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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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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청동기시대 혹은 초기철기시대에 해당되는 스키타이 시대의 암각화 주인공은 대부분 동물이다. 굽달린 동물종류가 가장 많은데 산염소, 산양, 다양한 사슴, 말, 낙타 뿐만 아니라 물고기, 뱀, 하이브리드 동물 등 실제 존재했거나 혹은 상상한 동물을 그렸다. 차간 사알라와 바가 오구이 유적, 출루우트 유적 외의 알타이 암각화에는 다양한 하이브리드 동물 그림들이 있다.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에 발견되지 않고 초기 철기시대인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이미 소개해드린 유스티드,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 문양이 없는 것이 많지만 간혹 거울면이 아닌 뒷면에 음각으로 동물그림이 그려진 경우가 있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유적? (왼쪽), 울란드리크 유적(오른쪽), 이 사진은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박물관에서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와함께 전시된 유물이다. 울란곰 유적의 53호 청동거울도 오른쪽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참고하시면 된다. 

 

울란곰 유적에서도 2명의 남성 무덤속에서 남성 1명이 말 그림이 그려진 청동거울(그림 2-8)을 지닌 채 매장되었다(II호 남성). 53호 무덤은 돌널무덤(깊이 1m, 90×1.5m)이다. 1명은 유로포이드 다른 1명은 몽골로이드라고 알려졌다. I호 인골은 성인과 2호 인골은 청소년이라고 알려졌고 둘 다 머리에 구멍이 났다. 그림과 같이 시베리아 장법(?)으로 무릎을 굽힌채 측면으로 누워서 있고, 머리 아래에는 돌베개가 놓여 있다. I호 인골의 골반부근에서는 허리띠의 부속품으로 보이는 청동클립과 물고기뼈, 청동칼(그림 2-1)가 발견되었다. II호 인골은 늑골 밑에 조개와 구슬, 갈고리 모양(그림 2-6), 등 부근에는 청동장식(그림 2-7), 팔 부위에는 투부(그림 2-5)와 손 아래에는 검집에 든 청동검(그림 2-9)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골반뼈 부근에서 가죽주머니 속에서 청동거울(그림 2-8)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머리위에서는 토제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무덤에서는 검과 칼, 투부는 주로 허리부근에서 출토되었는데, 53호 인골 II호는 손 아래와 팔 부근에서 검과 투부가 나온 점이 다르다.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한 무덤에 들어가는 경우는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어서 크게 새로운 점은 아니지만  흥미롭기는 하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53호 돌널 무덤과 출토품. 1. 청동칼, 5. 투부(전투용도끼), 6, 청동고리(11번이 아닌 6번), 7. 청동패식, 8. 청동거울. 9 청동단검, 10,11토제항아리

 

 

유스티드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겠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나무로 만든 나무방 무덤 뿐만 아니라 돌판을 이용한 돌널무덤도 발견된다. 유적이 위치한 찬드만 산 혹은 울라안 산에서 채취한 분홍빛의 화강암 판석으로 만든 것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돌널무덤은 대부분 단인장이지만 인골이 2구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25호(1.15×1m)인데(그림 1-B) 남성은 왼쪽으로 굴신(다리를 굽힘)하고 있는 1구와 다리뼈만 남아 있는 인골이 1구 더 있다. 머리 위에서는 납작하게 눌러진 토기, 청동화살촉이 발견되었다(그림 1-B의 우측), 날이 세 개 달린 것이다.

 

그림 1. 울람곰 유적의 무덤, 24호(A), 25호(B), 26호(C), 28호(D)

 

24호(1,05×0.6m)에는 남성의 뼈가 무질서 하게 발견되었고, 바닥에는 가죽을 깔았다. 그 외의 출토유물은 없다. 26호에서도 1구가 발견되었는데, 인골이 무질서하게 흩뜨러졌고, 두개골은 찌그러졌다. 하지만 인골은 오른쪽 측면으로 무릎을 굽힌 채 피장되었고, 머리맡에서 토기(그림 1-C-2)가 발견되었다. 그 외 출토유물은 25호와 같은 청동화살촉, 청동단검(그림 1-C-1), 토기가 발견되었다. 청동단검의 끝에는 새 머리 모양의 그리핀이 마주보고 있는 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몽골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미누신스크 지역문화)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또 인접한 추야강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림 2)

 

그림 2. 울란드리크 유적 출토

 

28호는 다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유물도 없고 완전히 무릎을 굽힌 웅크린 자세이다. 두향은 북서방향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널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이미 추야 강 계곡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본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2700년 전)에서도 주인공의 무덤인 5호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널무덤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돌널무덤 문화는 아르잔-2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 묘제는 주로 돌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나무를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아르잔-1호 이후로 나무를 무덤 시설구조물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청동기시대에 나무를 무덤에 이용한 경우는 없을까? 물론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소재를 나무로 쓴적은?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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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곰 유적은 여러 모로 인접한 러시아 알타이의 유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앞으로 차차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차이점도 상당한데, 필자의 눈에 띤 것은 청동솥이다.

