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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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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울란디르크 강의 계곡에는 스키타이 문화 유적 8곳이 확인되었다. 유적은 기원전 4~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3세기 가량부터 말이 부장되지 않는 현상이 있고, 기원전 2세기가 되면 그 현상이 심화된다고 했다. 사실 이 시기는 다른 곳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흔적은 사라지고 새로운 문화공동체가 들어섰다.

 

늦은 시기가 되면서 말이 없어지는 현상 뿐만 아니라 부장된 말의 마구에도 변화가 있다. 물론 마구의 형태 변화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눈을 끄는 것은 재갈 없는 말이 부장된다는 점이다.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3호분에는 어디에도 말의 재갈은 확인되지 않았다. 말의 굴레장식이라고 생각한 유물은 있지만 말의 재갈은 없다. 금속제로 만들어졌으니 썩어서 없어졌다고 할 수도 없다.

 

만약에 이런 일이 한 번 만 있었다면 매장당시에 신경을 못 쓰는 상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6호분에서도 재갈없는 말이 매장되었다. 유물도 매우 단출하다. 철제 검(그림 2-1), 청동거울(그림 2-2), 골제 장식품(그림 2-3), 목제 검집(그림 2-8), 목제 멧돼지 송곳니(그림 2-7), 원판형 단추(그림 2-6), 토제 항아리(그림 1-9), 목제 상(그림 1-10)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거울, 손잡이 끝이 고리형인 철제 칼, 목제 검집, 토제 항아리, 목제 상, 멧돼지 송곳니 모양 목제 장식품이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 문화에서 가장 마지막 무덤까지 남아 있던 유물이다.

 

기원전 3~2세기의 무덤이 모두 이와 같은 현상은 아니라서 매우 단정적일 수는 없다.

필자가 궁금한 건 소위 말하는 ‘계급’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울란디르크 I유적과 울란드리크 III유적은 비슷한 시점에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가정한다면 100~200년간 무덤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두 유적에 나타나는 차이(유물부장 혹은 무덤구조의 차이)가 계급의 차이였는지가 궁금하다. 만약 계급의 차이였다면 시간이 지나도 후손은 계속 조상의 지위를 물려 받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런 사회가 아니었다면 두 유적의 차이는 시간차이일 가능성이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유스티드 XII유적은 매우 특이한 유적이다. 26기나 되는 무덤이 일렬로 서 있고, 어린아이(단독 9기, 성인과 함께 묻힌 무덤 2기)의 무덤이 많다. 다른 유적 보다 많은 무덤이 한 유적에 만들어졌고, 무덤간의 시간차가 별로 없다. 

 반면에 울란디르크 계곡의 무덤은 같은 유적에서도 100~200년 간, 혹은 200~300년 간 무덤이 만들어졌다. 가족무덤이라는 점에서는 사실 이게 정상 아닌가?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유스티드 XII유적의 무덤은 어떤 특정한 요인으로 발생했을 수 있다.

 

그림 1. 울란드리크III유적 6호

 

그림 2. 울란드리크 III유적 6호 출토유물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에서는 같은 무덤 구덩이에 무덤방과 말을 부장하는 전통이 있다. 2600년 전 부터 시작된 문화가 사라지는 현상은 울란드리크 강의 계곡 유적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은 아르잔-1호 부터이지만, 무덤구덩이에 말과 무덤방을 만들어 부장되는 현상은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시작된다.)

 

울란드리크 I유적에서도 말이 있는 무덤과 말이 없는 무덤이 구분되지만, 울란드리크 II(2,4,7,8호)유적, 울란드리크 IV유적(1호), 울란드리크 V유적(2호), 타샨타 I유적(2호), 타샨타 III유적(7호)에서도 말이 없는 무덤이 있다.

 

그림 1. 울란드리크 II유적의 유적평면도, 2,4,7,8호의 무덤에는 말이 없다.

 

 

그림 2.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

 

그림 3. 타샨타 I유적과 II 유적의 평면도

 

 

그림 3. 타샨타 I유적의 2호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와 타샨타 I유적 2호는 통나무관에 묻은 어린아이 무덤이다. 유스티드XII유적에서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어린아이 무덤에는 상대적으로 말이 부장되는 경우가 적었다.

 

울란디르크 강 유역의 유적 가운데 가장 늦인 시기은 유적은 기원전 2세기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 없는 무덤이 모두 기원전 2세기의 유적은 아니다. 이 시기의 무덤에도 말이 있는 무덤이 있다. 예를 들면 울란디르크 I유적의 가장 마지막에 있던 13~15호 무덤이다.

