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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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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기원전 4세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식 유적의 어떤 무덤 중에는 소년의 무덤으로 높은 고깔모자와 의복을 갖춘채로 매장되었고 그대로 발견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지역문화인 사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이 소년은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시된 바 있다.

 

고깔모자는 높이가 60cm가 넘는데, 황금재질로 된 각종 형상물(동물과 식물)이 부착되어서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로 호랑이(그림 2-4~6)와 새(그림 2-1), 사자(그림 2-2), 말(그림 1-2)은 납작한 금판에 선각 기법을 넣어서 표현한 것이고, 산양(그림 1-1)과 염소(그림 1-7)만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앞면(김재윤 편집)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측면(김재윤 편집)

 

알타이의 고깔모자가 모자 끝과 양 측면에 2~3개 정도의 장식을 붙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과도하게 황금장식으로 부착되었다.

알타이와 비교할 때 모자 뿐만 아니라 의복에도 차이가 있었다. 황금인간이라 불리는 소년은 상의가 짧고 여밈이 있는 스타일의 상의와 하의는 타이즈를 착용하고, 가죽신발을 신었다. 상의의 위는 허리띠를 두르고, 양쪽에 길이가 다른 검을 착용했다.(그림 3, 4).

 

그림 3. 이식 유적 황금인간 상의

 

그림 4. 이식 유적 황금인간의 벨트 및 복원도

 

그림 5. 흑해,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의 스키타이 전사

 

알타이의 남성이나 여성은 남녀 구분이 없이 비슷한 상의를 착용했고, 여밈이 없는 것(그림 6)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피코트가 유적에서 그대로 출토되기도 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허리띠를 착용하고 무기를 착장하는데, 한 쪽에는 고리트, 한쪽에는 검과 칼 및 투부를 착장했다. 아크 알라하-1호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남성 상의

 

이식 유적의 소년 상의는 여밈이 있다는 점에서 흑해지역의 전사상(그림 5, 쿨 오바 유적 뿐만 아니라 솔로하 유적의 황금빗에서도 볼 수 있음, 아래 포스팅 참고)에서 볼 수 있는 복장과 유사하다. 양쪽에 검을 착용하는 것도 알타이와는 크게 닮지 않았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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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이식 유적의 의복은 단순한 고깔모자를 쓰는 흑해지역보다는 동물장식으로 장식하는 고깔모자는 알타이와 닮았지만, 복장은 오히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의복과 더 비슷하다.

이식 유적에서 발견되는 복장은 이와 같은 특징이 있지만 사카 문화에는 알타이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에 위치한 황금인간의 무덤이 있는 유적은 ‘이식’이라고 불리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소년의 무덤은 기원전 4~3세기로 사카 문화(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의 지역문화)에서는 늦은 시기이다.

 

무덤의 바닥(그림 1)에서는 소년의 복장을 제외하고 토제로 만든 그릇(그림 2), 나무로 만든 그릇(그림 3), 은으로 만든 그릇(그림 4)과 숟가락(그림 5)이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토제 항아리를 1~2점 부장했지만 이식 유적에서는 16점이나 묻었다. 물론 토기의 기형에도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보고된 사진(그림 2)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어서 꼼꼼하게 살피기에는 부족하다. 알타이 토제항아리는 ‘쿱신’이라고 불리며 유제품을 담았던 것으로 1~2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 인간 쿠르간 무덤바닥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토기

 

 

나무로 만든 그릇은 쟁반과 국자(그림 3)가 발견되었는데, 쟁반의 개수도 역시 이곳이 많다. 이곳에 고기를 담았던 것으로 생각한다면(그림 1의 좌측면의 네모모양이 목제쟁반을 의미한다) 매장당시에 소년의 무덤은 생고기의 썩는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3 유적에서 목제로 만든 잔에는 손잡이가 한쪽으로 붙은 것(포스팅)이 나오는데, 그에 비하면 이식 유적의 유물은 ‘국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로 앞 부분은 작고 손잡이가 길다(그림 3).

 

2020.0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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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파지릭 2호분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서 통나무관 1개가 확인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파서 만들었는데, 뚜껑까지 잘 제작된 것이었다. 무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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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나무 쟁반과 국자

 

은제 그릇(그림 4)은 2점이 나왔는데, 소년의 머리맡에서 나온 것이다. 그릇의 형태가 다른 2개인데, 그 중에 한 점은 바닥에 글자 혹은 기호가 적혀 있다(그림 4-2). 숟가락은 손잡이 끝이 구부러지고 끝에 날카로운 새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5).

