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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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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에 대한 염원 :나무 속의 미라 1

 

청동기시대가 끝나고 철기시대인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는 알타이의 해발 1500m이상 무덤에서 미라가 나온다. 미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미라 처리에서 가장 관건은 부패방지를 위해서 근육과 지방을 제거하는데, 관절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서 인간 형체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관절이 끊어지면 모습이 어긋나기 때문이다(폴로스막 2016). 즉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고, ‘인간형상물’로 필자는 이해한다.

헤로도투스(4.71~73)에 의하면 미라를 만든 대상은 ‘왕’이다. 이 그리스 역사가는 흑해 북안의 올비아라는 도시에 살았지만, 그가 구술한 ‘왕의 장레치르는 장면’은 알타이에서 확인된다. 동 시기의 흑해 북안의 유적에서 거대한 무덤 역시 ‘차르’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고, 인골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미라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알타이의 높은 곳에서 미라(그림 11)로 처리되었던 죽은 왕들은 거대한 무덤 속에서 출토된다. 미라처리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다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고, 무덤의 아래에 ‘결빙층’이 남아 있는 몇몇 유적에서만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샤다르(Башадар,Bashadar) 유적인데, 두개골 상태는 후대에 발굴된 아크 알라하(Ак алаха, Ak alakha)-3 유적과 같지만, 이 무덤의 아래에는 결빙층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결빙층이 잘 남아 있던 파지리크(Пазырык,Pazyryk) 유적 중에서도 2호(그림 12)와 5호, 아크 알라하-3 유적, 베르흐 칼쥔(Верх Кальджин, Verkh Kal'dzhin) II유적 등에서는 미라가 아주 양호하게 남아 있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도 계곡의 입구에 위치한 3 호에서는 미라가 발견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2호는 도굴되면서, 미라가 찢어진 채 발견되었다(김재윤 2021a).

 

그림 11. 파지리크 유적 5호 미라

 

 

 

그림 12. 파지리크 유적 2호 미라

 

알타이의 무덤구조는 익히 잘 알려진 대로 무덤구덩이 속에 미리 재단하고 다듬어 둔 목재로 나무방을 만들고, 그 안에 통나무 관을 넣는 것이다. 무덤방 바깥에 말을 여러 마리 묻어두고 그 위를 통나무 수 천개와 흙과 나무로 채우는 것이다. 무덤 위에는 돌을 덮었다. 무덤방의 목재는 가장자리에 홈을 내었고, 상단과 하단을 결구했다. 이 방법은 투바의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에서도 확인된다(추구노프 외 2017).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의 중심무덤방에서도 있었다. 아르잔-1호는 매우 엉성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중심무덤방에서는 상단과 하단의 목재에 홈을 내어서 결구하는 방법을 사용했기에, 알타이의 나무무덤방 구조를 만드는 기술은 아르잔-1호로부터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 여성형상물 전통의 시작: 부활과 다산(흑해지역)

 

인간은 스스로를 닮은 인형을 ‘인간형상물’을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오스트리아의 빈델도르프?는 ‘비너스’라고 일컬어졌다. 그런데 같은 시대에 유럽 뿐만 아니라 흑해 부근의 후기 구석기 문화와 시베리아의 말타 유적에서도 여성형상물을 주거지에 매장하는 관습이 있다. 흑해 부근에서는 대략 23000년 전 유적인 코스텐키 (Kостенки, Kostenki) I유적(그림 1), 가가리노(Гагарино, Gagarino) 유적, 호틸레보(Хотылево, Khotylevo) 2 유적 등에서 인간형상물이 대거 발견된다. 시베리아에서는 말타 유적 외에도 부레티 유적 등에서 출토된다.

이들 유적은 모두 당시 후기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취락 유적이다.

코스텐키 I유적은 주거지 4기가 발견되었고 그 중에 2기가 발굴조사되었다. 주거지는 타원형으로 장변의 길이가 대략 40m 너비는 일정하지 않지만 가장 넓은 곳을 기준으로는 19m가량이다. 중앙에는 8개의 노지가 일렬로 위치하고 있으며, 문지는 3개인데, 장변의 2/3지점과, 단면의 모서리 부분에 위치한다. 뿐만 아니라 주거지에는 노지 주변과 주거지 가장자리를 따라서 수혈이 많은데, 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김재윤 2019a).