말 없는 현상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된다. 울란디르크 I유적의 3호, 울란디르크 II유적의 8호, 울란디르크 IV유적의 1호는 기원전 3세기 가량의 유적이지만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2600~2500년 전 대형 무덤에서 미라와 함께 수 마리의 말을 부장하던 관습이 2400년 전이 되면서 한 무덤에 들어가는 말의 수가 줄고, 말이 들어간 무덤이 늘어간다. 말의 두수 뿐만 아니라 무덤방에도 변화가 있다. 울란디르크 뿐만 아니라 유스티드 계곡의 무덤방 바닥에는 유물이 놓인 공간에 나무를 1~2개 정도 빼고 만들었다.

 한켠에 나무바닥이 빠진 무덤방, 최대 2~3마리의 말,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유물의 부장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얼리어덥터 전사 유적에서부터 확인되는 현상이다.  미라만 빼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이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무덤과 매우 유사하다. 울란디르크 유적은 무덤방 결구하는 방법이 약간 다른 무덤의 비율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걸 칼자르듯이 딱 구분하기도 애매하다. 아마도 그런 유적은 따로 있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미라현상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까지였던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자료로 판단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자연교통로가 된 추야 강에는 북쪽으로 유스티드 강, 남쪽방향으로는 울란드리크 강이 흐른다. 울란드리크 강 유역에는 8개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무덤이 있는 곳은 울란드리크 I 유적이다.

울란드리크 I유적에는 통나무관을 무덤방으로 쓴 무덤이 있다. 다른 무덤은 대부분 나무를 결구해서 만든 무덤방이다.

 

 

 

 

 

그림 1. 울란드리크 I유적의 4호분과 출토유물

 

 

 

 

그림 2. 울란드리크 I유적의 6호분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6호분 출토유물

 

 

 현재 자료로 통나무관이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2700년 전 아르잔-2호로 3~9달 된 유아무덤으로 이용된 바 있다. 그 이후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성인 무덤에서도 통나무관이 사용된다. 통나무관이 확인된 무덤에서는 시신은 모두 미라 처리되었다. 바샤다르 유적의 2호, 파지릭 2호, 파지릭 5호, 아크 알라하 3유적으로 2600~2500년 전의 유적이다. 이 보다 늦은 시기의 유적인 2400년 전 울란드리크 I유적의 4호와 6호, 유스티드 XII유적 6호에서는 통나무관에서는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가 묻혔다.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파지릭문화(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전성기라고 하는 2600~2500년전에도 통나무관이 어린아이의 매장시설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러시아학계에서는 위에서 말한 통나무관을 쓴 무덤은 당시에 최상급 계급의 사람이 묻힌 것으로 여긴다. 통나무로 만든 무덤방+통나무관 1기+남녀가 합장한 무덤이 상위계급의 규율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물론 무덤방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깊은 구덩이와 두텁게 덮은 돌은 부수적으로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무덤 인테리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아크 알라하 3유적(일명 얼음공주의 무덤)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얼리어답터 전사)이다. 둘다 미라로 처리되었지만, 다른 미라 발견 무덤과는 달리 혼자 묻혔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크지 않은 무덤에 통나무가 이용된 장법이었고,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남성은 나무로 된 무덤방에 묻혔다. 사실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2500년전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 무덤방은 2400년 전 만들어지기 시작한 울란드리크 강 유역, 유스티드 강 유역의 무덤과 비슷하다. 그의 무덤방 스타일이 후대에 이어진 것이다.

어린아이 무덤시설로 통나무관을 사용한 예가 2600~2500년 전에 확인된 바 없지만 그 전통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2400년 전 울란드리크 강과 유스티드 강 유역에도 다시 나타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2600~2500년 전 파지릭 문화의 전성기때 성인남녀 무덤에 통나무관이 들어간 것이 스키타이문화의 전통에서 잠시 동안 나타난 무덤장제였을 수도 있다.

 

 시베리아 남부의 투르크 인들은 아이를 나무 구멍 속에 매장했고, 나나이족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르보바, 옥탸브르스카야 외 1988, 스몰랴크 1976). 어린아이를 나무 혹은 그루터기에 묻는 것은 자연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골로브뇨바 1995).

 

  울란드릭크 I유적에서는 물싸리 줄기가 많이 확인되었다. 이 줄기를 분석한 결과 봄에 유적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풀은 봄이 되면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파지릭 유적에는 한 다발을 넣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앞에서 늦봄에서 여름에 만들어진 무덤은 아크 알라하-3유적, 파지릭 유적 2호분, 파지릭 유적 5호분 등이 있었다. 주로 말의 위에서 나온 풀의 상태 등을 보고 유적이 만들어진 시점을 파악했는데, 물싸리도 그 근거가 된 것이다.

