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유하고 있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는 케르치 해협이 있고, 이 곳에는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퍼러스 왕국이라고 정의되는 무덤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덤으로 꼽는 것이 쿨-오바 유적이다.

 

필자가 참고하고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유하고 있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는 케르치 해협이 있고, 이 곳에는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퍼러스 왕국이라고 정의되는 무덤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덤으로 꼽는 것이 쿨-오바 유적이다.

 

필자가 참고하고 있는 책의 저자인 아르타모노프도 이 무덤은 보스퍼러스 왕국의 차르 무덤이라고 규정했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제 포스팅에서 남성과 여성이 매장된 곳이라고 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3인이다. 2인은 성별이 구분되지만 나머지 1인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나무로 된 관에는 남성이 매장되어 있었고, 그의 옆에는 여성이 있었는데, 남겨진 그림에서 여성은 남성과 구분되어 있다. Dubrux의 보고에는 여성의 시신 아래도 나무판이 놓여져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무관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림에는 여성의 관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Dubrux는 이 남성의 신장이 193cm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했다. 매우 호화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모자는 꼬칼콘의 모양으로 된 펠트로 된 것인데, 이를 황금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목에는 461g의 거대한 황금 목걸이가 있다. 이 황금 목걸이는 매우 유명한데,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게 하지 못하는 방에 전시중이었다.

대신 매우 자세한 사진들은 여러 출판물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의 돌로 된 무덤방의 바닥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남성의 목걸이 끝장식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남성 검집의 일부분

 

그림 4. 쿨-오바 유적의 금제 사발

 

그리고 이 남성도 요란하게 장식된 겁집과 철제 검, 활과 화살이 함께 발견되었다. 검집에는 상반신은 말이고, 하반신은 뱀 혹은 물고기 꼬리가 달린 괴기스러운 동물로 장식되었다(그림 3). 뱀과 다른 동물의 결합 동물장식은 인접한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도 볼 수 있다. 무기옆에는 금제 사발이 놓여 있었다.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인과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처럼 보이는 인물과 함께 묘사 되었다(그림 4).

 

쿨-오바 유적의 남성은 다른 무덤의 남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모습을 여러 곳에 남겨 놓았다.

 

참고문헌

Журавлев Д.В., Новикова Е.Ю., Шемаханская М.С. Ювелирные изделия из кургана Куль-Оба в собрании Исторического музея. Историко-технолог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 М.: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 2014. - 352 с(주라블레프, 노비코바, 세마한스카야, 2014, 역사박물관 소장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명품 주얼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유기물질로 만들어진 그릇 외에도 금속제 그릇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청동솥 외에도 금제와 은제 그릇 등이 발견되는데, 흑해와 볼가강 유역 등 서부지역에서 종종발견된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에서도 금속제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스키타이 시대와 동 시기의 페르세폴리스 궁전벽화에 남아 있다. 이들 유물은 이르티스강과 오비강의 합류점 및 알타이 부근에서 도굴에 가까운 방법으로 18세기에 채취된 것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켈렉션 중에서. 페르세폴리스의 아케메니드 궁전에 그려진 금속그릇과 비슷한 형상, 기원전 5~3세기 유물로 추정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시베리아 총독 이었던 가가린이 보낸 선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 번에 걸쳐서 보냈는데 차르의 명명에 따라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보내졌다. 가가린은 토볼스크에서 유물들을 수집했다고 알려졌는데, 현재는 이르티시 강 상류와 오비강의 합류점 및 알타이 부근으로 알려졌다(그림 2).

표트르 1세에게 무덤에서 캐낸 금제품(표트르 1세의 유물 컬력션)을 보내기 전(1715년)에 1712년에 가가린은 금, 은, 구리 및 기타 등등을 모았다. 주자시의 임부는 금생산에 관련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와 관련된 문서는 거의 없는데, 아마 큰 비밀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금제품의 발견과 모든 금과 관련된 정보는 고대 유적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718년 2월 13일 차르는 ‘오래되고, 비범한 것을 모으라는 칙령을 내렸으며 보상을 약속했다. 1721년에 가가린은 교수형을 당했다.

