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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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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에 해당되는 글 27

  1. 2020.01.19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처리
  2. 2020.01.18 스키타이문화 얼음공주- 미라 1
  3. 2020.01.17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4. 2020.01.16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5. 2020.01.15 2500년 전, 여성 미라의 관 속.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 해당하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 속에 여성미라가 확인되었다. 얼음공주라는 별칭도 있고, 샤먼 계급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라는 여성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소개해 드릴 유적의 무덤에는 남성미라가 더 많은 것도 같다.

한국에도 조선시대 무덤에서 미라처럼 남아 있는 유적이 확인되어 언론에 나오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미라는 아니다. 조선시대는 이집트, 시베리아 처럼 미라 처리를 따로 하지 않고, 무덤 밖에 회를 두껍게 발라서 썩지 못해서 생긴현상이다.

 

앞에서 보여드린 포스팅에서 여성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거울 옆에서 구슬과 말총으로 만든 화장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옆에는 금속제 통에서 나온 푸른색 가루가 확인되었다. 푸른색 가루의 정체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촉매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 비비아나이트(Vivanite)라고 밝혀졌다. 산악 알타이에 많이 분포하고, 금맥이 발견되기 전에 그 지표역할을 하는 광물이라고 알려졌다. 미라의 화장품이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미라의 얼굴은 눈 근처에도 반토(alumna)덩어리가 발견되었는데, 매장되기 직전까지 계속 이 물질로 얼굴피부를 매우고, 비비아나이트를 발라서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2020/01/14 - [시베리아의 선사시대/철기시대: 2500년 전 샤먼] -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안과 관속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관의 뚜껑을 열자 얼음속에서 가장 머저 드러난 것은 머리부분이다(그림1). 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무릎은 살짝 굽히고,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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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미라는 일정한 처리를 한다. 두개골에는 뇌수를 꺼내고 각종 식물들과 흙으로 속을 채웠고, 얼굴피부에도 처리를 했다. 매장할 때까지 가을 혹은 봄이 되도록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미라 처리과정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중에 하나는 관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장을 꺼내는 것이다. 관절이 파손되면, 미라의 형체가 유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병리학자들에 따르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처리에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머리, 목, 손과 가슴복원에 집중되어 있다. 이 여성은 왼쪽어깨부터 손까지 흐르는 부분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머리, 가슴 등에는 충전물로 충전되어 있다. 배 부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또 다른 유적인 베르흐-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미라에는 내장은 모두 꺼냈지만, 별다른 충전물 없이, 그냥 모피코트만 입은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알타이 산맥의 여러 미라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죽은 후의 모습도 각각 다르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스키타이 얼음공주라 불리는 2500년 전 스티타이 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문화라 불리는 문화에서 확인된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제 까지 무덤의 구조, 말, 관안에서 확인된 부장품, 관 밖이고, 무덤방안에서 확인된 여러 재질로 제작된 그릇들을 설명드렸다.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공인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미라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주인공은 무덤구덩이 속의 가장 바닥에 누워있다. 무덤방이라고 하는 목곽안에 통나무로 만든 관 안에…그런데 여러분 머리속에는 그 무덤방이 어떤 느낌이셨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게 그들의 철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관은 무덤구덩이의 중앙에 없었다. 무덤방의 중앙은 거의 비어 있었고, 무덤의 관은 무덤의 우측에 무덤방 동쪽에 치우쳐서 놓여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관과 곽을 만드는 작업은 엄청난 작업이다. 요즘도 건물을 지으면 지하를 파는 토목작업이 가장 힘든 작업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무덤 속의 빈 공간을 처음부터 계획해서 남겨두었다…무덤 속의 다른 유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것 만큼 의미심장하다.스키타이문화의 무덤에는 대부분 빈공간이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유물이 꽉 차거나, 화려하거나, 혹은 특이한 것에 혹한다.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도 특별한 존재이다. 필자는 미라의 의미를 앞에서 계속 설명한 시베리아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까지 설명한 인간형상물과 같은 의미 일 꺼라고 생각한다. 순동기시대 까지 뿔로 제작되던 인간형상물을 스키타이문화에서는 사자를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죽음의 의미는 가볍지 않은 듯 하다. 그 의미는 우리 내 역사의 DNA에 남아 있다. 반드시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나무 관의 뚜껑이 열리고 얼음이 녹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미라의 머리였다. 