추야강 유역의 유스티드 XII 유적, 졸린 유적,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는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4~3세기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것으로 10cm 보다 약간 크고, 그 안에 불에 달군 돌과 향료씨앗등이 발견되어서 향로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33호의 청동솥(그림 1의 1번)은 2700년 전(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유물과 닮아 있고 크기도 비슷하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아도 근거리에 위치한 추야 계곡의 무덤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솥

 

울란곰 유적의 나무방무덤인 23호는 7인이 매장된 곳이다. 무덤의 크기는 2.4×2.4m, 깊이는 1.1m이다.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자를 남동-북서쪽에서 깔았고, 무덤방의 덮개는 이와 교차되게 덮었다. 무덤 안에는 남성 4인, 여성 1인, 아이 1인이 같은 무덤 안에 있다. 두향은 북서쪽이고, 굴신장을 한 상태이다.ㆍ.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23호 나무 무덤방

 

그림 2에서 가장 왼쪽의 I호 인골은 남성(나이모름), II호 25세의 남성, III호 여성, IV호 남성(50~55세), V호(1~2세) 유아, VI호 남성, VII호 여성이다. 인골은 모두 돌 베개를 베고 있었다. VI호와 VII호 남녀는 앞 그룹의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 중에서 IV호 남성이 부장품이 가장 많다. 머리 위에는 항아리, 허리뼈 근처에는 청동송곳과 철제 축, 맹수장식의 청동장식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동화살촉, 철제 전투용도끼, 청동칼과 각 종 화살통 청동 장식이 있었고, 엉덩이뼈와 대퇴골 아래에는 일종의 사슴뼈가 발견되었다.

IV호 남성 외에도 청동화살촉이 있었던 사람은 VI호 남성과 III호 여성이다. VI호 남성은 청동 화살촉 5점, III호 여성은 3점 청동화살촉, 2점 골제 화살통과 함께 부장되었다. 모두 머리쪽을 향했고 화살통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용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철제품과 유리구슬도 함께 부장되었다.

III호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보는 방향이 다르며, 화살통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다. 직업을 보여 주는 유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실 여성전사는 이미 아르잔-2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유적의 22호묘 여성은 오른쪽 쇄골에 남은 근육의 흔적이 매우 발달한 것으로 보아서 활을 많이 쏘았던 여성으로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0.06.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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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인은 한 무덤 안에 다같이 들어갔을까? 시간차이를 두고? 아니면 동시에? 2인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사자(死者)가 발견된 곳은 9인이 발견된 곳도 있다. 이런 유적을 요즘 발굴한다면 각종 분석을 해 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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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고르도바가 보고한 울란곰 유적은 1989년 러시아에서 출판되었지만, 그 속의 내용을 읽어보면 1980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에 울람곰 유적의 내용이 이미 다 출판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가 이 책을 여기저기 찾다가 러시아의 중고책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러 판매자가 중고책을 파는 사이트 인데, 내가 찾은 판매자는 아마도 유대인인 듯 한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살면서 책을 판매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찾은 이유는 러시아 책의 도면이 너무 간략해서 이다. 어쩌면 노보고르도바는 단행본으로 자신의 도면이 책에 나왔기 때문에 매우 축약된 것만 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몽골의 울란곰 유적은 러시아 학자들이 발굴해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독일어 책은 러시아국적의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40년이 지나서  한국에 있는 내가 산 것이다.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유학갈때 책과 여러 물건을 배로 붙인적이 있다. 항공료는 너무 비싸서 그냥 배로 붙였다. 석달이 걸려서 러시아에서 받았는데, 부산서 출발한 그 상자는 일본부터 유럽 각국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사진이 없는게 참 아쉽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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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필자는 유라시아 초원 문화를 소개하면서 아르잔-2 유적을 작년에 아주 자세하게 글을 올렸다. 지난달에 올린 글들은 알타이의 유명한 암각화 유적을 소개하면서 스르르 청동기시대로 자꾸 올라갔지만, 사실 아직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지역을 다 설명드리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아르잔-2 유적은 세세하게 보고되었고 최근의 자료라서 좀 더 생동감 있었지만 그래도 흑해부터 시베리아까지 혹은 그 보다 더 넘어선 지역까지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지역 자료는 한번 씩 다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모자란 부분이 중앙아시아 지역과 몽골이다. 약간 기억을 되돌리면 2700년 전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인 5호묘 남녀는 형질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와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치키세바의 의견을 소개한 바 있다.