 

그림 4.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그릇

 

그림 5.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의 쿠르간 출토 은제 숟가락

 

사카 문화의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그릇류는 개수가 알타이에서 나온 것 보다 훨씬 많다. 뿔로 만든 항아리도 보이지 않는다. 뿔로 만든 항아리를 무덤속에 넣는 의미를 가장 중요한 동물을 상징한다고 보았다(폴로스막 2001).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의미를 담는 그릇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소년이 입고 있던 복장에 더 관심이 많다. 황금으로 장식된 붉은 옷과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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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부에 위치한 사카 문화는 거대한 쿠르간과 황금유물로 유명하다. 사카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의 지역문화 중에 한 곳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베스샤타르 유적 외에도 이식 유적이 있다.

 

특히 이식 유적은 화려한 복장을 입은 남성이 그대로 확인되어서 여러모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식 유적의 남성은 ‘황금인간(그림 2)’이라는 별칭이 있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신생국가로서 자신의 문화적 유산을 잘 이용했는데, 1974년 이래로 황금인간은 모든 박물관에서 전시되었고, 황금인간 모자의 형상은 국가 상징물로도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김없이 이 유적도 도굴된 채 발굴되었다. 정확하게 무덤 구조는 알 수 없지만 한 봉분 아래에 여러 방이 있는 구조였을 것인데 발굴될 때 당시에는 중앙과 남쪽 측면에 두 개의 무덤방이 확인되었고, 중앙은 완전히 도굴당해서 전모를 알 수 없다. 중앙에서 남쪽으로 15m가량 떨어진 곳에 장방형의 무덤방이 하나 더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십대 소년이 매장되었다. 이곳도 매장주체부의 상단은 거의 없어진 상태였고, 나무방(3.3×1.9m, 높이 1.3~1.5m)은 통나무로 덮개가 철제 꺽쇠로 고정된 채 발견되었다(그림 1).

 

 

그림 1. 이식 유적 황금인간의 무덤방 출토상황, 위-남쪽 측면 무덤방, 아래-통나무 덮개가 내려 앉은 모습

 

 

그림 2.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이식 박물관에 전시중인 황금인간

 

 

모자와 의복을 갖춘 소년의 머리(서벽)위에는 토기 16점, 은제품 2점, 숟가락 1점이 발견되었고, 소년의 우측(남벽)에는 자작나무로 만든 잔, 접시, 국자가 있었는데,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국자와 접시 2점 뿐이다.

 

이식 유적에는 150여기의 쿠르간이 구성되어 있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까지 이곳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직경은 20~10m, 높이 1.5~15m 규모의 쿠르간이다.

 

황금인간의 무덤은 완전히 파손된 채 발견되어 봉분의 높이를 알 수는 없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쿠르간은 높이 6m, 직경 60m이다. 베스샤타르 유적과 마찬가지로 봉분은 쇄석과 점토를 섞어서 겹겹이 쌓아서 지상의 무덤주체부를 덮었고 위는 편평하다. 황금인간의 무덤도 같은 구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황금인간이 나온 무덤은 무덤방이 최소 2개인 것을 생각하면 베스샤타르 유적의 매장주체부와 완전히 같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봉분을 쌓은 방법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식 유적이 전면 보고된 아키세프의 저서에는 황금인간이 출토된 간단한 경위와 유적에 대한 설명만 간단하고 전부 의복에 장식된 황금장신구와 관련된 내용이다. 하지만 여전한 의문점은 많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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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시대에 카자흐스탄에는 서부 평지에 위치한 타스몰라 문화와 동부 산악 지대의 사카 문화가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타스몰라 문화는 ‘콧 수염이 달린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무덤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외관은 다른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지만 그 내부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나무구조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구덩이만 남아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런데 같은 카자흐스탄 국경 안이지만 동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유적은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은 상당한 차이가 있고, 사카 문화라고 불린다.

대형고분은 이식, 베스샤티르, 실릭티 유적 등이 있는데, 실릭티 무덤의 구조는 이미 살펴본 바 있다.

 

2021.03.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중부/천산산맥] - 카자흐스탄 새장식이 출토된 무덤의 구조

 

카자흐스탄 새장식이 출토된 무덤의 구조

스키타이 문화에서 자주 애용된 새 문양 장식은 두 날개를 핀 형태부터 다양하게 있었다. 흑해 유적에서는 얼굴을 측면으로 돌린 형태이다. 다른 문양요소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독수리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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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 유적은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는 남성과 관련된 유물 때문에 박물관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유명해졌지만, 안타깝게도 무덤구조는 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세간에 알려졌다. 인접한 지역에 베스샤타르 유적(기원전 6~5세기)을 통해서 무덤구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직경 105m, 높이 17m로 지상 위에 목제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돌로 덮은 것이다(그림 1).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목조구조물의 아래, 지하에 카타콤이라고 불리는 비밀스러운 통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그림 2, 그림 3). 목조구조물로 들어가는 묘도는 무덤의 서쪽에 따로 있고, 지하의 카타콤은 봉분의 북서쪽 아래에서부터 시작된다(그림 3).

