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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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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산맥의 좌측에 위치한 볼가 강과 카마 강 유역의 초기 철기시대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남쪽의 초원지대에서 수입된 것으로 생각되는 검이 발견된다.

손잡이가 T자형이고, 검날 멈추개는 나비형으로 생긴 것이 많다. 이들 유물은 철제품이다(그림 1, 8번 제외). 이와 달리 손잡이에 뿔처럼 생긴 ‘촉각’모양의 장식이 붙거나 어떤 장식이 붙은 것도 있다(그림 2-12,13,16,17).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철제 단검

 

그림 2.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발견된 단검

 

그런데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이들 유물을 전부 초원지역으로부터 들여온 것일까? 아니면 이 지역에서 만든 것일까?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단검 중에는 날부터 손잡이까지 같은 거푸집에서 한번에 주조된 것은 청동 혹은 순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2-1~3이 일주식으로 만들어진 것인데(그림 2-1~3), 손잡이 모양은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고유특징으로 알려졌다.

이 문화에서는 일주식이외에도 손잡이 따로 날을 따로 만드는 방법(별주식)도 존재했다. 손잡이는 청동으로 날은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손잡이에는 스키타이 문화에서 볼 수 없는 2열로 된 원형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3).

즉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일주식과 별주식 검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3.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단검

 

그런데 손잡이가 복잡하게 꾸며진 유물 중에서 동물의 뿔장식(그림 2-16, 17), 그리핀(2-12,13), 산양 머리(그림 2-5)가 붙은 것은 손잡이와 날이 따로 만들어진 것이다. 손잡이는 청동 혹은 순동으로, 날은 철로 제작되었다. 철 보다 무른 성질의 동이 섬세하게 표현하게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방법은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검 제작 방법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된 동물장식이 달린 청동 검이나 철제의 T자형 검은 일주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그림 4).

 

그렇다면 동물장식 검(그림 2-12,13,16,17)은 손잡이만 스키타이의 것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자신들의 검을 제조했고, 일부 유물에서 스키타이 유물을 모방한 것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거의 유사하게 생긴 철제 스키타이 검(그림 1)도 있는데 그대로 가져온 것인지 이 지역에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매우 많은 금속제품이 발견되는데 그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청동제화살이다.

 

그림 4.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Васильев Ст.А. Ананьинский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Истоки, основные компоненты и развитие // Археол. вести. – 2004. –№ 11. – С. 275–297.(바실레프 2004, 아나닌스카야 동물장식)

Завитухина М.П. 1983 :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на Енисее. Скифское время. /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Л.: Искусство, Лен. отд., 1983. 192 с.(자비투히나 1983, 예니세이강의 고대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근거로 전사는 청동투구(기원전 5세기 전후로 다른 투구)를 쓰고 철제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전투용도끼와 검을 차고 활과 화살을 찼다.

 

스키타이 문화의 단검은 ‘아키나케스’라고 부른다. 헤로도투스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에서 처음 언급된 단어로 고대 이란의 검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짧은 철검은 둥근 칼자루와 칼날과 손잡이 사이의 멈추개가 나비모양과 같다.

 

그림 1. 흑해 지역에서 출토된 철 검, 브로바르카 마을 인근의 무덤, 1902년 발굴, 단조, 길이 55cm

 

 

단검은 근거리용으로 보병 뿐만 아니라 기마전사도 근거리에서 이용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철 검은 기원전 7세기에 처음 나타나서 일반적으로 보편화 된 것은 기원전 550년 이후에서 기원전 400년 사이이다. 이때 금속 갑옷이 널리 퍼지는 데 철 검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금속 갑옷은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되어 기원전 7~6세기 사이에 있었으나 흔히 발견되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체르넨코 1968)이다.