투르크 전통에는 ‘절벽에 노란 꽃이 피었을 때, 가을과 겨울에 죽은 사람을 매장한다’고 한다(비추린 1950).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발굴한 폴로시막도 물싸리 꽃을 신화-의식 세계에서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파지릭 문화의 대부분 무덤에서 발견되는 금박으로 만들어진 꽃과 비슷한 장식품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2600~2500년 전 성인 무덤속에 온통 재생을 의미하는 꽃과 이 꽃을 닮은 금박장식을 넣어두었다면, 어린아이의 무덤시설인 통나무관에 성인남녀를 묻음으로써  같은효과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앞에서 울란디르크 강과 울란디르크 무덤이라고 했는데, 필자가 거꾸로 읽음. ‘울란드리크(Уландрык, Ulandryk)’입니다.

*앞에서 BBC에서 만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다큐멘터리를 공유했다. 그 곳에서 가장 처음에 노란색 꽃이 나오는데, 물싸리 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

Бичурин Н.Я. (Иакинф) Собрание сведений о народах, обитавших в Средней Азии в древние времена. М.-Л.: Наука, 1950. Ч. 1. 381 c.(비추린 1950, 고대 중아시아 주민에 대한 정보)

Львова Э.Л., Октябрьская И.В., Сагалаев А.М. и др. Традиционное мировоззрение тюрков Южной Сибири. Пространство и время. Вещный мир. Новосибирск: Наука, 1988. 224 с.(르보바, 옥탸브르스카야, 사가라예프 외 1988, 시베리아 남부 투르크 인의 전통적인 세계관)

Смоляк А.В.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найцев о мире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Л.: Наука, 1976. С. 129-161.(스몰랴크 1976, 나나이족의 세계관)

Головнёв А.В. Говорящие культуры. Традиции самодийцев и угров. Екатеринбург: Изд-во УрОРАН, 1995б. 600 с.(골로브뇨바, 사모예드 족과 우그리아족의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8개 있다.
어떤 무덤이 가장 나중에 만들어졌을까?
우선 무덤이 가장 많은 울란디르크 I유적을 보자.

 

울란디르크 I 유적에서는 14기의 스키타이 문화 무덤 가운데서 열의 가장 마지막 무덤 3기 13~15호는 12호와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I유적에서 가장 뒤의 3기가 가장 늦게 만들어진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무덤방의 구조와 말의 유무, 무덤의 두향 때문이다.

특히 13호에는 무덤방의 결구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은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과는 결구 방식이 다른 무덤이 있다는 점은 이미 설명드린 바 있다)

 

13호의 무덤방은 북서벽->북동벽->남동벽->남서벽의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양 무덤방벽을 결구 할 때 나무기둥의 끝을 납작하게 다듬고 凹凸 모양(그림 2-b)을 내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유적의 13호 평면도와 유물

 

 

 

그림 2. 울란디르크 I유적의 13호 상부와 단면

 

앞서 살펴본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은 무덤의 짧은벽(동서벽)위에 긴 벽(남북벽)을 결구한 것이다. 위에 올라가는 나무의 아랫단을 잘라내어서 하단의 나무기둥과 맞추어서 무덤방을 짠 것이다.

 

물론 13호의 무덤방의 나무기둥은 나무길이도 딱 맞게 잘라내었다. 그리고 그림에서는 표시가 잘 나지는 않지만 나무의 두께도 얇아진다.

 

 

15호에서도 13호와 비슷한 나무결구방식(그림 3)으로 무덤을 만들었다. 말은 매장되었으나 무덤구덩이 바닥이 아니라 약간 높은 위치에 묻혔는데(그림 4),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보고는 없었다. 이 말은 재갈멈치를 끼우는 고리가 방형에 가까운 청동재갈(그림 3-1)을 물고 있었다.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15호 평면도와 유물

 

 

 

그림 4. 울란디르크 I유적의 15호 상부와 단면

 

 

14호는 13호, 15호와 나무 결구방식은 다르고, 이미 보았던 결구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쿠바레프는 이 유적에서 무덤방의 결구방식과 말의 매장 유무 외에도 무덤의 두향도 축조시점의 차이로 보았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키타이 무덤의 두향은 동향인데, 13~15호는 두향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또 청동제 재갈(그림 5-2)과 장식성이 전혀 없는(그림 5-3) 재갈멈치도 이제까지 보왔던 재갈멈치와 다르다.

 

그래서 울란디르크 I유적의 끝에 붙은 3 무덤은 가장 늦은 시기로 기원전 2세기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보았다. 어쩌면 이미 스키타이 시대가 아니다.