물론 DNA분석법이었더면 더 정확했겠지만, 사실 러시아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과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와 유사하다는 생각은 치키세바의 의견이 처음이 아니었다. 울란곰 유적 발굴 이후 부터 있어왔던 논의에 치키세바는 자신의 의견을 더해서 동의한 것이다.

 

2020.06.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 무덤의 주인공 남녀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 무덤의 주인공 남녀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한 무덤의 경계벽 안에 무덤 26기를 비롯해서 장례식에 관련된 여러 유구(퇴장지), 제단, 사슴돌 등이 발견된 곳이다. 의례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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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주로 조사하던 볼코프(사슴돌 주로 연구)와 노보고르도바는 1972년에 투바(아르잔-1,2유적이 있는 지역의 행정명)와 가까운 우브사누르 아이막의 행정중심지인 울란곰에서 매우 특이한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유적은 울란곰 도시와 가까운 곳으로 건축작업 중에 발견되었다. 봉분은 1기만 남아 있었고, 다른 무덤들은 봉분이 이미 다 파괴된 상태였는데, 도시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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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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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고르도바는 1기만 남은 봉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무덤에만 고분 위에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들로 둘러쌓인 사각형의 기반위에 축조된 위가 잘린 피라미드 형태의 돌 봉분이 남아 있었다. 다른 무덤에도 봉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뒤에서 보시겠지만, 봉분의 모양은 알타이의 유적과는 다르지만, 무덤 내부는 추야 강변에서 발견된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지역문화)의 유스티드 XII, 유스티드 I, 울란디르크 유적,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과 매우 유사하면서 약간 씩 차이가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

 

참고문헌

В.В. Волков, Э.А. Новгородов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Монголии.// АО 1972 года. М.: 1973. С. 498-500.(볼코프, 노보고르도바 1973,몽골에서의 고고학조사)

Волков В. В., Новгородова Э. 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работы в Монголии.АО 1973 г. М., 1974.(볼코프, 노보고르도바, 1974, 몽골에서의 고고학조사)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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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있는 알타이의 서부에서 발견된 베렐 유적(해발 1000~1100m)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해발 1500m)과 많이 닮아 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적들을 사카문화라고 하는데, 이 베렐 유적은 사카문화의 특징과도 다르다.

 

파지리크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깊게 파고 나무무덤방(세부차이는 있음)과 통나무관을 썼다. 남겨진 유물도 대부분 마구의 굴레장식과 누군가에게는 별로 쓸모없이 보이는 골제와 청동제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 등이다. 굴레에 달았던 장식은 대부분 나무가 주요소재이고 그 위를 금박종이로 덮은 것이다.

 

베렐 유적의 11호분에는 파지리크 유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인간이 둔갑?을 하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인간얼굴에 머리에는 뿔이 있고 몸통은 맹수를 하고 있는 유물이다(그림 1). 유적을 발굴한 사마세프 박사는 그림 1의 유물이 11호분 남성의 모자장식이라고 생각하고, 스핑크스라고 이름 지었다. 사실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캐노피에 묘사된 동물흉내를 내고 있는 남성(그림 2-4)을 스핑크스라고 했던 루덴코(1953)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베렐 유적의 유물은 얼굴만 동물이고, 스핑크스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의 인간+맹수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의 사슴으로 둔갑한 남성

 

뿐만 아니라 말의 마스크 부속품인 목제 뿔이 발견되었다. 산 염소 뿔을 흉내낸 것인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앞서서 베렐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보여 드린 바 있는데, 같은 카자흐스탄의 유적인 실릭티 유적과도 차이가 있었다. 베렐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무덤(구조), 동물장식(소재와 형태), 무기(형태) 등 차이점이 많다. 베렐 유적은 스키타이 동부 지역(투바와 알타이), 실릭티 유적은 스키타이 서부(흑해지역)과 좀 더 닮아 있다. 그러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모두 화살을 주인공과 함께 부장했다는 공통점은 있다.

무기에 대해서 좀 더 적고 싶으나 카자흐스탄 유적의 정보들은 대부분 황금유물에만 집중되어 보고되어 있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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