얼음공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부분은 머리, 가슴과 복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림 4). 가장 복잡하고 처리하기 힘든 부분은 머리이다. 얼굴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오른쪽 턱 아래에만 남아 있다. 머리 뒤에는 4~5CM가량의 구멍이 있는데(그림 3), 구멍은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데, 뇌수를 빼내기 위한 구멍이다. 고병리학자가 두개골의 안쪽을 검사한 결과 뇌수를 빼기 위해서 금속제 도구를 써서 긁어낸 흔적이 없었다. 칼 대신에 숟가락과 같은 도구를 써서 꺼냈을 것이다.

 

그림 1. 통나무 관 안의 얼음공주, 얼굴의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노보시베리스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소 필자촬영 2009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 미라 두개골의 뒷모습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 머리 뿐만 아니라 복부와 가슴도 상태가 좋지 않다.

제가 이 무덤을 소개 할 때 나무로 뒤덮혀 있다고 했는데, 나무방, 나무관, 말장식도 나무로 제작해서 금박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라의 속을 채운 것도 식물섬유질, 일종의 구근류 등을 채워 넣었다. 구강, 코와 귀로 이어지는 비강과 이강에는 흙에 자잘한 모래와 식물섬유질, 잡초 등을 섞은 것으로 채워넣었다. 목 부분의 기관과 구강내의 부드로운 조직들은 목을 수평으로 절개해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 자른 부분에 충전물을 채워 넣었다(그림 5).

 

고병리학자들은 두개골과 경골일부는 척추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서 따로 방부처리되었고, 매장전까지 따로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그림 5.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두개골, 얼굴피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머리속에는 풀 등 다른 식물성 유기물질로 가득채워져 있다.

 

그래도 이 공주의 얼굴은 발견되었을 때 이미 거의 녹아내렸다. 미라처리기술에도 불구하고, 매장까지 오랜기간 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앞에서 필자가 찍은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과 관련된 사진은 모두 2009년에 촬영되었다. 정정한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목제 잔, 우유를 담은 그릇, 쿠미스와 버터를 받친다고 한다. 알타이의 카미족에게도 특별한 제기는 없다고 한다. 삶은 고기를 평소에 사용하는 목제 장반과 잔으로 국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는 특별한 미라와 공간은 있지만, 음식물을 뻑쩍하게 공헌하는 의식은 없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에위치한 파지릭문화의 고분 중에 한 곳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나무방 안에 통나무 관이 안치되었다. 나무방 안에는 통나무 관을 안치하고 빈 공간은 생활공간으로 생각된다. 그 곳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던 목제 쟁반, 목제 잔, 뿔잔, 토기 3점이 있었다. 말 6섯 마리와 61cm가발을 쓴 시신을 미라로 처리해서 넣은 무덤 치고는 매우 소략하다. 대신해서 토제, 목제, 뿔제 등 여러 소재로 제작되었다. 금속기로 만든 그릇은 없었다. 대신 칼이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그릇은 대부분 몇 차럐 수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제쟁반(그림 1) 위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었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주변에는 유독 갈색으로 변해졌는데, 냄새도 났고, 마치 고기 국물처럼 변했다. 목제 쟁반 아래에 손잡이가 둥근 철제 칼(그림 2)이 놓여 있었다.

 

그림 1. 목제 쟁반(목제 쟁반은 다리가 잘린 채 확인되었고, 다리는 같은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목제 쟁반 아래서 발견된 칼의 손잡이

나무방 바닥에는 깨진 토기(그림 3,4)가 확인되었는데, 목이 긴 ‘장경호’ 3점이 확인되었다. 2점은 구경(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붙고, 어깨 부위에도 2줄의 점토띠가 붙었다. 다른 1점은 역시 목이 긴 장경호인데, 수탉모양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토기에 가죽 아플리케(그림 5)를 붙인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뿔로 만든 그릇이 확인되었는데, 야크의 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야크 털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알타이 산맥에서 고분을 만들었던 파지릭 문화의 사람들은 야크라는 동물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러시아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인데….야크는 고산에 사는 일종의 소인데, 쉽게 검색가능하다.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콜렉션에는 같은 형태의 뿔 잔이 금박이 입혀져서 발견되었다.

그림 3. 토기, 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부착되어 있다.
그림 4. 토기, 수탉 모양 아플리케가 부착됨
그림 5. 그림 4에 붙은 가죽 아플리케

목제 잔과 막대기가 세트(그림 6)로 확인되었다. 유제품(쿠미스)을 젓고 마시던 잔으로 추측된다. 목제 잔의 손잡이는 표범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맛대고 부착되었고, 36cm가량의 막대기 끝에는 ‘U’자형으로 따로 제작되어서 막대기와 축조되어 끼우게 되어 있었다.