 

 

 

그림 5. 울란디르크 I유적의 14호 평면도와 유물, 1-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2-청동재갈, 3-목제 재갈멈치, 4-장식판, 5-항아리편, 6-목제 잔, 7-청동제 바늘, 8-목제 쟁반, 9-말의 턱뼈, 10-가죽장식, 11-목제 쟁반

 

 

 

그림 6. 울란디르크 I유적의 14호의 유물, 번호는 그림 5와 일치

 

청동재갈은 기원전 6~5세기 무덤(파지릭 유적 2호분, 투엑타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 그 외 다수)에서 주로 출토되었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의 말에서 처음 철제 재갈이 발견된 이후에는 계속 기원전 4~3세기까지 그리고 기원전 2세기에도 철제 재갈은 사용된다.

하지만 이 무덤에서 두향이 바뀌고 철제가 아닌 청동재갈은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마지막 시기의 무덤의 징표로 여겼다. 그리고 멧돼지 모양 송곳니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유물로 보았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울란디르크 강 유역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이 8개 알려져 있다.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알타이지역의 문화인 파지릭 문화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울란디르크 강 유역에는 기원전 4세기경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전투용 도끼에 맹수가 장식된 무덤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이었다. 청동검의 손잡이와 멈추개에도 동물문양장식(산염소)이 부착되었다. 이 투부장식은 상태가 좋지 않지만, 귀의 모양이 둥근 점을 보아서, 표범이나 호랑이와 가깝다.

 

귀가 둥근 표범 스타일은 울란디르크 I유적의 12호분에서도 출토되는데, 목걸이의 끝장식이다. 사실 순수한 표범은 아니고, 앞다리쪽에 타원형으로 표식이 되었는데(그림 1-10) 날개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서 그리핀으로 생각한다. 이 유물은 매장된 사람 가운데 왼쪽에 있는 사람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그림 3-10). 이 사람의 머리 부근에서는 또 다른 동물문양장식(우제류)도 발견되었다(그림 2-6,9, 그림 3-6,9).

 

옆에 묻힌 사람에도 머리 부근에서 동물문양장식(그림 1-12, 그림 3-12)이 확인되었다. 머리와 몸통을 따로 조합해서 결합되도록 했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유적의 12호분의 유물 그림 3과 번호 일치

 

 

그림 2. 울란디르크 I유적의 12호분의 유물 그림 3과 번호 일치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12호분

1,2-토제 항아리, 3-장식판, 4-빗, 5-장식판, 6-코젤 모양의 장식판, 7-철제 칼, 8-청동 칼, 9-뿔 달린 사슴 모양이 달린 머리장식, 금박으로 장식됨, 10-그리핀 장식이 달린 목걸이, 11-단추형 장식판, 12-사슴모양 장식, 13-말 모양 장식, 14-펜던트, 15,16-구름모양장식판, 17-거울, 18-검, 19-칼, 20-장식판, 21-활, 22-화살(목제:3-6, 9-16, 19-22, 철제:7, 청동: 8,17,18)

 

 그런데 먼저 이야기 한 사람(왼쪽)에게서는 필자의 눈을 끄는 유물이 있다(그림 2-5). 목제품으로 원통을 반 자른 모양이고, 바깥에는 음각되어 있는 유물이다.   이 유물은 얼음공주 무덤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여성미라 머리장식과 같은 형태이다. 머리 정수리 위에 높은 가채 옆을 장식했었다. 또 머리장식 가운데 여성의 이마를 장식하던 유물(그림 2-9)도 출토되었다. 그렇다면 이 인골은 여성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리핀이 양쪽 끝에 달린 목걸이(그림 1-10)는 남성 유물이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맹수 8마리가 목걸이 전부를 둘러싼 스타일의 목걸이였다. 파지릭 2호분의 여성도 비슷한 목걸이를 착용했다. 동물이 양쪽 끝에만 달린 것과는 분명 달랐다.

 

2020/01/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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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베르흐 칼쥔 2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남성미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2500년 전 시베리아 남성미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2500 년전 시베리아의 얼리 어답터인 기마전사(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는 새머리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표식물과도 같다고 했다. 헤로도투스도 스키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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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란디르크 I유적의 12호분 왼쪽 인물은 여성유물과 남성유물 모두 가지고 있었다. 활도(그림 1-22, 3-22)도 이 인물의 것이다. 왼쪽인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른쪽 인물은 동물문양장식(사슴과 말 장식)을 한 모자만 가지고 있었다. 물론 모자장식은 금박으로 장식되었다. 오른쪽 인물은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여성의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그림 3-14). 유스티드 XII유적의 9호분 여성 머리 장식에도 비슷한 유물이 있었다.

 

예민하게 살펴본다면 그리핀 달린 목걸이 끝장식이 발견된 곳은 왼쪽 사람의 머리부근이니 제자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원래 물건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 어떤 의미로 밀어 넣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에 보면 나오는 장면들...무엇인가의 징표 이런것들..

 

  오른쪽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너무 유물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비슷했다면 어떻게 하다보니 우연하게 왼쪽까지 갔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지만, 오른쪽 사람은 모자 말고는 없다. 당시에는 금박 씌운 모자도 별 꺼 아니었나 보다..

