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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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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권에서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지팡이 끝에 꽂는 방울이 있다. 간두령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방울 끝에 새 혹은 동물문양을 붙이는 형태이다. 새머리 장식이 붙은 간두령은 켈레르메스 유적이 있다. 뿔이 화려한 수사슴이 부착된 간두령은 마코셰프스크야 마을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간두령

 

그림 2. 쿠반지역, 마코셰프스카야 마을촌 발견. 청동제, 높이 24.2cm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동물장식이 커지고 방울은 크기가 작아지고 동물장식에 부수적으로 붙는 스타일로 변화된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 간두령은 삼지창 끝에 새가 간두령을 물고 있다.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또 다른 간두령에서는 네모방형의 프레임 안에 들어간 그리핀 아래에 방울이 2개 달려 있다.

 

 

 

그림3.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출토 청동, 높이 28.9cm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출토, 청동, 높이 15.5cm

 

그런데 유적에서 출토되지 못하고 지표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 가운데 흥미로운 간두령이 있다. 사방으로 가지가 네 내 퍼져 있고 중앙에 팔을 벌인 남성이 묘사된 것이다. 그의 머리에는 팔을 벌인 새가 그의 머리를 덮고 있다. 두 남성의 양손 끝에는 방울이 달려 있고, 그의 머리 위에 새의 날개 끝에도 방울이 달려 있다.  청동 방울가지의 하단에는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꼬리와 귀의 표현이 뚜렷한 육상동물이 가지 끝을 향해 달려 있다.

유물 속의 스키타이 남성은 무기 없이 표현되지 않는데 그는 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타 스키타이 남성의 직업과는 다를 수 있다.

 

이 남성이 표현하고 있는 장면은 세계수(世界樹) 위에 서서 천상과 지상의 자연 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그는 스키타이 신 가운데 그리스의 제우스에 해당되는 ‘파파이(Папай, Papai)’라고 여겨진다. ‘파파이’라는 신의 이름은 헤로도투스가 역사 IV권의 59에 스키타이 신의 명칭을 기록해 두어서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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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투스는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들과 스키타이 신들을 비교했는데,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숭배하고 스키타이 왕족 또한 포세이돈에게 희생물을 바친다. 스키타이에서 헤스티아는 타피티(Табити, Tabiti), 제우스는 파파이(Папай, Papai), 땅은 아피(Апи, Api), 아폴론은 고이토시르(Гойтосир, Goytosir),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아르김파사(Артимпаса, Artimpasa 혹은 Argimpasa) , 포세이돈은 파기마사다(Фагимасада, Fagimasada) 라고 한다.’

 

 

그림 5. 드레프르강 하류 지역에서 발견된 간두령, 기원전 4세기

 

이 유물은 드레프르강 하류에서 19세기 말에 우연히 발견된 유물로 알려졌고, 다른 유물에 비해서 크기가 작다(높이 4.3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발견된 간두령처럼 방울이 작아지고 여러 개 달렸다는 점에서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스키타이 인이 매우 호전적이며 잔인한 민족으로 묘사되어 있다. 물론 전쟁에서 능했을 수 있긴 하지만, 이 간두령 장식에는 육지의 동물과 하늘의 동물을 연결하는 매우 서정적인 스키타이 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에 흑해지역에서는 그리스인이 대거 등장하는 물건이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스키타이 인들도 이를 매우 많이 소비했다는 점에서 이 유물은 그 상징성이 중요해 보인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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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가 스키타이 단검에 다시 끼워 맞춰진 것이다. 검자루의 끝에 달린 두 마리 동물은 소인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소를 문양으로 쓰지 않는다. 손잡이에는 연꽃 문양대를 중심으로 사냥장면이 서로 대칭이 되도록 표현되어 있다. 페르시아 옷을 입고 무장을 한 사람이 활을 들고 영양에게 화살을 쏘는 장면이다. 소머리 장식, 소머리의 목에 단 목걸이 장식, 사냥장면은 순수하게 기원전 5세기 아케메니드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검코(혹은 검날 멈추개)는 하트 모양인데,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검과 같은 모양이다.

