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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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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 위치한 곳에서는 일명 태양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울루그-호루움’ 이라는 명칭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는 직경 66m에 달하는 돌로 만든 둥근 유구가 발견되었는데, 제사유적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매장주체부가 없다.

그라치는 이 유구가 태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2021.06.06 - [시베리아 투바와 몽골의 유적/투바의 유적] -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태양의 사원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 사글리 바쥐 VI유적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유구가 발견되었다. 무덤과 함께 발견되었지만 유적을 발굴한 그라치는 ‘울루그-호르움’이라고 따로 명명했다. 모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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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알타이에서도 평면형태가 비슷한 유구가 발견되었다. 유스티드 I유적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는데, 쿠바레프는 무덤 유적과 함께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의례복합체를 구성하는 제사유구에는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발견된다. 중앙에 원형은 돌로 채우고 그 외곽을 2열로 돌을 돌렸고, 가장 중앙의 원형 유구와 2번째 고리 사이를 직선의 돌로 열을 만든 것이다(그림 1-1~5, 6). 울루그-호루움과 원형의 모티브를 사용했고, 방사선으로 원형 사이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직경 66m의 투바 울루그-호루움에 비해서는 현저히 작은 크기(직경 1.2~1.3m)이다.

 

뿐만 아니라 원형의 제사 유구 사이에는 방형으로 돌을 돌린 그룹의 알 수 없는 유구도 발견되었다(그림 1-1). 원래는 키가 높은 석주(돌기둥, 높이:100cm)는 세워져 있었으나,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쓰러진 상태였다. 세워진 상태의 석주도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의 의례복합체, 1: 방형제사유구, 2의 부분. 2: 유스티디 I유적의 의례복합체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방형제사유구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10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열을 이루는 무덤은 4기였고, 나무무덤방을 사용했지만, 말은 없는 무덤이었다.

 

투바의 태양을 상징하는 울루그-호루움 유적(기원전 5세기)와 비교하면 시간상으로는 알타이 유스티드 I유적(기원전 4세기)이 약간 늦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원형과 방형의 의례복합체를 만든 시기를 유스티드 I유적으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알타이에서 늦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다. 투바에서 거대 유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저지대의 평원이고, 알타이에는 계곡마다 유적이 만들어지는 지형적 특징도 고려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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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태양, 금 등 반짝이는 것에 집착했을까?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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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에도 우리나라로 치면 용역 발굴이 있다. 러시아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사고’발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계획에 없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유적이 발견되고 급하게 유적을 발굴해야 하는 경우이다. [대개는 도로나 건물을 지을 때 생기는 경우인데, 알타이에서도 이런 발굴이 1984년에 있었다. 러시아학계에서 주장하는 러시아의 문화재보호법은 표트르 1세 이후로 생겼다. 표트르 1세의 칙령으로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황금유물들을 그냥 녹이지 못하게 하고 가져오면 상금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다.]

 

엘로-2 유적(엘로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km, 우르술 강의 좌안 단구대)은 출토된 유물은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무덤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돌널무덤이긴 한데, 장방형으로 반듯하지 않고 평면형태가 사다리꼴로 넓은 쪽이 머리쪽(78cm)이다(그림 1-4). 무덤구덩이는 장방형(2.3×1.4m)이다. 관은 납작한 돌 3개와 덩어리돌 6개로 덮었으며 북쪽벽은 작은 돌로 채워진 상태이다(그림 1-3). 하지만 덮개 돌 1개가 이미 없어진 상태였다. 도굴의 흔적이다.

 

그림 1. 엘로-2 유적의 무덤과 출토유물, 5-7: 청동검과 청동허리띠, 8-목제칼, 9-멧돼지 송곳니, 10-곰뼈로 만든 펜덴트, 11-철제품, 12-토기

 

무덤내부의 상태는 매우 심하게 인골이 흩어진 상태였고, 관 밖에도 유물이 떨어진 상태였다.

돌널무덤의 형태(평면형태 사다리꼴)는 스키타이시대 인가 의심스럽지만, 출토된 유물 중에 청동검(그림 1-4)은 스키타이 시대 남성들이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무덤 상부를 덮은 돌은 3중으로 큰 돌을 돌린 후 그 안을 작은 돌로 채워서 마무리했다. 가장 중심의 직경은 3.5m, 그 다음은 6m, 가장 마지막 원의 직경은 8m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의 상부 적석은 가장 마지막 호석(직경 8m)이고, 그 중앙에 위치한 2열의 호석은 후대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 내부에는 불을 피운 흔적이 발견되고, 양뼈, 심지어는 사람의 두개골과 뼈, 청동칼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알타이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덮개 바로 위에 후대의 무덤을 썼는데, 엘로-2 유적에서는 좀 다른 양상이다. 출토된 유물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제 무덤인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원래의 무덤에 덮개가 열리면서 흘러 들어간 흙 위에 후대의 무덤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도굴한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을 묻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꽤나 귀찮은 후손들이었나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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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추야 강변의 스키타이 문화와 관련된 수 많은 유적 가운데 말 7마리가 매장된 유적이 있는데 보르탈 1 유적이다.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과 같이 많은 수?의 말이 매장되었다. 울란드리크, 유스티드,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에서는 1~2마리가 매장되었고, 말이 매장되지 않는 무덤(석관묘)도 많다.

