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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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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 위에 있는 기원전 5세기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오고, 그들의 몸에는 동물문양 문신이 새겨져 있다. 주로 변형된 동물인데, 굽동물의 몸통에 독수리 부리가 부착되고 사슴 뿔처럼 보이지만 말 갈퀴처럼 보이기도 하며, 끝에는 새 머리가 달려 있다. 꼬리는 말처럼 길게 처리되어 있다. 이 동물을 사슴형 그리핀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 전사의 문신은 머리가 없는 굽동물(그림 1-5)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입과 뿔에 달린 새 머리가 남아 있어서 원래 머리 없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원래 머리 없이 그려졌다고 보여지는(그림 1-2, 4, 7, 10, 11) 동물 중에서 실제로 그림 1-2,4, 10, 11은 머리가 없는데, 처음 의도인지, 아니면 지워진 것인지 애매하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사슴형 그리핀의 범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7은 머리 부분이 이상하게 그려진 것이고, 그림 1-8의 동물은 뿔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슴형 그리핀과 자세 등이 유사하다. 이들은 사슴형 그리핀이다.

 

그림 1. 파지리크 문화의 문신

 

아크 알라하 3유적과 파지리크 2호의 남성 미라에는 사슴형그리핀 외에도 호랑이 변형이 있다. 전자(그림 1-12)는 발과 꼬리 표현이 굽동물이 아닌 호랑이 변형(그림 1-13)에서 관찰할 수 있다.

 

파지리크 유적 2호와 5호, 1호에는 말에게 씌운 가면이 발견된다. 말에게 없는 뿔을 달아서 사슴처럼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말의 안장에도 동물장식이 달려있어서 말은 온통 동물장식으로 덮여 있게 된다. 말의 꼬리도 땋거나 금판으로 감아 처리해서 문신속의 사슴형 그리핀과 마찬가지로 처리했다.

이들은 말을 살아 있는 사슴형 그리핀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분 말 가면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말 꼬리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남성 모자 장식은 높은 장식을 만들어 붙인 것인데, 사슴의 뿔을 변형시킨 것이다. 파지리크 5호분 캐노피에 있는 반인반수의 괴물도 얼굴만 사람이고 사슴(그림 4-4)을 변형 시킨 것이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5호분 캐노피

 

그래서 필자는 알타이 미라 문신의 사슴형 변형동물 혹은 사슴형 그리핀은 알타이 고유의 동물장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사슴변형의 시작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사슴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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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9. 3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동물장식 가운데 ‘투쟁문’이라고 불리는 문양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흑해지역에서 발견된 맹수가 굽동물을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과 달리 맹수와 굽동물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장면은 이제까지 뚜렷하게 답이 없었다. 알타이 카탄타 유적에서 목제로 제작된 유물과 미라의 문신에 유사한 문양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기원전 5세기 유물이기 때문에 흑해지역에 비해서 늦은 편이다.

 

물론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새겨진 문양은 동물투쟁문양으로 발전될 수 있는 요소를 페레보드치코바가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이른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에서는 동물투쟁문양으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발견되었다. 우선 맹수가 굽동물을 입속에 넣는 장면이다. 굽동물은 하반신이 뒤집어 진 상태이다(그림 1). 이 유물은 아르잔-2호의 주인공무덤인 5호묘 남성의 칼집 장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3점이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의5호묘 출토 칼집 장식(350)

 

 

바샤다르 유적 이전에 이미 시베리아에서 맹수와 굽동물의 관계를 유물 안에 넣어서 표현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는 장면은 아니지만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동물의 입속에 다른 동물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결국 포식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림 2. 표트르 1세 수집품 가운데 동물투쟁문

 

뿐만 아니라 굽동물의 뿔을 주목하고 싶다. 뿔에 달린 가지는 새머리 모양이다. 이 또한 아르잔-2호에서 이미 발견된다. 부리가 과장되게 표현된 맹금은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표르트 1세의 유물에서 보이는 뿔의 새 장식과 아주 흡사하다. 아르잔-2호 유물은 5호묘 남성의 고리트 장식이었고, 황금으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3. 아르잔-2호 5호묘의 고리트 장식 중에서(390)

 

동물투쟁문양의 요소로 볼 수 있는 동물장식이 이미 아르잔-2호의 남성 무기에서 표현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단순하게 사실적으로만 새머리를 표현했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특유의 부리를 길게 만드는 장식은 이미 아르잔-2호 주인공에게 물건을 만들어 주었던 장인은 그 방법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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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9. 29.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동물투쟁문양은 흑해지역과 알타이 지역 더 넓게는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흑해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발견되는 것은 포식자(맹수류)가 사슴과 같은 먹이를 뜯어 먹는 구도로 맹수가 뒤에서 공격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우 사실적이다.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이란(앗시리아)에서 수입한 금제 그릇에 염소를 공격하는 사자 혹은 맹수가 찍힌 채 발견된다. 비슷한 문양은 페르세폴리스 벽화 뿐만 아니라 쿨-오바 유적, 표트르 1세의 수집품에서 발견된다. 이 중에서 가장 이른 켈레르메스 유적의 유물이 앗시리아 수입품이었기 때문에 동물투쟁문양은 이곳에서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수집품 동물투쟁문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금제 그릇의 동물투쟁문