오늘은 소설이네..ㅋ 주말이니깐.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울란디르크 강은 알타이의 북서와 동남쪽을 가로질러 흐르며 고대 유목민의 도로가 된 추야강의 남쪽 방향 지류이다.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유스티드 계곡에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7개가 확인되었고, 각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울란디르크 계곡과 유사한 것들이 출토되었다. 물론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 대부분 유사하지만,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 무덤에서 흔하지 않은 유물 가운데서 같은 특징을 가진 유물이 울란디르크 III유적에 있는데, 예를 들면 투구형 모자장식이다.

 

울란디르크 III유적에는 모두 8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모두 발굴되었다(그림 1). 2호와 5호는 투르크 시대의 무덤이고, 6기는 모두 스키타이 무덤이다. 이 중에서 외관상 가장 큰 무덤은 3호(직경 10m,높이 30~50cm), 4호(직경 10m, 높이 50cm)이다.

 

그림1. 울란디르크 III유적 평면도

 

3호(구덩이 직경: 250×200×225, 무덤방: 200×160cm)와 4호(구덩이 직경: 300×210×240cm, 무덤방: 205×145cm) 모두 말이 2마리씩 매장되었고 구덩이의 직경과 무덤방의 크기도 비슷하다.

3호는 무덤시설물과 인골, 말의 상태 모두 않좋았는데, 나무무덤방이 썩어 내리면서 인골과 말이 이미 흩어진 상태였고, 유물의 위치도 모두 따로 흩어졌다. 4호도 북쪽벽이 흘러내리면서 말의 두개골과 무덤방 바닥이 약간씩 이동을 한 상태이다.

 

그림 2.울란디르크 III유적의 3호분

1,3- 목제 굴레장식, 2: 목제 장식판, 4: 말 이마장식(쿠바레프는 고리트 장식으로 보고했으나, 후대에 발굴된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아라하 1유적에서는 이 유물이 말 이마 장식이라는 점이 밝혀졌., 5-목제 장식판, 6-목제 활, 7-목제 고리트 지지대, 8-투부의 손잡이, 9,10-목제 말장식, 11-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목제품, 12,13-청동거울, 14-물감이 칠해진 가죽주머니, 15,17-청동검, 16,18-목제검집

 

그림 3. 울란디르크 III유적 3호분과 유물, 그림의 번호와 일치

 

그림 4. 울란디르크 III유적 4호분

 

그림 5. 울란디르크 III유적 4호분과 유물

 

 그런데 무덤의 규모와 무덤방의 축조방법, 말의 두수가 비슷하지만 유물은 차이가 있다. 무기의 종류와 수가 다르다는 점은 그림(3,5)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모자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3호분 유물 가운데 말모양 장식(그림 3-9,10)은 모자장식이다. 4호분에서도 동물문양장식은 모자장식(그림 5-12)으로 사용되었으나, 목제 사슴장식이며, 앞다리와 뒷다리 시작하는 부위에 산양과 산염소의 머리가 표현되었고, 뒷다리의 발에는 인간의 머리(그림 5-13)장식이 붙어 있다. 뿔이 달린 모습으로 금박으로 마감된 것이다. 이 유물은 울란디르크 강의 계곡에 있는 유적 8개를 통틀어 하나뿐이다.

 

보고서에는 두 무덤 주인공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되지 않아서 두 모자가 다른 것이 성별의 차이로 보기도 힘들다. 동 시대에 모두 같은 모자를 쓰지 않았을 수 있다.

3호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는데, 발견하셨나요?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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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디르크 강의 유적 가운데 가장 무덤이 많이 유적은 울란디르크 I유적이다. 총 무덤의 수는 17개이고 그 중 16기가 발굴되었고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은 14기이다. 일렬로 서 있는 무덤가운데 열을 벗어난 10호와 16호는 초기 투르크 시대의 무덤이다.

*이 유적의 평면도 아래 포스팅참고

 

2020/10/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디르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무덤속의 자작나무껍질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무덤속의 자작나무껍질

알타이의 추야 강 지류인 유스티드 강의 계곡에 있는 유적 가운데서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는 이 유적에서 매우 특이한 무덤이었다. 외관으로도 21~22호와 연결되었고, 내부에도 다른 무덤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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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XII유적과 비슷한 무덤구조는 3호~15호 무덤이고, 열을 벗어난 1호와 2호는 무덤구조가 약간 다르다. 출토유물은 다른 무덤과 비슷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3~15호 무덤 가운데 열의 앞쪽에 위치한 무덤에는 말이 없고(3~8호), 뒤의 무덤에는 말이 매장되었다. 13호는 무덤의 상태가 불량해서 자세하게 보고되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지만 9호, 11호, 12호, 14호, 15호에만 말이 매장되었다.

