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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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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에 해당되는 글 27

  1. 2020.01.24 알타이 얼음공주의 문신3
  2. 2020.01.23 알타이의 얼음공주는 삭발하고 가발썼어요~
  3. 2020.01.22 시베리아 얼음공주의 무덤 바닥 및 벽 장식(펠트제)
  4. 2020.01.21 시베리아 얼음공주의 말안장 덮개, 양모 펠트의 기원
  5. 2020.01.20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내부 충전물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라고 불리는 고원에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30세가 안되는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별명은 얼음공주이다.

앞에서 얼음공주의 머리 정수리 장식 중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을 넣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가 또 있는 것이 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5섯 마리의 동물이다. 가장 첫 번째 왼쪽 어깨와 가까운 부위에는 영양과 사슴의 뿔을 도식화 한 것이고 다리엔 굽이 달려 있고 날개가 달려 있어 그리핀으로 보인다(그림4).. 그 아래에 몸통을 비틀고 있는 얼굴모습이 다른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하완골의 시작부위에는 뒤를 바라보는 양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양의 다리쪽에는 기다란 꼬리를 늘어 뜨린 점박이 표범이 표현되었다. 그 밑으로는 머리가 없는 육식동물의 몸통이 남아 있다(그림1,그림3)발톱을 드러낸 발과 얼룩무늬 호랑이 꼬리, 사슴몸통으로 이루어졌고, 등허리에는 도식화된 그리핀의 머리가 달려 있다. 사슴의 끝머리에는 그리핀의 머리로 장식이 되었다.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에는 뿔이 늘어진 사슴머리가 보인다(그림 1).

오른손 하완골에는 비틀어진 몸통이 그려졌는데(그림 1의 오른팔 참고), 양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 무슨 동물인지 알기 어렵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5 )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여성의 문신은 바늘을 찌르는 방법으로 문신을 새겼다. 바늘을 찔러서 피부 깊숙이 색소 성분을 침투시켰는데, 그 성분은 루덴코에 따르면 그을음으로 추정된다. 문신을 넣기 전에 밑그림을 그렸는지, 아니면 스탬프 같은 것으로 밑그림을 찍어 놓고 문신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무기화학연구소와 촉매화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엑스레이기법과 미세현미경을 이용해서 살갗을 스캐닝했다. 20마이크론 정도의 범위에서 칼륨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점들이 드러났다. 칼륨함유가 많은 것은 문신에 쓴 색소가 식물계통으로 식물을 오래 태워서 얻은 재나 숯에서 얻어낸 경우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보다 이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확인된 남성미라(그림 6)의 몸에 새겨진 문신,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에서 확인된 문신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새기는 방법과 스타일, 모티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파지릭 유적은 1948년에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60세의 몽골로이드 남성이었다. 그의 양쪽 팔, 등허리의 상부, 정강이(그림 6) 등에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동물을 그려넣었다(루덴코 1949). 파지릭 유적의 미라 설명은 다시 할 예정이다.

베르흐 칼쥔-2 유적 3호분에서는 젊은 남성의 왼쪽어깨에만 굽이 달린 환상의 동물 그리핀이 그려져 있었다. 베르흐 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의 어깨에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과는 다른 스타일의 그리핀이 있다. 최소 4마리가 혼합된 문양이다. 몸통은 사슴인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또 다른 표현으로 굽달린 다리가 표현되어 있고, 날개도 표현되었다. 사슴의 배쪽에는 그리핀의 머리가 그려졌다(그림 2).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3구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이 모두 한 사람의 기술자가 새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분석된 나이테연대측정법의 결과 이 세 유적을 매장한 시기는 매우 가깝다. 특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은 거의 동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지, 심히 궁금하지만, 그런 연구는 없었다. 아니면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재밌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팔 문신(국립중앙박물관 1995)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왼쪽 어깨 사슴문양문신(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그림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 미라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얼음이 녹아서 그녀에게 접근가능했을때 미라의 팔뚝은 탄력이 남아 있어서 누르면 부드러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림 6.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미라.

 

 

 

참고문헌

 

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루덴코 1949, Руденко С.И. 1949 : Древнейшая «скифская» татуировка. // СЭ. 1949. №3. С. 133-143.(루덴코 1949, 고대 스키타이인의 문신에 대해서)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삭발이 크게 회자 되기도 했는데, 머리카락의 의미는 어떤 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결기가 아니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인간의 욕망 혹은 자신의 결심을 보여준다. 이미지가 중요한 사람들도 머리모양에 목숨을 건다..오래 전부터..