 

철검의 파괴력은 아이믈르그(Аймырлыг, Aymyrlyg) 유적에서 실제로 확인된다. Murphy(2003)는 이 유적에 묻힌 세 명의 남성에게서 칼날 외상을 확인했다. 인골에서는 외상의 흔적만 있고 치료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처형당한 후에도 칼날 타격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아이믈르그(Аймырлыг, Aymyrlyg) 유적은 시베리아 남부의 예니세이 강 변에 위치한 대규모 무덤 유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무덤도 확인된다. 

 

참고문헌

Murphy Eileen M. 2003, Iron Age archaeology and trauma from Aymyrlyg, South Siberia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의 갑옷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가 뭍힌 곳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이다. 발굴된 여느 스키타이 문화(정확하게는 파지릭문화)의 무덤과 마찬가지로 무덤구덩이 안에는 나무 무덤방이 만들어지고, 그 밖에는 말이 매장되었다.

 

말이 매장되는 무덤은 대부분 한 마리 이상 매장되는데, 멀지 않은 곳에 묻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도 말6마리가 확인되었다. 미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으나 남성전사 2명이 함께 묻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도 말이 9마리가 들어갔다.

 

그러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의 상태가 좋지않아서 말이 2마리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잘 알 수 없다. 스키타이 사람들은 매우 공간을 아껴서 사용한 것 같다. 말의 매장공간은 좁은데 많이 밀어 넣는다. 구덩이가 커지면 노동력도 들고 무덤방도 커져야 할 것이니, 아마도 이런 것들은 미리 계산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는 말이 매장된 북쪽이 상태가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한다면, 말의 두수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과 관련된 마구는 말에 착장한 것이 아니라 벗은 상태에서 1벌(그림 1)이 확인되었다. 무덤방의 북서쪽 모서리에서 전부 출토되었다. 굴레장식 가운데 몇 점은 말 부근에서 출토되기도 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마구 세트

 

 

 

말의 재갈은 철제로 만들어진 것이고, 말의 굴레에 달았던 J자형 굴레장식은 멧돼지 송곳니처럼 보이지만 나무로 제작되었다. 말의 이마를 장식한 당호(그림 1에서 둥근 형태)는 만화에 나오는 UFO모양과 같은데(ㅋㅋ ), 재갈멈치와 함께 나무를 깍아서 만든 것이다. 당호는 납작한 원판 위에 약간 두툼한 원판을 붙인 형태로 얼음공주 무덤 , 아크 알라하 1 유적에서도 말이 착장한 예가 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무덤 속의 출토유물, 유물배치도에서 1~5번이 마구 및 굴레장식이다. 4번은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라고 적혀 있었으나(먼저 설명한 것) 실제로는 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멧돼지 송곳니 모양이라고 한다. 원고를 적은 사람과 도면을 만든 사람이 달랐을 것이다.ㅠㅠ

 

 

재갈멈치는 한쪽 끝에 팔메트 문양으로 만든 것이다. 팔메트 문양의 재갈멈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적이 있는데, 재갈멈치 양쪽 끝이 장식되었다. S자형으로 굽은 모양이었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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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스키타이 전사 9마리 말의 얼굴꾸미개

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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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철제로 제작된 유일한 유물은 앞서 본 목제 쟁반 위의 칼과 재갈(그림 3)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 남성미라 무덤에서 출토된 철제재갈

 

이 점은 앞서 살펴본 남성전사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고리가 둥근 재갈이 청동으로 제작된 것과는 다르다. 쿠바레프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출토되는 청동재갈이 고식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출토된 철제재갈은 새로운 스타일로서 새로운 문화요소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철제 재갈은 청동재갈에서 형태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쿠바레프 1992).

