼시기 바란다..훔쳐오고 싶은 도시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알타이 산맥의 다른 무덤에서는 코트 입은 사람들이 발견된다.

초창기에 파지릭문화를 연구할 때는 모피코트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베르흐-칼쥔 2 유적을 발굴하고 나서 많은 점이 의문투성이로 바뀌었다. 이 무덤은 일반무사의 것인데, 매우 재밌게 생긴 모피코트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1호분(그림2)과 3호분(그림1), 2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스탈일이 다르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털이 안으로 들어간 ‘무스탕’(3호분)(그림1)과 털이 밖으로 나온(1호분)(그림1) 그냥 우리가 아는 모피코트이다. 요즘은 리버시블이 유행하던데, 그렇게 입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림1.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무사의 모피코트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은 어제 설명 드린 문신이 새겨진 무사가 주인공인 무덤이다. 그의 모피코트는 털이 안으로 들어간 바깥은 맨들맨들한 무스탕이다. 그런데 이 코트의 가장 하단에는 ‘꼬리’처럼 달린 장식이 붙어 있다. 이 코트는 두 장을 붙인 것인데, 안은 양털을 쓰고 그 위에 담비가죽을 붙인 것이다. 목과 양쪽 어깨, 소매 단, 여밈 부분은 검은색 나귀가죽을 따로 써서 붙였다. 그리고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였는데, 붉게 물들인 말총과 청색의 가죽조각을 이어붙여서 만든 술을 2열로 달았다. 이 모피코트의 꼬리부분은 너비 49, 길이 57cm이다.

 

민족지학적으로 꼬리달린 외투는 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도 입는다. 꼬리달린 외투는 놀랍게도 스키타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는 암각화에도 남아 있다. 그 분포범위는 시베리아의 큰 강 계곡마다 분포하고, 중국 북방에서 프리바이칼의 앙가라 주변지역까지 넓게 퍼져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6). 즉 현재 민족지학적으로 남아 있는 꼬리달린 외투의 기원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사냥꾼의 복식이라고 이해된다.

 

베르흐 칼쥔-2유적 1호분(그림 2)에서 출토된 모피코트는 꼬리가 없다. 밖으로 양털이 나오고, 안쪽으로는 흰색 모르모트 가죽을 덧입힌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3호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의 카라 라고 하는 부분이 없다. 외투의 오른쪽 하반부의 허리부근에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갈기(그림 2의 b)를 모아서 만든 숱을 부착했다.

소매가 매우 길어서 손가락을 덮을 정도이다. 모피의 착용방법도 유적마다 다르다. 베르흐 칼쥔 2유적에서는 소매를 끼운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1호분 모피코트 

 

우리는 여기서 하나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번 달의 주인공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처음부터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장례식은 태어나면서 계획 되었다..고분의 말이 6월쯤 죽었으니 모피코트가 필요 없기도 했겠지만,,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왜?

 

그녀는 손을 오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시신의 자세는 빠른 시간안에 결정났을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었다면 손 모양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오클라드니코프 1966,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6 : Петроглифы Ангары. М.-Л.: 1966. 322 с.(앙가라강의 암각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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