 

우리가 가장 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게 머리모양이지 않을까?

반면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도 머리모양이다. 왜냐하면 바꿔서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 주인공인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3유적 얼음공주도 삭발했다. 그리고 가발도 썼다. 파지락 2호분의 여성미라도 전체 삭발했고, 5호분에서 출토된 미라도 머리 정수리만 남겨 둔 채 삭발했다. 파지릭 5호분의 양탄자에 묘사된 앉아있는 여성도 삭발했으며,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컬렉션의 금제장식판에는 나무 아래에 앉아서 쉬는 기마인도 삭발했다.

루덴코(1952)는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 두개골에 천공하는 풍습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살아생전에도 삭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도 삭발하고 머리에 가발(그림 1)을 씌웠다. 가발은 모자처럼 사자의 머리에 씌울 수 있게 제작된 것인데, 모자의 바닥은 펠트로 제작되었고 그 위에 미세하게 구멍을 뚫고 그 위를 말총으로 층을 깐 다음에 머리카락 장식을 붙여서 제작했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양모제 노끈으로 꼬아서 정수리에 올리고 그 위를 붉은색 양모로 만든 주머니를 얹었다.

그림1. 가발의 틀, 2-머리카락, 3-펠트, 4-양털로 꼬은 끈

 

가발을 쓴 이유도 가발 중앙에 씌운 일종의 관식과 같은 장식을 씌우기 위해서이다. 길이가 68.6cm로 긴 나뭇잎 모양으로 나무로 모양을 만들고 그 위를 검은색 펠트로 씌운 것이다(그림 2.3). 이 펠트모양 가발장식에는 15마리의 나무로 된 새가 부착되었다. 14마리는 날개표현이 없었지만(이전포스팅 참고), 가장 높은 곳의 새에는 날개장식이 남아 있다(그림6). 정수리 장식은 검은색 펠트로 만든 것 1개와 그 앞에 이등변삼각형모양으로 혹은 트리 같은 모양으로 정수리 장식이 1점 더 있다(그림 6). 이 정수리 장식 내부에는 그림3과 그림 4에서 보이는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 장식으로 지지하고 있다. 훨처럼 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많은 유물로 생각된다.

 

 

그림 2. 가발 복원도,, 그림 1위에 그림 3을 씌웠다. 러시아학자들은 시베리아 신화에서 등장하는 세계수를 머리에 얹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3.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정수리 장식, 가장 높은 것은 검은색 펠트로 타원형모양으로 만들어 씌우고, 새로 장식했다. 그 앞에는 붉은색 주머니를 트리모양으로 새워서 장식했는데, 그 안에 사슴판이 새겨진 나무판을 넣어서 지지했다. 그 상부에는 사슴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정수리장식에 사용된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 실제로는 보이지 않고, 붉은색 펠트로 이등변삼각형모양으로 쌓였있었다. 아래 사진 참고.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 머리 장식, 복원도, 새는 부착되지 않았음.

 

그림 6.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정수리 장식 중 가장 높은 곳에 부착된 새.

 

 

검은색 펠트제 가발장식과 새장식, 사슴모양의 나무장식을 통틀어서 러시아 학자들은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세계수라고 생각한다. 세계수에 대한 부분은 다시 설명한다.

 

앞에서 설명했던 가발은 펠트에 구멍을 내고 말총을 씌우고 다시 머리카락을 입힌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고, 탄화된 검은색의 0.2~2mm가량의 조각이 보이는데, 탄화된 곡물의 쭉정이다. 이 부분을 성분분석, 렌트겐 분석, 열분석을 해본 결과 80%이상 유기물질로 밝혀졌다(그림 7).

 

펠트제 가발의 밑바닥과 그 위는 무엇으로 접착했을까? 이는 탄화된 접착제인데, 곡물열매를 밀폐용기에 넣고 가열해서 만들었고, 여기에 지방을 섞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지방은 강한 냄새를 풍기는 물질인 아크롤레인 등으로 이루어졌고, 분석결과 동물성이다. 덕분에 가발은 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그림 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가발 세부사진.