유목민들에게 표범은 신, 조상, 저승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안토노바 1986)

그림 6. 목제 막대기와 목제 잔, 손잡이가 표범 장식이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 위에 말이 세 마리 확인되었는데, 이는 이 무덤을 위한 것이었다. 천장 위의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을 제거한 도면을 공개했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주인공 무덤에는 말이 6마리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무덤방 천장의 북쪽 가장모서리에 첫 번째 말이 확인되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2020/01/11 - [시베리아의 선사시대/철기시대: 2500년 전 샤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유적은 3m(지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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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이 공개되어 있어서 살펴보시면 카라-코바 무덤과 첫 번째 말이 드러난 상황을 잘 보실 수 있다.

 

 

그림 1. 아카-알라하 3유적 1호분의 호석(좌)과 무덤 복원도(우)

 

 

 

그림 2. 아크-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무덤 천장(좌)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과 첫 번째 말 뼈를 찾을 수 있다. 우측의 말 3마리는 카라 코바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사자를 위해서 묻은 말이다. 그래서 이 무덤에서 가장 먼저 팠을 때 말 3마리가 먼저 나왔는데, 가지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는 여성 미라의 말이 아니라, 여성 미라의 무덤 천장 위에 있던 카라 코바 문화의 무덤과 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말 5마리는 나무로 만든 무덤방과 무덩구덩이의 북쪽 공간에 5마리가 들어 있었다. 이 공간은 깊이 2.82m, 폭은 0.65m사이의 공간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무덤 구덩이

 

 

 

그림 4. 무덤 구덩이 속 5마리의 말, 가장 좌측의 번호가 설명드린 말의 번호이다. 

 

가장 첫 번째 말은 나무로 만든 재갈멈치와 멈치 끼우개 1점만 발견 되었다.(첫번째 말과 관련된 유물의 사진 혹은 그림은 없었다.

 

 

 

두 번째 말과 세 번째 말은 말 구덩이 동편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있는 채 발견되었는데,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리는 교차해서 굽혀져 있었고, 두개골의 정부에 도끼로 맞아서 생긴 구멍이 남아 있다. 말을 장식한 마구 굴레 일괄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멈치의 끝은 그리핀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말에는 안장이 있는데, 붉은색 펠트로 만든 것인데, 그 위에는 날개달린 사자 즉 그리핀 형상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이 그리핀은 날개, 뿔, 귀 등이 있고, 꼬리 끝에는 숱이 장식되어 있었다. 두번째 말에는 그리핀조각이 모두 13개 확인되었다.

 

그림5. 두 번째 말의 두개골, 말머리에 도끼로 맞은 자국이 있다.

 

 

 

그림 6. 두 번째 말의 굴레 장식과 재갈
그림 7. 두 번째 말의 재갈과 굴레장식, 마구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해 드리겠다.

 

 

세 번째 말은 철제 재갈이 채워져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치레걸이와 말 머리 장식이 확인되었다. S자형 대형재갈멈치는 그 끝은 팔메트 장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팔메트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두 번째 말의 굴레장식도 그리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모양은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말 안장도 확인되었는데, 세 번째 말에도 안장은 화려한 덮개로 덮혀 있었다. 그리핀 아플리케가 부착되었다. 안장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2 개의 땋음 장식도 확인되었다. 땋음 장식에도 3개의 목제 그리핀이 부착되었다(안장을 덮는 펠트와 땋음 장식 등은 다시 설명드리겠다).

세번째 말에는 그리핀이 말 굴레에는 장식되지 않았고, 땋음 장식에만 3개 있었다.

 

그림8. 세 번 째말의 마구장식
그림 9. 세 번째 말의 장식 복원, 우측은 안장을 장식한 묶음

 

 

네 번째 말은 굴레의 장식과 재갈멈치, 멈치 끼우개와 징식을 포함해서 완벽하게 부장되었다. 휘어진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이 조각되었다. 머리 위의 갈기, 날카로운 귀, 뻗은 갈기, 부리 끝, 세로로 눈금이 새겨진 목 등이 특징이다.

네 번째 말은 그리핀 3개가 모두 확인되었다.

 

 

그림 10. 네 번째 말의 재갈괴 굴레 장식

 

 

다섯 번째 말은 깊이 1.97m에 벽과 아주 밀착되었다. 전체 재갈 부속과 장식들이 잘 보존되었다.