 

철제무기는 이미 아르잔-2유적에서 처음 출토되지만, 재갈은 전부 청동제였다. 얼음공주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재갈도 청동제였다. 그렇다면 베르흐 칼쥔 II유적 기마전사는 자신의 말에 가장 혁신적인 재갈을 물렸을 것이다.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J자형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멧돼지 송곳니 모양 끝에 그리핀 얼굴이 그려진 채 출토된 적이 있다. 유물의 전체 평면형태가 매우 유사하다. 이 유적에서는 그리핀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지만, 같은 모양의 이마장식, 재갈멈치 등이 출토된다는 점으로 보아서 충분히 그리핀을 상징하는 유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에 들어 있다. 이 복합체의 직경은 80m이다. 무덤의 경계벽 직경이 80m라는 것이다.

 

약간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왠지 마을을 그대로 무덤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선사시대에 마을에는 경계벽이 있었는데, 나무로 세우기도 했고, 흙으로 세우기도 했고, 돌로 쌓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으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예전에 신석기시대 집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포스팅한 바 있다.

삶의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01/13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죽음과 고고학

 

죽음과 고고학

지난 해 여름에 중국 산서성에서 발굴된 송나라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바 있다가 적어본다. 그림1. 송나라 벽화무덤 http://www.fnnews.com/news/201708281009572832 뉴스 에서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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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의 경계벽은 마을의 경계벽, 각 무덤방은 묻힌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해보면, 마을과 같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은 활(+화살), 검(+칼), 투부(전투용도끼)를 지니고 묻혔는데, 3종세트라고 생각된다. 기본소재는 철제였으나, 금박으로 장식되어서 의례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걸로 실제 썼을까?

 

그럼 다른 무덤에서는 무기 3종 세트가 발견된 바가 없을까? 실제로 썼을 것 같은..

 

필자가 이미 약간 스포일러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성 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호랑이 동물문양장식을 청동제로 제작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무덤 20호이다.

 

무덤방 20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선 무덤방 20호에는 남성 2인이 매장되었다. 둘 다 22~25세의 남성이다. 한 무덤방에 묻혔는데, 돌(1.8 × 2.2m, 깊이 1.1m)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매장시점이 다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2: BB'라인 단면도, 3: AA'라인 단면도)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인골 2호라고 불리는 남성은 1호 남성의 무덤방(그림 2)을 연장하고 묻힌 것이다. 원래 1호 남성만 매장되었다가 무덤의 동쪽을 연장하면서 벽석도 세로 세우고, 구덩이도 좀 더 파서 만든 것이다. 발굴당시의 덮개돌(그림 1-1)은 인골 2호를 매장한 후에 생긴 것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인골

 

 

그런데 그림 2에서 확인되는 2호 남성(우측)은 먼가 좀 부자연스럽다. (사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호 출토 사진은 출판되지 않았다).

뼈는 해부학적으로 순서대로 매장되었으나, 팔의 상완골과 하완골이 겹쳐졌고, 갈비뼈도 무질서하다. 뼈가 해체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2호 남성의 머리 위에는 목기그릇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청동물체 아래에서도 유기질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었다.

 

1호와 2호 남성은 함께 부장된 유물이 차이가 있다. 2호 남성은 청동칼 1자루(그림 7-3) 뿐이었지만 1호 남성은 투부(청동)의 머리(그림 3-1), 고리트(청동)와 그 부속품(그림 5-3,4), 화살촉(청동) 11점(그림 4-3~13), 칼(청동)(그림 5-5), 귀걸이(금제)(그림 5-1) 등 금속제품과 투부자루(목제) 2자루(그림 3-3,4), 구멍이 4개 뚫린 굽은 장식판(목제)(그림 4-2), 목제그릇의 손잡이(뿔)(그림 4-1), 화살촉(뿔)(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옷으로 보이는 직조물이 확인되었다. 1호 남성의 부장품은 좌측 골반뼈 주변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실측도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유물 사진만으로는 각 부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실측도에는 제작방법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재질

유물

그림번호

금속

청동

투부 대가리

3-1

6-1

고리트와 그 부속품

(그림 5-3,4)

7-2

화살촉

4-3~13

6-4,5

5-5

6-2

귀걸이

5-1

 

나무

투부자루 2자루

3-3,4

6-3

장식판

4-2

 