 

참고문헌

루덴코 1952, Руденко С.И. 1952 : Горноалтайские находки и скифы. М.-Л.: 1952. 268 с. («Итоги и проблемы современной науки») (루덴코, 11952 알타이 산맥의 스키타이 유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어제 포스팅의 누락 참고문헌(시트나코바->시트니코바)

시트니코바 1986, Ситникова Е.Е. О некоторых предметах быта в традиционной обрядности южных алтайцев // Генезис и эволюция этнических культур Сибири. Новосибирск: ИИФФ АН СССР, 1986. С. 84-94.(시트니코바 1986, 알타이 남부인의 전통의례도구에 대해서// 시베리아 민속문화의 계통과 발전(혁명)

 

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주인공의 무덤방의 바닥과 관의 바닥 등에도 양털이 깔려 있다. 양털을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이다.

1940년대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최상위 계급 무덤에서 확인된 이후에 그간 다른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펠트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말안장 덮개, 옷, 타이즈, 모자 등을 제외하고는 나무방의 바닥깔개, 통나무관의 바닥깔개, 주인공의 베개와 수건 등이 출토되었다.

 

나무방의 바닥(그림 1,2)에서는 2장의 검은색 펠트가 깔려 있었는데, 실제로 살던 집 벽에 걸었던 일종의 캐노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2장 중 1장에는 펠트제 고리가 달려 있어서, 실제로 집의 벽에 걸었다고 보인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무덤의 가장 바닥에서 출토된 펠트제 깔개 2점을 수습하는 장면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무덤방 깔개의 수습 장면, 깔개의 크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적혀있지 않았으나, 사진으로 보아서 무덤방 바닥을 전면에 덮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여성의 머리밑에는 작은 베개(30×36cm)가 놓여 있는데, 짙은 색 펠트로 만들었는데, 큰 바늘로 모직실로 땀을 딴 것이다. 이 베개 안에는 얇고 검은색, 두꺼운 갈색 펠트 2조각과 모피조각, 잡초, 털실 등이 베개 안에 들어 있었다.

 

지금도 알타이 지역에서는 부부의 침대를 가리기 위해서, 가죽으로 만든 커튼을 결혼식때 걸어둔다. 또한 알타이 인에게 침대에 깔린 흰색 펠트제 깔개의 질이 좋을수록 가족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으며, 베개는 가장 귀한 물건을 담아 둔다고 한다(시트나코바 1986).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바닥깔개는 문양 등은 없었고 단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유명한 펠트제 캐노피는 파지릭 5호분(그림 3~5)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크기는 4.5×6.5m에 해당되며, 무덤의 벽에 걸어두었다. 앉아 있는 여신과 말탄 전사가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2단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편집했다. 네모꼴의 펠트에 아플리케 기법으로 덧붙인 것이다.

펠트는 화려하지만 매우 경제적으로 사용했다. 통나무관의 깔개처럼 큰 펠트제품이나 타이즈, 안장깔개, 안장의 치레걸이, 주머니 등은 작은 제품은 짜투리를 모아서 얼기설기 이어 붙인 것이다.

 

 

그림3.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벽 장식. 매우 화려하다.(루덴코 1968)

 

 

그림4.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 (루덴코 1968)

 

그림5.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루덴코 1968)

 

파지릭 유적과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아 콜렉션을 분석하고 연구한 루덴코(1968)에 의하면 펠트제 아플리케를 이용해서 펠트제를 꾸미는 방법은 귀금속 가공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표트르 대제 콜렉션의 황금유물이나 아무다리야 강의 매납유구에서 출토된 유물, 아프카니스탄의 틸리아-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유물들은 모두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거나 혹은 연대가 늦은 것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황금유물은 모두 상감기법으로 보석을 박아 넣은 것인데, 펠트제 유물에서 펠트 위에 아플리케 장식을 조각을 이어 붙인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플리케 장식도 한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 조각을 나누어서 이어 붙여서, 짐승 몸의 근육느낌을 강조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황금 유물에도 상감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8, Руденко С.И. 1968 : Древнейшие в мире художественные ковры и ткани из оледенелых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М.: «Искусство». 1968. 136 с.(루덴코, 1968, 알타이 산맥의 얼음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양모제품과 직조물의 세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 포스팅에서는 얼음공주라 불리는 미라의 내부를 채운 물질을 소개했다. 식물성도 있었지만 동물성인 말총과 양털도 있었다. 그 중에서 양털은 이들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이용된 물질일 것이다. 양털로 제작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다. 포스팅의 제목처럼 말안장 덮개와 말의 일부 장식품 뿐만 아니라 무덤 가장 바닥에 깔린 것도 양털로 만든 것이다. 이 양털로 만들어진 물질을 ‘펠트’라고 한다. 펠트는 씨실과 날실을 짜서 직조하는 즉 니팅하는 방법이 아닌 양털을 압축(그림 1)해서 만든 것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어서 직조하면 양탄자인데, 이와는 다르게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것이다. 현대의 펠트는 검색가능하다.(일정한 연령 이상으로는 예전에 교실의 벽 게시판을 장식하는 곳에 녹색의 천을 가까이서 눈여겨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부직포라고 불렀다. 물론 그건 인공적인 물질이지만, 이 펠트의 조직도 부직포와 비슷하다. 요즘 학교에서 그런걸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말 안장덮개의 장식, 펠트의 조직, 같은 유적은 아니지만 펠트의 이해를 위해서 소개한다. 