3~8호 가운데 4호와 6호는 어린아이의 무덤으로 통나무관만 확인된 무덤이다. 5호는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도 본 적이 있는 석관묘무덤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도 통나무관만 있는 무덤과 석관묘(돌널무덤)에는 말은 매장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3호, 7호, 8호는 유스티드 XII유적의 성인 무덤구조와 비슷하지만 유스티드 I유적과 비슷하게 성인무덤에 나무 무덤방이 있으면서도 말이 없는 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림1. 울란디르크 I유적의 3호분 평면도

 

 

그림2. 울란디르크 I유적의 3호분 유물

 

그림3. 울란디르크 I유적의 7호분 평면도

 

그림 4. 울란디르크 I유적의 7호분 유물

 

 

그림 5. 울란디르크 I유적의 8호분 평면도와 유물

 

울란디르크 I유적의 무덤방의 축조방법은 유스티드 XII유적, 유스티드 I유적과도 차이가 있다. 3호(그림 1)와 8호(그림 5)의 무덤은 말이 있는 유스티드XII 유적의 21호와 다르다(1006).

말이 있는 무덤과 없는 무덤은 부(富)와 계급의 차이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두 유적의 무덤방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지?

 하지만 적어도 『이 시기』에는 그것 때문에 무덤방의 축조방법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 해보인다. 왜냐하면 말이 있는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와 말이 없는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은 무덤구조가 같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1006)

2020/10/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 유적에서 26기의 무덤 가운데 아이의 무덤이 10기이다. 어른과 함께 매장된 경우(4호, 8호)를 제외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이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21호를 소개하고자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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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1011)

2020/10/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I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말이 사라진 무덤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말이 사라진 무덤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에서는 출토된 여성의 이마를 장식하던 모자장식으로 두 동물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중앙에 돌출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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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울란디르크 I유적의 무덤 가운데 '나무무덤방'(7호만 제외)을 만든 무덤은 말이 있건(9~16호) 없건(그림 1, 5), 유스티드 계곡의 무덤과 다르다.

 나무무덤방을 결구하는 방법이 달라진 이유는 모르겠다....@@

 

*말이 있는 울란디르크 I유적의 무덤구조는 제일 상단의 포스팅 참고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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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 강 지류인 유스티드 강의 계곡에 있는 유적 가운데서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는 이 유적에서 매우 특이한 무덤이었다. 외관으로도 21~22호와 연결되었고, 내부에도 다른 무덤에는 없던 바닥과 무덤의 서쪽벽 위에서 자작나무 껍질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자작나무 껍질은 주로 말의 다리 아래에서 확인되는 점과는 차이가 있었다. 바닥아래에 나무가 깔리지 않는 공간은 주로 그릇을 두는 공간으로 비워 두지만 이곳에도 사람을 묻는 점도 달랐다.

 

이 무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무덤이 울란디르크 강변의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무덤이다. 울란디르크 I유적에서는 무덤 17기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1. 울란디르크 I유적, 검은색 동그라미가 무덤, 화살표가 가르키는 곳이 북쪽

 

그 중에서 11호 무덤(직경 10.5×11m,높이 20~30cm)은 별로 크지 않다. 깊이 1.3 m가량의 구덩이안에 2중 나무 무덤방(외부: 220×160cm, 내부: 143×83cm)이 있었다. 통나무는 낙엽수(자작나무)로 직경이 28~32cm가량 되는 것이고, 가장 긴 통나무는 240cm짜리도 있다. 무덤방은 6개의 통나무로 덮고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로 덮었다. 무덤방과 무덤구덩이 사이에 남서쪽 빈 공간에도 통나무로 채웠다.

울란디르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의 무덤 안에 인골의 두향은 대부분 동쪽이었으나, 이 무덤은 남동쪽이다. 울란디르크 I유적 전체에서 무덤이 남동방향으로 일렬로 서 있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스티드 계곡의 모두 남북방향으로 무덤이 서 있다(그림1). 이 점은 울란디르크 강의 방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중 목곽묘에 자작나무 덮개까지 덮었지만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매우 소략하다. 말은 철제재갈과 멧돼지 송곳니 모양을 한 목제 굴레장식으로 장식되었다. 말의 머리에는 투부로 맞아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무무덤방 안에는 바닥에 2개의 통나무만 깔려 있었고, 바닥이 없는 공간에 나무쟁반 위에는 양의 엉덩이뼈와 손잡이에 둥근고리가 달린 철제 칼이 놓여 있었다(그림 3-2). 61cm 짜리 나무꼬쟁이도 (그림 3-7, 무덤바닥의 평면도)도 발견되었데, 그 옆에는 알 수 없는 목제품도 출토되었다(그림 3-3, 유물그림에서). 목제 쟁반 옆에는 손잡이가 둥근 목제 잔(그림 3-3, 바닥평면도)과 토제 항아리(그림 3-1)도 출토되었다.