 

보르탈 1 유적에는 백기 이상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크기는 다양하고 그중에서 6기가 스키타이 시대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1974년과 1975년에 발굴했다.

 

그림 1. 보르탈-1 유적의 무덤 배치도

 

백 기 이상의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은 7호이며, 직경 32×30m 정도이고 높이는 0.5~1m가량으로 넓고 편평한 보기 드분 형태이다.

 

7호 무덤에는 무덤의 북벽과 서벽에 말이 7마리 무덤구덩이에 매장되었다.

역시 통나무를 이용해서 무덤시설(5,7×4.7m, 깊이 5m)을 만들었고 바닥에도 통나무를 깔았다. 특이한 점은 무덤방의 바닥에서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3점은 못의 두께가 12×12mm로 매우 두껍지만 부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8개 이상의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청동못은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통나무관에 사용된 것이다. 보르탈-1 유적 7호에서 통나무관은 이미 없어졌지만 원래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은 남성의 무덤으로 오른쪽으로 눕고 다리를 굽은 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그림 3.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출토유물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이 유적은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약 100년 정도 늦은 바샤다르 유적곽 같은 시기의 유적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화살촉(그림 2-2) 때문이다.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쿠바레프는 화살촉의 형태로 유적의 편년했다.

 

보르탈-1 유적은 정확한 지점은 아직 못 찾았는데, 아크시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발르익-소오크 1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1 유적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한다.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100년 정도 늦으며, 유적을 만든 고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보르탈-1 유적의 7호분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등과 같이 말이 여러 마리 들어가는 점은 같지만 무덤의 북벽에만 말을 매장하는 방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통나무관을 쓰는 드문 무덤이다. 통나무관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 등 미라 처리된 시신에 사용되었는데 성인의 무덤이다. 반면에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몇몇 무덤에서는 미라 처리되지 곳에 통나무관을 쓰는 경우는 어린아이가 매장되었는데, 이 유적에서는 성인 남성의 무덤에 통나무관이 쓰는 경우가 확인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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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더운데, 시원한 곳으로...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에는 파지리크 문화가 있고 루덴코가 발굴한 바샤다르, 투엑타, 파지리크 등 유명한 유적 외에도 수 많은 유적이 존재한다. 이미 앞서서 설명한 바 있는데, 비슷한 양상이지만 아직 설명드리지 않은 유물도 있기 때문에 좀 더 소개하고자 한다. 울란드리크, 타샨타, 바루부르가지 유적 및 수 많은 암각화를 조사한 쿠바레프 박사가 조사한 유적이다.

 

발르익-소오크 유적은 우르슬 강의 좌측 지류인 쿠로타 강의 하류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동쪽은 산으로 둘러쌓인 형상이고 반대편은 강이 흐르고, 추야 국도가 지나간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곳에는 무덤군이 3열이 있는데 각각 발르익-소오크 1(2열). 발르익-소오크 2유적(1열)으로 명명되었다. 발르익-소오크 1유적과 발르익-소오크 2유적은 모두 2시대에 걸쳐서 사용되었는데 스키타이 시대와 후대의 고대투르크 시대이다. 이러한 현상은 해발 2000M에 위치한 유스티드, 울란드리크, 타샨타,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르익-소오크 1유적, 발르익-소오크 2유적 등 해발 1000M가량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 보다는 고대 투르크 시대의 무덤 위주이다.

예를 들면 발르익-소오크 1유적에서 스키타이시대의 무덤은 4기이고, 나머지는 초기투르크시대의 무덤이기 때문에, 이 유적에서 무덤이 열을 짓는 현상은 투르크 시대에 와서 나타난 것이다. 발르익-소오크 2유적에서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은 1기이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 계곡에는 무덤이 산발적으로 떨어져서 존재했고, 열을 만든 것은 초기 투르크 시대에 들어와서이다.