다섯 번째 말의 장식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S자형 재갈멈치는 한쪽은 그리핀, 다른 쪽은 팔메트 장식이 새겨졌다. 팔메트 장식은 치레걸이에도 있다. 재갈멈치 끼우개 장식에는 영양의 머리 장식이 새겨졌다. 말의 이마 장식 대신에 정교한 그리핀 장식이 놓여졌다. 이 유물은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대제 컬력센의 유물중에 있다. 또 다른 그리핀 장식은 머리 부분과 몸체를 따로 만들어 조합했는데, 사슴의 뿔 같은 것이 새의 머리에 달렸다. 말굴레 장식의 일부로 같이 부착되었다.

그리핀은 모두 3개 확인되었다.

 

 

그림 10. 다섯번째 말을 장식 한 재갈과 굴레 장식

 

그림 11. 다섯 번 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 장식

 

 

 

6섯번 째 말은 가장 밑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S자형으로 약간 굽고 그 끝을 그린 그리핀 머리로 장식한 재갈멈치가 출토되었다. 다른 파지릭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핀 모양이다. 귀가 없고 갈기는 물결치듯 표현되었다. 부리와 상투머리가 크게 하나로 묘사되었다. 이마 장식은 둥글고 한쪽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왔다. 파지릭 1호 고분 출토장식과 유사한 팔메트 모양의 치레걸이도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그리핀은 2점 확인되었다. 재갈멈치에 양쪽으로 달린 것을 다르게 계산하면 4점이다.

 

 

 

그림 12. 여섯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알타이 산맥의 여성미라의 부장품을 어제 소개 했다.

 

사실 그렇게 말로 설명해서는 어떻게 부장했는지 잘 감이 안온다. 유물 사진이야 필자가 소개해서 대충 느낌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덤 속에서 인골이 그대로 확인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토양의 특징 때문인데, 최근에 조선시대 무덤에서 종종 미라가 발견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무덤에 석회가루를 썼서 그렇다. 그렇지 않고는 거의 드물다.

그런데 필자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경산 임당에 삼국시대 무덤 발굴을 실습차 갔던 적이 있다. 그 유적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잘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도 필자는 청석암반층에 무덤을 쓴 구역에서 발굴할 기회가 생겼다. 인골이 있었는데,, 무섭다기 보다는 너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무덤 부장품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DNA로 아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이야기 한 유물이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서 확인되었는지가 여러분은 궁금하실 것이다.

관속의 모습을 실측한 그림1은 다음과 같다.

이들 위치에서 유물이 확인되었고, 의복과 관련된 내용은 곧 소개해 드리겠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관 속

 

1. 머리 끝 장식, 2. 가발에 붙은 새장식, 3. 머리 장식, 4. 씨앗이 담긴 석제 그릇, 5. 목제 사슴장식, 6. 목제 머리장식(사슴장식 옆으로 머리를 가로지르게 장식했는데, 2점이다). 7. 금제 귀걸이, 8. 목제 경식 일부, 9. 목제 경식의 일부 장식인 표범장식, 10. 실크제 블라우스(여밈없는), 11. 끈, 12. 치마, 13. 구슬, 14. 펠트제 주머니에 담긴 거울, 15. 말총으로 만든 화장솔, 16. 펠트제 스타킹과 장화.

 

위의 목관은 어디에 놓여 있었습니까? 그 공간은 뭐라고 합니까?

무덤방.. 목곽이라고도 한다.

 

아래의 그림은 무덤구덩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고 그린 실측도이다. 

무덤방안에 가장 오른쪽에는 관이 있고, 왼쪽에는 유물 몇 점과 빈 공간이다. 

 

 

 

그림 2. 아크-알라하 3 유적의 1호 무덤방.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 빈 공간을 일종의 생활구역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동일하게 본 것이다. 필자도 동의한다.

 

 

이 공간에서 확인된 유물은 목제 쟁반과 그릇, 뿔로 만든 잔, 토기 2점 등이 거의 전부이다. 목제 쟁반 위에는 동물뼈가 출토되었는데, 고기덩어리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제 그릇 안에는 긴 막대기가 들어 있었는데, 유제품 제작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뿔잔은 손잡이는 야크, 몸통은 산양으로 만든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본적이 있다. 그렇다. 유투브 영상에서 얼음이 녹고 가장 먼저 수습된 것이 이 유물들이었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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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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