 

 

인간형상물은 1호 주거지(그림 1)에서만 여성형상물이 102 개가 집중 출토되었다. 여성상은 맘모스 상아로 제작된 것이 4점이고 그 외는 이회암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 전신상으로 머리에 눈코입을 표현하지 않고 가슴과 엉덩이를 매우 강조한 형태이고(그림 2-1), 일부러 훼손한 흔적도 발견된다(그림 2-2). 측면에서 볼 때 등을 구부린 모습이다(아브라모바 1987, 김재윤 2019a). 동시대의 가가리노 유적(그림 2-3)과 호틸레보 2 적(그림 2-2)에서도 여성형상물이 출토된다. 그런데 호틸레보 2 유적의 여성형상물(그림 2-2)은 단순히 살찐 모습이 아닌 임신한 여성으로 알려져서, 다른 형상물들과 구분하기도 한다. 가가리노 유적의 유물은 비만한 앉아 있는 여성이다(가브릴로프, 흘로파체프 2018).

흑해지역의 후기구석기시대 여성형상물은 대부분 주거지에서 출토되며, 남성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는 시베리아와 대조적이다(김재윤 2019a).

 

 

 

하지만 시베리아에서는 여성형상물에 비해서 숫자가 적고, 간단하게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남성들도 형상물로 만들어졌다. 동유럽에 비해서 살찌거나 임신한 여성을 두드러지게 표현하지 않은 점도 여성을 ‘생산’의 대상으로만 본 것은 아니고 어쩌면 ‘부활’의 의미를 담았다. 말타 유적의 여성형상물은 집 안에 인골과 함께 매장되었고, 무덤 속의 매장으로 보기 때문이다. 집 안에 무덤을 만들어서, 그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랬을 수 있다. 미라를 만들었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김재윤 2022a).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6세기경 유물이라고 추정되는 청동용기의 손잡이에는 날개달린 여성이 표현되었다. 이 여성은 무릎을 굽히고 날개를 달고 있는데,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각배에 표현된 여성도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여성은 혀(그림 1)를 내밀고 있다. 혀를 내밀고 있는 여성은 그리스의 메두사고르곤이라고 여겨진다. 청동용기의 손잡이에 표현된 여성은 매우 얇은 옷을 입고 있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유물이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일까?

 

그런데 메두사는 유물에서 표현될 때 대부분 머리만 표현되지 전신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리고 청동용기도 그리스에서 주로 사용한 암포라(그림 4, 그림 5)와는 기형에 차이가 있다.

 

그림 1.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청동용기의 손잡이

 

 

그림 2.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청동용기의 손잡이의 측면

 

 

그림 3. 그림 1이 부착된 청동용기

 

그림 4. 은제 암포라, 체르토믈리크 유적 출토

 

 

그림 5. 그리스의 토제 암포라, 엘리자베틴스키 쿠르간 출토

 

 

그런데 이와 같은 청동용기는 우라루투의 유적에서도 발견되고 스키타이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직수입된 그리스 청동그릇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4. 09:22 책소개

인간형상물은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

 

인간형상물이 가장 극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철기시대이다.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는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장식, 마구, 무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을 집합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것은 동물장식이다. 동물장식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게 될 만큼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원형맹수장식으로 인해서 그 이전까지 알려진 카자흐스탄의 스텦지역과 흑해지역의 원형맹수장식이 시베리아에도 존재했고 심지어 더 이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동물장식의 특징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으로 구분한다. 동물의 주제는 공통적이지만 표현방법과 자세 등이 차이가 있는 현상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형상물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에서 구분되어 나타난다.

 

스키타이 문화를 최초로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왕의 장례치르는 방법에서 미라처리에 관한 내용을 서술했는데, 실제 발견되는 곳은 알타이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신화속의 인물로 생각되는 인간형상물 등이 발견된다.

 

그림 1. 알타이(아크 알라하 3유적)의 미라

 

그림 2. 흑해(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신상

 

동부지역에 속하는 알타이에서는 미라가 해발 1200m이상의 무덤에서 발견되고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바사댜르 유적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바 있다.

미라를 만드는 이유는 파지리크 문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부활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무로 된 무덤방과 통나무관, 내부까지 흙과 풀로 채워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 이후로 여러 유적에서 신화 속의 아르김파사로 여겨지는 여성상등이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 까지 지속적으로 출토된다. 무덤 뿐만 아니라 성곽(벨스크) 유적에서도 출토된다.