검의 손잡이는 페르시아에서 제작되었으나 검날 멈추개는 스키타이 스타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림 1. 체르토믈리크 무덤 출토 검자루와 검

 

그림 2. 그림 1의 손잡이 디테일

 

이 유물의 검집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남성 11명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인이 이방인과 전투중인 장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부조로 처리되어 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남성은 코린트식 갑옷과 투구, 칼, 창, 방패를 들고 있는 그리스 지휘관이다(그림 3). 그 바로 옆에는 옷으로 보아 페르시아 남성(그림 4의 가장 첫번째 남성)으로 오른손에 수건을 들고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는 말에서 떨어져 죽은 페르시아 병사가 고삐에 매달린 채 말에 끌려 다니고 있다(그림 5).

 

그림 3. 그림1의 검집, 길이 54.4cm

 

그림 4. 검집 디테일

 

그림 5 . 검집 디테일

 

이 장면에 대해서 크게 두가지 의견이 있다. 그리스인이 마라톤에서 페르시아인과 싸우는 장면이라는 의견이 있다. 다른 의견은 인물들 가운데 투부를 들고 있는 인물(그림 6)이 여성적인 얼굴로 여성전사였던 아마존사람(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등장하는 여성전사 종족)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림 6. 그림 3의 디테일

 

검집을 허리띠에 걸기 위한 구멍이 있는 부분에는 독수리 머리와 사자의 몸통인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찢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7).

그림 7. 그림 3의 디테일

 

두 유물(그림 1, 그림 3)은 드레프르강 하류의 스키타이 무덤인 체르토믈리크에서 함께 출토되었으나  유물의 제작연대는 다르다. 검집은 검 보다 늦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이 유물이 스키타이 왕묘에 부장되기 전에 검의 주인은 여러 명이었고, 그 중 한명은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3세)도 포함된다. 그가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때 개인적으로 스키타이와 접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교용으로 검집이 제작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집은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에 페르시아 검에서 검자루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에 끼우고, 그리스에서 제작된 검집에 이 검을 보관된 채 드네프르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단검 자루에서 손잡이만 빼서 스키타이 단검으로 끼운 사람은 누구일까? 검집에 묘사된 전사는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이지만, 이 유물을 마지막에 허리춤에 찬 사람은 그리고 이 유물이 마지막으로 부장된 곳은 스키타이 사람이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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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호) 및 2륜의 마차(아무다리야 퇴장지)로 견인 막대가 2개 있는 형태였다.

파지릭5호분의 4륜마차는 멍에가 2개였기 때문에 2마리 말이 끌었을 것이다.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나온 전차모형에서는 견인대는 2개 였으나, 각 견인대에 멍에가 2개씩 달리면서 4마리 말이 끄는 형태의 마차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흑해 지역에서 전차가 나오는 유물은 없을까?

 

기원전 4세기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판에 쌍두마차가 발견되었다. 장식판은 세 부분으로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눠지지만, 각 칸 아래에 다른 문양대가 들어간다. 가장 윗부분은 여신상이 위치하고 가운데 부분에 쌍두마차를 끌고 있는 전사가 발견된다. 두 마리 말 사이를 연결하는 막대가 발견되었고, 전사는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아닌 전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발 밑에는 그리핀 두 마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아르타모노프는 그를 스키타이 신 가운데 태양의 신인 고이토스르라고 생각했다.