 

 

그림 2. 18세기 황금 유물이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

 

죽기 전에 가가린은 3번에 걸쳐서 표트르 1세에게 소포를 보냈는데, 1번째는 10점(1715년), 2번째는 122개의 유물이 들어 있었다. 2번째 소포는 1716년 12월 토볼스크에서 가가린이 표트르에게 편지와 함께 보냈으나, 소포가 도착할 무렵에 차르는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없어서 모시코프(П. И. Мошков, P. I. Moshkov)가 소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편지에는 각 물건의 무게를 표시해 두어서 식별이 가능하다. 2번째 소포중에서 20점은 표트르 1세의 아들인 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에게도 같은 유물이 보내진 것으로 편지에 적혀있었으나, 행방은 묘연하다. 세 번째 소포는 1717년 10월에 60개의 금제품과 2개의 은제품을 보냈다고 알려졌다. 세 번째 소포에 들어간 유물에 대해서는 혼란이 있었으나 최근 튜멘 지역에서 발견된 문서로 그 존재가 확실해 진 듯하다. 이 문서에는 가가린이 보낸 소포에서 보낸 유물과 동일한 물건의 유물 무게가 일치하는 품목이 적힌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시베리아의 금제품은 용광로에서 녹여서 동전으로 제작되는 일이 흔했는데, 표트르는 칙령 1718년으로 이를 막았고, 러시아에서 일종의 문화재보호법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김재윤 2018) .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Федоровна K.E. 2006, Золото кочевников. О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НАУКА из первых рук(표드로브나 2006, 유목민의 황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 대해서)

김재윤 2018, 러시아의 발굴 -연해주 철기시대 얀콥스키 문화의 바라바시 3유적을 중심으로-, 야외고고학, 31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8. 13:38 스키타이 동물장식

 

엘리자베틴스키(Елизаветовские курганы, Elizabeth mounds) 유적은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대표적인 유적 중에 한 곳으로 쿠반 강 중류역에 위치한다.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가는 유적이다. 쿠반 강 하류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과는 다른 동물문양장식이 발견되었다.

더보기

흑해와 그 인접한 지역은 여러 국가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인데, 한때 같은 국가였지만 현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함께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과 산맥을 따라 흐르는 쿠반 강도 점하고 있다. 코카서스 남쪽도 해안가를 따라서 러시아 국경이 일부 있는데, 동계 올림픽이 열린 소치 부근까지가 딱 러시아 땅이다. 아조프 해에서 흑해까지 우측 해안가를 러시아가 점하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고분이 집중 분포하는 드네프르강 유역은 우크라이나 영역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은 스키타이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그리스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문양도 많이 발견되었다. 물론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도 그리스 전통의 토기 등이 발견되지만, 세미브라트노예와는 전혀 다른 동물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도 역시 20세기 초반(1912~1917년) 벨로프스키가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는 드레프르 강 하류의 무덤과는 다르다고 알려졌다. 무덤 지하에 집과 같은 구조(예를 들면 톨스타야 마길라, 체르토믈리크 유적)가 없으며 넓은 구덩이 형태라고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무덤의 도면은 전해지지 않는다. 흑해지역의 유적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로 알려져 있다.

 

체르토믈리크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tistory.com)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astsearoad.tistory.com

톨스타야 마길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tistory.com)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전설 속의 여신인 듯한 인물과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금판은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 가리개에 부착된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출토된

eastsearoad.tistory.com

이 유적에서 잘 알려진 청동유물은 맹수 머리와 목을 늘려서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그림 1,2). 이미 몸을 늘린 사자 재갈멈치를 보여 드린 바 있는데(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나온 재갈멈치와 비교해 볼 때(그림 4),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사실 사자라고 했으나, 날개까지 달린 그리핀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림 2는 단순히 맹수머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의 몸통 상반부를 잘라서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같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사자머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매우 의심스럽다. 함께 출토된 재갈멈치(그림 3) 덕분에 사자로 인식하게 된 듯하다. 

 

그림 2.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2

 

그림 3.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3

 

그림 4.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흑해지역에서는 알타이와는 다르게 전통이 유지되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했다. 알타이에서는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채워지는 문양이 계속 유지되고, 흑해에서는 동물의 자세가 지속된다고 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몸을 늘린듯한 재갈멈치는 알타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린스카야 1971)이라는 의견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몸을 늘린듯한 맹수가 세미브라트노예 유물와 같이 매우 볼륨감 있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과 같이 납작하게 제작되기도 했다. 필자는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 가운데 청동유물은 스키타이 장인들이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는 여성이 표현된다. 신화 속의 인물로 생각되며 아르김파사, 키벨레 등으로 해석된다.

남성도 있는데, 여성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된다. 흑해의 여신이 표현된 은제 거울이 나온 ‘차르’급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없다.(이 말은 오해하시면 안된다. 기원전 7세기에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있다)

 

소형 유물에 남성이 표현되는 것은 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흑해의 케르치 지역에 있는 쿨 오바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항아리에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리를 만지는 장면(그림 1-1), 치아를 뽑는? 장면(그림 3), 활에 시위를 거는 장면(그림 1-2), 서로 도와 끈을 매는 장면(그림 2)이다.