이 무덤의 인골 두개골을 깨진 상태였는데, 그 아래에는 검은색 물감이 타원형으로 두께 1~2cm가량으로 발라져서 확인되었고 그 곳에는 금박이 확인되었다(그림 3-6, 무덤바닥평면도). 인골의 엉덩이 부근에서는 목제 빗의 모형과 손잡이가 붙은 목제거울(그림 3-4,5, 유물그림)이 출토되었다.

 

그림 2.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모양 목제 굴레장식, 3-자작나무껍질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11호분 무덤바닥평면도와 출토유물, 인골의 두개골 부위에 타원형 표시가 검은색 물감의 범위이다. *는 금박이 발견된 곳. 인골의 두개골이 왜 깨졌는지,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음.

 

울란디르크 I유적 11호의 무덤방 천장은 6개의 통나무 위에 자작나무껍질을 덮었다. 말의 위에도 덮었다(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23호도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다른 무덤도 마찬가지였을 수 있다. 그리고 자작나무껍질을 쉽게 벗길 수 있는 계절은 늦봄과 여름이다. 기원전 5세기의 파지릭 유적 2, 5호분과 기원전 6세기의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에서도 자작나무껍질은 무덤안에서 이용되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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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가까운 유적은 ‘타샨타’라는 명칭을 썼다.

 

추야강의 다른 지류인 유스티드 강 유역에서 발견된 투구처럼 생긴 모자장식은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데, 동물문양장식이 없는 것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되었다.

울란디르크 강의 5개 각 유적에서 무덤의 개수는 차이가 있지만, 여러 기의 무덤이 열을 이루어 만들어진 것은 같다. 열을 이루는 각 무덤의 주인공은 살아생전에 가족 구성원이었다고 본다.

울란디르크 강의 유적은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들 유적에서 가장 이른 무덤으로 생각되는 무덤 중에 하나는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이다. 근거는 유적에서 출토된 마구 중에 하나인 재갈멈치와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이다.

 

울란디르크 I~V유적에서는 유스티드 XII, 유스티드 I 유적과 비슷하게 재갈은 잘 남아 있지만 재갈멈치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유스티드 XII유적에 둥근 구형의 장식이 붙은 재갈멈치가 남아 있는 무덤이 있었다.

그런데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에는 재갈멈치의 끝에 동물문양장식이 붙은 것이다. 이는 기원전 5세기 파지릭 유적에서 발견된 것(포스팅참고)과 비슷한 재갈멈치(그림 2-9)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유물(포스팅 참고)과 비슷한 굴레장식(그림 2-1,2,3) 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리핀이다.

 

2020/04/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2500년 전 시베리아 그리핀의 모습

그리핀은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맹수몸통에 독수리 날개를 붙인 것이 표현된 황금유물을 살펴 본 바 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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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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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는 말을 장식하는 굴레에 그리핀을 단 경우는 없었다. 그리핀이라고 할 수 없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청동거울에 새겨졌고, 맹수자세를 한 그리핀 1점은 유스티드 XII유적의 19호에서 발견되었는데, 출토위치로 보아서 머리장식 혹은 모자장식일 가능성이 있다. 즉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에서 그리핀은 인간과 관련되어 출토되었다.

 

그림 1.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 1~6: 굴레장식, 7~9: 재갈멈치, 10,11-멧돼지 송곳니 모형(목제), 12-목제 채찍 손잡이, 13-뿔제 장식판, 14-안장의 부속품, 15-목제, 벨트 조이개, 16-뿔제 장식판, 목제 그릇에 부착되었던 것, 17, 18-토제 항아리, 19-목제 머리이마장식, 20,21-청동제 귀걸이, 22-목제 머리장식, 23-무릎을 꿇고 있는 목걸이의 끝장식 목제, 24-머리 혹은 모자장식의 일부, 25-머리장식, 26-목제 산양장식, 뿔은 가죽과 뿔로 조각, 금박으로 장식, 27~29-산양장식, 30,31-말 장식, 32-청동제 동물문양장식, 33-새모양 장식, 34-사슴장식으로 하단에 펜던트가 부착되었음, 머리장식, 35-목제의 다양한 펜던트, 36-목제 검집, 37-목제 멧돼지 송곳니 모형, 38-목제 장식판, 39-뿔과 나무로 만든 화살촉, 40-목제 활 대, 41-목제 원형 장식판, 42-목제 고리트 장식, 43-목제 송곳? 44-거울을 담는 주머니를 장식한 가죽 아플리케, 45, 46-청동거울, 47-목제 장식판, 48-목제 허리띠 장식, 49-목제 전투용 도끼, 50-목제 방패, 51-목제 쟁반, 52,53-손잡이 있는 목제 잔