서부지역에서는 무덤 구조가 변화되어도 인간형상물이 발견되며, 사용방법도 거울이나 각배와 같은 의례품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실용적인 유물에 부착되는 변화가 있다. 재질도 변화된다. 신화와 같은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벽사의 개념을 지닌 부적과 같은 역할로 변화되었다.

 

그럼 인간형상물은 갑자기 생긴 것일까?

 

*이 글은 내일 필자가 한국고고학대회에서 발표할 내용을 간략하게 추린 글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제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한국고고학회 (kras.or.kr)

posted by 김재윤23

 

 

 

오늘은 5월에 출판된 필자의 책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은 서문(프롤로그)에 적은 글이고,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필자의 관심사 등을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웬지는 모르겠는데 매우 어색하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는데 '모든 책은 운명이 있다'.

 

1.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는 우리가 배웠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고, 독자들에게도 거대한 공백과 같다고 여겨질 것이다. 특히 분단된 한국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면서 전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 풀어적으니 내용이 자세해 져서 독자에 따라서는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 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5장에서 설명하겠지만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 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부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

 

3. 글의 전개과정

이 책에서는 ‘스키타이’ 문화라고 명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문화권을 잇는 스키타이 3요소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동물양식을 ‘스키타이 동물양식’이라고 부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지역명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간략하게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이 책에 다루고 있는 아르잔-1호(그랴즈노프 1980, 스미르노프 2012)나 아르잔-2호(추구노프 외 2017)를 다룬 책이나 논문에서도 ‘스키타이’라고 간략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참고로 했다.

미라는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에서만 출토된다. 지리크 문화의 유적 가운데 아크 알라하-3 유적은 이미 국내에 번역서(N.A.폴로스막(강인욱 역) 2016)가 있다. 그러나 파지리크 유적에 대한 소개는 자세하게 없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알타이와 인접한 중국 신강성에서도 미라는 발견되지만 중국 자료는 러시아 자료에 비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제외했다.

이와 함께 스키타이 문화권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아르잔-1호와 인접한 아르잔-2호 유적도 포함된다. 최근에 발굴되어서 도굴되지 않은 유적으로써 아르잔-1호와 다른 아르잔-2호의 무덤 구조는 파지리크 문화와도 일정정도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아르잔-1호는 그랴즈노프(1980)의 책과 아르잔-2호는 종합보고서 성격의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2017)를 참고로 했다.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및 파지리크 유적은 루덴코(1953, 1960)과 그랴즈노프(1950)의 책이 주요 원천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은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면서 가장 완성도 높은 미라가 출토된 유적이다. 필자가 촬영한 사진을 위주로 정리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폴로스막(2016)의 저서를 참고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라고 명명된 III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랴즈노프(1980), 추구노프 외(2017), 루덴코(1953, 1960), 폴로스막(2001, 2016)의 책을 정리하고 필자의 의견을 붙인 것이다. 각 소절의 마지막에 참고문헌을 표기해 두었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권은 매우 넓은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알려져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흑해이다. 1859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설치 되기 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스키타이 문화를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지역에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미라가 출토되지 않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어떤 지역보다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베리아와 함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비너스상’이 출토되기 시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인 시베리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이 나타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고, 학교 강의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그 자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흑해지역의 무덤은 평지에 높은 봉분이 있는 외형으로 인해서 쉽게 눈에 띄어서, 고고학이란 학문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도굴이 성행했다. 그래서 아르잔-2호 유적과 같은 수많은 정보를 알기가 힘들어서 가장 이른 유적으로 일컬어지는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위주로 설명했다.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인간형상물이 발견된 유적을 중심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베리아 유적은 20세기에 발굴되어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이 지역의 자료19세기 이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해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정보의 내용도 흡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심리적으로 섬나라인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먼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만주지역의 가장 끝인 대흥안령만 넘어 가면 바로 유라시아 초원이다.

 

끝으로 파랑새처럼 검색어로 나의 블로그에 찾아온 네티즌과 자신이 아는 바를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권유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2017년 이후는 필자가 매우힘들었는데, 바빠지고 정신없이 살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 책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또 이 책을 엮는데 고생을 한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의 강나리 학생에게도 감사를 표시한다. 러시아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경희대학교 강인욱 선생님께도 감사를 표시한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김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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