 

그런데 표트르 1세의 수집품에는 또 다른 계통의 동물투쟁문양이 있는데 말 그대로 동물이 투쟁하는 문양이다. 포식자와 피포식자를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이다. 그래서 필자는 두 동물투쟁문양은 서로 다른 생각(관념)을 가진 집단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의 차이는 표현의 차이로도 나타나는데, 금제 그릇(그림2)에 새겨진 문양은 매우 사실적이다. 앞에서 언급한 유물들은 대부분 사실적인 표현이 많다.

 

그림 3. 표트르 1세 수집품 가운데 동물투쟁문 버클장식

 

그림 4. 카탄타 유적의 동물투쟁문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은 목제로 된 유물이 알타이 카탄타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동물투쟁문은 몇 개의 형식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 중에서 사슴뿔을 새머리로 장식한 것은 분명히 알타이 계통이라고 생각한다. 파지리크 유적의 미라 문신 가운데 관찰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입에서 다른 동물이 계속 나오는 장면은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 모자에서도 확인된다(그림 6).

 

그림 5.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미라의 문신

 

 

 

그림 6.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의 모자

 

하지만 파지리크 유적은 기원전 5세기이고, 켈레르메스 유적은 기원전 7세기 이기 때문에 동물투쟁문양은 흑해지역에서 먼저 발생되었고 후에 시베리아에서 생겨났을까?

 

그러기에는 두 동물투쟁문양(그림 2, 그림 3)은 표현의 차이가 크다. 흑해지역의 투쟁문양은 매우 사실적이고 파지리크 유적의 미라 문신, 모자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유기체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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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서부지역은 우랄산맥의 남부지역으로 카스피해로 흘러가는 우랄 강이 흐르고 있다. 이곳에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특징이 있는 유적이 남아 있는데, 인접한 볼가 강의 대표적인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해 있으며 동시대의 유적이어서 비교가능한 요소들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3호에서는 골제로 만든 말탄 전사가 조각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었다. 이 말탄 전사는 알타이의 전사들과는 달리 모자를 쓰지 않은 채로 표현되었다. 필리포프카 1유적의 동쪽벽에서 발견된 여성에게도 모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탁사이-1 유적의 6호분은 이제까지 본 모자와는 다른 모자장식이 발견되었다. 모자의 프레임을 그대로 알 수 있는 유물인데, ∧모양으로 가장 높은 곳에는 동물장식이 달려 있다. 고깔모자의 프레임을 따라서 금 판으로 V를 거꾸로 세운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금판은 단면을 ∪형으로 구부린 것으로 고깔모자에 착장하기 위해서 안을 비운 것이다. 상단에는 수염달린 산염소의 머리를 달았고, 금판 막대기의 끝에도 고리를 달고 그 끝에 장식판을 달아서 마무리 했다. 프레임 전체 높이가 48.9cm이다(그림 1).

 

 

그림 1. 탁사이-1 유적 6호분 고깔모자 프레임

 

그림 2. 탁사이-1 유적 6호분 고깔모자

 

고깔모자를 쓴 남성들은 모자에 장식이 붙은 모자, 단순한 고깔모자(빳빳한 재질), 축 처지는 고깔모자(상의에 붙은 것)로 구분되고 모자 없는 남성들도 종종 있다.

 

여성은 좀 더 복잡하다. 단순한 고깔모자 아래에 높은 가채를 쓴 머리 스타일(아크 알라하-3 유적), 원판형 목제 모자에 높게 올린 머리카락의 구조로 된 복잡한 가발장치는 파지리크 유적-2, 표트르 1세의 수집품 안에서 발견된다. 반면에 흑해지역에서는 삼각뿔 모양의 장식판을 머리에 쓰고 베일을 드리운 여성 머리장식이 카라고이데야쉬흐 유적의 삼각판을 통해서 알 수 있다(아래 포스팅). 이 외에도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도 비슷한 스타일로 추정된다.