가장 아랫 부분에는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여신이 앉아 있다. 이 여신이 입고 있는 의상은 스키타이 스타일인데, 머리에 고깔모양의 관모를 쓰고 있다. 그녀의 왼쪽(목이 긴 항아리)과 오른쪽(각배)에는 각기 다른 형상의 그릇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녀의 발 아래에도 얼굴형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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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가 자신의 저서에 기록을 남겨놓아서 각 신의 명칭 및 역할을 알 수 있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숭배하고 스키타이 왕족 또한 포세이돈에게 희생물을 바친다. 스키타이에서 헤스티아는 타피티(Табити, Tabiti), 제우스는 파파이(Папай, Papai), 땅은 아피(Апи, Api), 아폴론은 고이토시르(Гойтосир, Goytosir),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아르김파사(Артимпаса, Artimpasa 혹은 Argimpasa) , 포세이돈은 파기마사다(Фагимасада, Fagimasada) 라고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은 여성이라고 생각되지만 얼굴이 불분명하고 가장 하단에 있는 아르김파사와는 다른 복장이다. 그리스 복장이라고 한다.

 

 

그림 1. 카라고데우야쉬흐 무덤 출토, 길이 21cm

 

 

그림 2. 그림 1의 착용 예

 

 

이 유물의 용도는 장식판의 가장자리를 돌아서 뚫린 구멍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는데, 아르김파사가 쓰고 있는 관모장식과 유사하다(그림 2). 게레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말탄 전사와 전투장면이 표현된 장식판),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된 고리트의 장식판에서 관찰되는 스키타이 스타일의 제작방법이다. 그러나 그리스 복장을 한 여성이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 그리스 스타일이 가미된 것이다. 유적이 위치한 흑해의 쿠반 지역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석실묘로 네 벽에 벽화가 남아 있는 무덤으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석벽은 회반죽으로 덮여 있었다. 바닥은 불분명한데, 바닥에 나무를 깔고 돌을 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입구는 서쪽이고, 입구는 긴 복도로 이어지는데, 상부에는 장식으로 덮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3.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무덤방 평면도. 1888년 발굴

 

그리스 여성 혹은 여신과 스키타이 재지의 신인 고이토시르와 아르김파사가 함께 표현되었을 수 있는 이유는 케르치 해협(흑해와 아랄해 사이)에 있던 보스포로스 국가가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세력을 넓히면서 쿠반 지역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한다(아르타모노프 1966).

 

 

기원전 4세기경에 흑해에서는 쌍두마차가 끄는 전차가 있었다는 점은 확실해졌다. 그런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리스 복장의 여성은 왜 얼굴이 뚜렷하지 않을까? 하단 두 칸의 인물들은 얼굴이 매우 뚜렷하며 심지어 손에 쥔 그릇의 모양이 다르다는 점까지 표현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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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아랄해로 흘러가는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발견된 유물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다양한 남성들이었다.

인간형상물이 유적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인데, 흑해지역과 시베리아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전통은 계속이어지는데,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순동시대에는 인간형상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다가,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가 되면은 다시 여성상이 등장하며, 남성상도 출토된다. 물론 후기구석기시대에도 남성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인간형상물이 있긴 하지만, 약간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시베리아의 오쿠네보 문화(기원전 15~19세기)에서는 남성은 여성과 분명하게 구분되면서 남성상이 등장한다(김재윤 2020).

오쿠네보 문화와 연대적 차이는 있지만 초기철기시대문화인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다양한 인간형상물이 확인되는데, 특히 흑해 지역에서 많이 나온다. 반면에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인간형상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흑해지역의 인간형상물은 매우 구체적인데, 아마도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장면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남성들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원전 5세기 이전 유적인 코스트롬스카야, 멜구노프,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남성모습의 인간형상물은 없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적에서는 대량으로 등장한다. 아시다시피 기원전 5세기 이후 흑해지역에서는 그레코-스키타이 유형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대량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 인물들이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키타이 남성들의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는 스키타이 남성이 표현된 유물 가운데 갑옷과 투구를 쓴 모습의 남성이 발견되었다. 말탄 무사는 상대방의 목을 창으로 찌르고 있는 장면이다. 두 무사는 미늘 갑옷, 정강이 가리개와 화살통을 차고 있다.  투구는 기원전 4세기에 흑해에서 유행한 그리스식 투구인 코린트식 투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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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갑옷: 한국에서는 찰갑이라고 부른다. 작은 철제판을 가죽 끈으로 이어서 붙인 갑옷이다. 철제판의 가장자리에는 구멍이 있다. 흑해에서 찰갑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과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이미 발견되었다. 