 

그림1. 베스샤타르 유적의 무덤 평면도 및 단면도

 

그림 2. 베스샤타르 유적의 무덤 단면도, 위-동서 단면도, 아래:북서-남북 단면도

 

 

그림 3. 베스샤타르 유적의 무덤 얼개도

 

그림 4. 베스샤타르 유적의 매장주체부 목조구조물의 각 벽

 

베스샤타르 유적은 지상위에 거의 집을 짓는 것처럼 매장주체부를 만들고 나무무덤방을 만들어서 그 위를 여러겹의 돌로 덮어서 축조한 것이다.

 

카자흐스탄 국경내에서 타스몰라 문화와 사카 문화는 무덤구조가 거의 비슷하지 않다. (물론 카자흐스탄 동부산악지대의 북과 남쪽에도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묶는 이유는 동물문양장식 때문이다.

 

참고문헌

К.А. Акишев, Г.А. Куш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саков и усуней долины реки Или.

// Алма-Ата: 1963. 320 с.(아키세프, 쿠샤예프 일리강 변의 고대 사카문화)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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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권은 기원전 9세기부터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 초원의 각 지역에 여러 유적이 발견되는 되면서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는 기원전 7~4세기이다. 동쪽과 인접한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 기간이고, 서쪽과 인접한 지역인 이란지역에서는 앗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던 기간이며, 이들과 공존하던 사람들의 문화를 스키타이 문화(권)라고 한다. 각 지역에는 지역색이 분명한 문화가 있었지만 어떤 공통된 특징 때문에 이들을 통틀어 ‘문화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각 지역의 문화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보이는 것을 마구, 무기, 동물장식라고 생각하며 이를 스키타이 3요소라고 러시아 학계에서는 생각한다. 마구와 무기는 실용적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무덤에 부장되어 현재 전해지는 것은 많은 것은 의례적인 유물이다. 대형고분 위주로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무덤에서도 무기류는 의례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마구도 마찬가지이다.

 

동물장식은 좀 더 심하게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보여주기 위한 혹은 그 어떤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 마구에 다는 동물장식은 실제로 썼으니 실용적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필자가 생각하는 실용적인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를 말한다. 재갈과 재갈멈치를 통해서 고삐를 달아서 말을 부리면 된다. 동물장식을 달던 안달던 고삐가 채워진 움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마구 없이는 말을 부릴 수 없고 이동을 할 수 없다. 이들의 생업방식과 직결되는 것이다.

 

필자도 스키타이 3요소가 스키타이 문화권을 묶어주는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의례적인 요소가 강한 것다. 반면에 일상생활과 관련된 좀 더 실용적인 유물도 각 지역이 어떤 공통적인 문화로 연결될 수 밖에 없었던 근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무쟁반 혹은 나무 잔과 같은 것이다. 아르잔-1호에서는 아쉽게도 발견되지 않았지만(도굴되었을 가능성이 많음), 아르잔-2호에서 이미 발견되었고, 그 전통은 알타이의 유적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볼가 강 유역의 사우로마트 및 사르마트 문화의 이른시기, 흑해의 유적에서는 금판을 두른 목제 잔 등이 발견된다.

 

중앙아시아의 타스몰라 문화의 여러 유물은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다고 지적되었는데, 주로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및 허리장식과 버클 장식이다. 그 외 무덤구조는 아르잔-2호와 크게 다르기 때문에 아르잔-2호의 주요전통이 타스몰라 문화로 연결된다고는 보기에는 어렵다.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나무쟁반 대신해서 고기를 담는 그릇을 돌로 만들어서 무덤 속에 넣어 두었다. 돌 그릇의 형태는 평면형태 원형, 타원형 등 납작하고 가장자리에 테가 돌아가는 형태이다(그림 1). 아르잔-2호에는 나무로 만들었지만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돌로 만들었다.

시간에 따라서 형태에 변화가 있지만 기원전 5세기 이후에 타원형(그림 1-15)에 가까운 유물이 나타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슷하다. 문화의 전반기(기원전 7~6세기)에는 다리가 짧게 붙은 유물도 있었다.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석제 쟁반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무덤안에 목제 구조물을 넣는 경우가 없다. 단지 봉분을 높게 쌓고 무덤의 동쪽으로 긴 수염처럼 돌을 줄을 세워서(석열) 무덤인 것을 표시했다. 아마도 이들 북쪽에 있던 투바와 알타이와는 달리 목제 수급이 용이 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석제 쟁반도 목제를 대신해서 만들었지만 그릇의 모양은 닮았다. 물론 아르잔-2호에도 석제 쟁반은 있지만 아주 소형이고, 형태가 원형이 아니어서 타스몰라 문화의 석제 쟁반은 목제 쟁반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목제 쟁반

 

나무가 부족하니 돌로 쟁반을 만들었지만 이를 따라 할 만큼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는 널리 사용되던 유물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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