목제그릇의 손잡이

4-1

7-1

화살촉

4-14,15

 

표1. 아르잔 2호 무덤방 20호 1호 인골의 부장품

 

 

2호 남성의 청동칼(그림 7-3)은 손잡이가 없는데, 유기물질(나무 혹은 뿔)로 제작되어서 따로 끼워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호 남성의 칼(그림 5-5, 6-2)은 손잡이가 날과 함께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

 

 

1호 남성은 투부, 칼, 활(+고리트)라는 기본 3종 세트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무덤방 5호 남성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철제가 아닌 청동제이고, 칼은 있지만 검은 없다. 20호에서 출토된 무기도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투에서 썼을 것을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리고 앞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 포스팅만 보신분들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는 이미 철제 무기가 출토된다. 혹시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하시고 무슨소린가 하실까봐 말씀드린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1,2)와 2호인골(3); 1-뿔, 2,3-청동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 무덤의 무덤방 5호 남성은 무기 3종 세트를 지녔다.

1-검과 칼, 2- 활과 화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체칸'이라고 불리는 투부로 전투용도끼이다.

 

어제 소개한 고리트의 오른쪽 옆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와 함께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도끼의 날 부분과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로 만들어졌고, 손잡이(길이 62cm)는 나무이다. 날 앞부분은 원통형(단면은 각이 짐)에 포인트 부분은 매우 날카롭다. 날의 뒷 부분은 납작한 장방형으로 끝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도끼의 신부(몸체)와 손잡이 끝에 전체적으로 나선형 문양이 묘사되었다. 무덤 주인공 남성의 철제검과 철제칼, 여성의 철제검과 가슴장식, 모형솥에서 확인되는 나선형 문양이다. 도끼의 날 아래에 호랑이 머리(그림 1의 화살표)가 달려 있다.  이 부분은 도끼날을 손잡이에 끼운 후 은제 못(그림 1-2, 2-1)으로 고정한 후에 별도로 마지막에 추가되어 달렸다.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 끼우개(그림 2-6)에 금박을 덧입힌 것으로 홈을 내서 상감한 것은 아니다.

 

그림 1.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2.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1과 동일

 

철을 상감하거나 다른 물질로 입히는 기술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아파다나 궁전 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무기를 들고 있는 페르시아인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입수한 것을 들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투부는 페르세폴리스의 ‘백 기둥 홀’ 바닥에서도 발견되었고, 스키타이 문화권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서도 많이 확인된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금박은 없지만 철제 투부(그림 6)가 많이 확인되어서, 일반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슴돌(장방형의 입석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슴 없는 사슴돌도 있다)이라고 불리는 입석에 무기가 달린 무사의 벨트가 그려져 있다(그림 3,그림 4).

 

 

그림 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출토, 사슴돌, 이 사슴돌에는 사슴이 없다.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입석에는 대부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이 없는 사슴돌도 있다. 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래에 링크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그림 4. 아르잔 출토, 사슴돌, 그림 3과 동일, 투부, 검, 고리트(화살통)가 벨트에 달려 있다. 아래 지도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위치를 알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ll=52.0966411900486%2C93.56780343358592&z=1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투부는 직접전투에서 사용되었다. 도끼의 전단부의 단면이 원형이고, 끝이 뾰족한 형태가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 이 형태가 유지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머리에 투부로 맞은 상처가 3곳이 있었다. 시베리아 남부에서 현재 우크라이나(흑해북안)(그림 7)까지 무덤에서 투부에 맞아 머리터진 사람들이 묻혔다. 뿐만 아니라 말을 죽일 때도 투부를 사용한 흔적이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투부는 그 당시에 치명적인 개인 무기였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투부 복원도(그림 1을 복원)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출토, 투부

 

 

 

그림 7. 흑해 북안의 체르도믹 유적, 투부,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동물문양이 금박에 찍혀 있다. 날과 손끝에 같은 문양이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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