 

 

그림 1. 흑해의 쿨-오바 출토, 1830년 발굴, 높이 13cm(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2. 그림 1의 왼쪽 남성 옆(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3. 그림 1-1의 반대편(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4. 그림 1의 바닥(Алексеев А.Ю. 2012 )

 

헤어스타일, 복장, 스키타이 무기 등으로 스키타이 남성으로 여겨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떠 올린다. 하지만 스키타이 인의 일상생활을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쿨 오바 유적은 1830년 9월 19일에 군인들이 돌을 채석하다가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는데, 1875년에 루첸코가 발굴하기 전에, 1830년 당시 주지사였던 스템코프스키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에서 이주한 Paul Du Brux가 책임자로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으며, 기록이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무덤의 구조와 유물 목록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짧은 복도와 지붕이 계단식으로 된 돌로 된 무덤방이었으며, 그 안에는 채색된 나무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로 된 무덤방을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무관 안의 사자는 거대한 금색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고, 무기세트를 옆에 놓아둔 채였다. 나무 관 옆에 나무거치대가 있었고 그 위에 여성인골이 확인되었다. 황금 항아리는 그녀의 발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무덤은 발굴하는 과정에서도 도둑을 맞았다.

황금 항아리는 주조로 만들고, 항아리 안쪽은 두드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바닥(그림 4)에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항아리 제작 시에 적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새겨 넣은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그리스 토기인 ‘암포라’가 출토된다. 하지만 이 황금 항아리에 표현된 남성은 스키타이인으로 스키타이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에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쉽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유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쿨-오바에서 나온 장식판에 새겨진 여신은 분명히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으나 양 손을 펴고, 날 개를 표현하는 점은 기원전 7세기에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신과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혹시 이 황금장식판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황금항아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흑해지역의 유적은 1859년에 러시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 위원회 중심으로 흑해의 쿠르간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의 유물도 처음에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함께 쿤스트카메라에 보관되었다가, 나중에 함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1715년~1718년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농민으로부터 수집해서 보낸 것이다. 표트르 1세에게 처음에는 10점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200여 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러시아의 첫 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현재도 있음.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까움, 네바 강 건너)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츠와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에서 황금유물이 유명하다.

 

이미 소개해 드린 은제거울, 표범방패장식, 화살통 장식 등이 있다.

 

2020/02/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

eastsearoad.tistory.com

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astsearoad.tistory.com

 

 

아직 소개해 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는 황금으로 된 그릇이 있다. 두 개는 세트인데, 하나는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꽃 잎과 마름모문양이 반복되어 표현되었다. 동물문양은 그릇의 바깥이 음각한 것이고, 기하학적 문양은 그릇의 바깥을 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상단에는 타조, 2번째 열에는 사슴바닥에는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코젤(산염소), 카프카스 염소(Caucasian tur), 사슴이 교차해서 배열되어 있다. 사슴 등에 올라탄 사자(그림 3-2)와 코젤을 쫏고 있는 늑대(그림 3-1)도 2번째 열에 배열되어 있다. 3번 째 열에는 사슴, 코젤(산염소), 염소가 앉아 있고 바닥에는 꽃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그림 4).

 

그림 1.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슐츠 발굴품

 

그림 2.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3.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4. 그림1의 평면도(루덴코 1960)

 

 

켈레르메스 유적이 흑해 부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인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릇에 나타난 사슴그림은 흑해북쪽에서 가장 빠른 사슴문양이다.

 

그런데 이 그릇에 나타난 사자, 타조는 스키타이 지역에는 없던 문양으로 앗시리아와 관련있다. 앗시리아 문화에서는 타조문양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사자도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문양으로 코카서스 산맥 이남에서 올라온 문양이다. 사자가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 마이코프 문화에서 확인된 바 있다. 코카서스 남부지역과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던 주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나타나는 방법 중에 갈비뼈를 드러내는 방법은 흑해 북쪽 및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양과는 관련이 없는 앗시리아 양식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장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의 표현방법이 몸통과 뿔에서 차이가 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흑해에서 원래 살던 킴메르 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 때문에 인접한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킴메르 인들을 추적해서 코카서스 산맥 남쪽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앗시리아 연대기는 이 시점을 기원전 670년 부터라고 기록했다.

고대 오리엔트 기록에는 기마병단을 보유한 스키타이 유목민족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고생하고 공포정치로 치를 떠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점도 석연치 않은 것이 스키타이 인과 앗시리아는 기원전 680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앗시리아를 도와서 앗시리아의 수도를 공격하는 메디아인을 섬멸했다. 기원전 623-622년.

 

스키타이 인들은 앗시리아 인을 도와서 메디아를 함께 막아 주었건만 정작 속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앗시리아 입장에서 쓴 기록이 좋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흑해북쪽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사람의 무덤에서 인접한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그리스, 앗시리아 물건,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앗시리아의 물건은 페르시아의 물건으로 바뀐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잔은 앗시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을 ‘phiales’라고 부른다. 피알레스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실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