 

현재 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펠트제 유물은 투바의 아르잔 고분 6호 통나무 안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1980년대에는 기원전 7세기로 보았으나(그랴즈노프 1980), 최근 나이테보정측정연대에 의하면 기원전 9세기까지 올린다(알렉세이예프 외 2005). 그런데 이 유물은 너무나 이미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에 이미 이 전부터 있었을 가능성 즉 청동기시대에 이미 원초적인 펠트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펠트는 매우 오랫동안 유목민족의 옷 소재로 활용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한다. 그가 흉노의 옷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이 있다. ‘선우부터 모든 사람들은 가축의 우유를 마시며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펠트로 만든 외투를 걸친다’. 아시다시피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이다.

 

그럼 이 무덤 속에서 펠트로 만든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말 안장 덮개와 장식, 얼음공주의 상의, 타이즈, 청동거울을 보관한 주머니, 무덤방과 관의 바닥깔개, 무덤방의 벽 장식 등이 양의 털을 압축해서 가공한 펠트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펠트 소재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단독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납작한 펠트 위에 펠트 아플리케를 바늘로 땀을 떠서 덧붙여서 만든 것이 많다. 펠트 아플리케가 문양장식이 된다.

 

얼음공주가 잠들어 있던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안장을 덮은 깔개가 3점 확인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탈색이 많이 되었거나 거의 색이 없어지기도 했다. 아마 처음 제작되었을 때는 붉은색, 검은색, 황색, 녹색 혹은 청색으로 원색대비를 사용해서 매우 강렬했을 것이다.

 

2번째 말의 안장 덮개(그림 2, 3)는 4마리의 상상의 동물이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여져 있다. 상상의 동물은 필자의 모친이 기르는 강아지(그림 3)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날개 달린 사자를 형상화 한 그리핀이라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그런데 사자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듯 하다. 사자가 알타이 고원에서 살수 있었을까? 어디서 본 것일까? 아니면 수입품일까? 등등..). 이 그리핀은 뿔, 귀, 꼬리가 있다. 몸통은 밝은 녹색이며, 날개, 꼬리와 얼굴은 노란색이다. 각 그리핀의 가장자리 윤곽은 얇은 노끈으로 감아치기 해서 마감했다.

그림2. 두 번째 말의 안장 덮개, 펠트로 제작

 

그림 3. 두번째 말의 안장 덮개를 장식한 아플리케,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기 해서 마감했다. 펠트의 세부조직도 볼 수 있다.

 

3번째 말의 안장 덮개는 전혀 다르다(그림 4). 펠트 바닥의 모양도 남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불분명하지만, 말의 복부로 늘어뜨려지는 부분이 양쪽으로 4개씩 세모꼴이다. 세모꼴의 가장자리도 작은 세모꼴 모양으로 잘려 있다. 여기에는 그리핀 2마리가 아플리케 장식으로 표현되었다. 몸통, 뿔, 갈기는 붉은색이고, 얼굴은 흰색, 귀와 꼬리털은 황색이다. 날개는 붉은색과 황색을 번갈아 넣었다. 얼굴의 눈, 코, 턱을 붉은색 털로 구분했다. 엉덩이에는 ‘()’사이에 원문양(그림 5)이 있는데, 비슷한 표현방법이 파지릭 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림 4. 세 번째 말 안장덮개
그림 5. 세 번째 말 안장 덮개의 그리핀 아플리케, 엉덩이의 괄호모양 안에 점이 파지릭고분에서 나온 펠트제 유물과 유사하다.

 

한 점은 몇 번째 말의 안장 덮개인지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간단한 그림만 남아 있다. 다른 유물과는 달리 사슴머리에 화려한 뿔이 달려있고, 날개가 있는 아플리케가 장식되어 있다(그림 6)

그림 6.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말 안장 덮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안장덮개는 덮개에 장식을 붙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아크-알라하 5유적, 아크-알라하 1유적 등에서는 안장덮개에 장식을 붙여서 말 위에서 훨씬 치렁치렁한 느낌을 주도록 장식했다(그림 7).