2020.1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

eastsearoad.tistory.com

 

 

탁사이-1 유적의 고깔모자 V자형 금판 프레임은 여성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점은 알 수 있지만 알타이 보다는 낮고 장식이 달린 유물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유적에서 나온 목제 빗(그림 3)에는 3명의 남성이 표현되어 있는데, 전차를 타고 있는 남성 2명과 마주보고 있는 남성은 귀를 덮은 고깔모자를 쓰고 고리트를 착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키타이 남성임을 알 수 있다. 전차를 탄 남성은 페르시아 인으로 추정된다. 목제 빗(그림 3)이라고 명명되었지만, 사실 빗의 용도보다는 영웅담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제작되었고 고깔모자를 쓴 여성과 함께 부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림 3. 탁사이-1 유적 목제 빗

 

여러모로 탁사이-1 유적과 필리포프카 유적은 비교할 수 있는데, 탁사이-1 유적에서는 남녀 모두 고깔모자를 썼을 수 있지만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보이지 않다. 우랄 남부지역은 유럽 스키타이 특징과 시베리아 특징이 모두 보인다는 맥락이 이 점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참고문헌

 

Сдыков М.Н., Лукпанова Я.А. Ранние кочевники Запад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на примере комплекса Таксай I). – Уральск: Полиграфсервис, 2013. – 292 с (스디코프, 루크파노바 2013, 카자흐스탄 서부의 이른 유목민(탁사이 1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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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부의 기원전 4세기 이식 유적에서는 십대 남성이 매장되었다. 그는 화려한 고깔모자 및 의복을 착용하고 토기와 그릇 등에 둘러쌓인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가 입었던 모자와 의복은 여러 지역의 스타일을 복합한 것이었다(앞의 포스팅 참고).

하지만 토제 항아리와 나무로 된 쟁반과 접시를 매장하는 장법은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물론 각종 재질로 만든 그릇의 형태와 수는 알타이와는 다르다. 예를 들면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나무쟁반은 둥근 것으로 가장자리에 테를 돌린 것인데, 경우에 따라서 다리가 달린 것이 있다. 다리가 낮은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유물은 쟁반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만 다리가 높은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은 쟁반이라기 보다는 목제 테이블에 가깝다. 알타이 투엑타 유적에서는 루덴코가 ‘테이블’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네모꼴의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3 유적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그림 3. 투엑타 유적

 

카자흐스탄 동부의 이식 유적의 남성은 자작나무로 만든 네모꼴의 목제 쟁반 4점이 우측에 놓인 채 발견되었다. 남아 있던 상태가 좋은 쟁반은 2점(그림 4, 5)으로 크기가 다르다(67.5×37.3×3cm, 46×29×3cm).

 

그림 4. 이식 유적의 목제 쟁반

 

그림 5. 이식 유적의 목제쟁반과 바가지

 

사진으로는 붉은색 칠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물질인지는 전혀 보고되지 않았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무덤에서 무덤 안의 그릇 재질은 흙, 뿔, 나무, 금속 등이 있는데, 나무로 된 유물은 현대의 기준에서 볼 때 접시모양과 컵모양이 있고, 금속제품은 청동으로 만든 솥과 여러 형태의 항아리가 있는데,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와 서부지역에서 모두 발견되는 것은 청동솥이다. 금속제 그릇은 주로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지역에서 발견된다. 이식 유적에서 발견된 은제 그릇은 다른 지역에서 보고된 예가 없다.

 

나무로 된 재질의 용기 중에는 음식이 아닌 피장자의 물건을 담기 위해서 나무상자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카자흐스탄 서부라고 하지만 우랄 강변에 위치해서 유럽과 매우 가까운 지역으로,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한 곳이다. 탁사이-1 유적에서는 무덤 구덩이의 북서편에서 가래나무 판자를 5개를 이용해서 만든 목제 쟁반(50×80)이 발견되었다(그림 6).

보고자는 이를 ‘상자’라고 보았으나 뚜껑이 없고, 높이가 낮아서 일종의 쟁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아마도 음식용이 아니어서 상자라고 칭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늑대 송곳니와 이빨, 절구와 절굿공이, 돌, 골제 손잡이가 달린 칼, 새 머리 모양의 투구 및 목제 빗이 발견되었다.

 

그림 6. 탁사이 1유적의 목제 쟁반

 

그림 7. 탁사이 1유적의 목제 쟁반 위에서 나온 목제 빗

 

목제 쟁반이 음식용이 아닌 다른 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탁사이 1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의 출토양상은 이 지역이 스키타이 문화 동부권에 속한 유적들과는 다르게 피장자의 몸에 걸친 것과 그릇 외에도 여러 유물을 넣는 서부권과 애매하게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Сдыков М.Н., Лукпанова Я.А. Ранние кочевники Запад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на примере комплекса Таксай I). – Уральск: Полиграфсервис, 2013. – 292 с (스디코프, 루크파노바 2013, 카자흐스탄 서부의 이른 유목민(탁사이 1유적)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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