 

그림 1. 발르익-소오크 1, 발르익-소오크 2 유적, 검은 점이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 그 외의 동그라미는 초기 투르크 시대(5세기 중반~7세기)의 무덤이다. 무덤이 열을 지어서 드러서는 현상은 알타이에서 스키타이 시대부터 확인된다. 하지만 계곡은 초기 투르크 시대에 주로 이용되면서 무덤이 열을 이루면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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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울란드리크 등 유적에서는 그 반대로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이 열을 이루고 난 뒤에 초기 투르크 시대(5세기 중반~7세기)의 무덤은 나중에 들어온 것이다. 알타이에서 열을 이루어 무덤을 만드는 현상을 스키타이시대에 시작된 것이고 초기 투르크 시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스키타이 사람과 투르크 시대 사람들이 무덤으로 점유한 지점은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알타이 지역에서도 시대에 따라서 무덤의 지점을 다르게 사용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더 높은 곳에 스키타이 시대 무덤이 밀집되는 현상이 확인된다.

 

 

울란드리크, 유스티드, 바르부르가지 유적의 사람들과 무덤구조는 같을까? 유물은 다른 게 있을까? 머리에 모자는 썼을까? 반짝이는 금박으로 장식을 했을까?등등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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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기원전 7세기 쿠르간은 헴칙 강변에서도 발견된다. 헴칙 강은 예니세이 강의 지류이다.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있는 우육분지는 평면형태가 삼각형으로, 그 보다 남쪽에 만들어진 동서방향으로 길쭉한(좀 더 자세하게는 눈썹처럼 약간 굽은 형상) 분지를 따라서 여러 유적이 산재하는데 그 중에 한 곳이다.

 

헴칙-봄 III유적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1,2호 쿠르간의 9호묘이다. 유물이 가장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수수께끼 동물장식(그림 1-1)’이 그려진 골제 빗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 1,6: 1,2호 쿠르간의 9호묘 출토품, 3-1,2호 쿠르간의 13호묘, 4-1,2,호 쿠르간의 1호묘, 2: 헴칙 봄 V유적

 

그림2.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9호묘

 

그림 3. 헴칙-봄 III 유적, 1-퇴장지, 2-1호묘 출토품, 3-3호묘 출토품, 4-9호묘 출토품, 5-8호묘 출토품, 6-13호묘 출토품

 

9호는 왼쪽으로 누운 시신이 무릎을 굽힌 채 확인되었다. 머리는 서향이다. 청동제품은 칼(그림 2-7, 그림 3-4), 송곳(그림 2-28), 바늘(그림 2-22), 클립(그림 2-2, 18,19), 중앙에 꼭지 달린 거울(그림 2-26, 그림 3-4), 골제 빗(그림 2-13)이다. 금제품은 귀걸이(그림 2-21, 1-6)가 있고, 석제품(그림 2-6)과 터키석제 구슬 8점(그림 2-1,5,15,16,23,32), 칼세도니제 구슬 2점(그림 2-3,12), 구슬 8점(그림 2-4,9-11, 7,24,27,39), 석제 구슬 10점(그림 2-8,20,25,31,33), 목제 그릇편(그림 2-5)이 나왔다. 목제 그릇편은 인골의 우측 어깨뼈 부위에서 나왔고, 청동칼(그림 3-4)은 우측 골반뼈 옆에서 땅에 꽂힌 채 나왔다.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 아래에는 재갈과 재갈멈치 및 고삐를 장식한던 유물이 발견되었다(그림 4-1). 무덤시설이 남아 있지 않고, 인골도 거의 없어진 상태이다. 이곳을 퇴장지라고 생각했다.

 

그림 1. 헴칙-봄 III유적의 1,2호 쿠르간

 

헴칙-봄 III유적에서 발견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3-1), 9호묘에서 나온 청동칼과 청동거울(그림 3-4) 등은 이미 아르잔-2호에서 나온 적이 있다(아래 포스팅 확인). 발굴된 순서로 하면 아르잔-2호(2000~20004년 발굴)가 헴칙-봄 III유적(1957년~1960년대) 보다 늦게 알려졌지만, 시간적 순서로 하면 헴칙-봄 III유적에서 축조된 무덤과 유물은 아르잔-2호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9호묘에서 나온 사람의 청동거울과 청동칼은 아르잔-2호의 석관묘에서 나온 유물과 유사한데, 서로 유사한 사회적 배경(계급?)에 있던 사람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동물장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고 큰 쿠르간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유물을 가지고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 속의 남성보다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까? 알 수는 없다. 

 

2020.06.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두 명이었을까?

 

두 명이었을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직경 80m 안에 주인공 무덤을 제외하고도 무덤 25기가 함께 매장되었다. 주인공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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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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