코린트식 투구: 기원전 7세기 코반 유형과 달리 이마 아래에도 철판이 덧대어진 것으로 볼만 가린 것과 눈만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있다. 

 

사람에 비해서 말이 매우 작게 그려져서 약간 이상한 느낌?도 들지만 말에도 보호장치가 있고, 특히 안장깔개가 눈에 뛴다. 

이 유물의 용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물의 가장자리로 구멍을 뚫었는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통 장식도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그래서 이 유물은 스키타이 초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곳은 드네프르강 하류의 게레메스 유적으로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유적은 자벨린이 1859년에 발굴했으며, 전차와 마구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전차는 두 무더기로 발굴되었다고만 전해지고, 그 전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마구와 다양한 그리핀이 발견되었다.

 

그림 1. 게레메스 유적 출토, 금제 장식판, 19×14cm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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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5. 12:59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금제품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이다. 그 가운데 제작기법은 스키타이 기법이지만 문양은 전통적인 문양이 아닌 유물이 있다. 한점은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Gorgon)으로 추정되는 유물이고, 다른 한 점은 사자의 얼굴이다.

 

도깨비?와 비슷해 보이는 인간형상의 얼굴이 있는데, 달턴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지역의 서부지역에서 출토되는 고르곤(Gorgon)과 비교했다.

뿔이 달리고,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특히 귀가 과장되었으나, 사람얼굴을 변형시킨 것이다. 아래쪽 테두리와 귀의 바깥쪽 가장자리 및 뿔 주변에는 점열문양이 각인되어 표시되었다. 이 유물은 주로 앞면에 체이싱하고 뒤에서 펀칭해서 눈과 귀와 같은 얼굴 특징의 윤곽을 잡아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 뒷면에는 고리가 납땜질로 부착되었다. 특히 눈과 어금니 주변에는 끌로 깍아 낸 흔적(chasing)이 뚜렷하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도깨비 얼굴, 직경 4.1cm

 

사자얼굴(그림 2)이 남아 있는 원판유물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스키타이 황금 제작 기술인 chasing, punching, repousse이 모두 확인된다. 사자라고 알 수 있는 것은 갈기가 있기 때문인데, 갈기의 윗부분과 작은 뿔, 귀가 있다. 테두리에는 대각선으로 눈김이 새겨져 있다. 그림 2 하단의 사진에서 눈과 눈썹 등 사이에서 체이싱 기법이 그대로 잘 보인다.

 

그런데 이 사자는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보이는 포효하는 모습의 사자와는 다르다. 유물속의 포효하는 아케메니드 사자는 주로 갈기로 표현되며 이를 위해서 profile을 그린다(포스팅 참고). 그러나 이 유물은 사자의 정면이다.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사자, 직경 4.1cm

 

그림 1 유물이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이라는 해석(달턴)도 그리스 신화속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신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반인반수’는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분에서 나온 캐노피에 등장한 바 있다. 이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속에서도 등장한다. 고르곤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반인반수의 한 형식으로 이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림 2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나온 사자문양은 모두 페르시아와 관련시켰으나,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과 같이 아케미니드 왕조의 사자와는 다른 형상도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문양이 있는 카페트도 처음 발굴되었을 때 페르시아에서 수입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양은 페르시아의 것이며 유물자체는 알타이에서 제작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도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니 문양 자체도 이미 스키타이에서 있었을 수 있다. .

 

 

참고문헌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