 

그림 2.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3.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4.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

 

그림  5.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의 번호와 일치(49번 이후의 유물은 이곳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발견되면 보여드리겠음)

 

그러나 지난 겨울부터 살펴본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3 유적, 아크 알라하-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파지릭계곡의 그리핀은 주로 말을 장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기원전 4세기) 그리고 지역이 바뀌면서 그리핀의 존재자체가 희미해지는 듯 해 보인다. 그러나 울란디르크 IV유적의 2호분은 앞 세기의 특징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무덤으로 생각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탄소연대와 함께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는 마구와 화살촉이다(쿠바레프 2007, 추구노프 2000). 기술발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Чугунов, К. В. “Бронзовые наконечники стрел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Тувы.” Мировоззрение. Археология. Ритуал. Культура. Сборник статей к 60-летию М. Л. Подольского. СПб, 2000. С. 213-238.(추구노프 2000, 투바의 스키타이시대의 청동 화살촉에 대한 고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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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에도 이 강을 따라서 알타이를 이동하는 주요도로가 나 있다. 이 도로(P-256)를 따라서 몽골의 서부로 연결된다. 반대편으로 이 도로를 따라서 가면 카프카스 산맥까지 연결되는 대상도로이다. 협곡사이로 꼬불꼬불하게 연결되는 매우 아름다운 도로이다.

추야강은 그 언제가부터 계속 이용된 자연교통로이다. 그 강의 지류에는 수 많은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유스티드 강은 추야 강에서 북쪽방향으로 갈라진 강이고, 강의 중류에 무덤이 위치한다. 무덤은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만들어졌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스티드 강과 반대편으로 뻗은 강은 울란드리크 강이 있다. 이곳에도 유적이 있는데, 모두 8개로(유스티드 I~V, 타샨타 I~III유적)이다. 타샨타는 이곳의 마을명을 그대로 유적이름으로 붙여서 발견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발견된 투구모양의 머리장식을 소개하면서 인접한 지역의 유적으로 울란디르크 유적을 잠시 소개한 바 있다.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이 없으면서 이 유물의 출토위치가 인골부근이 아닌 그릇 두는 곳(그림 1-14, 그림 2-14)에서 출토되었던 유물은 울란디르크 III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유적에는 8개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 유적의 무덤에 대한 정보가 유스티드 계곡보다는 많은 편이다. 예를 들면 무덤상부를 덮은 직경, 깊이, 구덩이 크기와 같은 것이다. 울란디르크 유적 1호분의 지름(무덤 위를 덮은 돌의 지름)은 10m이고 높이는 50~60cm이다. 구덩이 크기는 300×240cm이다. 길이 160~170cm의 통나무 4개(무덤 한쪽벽 기준)를 이용해서 양 가장자리에 15~20cm를 남기고 무덤방을 만들었다. 무덤방의 구덩이 남쪽과 동쪽 및 서쪽에 돌을 채웠다.

 

 

그림 1.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

1-철제 재갈, 2-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굴레장식, 목제품, 3-목제 재갈멈치 편, 4-가죽조각과 목제 사슴머리장식 편, 5-목제 버클 장식판, 6-허리띠 장식판, 7-자루가 끼워진 전투용 도끼, 8-청동검, 9-목제 검집, 10-목제 단추, 11-청동거울, 12~13-목제장식판, 15-목제 화살통 지지대편, 16-뿔로 만든 화살촉과 화살대 편, 17-목제쟁반과 철제 칼, 18-토제 항아리, 19-목제 칼, 20-검은색 물감의 범위

 

 

그림 2. 울란드리크III유적의 1호분의 출토유물, 그림1과 일치

 

이 유적에서는 재자리가 아닌 모자장식 뿐만 아니라 울란드리크 계곡과 유스티드 계곡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동물장식이 부착된 청동검(그림 2-8)과 전투용 투부(그림 2-7)가 출토되었다. 알타이 추야강변에서 출토되는 파지릭 문화의 청동검은 대부분 손잡이가 T자형이며, 손잡이와 날의 경계에 나비모양으로 벌어진 칼날멈추개가 형성되어 있다(그림 3).

 

그림 3. 알타이 추야강과 우르슬라강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파지릭문화의 검

 

그런데 청동검은 손잡이 끝 장식과 칼날멈추개에 동물문양장식이 있는 것이다. 추야강 일대의 유적에서도 몇 점 출토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청동제 전투용도끼의 끝 장식도 맹수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서 검 손잡이에 동물장식을 붙이는 것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무덤은 아르잔-2호의 5호무덤었다. 물론 이 보다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검으로 금으로 상감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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