 

그림 7. 파지릭 유적의 1호분 출토 말 안장덮개(국립중앙박물관 1991)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황금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1980. 64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 유적-초기 스티카이문화의 차르 무덤)

알렉세이예프 외 2005, Алексеев А.Ю. 2005, Евразия в скифскую эпоху: радиоуглеродная 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хронология. СПб: 2005. 290 с.(알렉세이예프 외 2005(12명 편저), 유라시아의 스티카이 문화연대: 측정연대와 고고학적 편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2001,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그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 중에 아크-알라하 3유적이라는 곳에 뭍힌 미라는 머리, 목, 손 등을 복원에 힘썼던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미라가 똑같이 복원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이야기가 최초로 적힌 역사서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미라 처리 방법 중에 몸 속에서 내장을 다 꺼내고, 그 안에 생강, 향료, 아니스 씨를 넣고 다른 부족으로 장례를 치르러 가는 모습을 그린 바 있다.

 

카메네츠키라는 러시아학자는 헤로도투스의 텍스트를 현대어로 다시 번역해서 어떤 종류의 식물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냈다. 사초(Cyperus longus L), 향초ㅡ 셀러리의 씨앗(Apin graveolens), 아니스(Pimpinella anisum L)등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은 헤로도투스가 본 지역을 헤깔리게 한다. 카메네츠키(1995)는 잉런 식물은 소아시아, 이란, 쿠르디스탄 까지 가서 전쟁을 불사해야 얻을 수 있는 약초로 설명했다.

그림 1. 사초(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 식물연구소에 소장된 현대초본류의 표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의 내부는 무엇으로 치워졌을까?

자잘한 양털, 말총, 잡초, 사초, 이삭, 뿌리 등 식물섬유로 채워졌다. 말총은 절단면을 꿰맬때도 사용했다. 러시아 알타이 파지릭유적의 미라, 중국 신강성의 수바쉬 유적의 미라에도 말총이 사용되었다.

미라의 내부에 식물성 섬유를 채워 넣는 것은 비단 알타이에서만이 아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 뱃속에도 큼직하게 자른 싹들과 뿌리로 채워졌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 베레쉬 유적의 다인묘에서도 가슴부위와 배주변을 잡초를 채워넣는다.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페루의 미라에서도 구멍뚫린 두개골 안에는 잡초와 재를 채워넣었다.

 

가슴부위에는 아주 검은색으로 탄화된 물질들이 채워져있었다고 한다. 말총, 식물잔편, 모래 등이 섞였다. 대부분 탄화되었는데, 탄화되지 않은 물질을 현미경으로 일일이 골라서 가수분해 한 결과 내장의 일부로 분석되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에서는 내장을 충전물과 한덩어리로 섞어서 다시 미라로 돌려보내주었다. 이는 이집트와 티벳에서처럼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알타이 산맥의 미라가 잘 보존된 이유는 얼음도 한몫을 했지만, 방부제 역할을 한 물질이 있다. 바로 수은이다. 미라의 피부 표면에서 검출되었다. 무덤이 물에 잠기면서 수은이 흡착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미라의 가발, 모자, 다른 곳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고, 피부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수은화합물을 사용했다. 이집트의 미라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았다.

우코크 고원에서 멀지 않은 악타쉬 지역에 주사(朱砂)광산이 있다. 주사의 주 성분이 수은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을 포함한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주사를 광물제 염료로 써서 목제와 가죽제 물건을 채색해는데 썼다. 금광에서 금을 캐고 금박장식을 만들기 위해서 수은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라의 몸에 섞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발삼(balsam)처리라고 한다. 발삼은 여러 향료가 들어간 일종의 고형에 가까운 기름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하면, 연고가 일종의 발삼이다. 미라에게 발삼처리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조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만 사후의 삶이 이어진다는 의식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신을 조각내야만 그가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인간과 신은 동격이니, 미라로 만들어야 부활을 위한 담보가 된다. 고대 이란인들에게도 육체를 부활하려는 희망이 있었다는 여러 문화의 예를 보고,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참고문헌

카메네츠키이 1995, Каменецкий И.С. О бальзамировании умерших царей у скифов//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альманах(Армавирского краеведческого музея). Армавир; Краснодар; М.: (카메네츠키이, 1995,스키타이 죽은 왕의 발삼처리에 대해서.//역사고고의 연대기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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