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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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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8. 09:22 고깔모자와 코트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의 알타이에 묻힌 남성들은 여러 공통점이 있지만 오늘은 머리에 쓴 모자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해발 2500m의 가장 높은 곳에 매장된 남성들은 필자가 이전 포스팅에서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한 모자를 쓰고 있다. 고깔의 가장 꼭대기 부분에 새머리가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자 자체는 펠트제이고 동물장식은 목제만 남아 있지만 금박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새머리 고깔모자라고 지칭했지만 자세히 보면 새머리 위에는 산염소 혹은 사슴장식이 더 위에 있다. 굽동물의 뿔이 없어진채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떤 동물로 특정하기는 힘들다. 새머리 고깔모자가 발견된 무덤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같은 유적 1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와 2호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는 소년의 무덤인데, 새머리 대신에 황소가 달려 있지만 모자 자체는 거의 같은 형식이다. 이 중에서 미라로 시신이 처리된 것은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

 

그럼 이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것일까?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예를들면 울란드리크 IV유적의 2호분 출토품 가운데 말을 장식한 유물은 아크 알라하-1 유적과 유사하다고 이미 이야기 했다.

 

 

2020.10.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의 가장 오래된 무덤

 

알타이 울란디르크 계곡의 가장 오래된 무덤

알타이에서 고대 자연도로 역할을 한 추야 강의 지류인 울란디르크 강 주변에는 현재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8개가 알려져 있다. ‘울란디르크’라는 명칭을 쓴 유적은 I~V번이고, 타샨타 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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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무덤은 남녀가 매장되었는데, 머리맡에서 목제 동물장식들이 발견되었는데, 아크 알라하 1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같다.

 

그림 4.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분, 상단 남성 하단 여성

 

특히 이 여성의 머리 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복잡한 가채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머리 복원

 

울란드리크 IV유적 2호의 남성은 위에서 말한 해발 2500m의 남성들과 같은 모자를 착용했을 것이다.

 

다시 파지리크 유적으로 돌아가서 파지리크 2호에는 남녀가 매우 특이한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발견되었다. 변형된 동물이 장식된 것은 남성, 원통형 머리장식 끝에 말총이 달린 것으로 매우 유니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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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기원전 4세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식 유적의 어떤 무덤 중에는 소년의 무덤으로 높은 고깔모자와 의복을 갖춘채로 매장되었고 그대로 발견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지역문화인 사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이 소년은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시된 바 있다.

 

고깔모자는 높이가 60cm가 넘는데, 황금재질로 된 각종 형상물(동물과 식물)이 부착되어서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로 호랑이(그림 2-4~6)와 새(그림 2-1), 사자(그림 2-2), 말(그림 1-2)은 납작한 금판에 선각 기법을 넣어서 표현한 것이고, 산양(그림 1-1)과 염소(그림 1-7)만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앞면(김재윤 편집)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측면(김재윤 편집)

 

알타이의 고깔모자가 모자 끝과 양 측면에 2~3개 정도의 장식을 붙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과도하게 황금장식으로 부착되었다.

알타이와 비교할 때 모자 뿐만 아니라 의복에도 차이가 있었다. 황금인간이라 불리는 소년은 상의가 짧고 여밈이 있는 스타일의 상의와 하의는 타이즈를 착용하고, 가죽신발을 신었다. 상의의 위는 허리띠를 두르고, 양쪽에 길이가 다른 검을 착용했다.(그림 3, 4).

 

그림 3. 이식 유적 황금인간 상의

 

그림 4. 이식 유적 황금인간의 벨트 및 복원도

 

그림 5. 흑해,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의 스키타이 전사

 

알타이의 남성이나 여성은 남녀 구분이 없이 비슷한 상의를 착용했고, 여밈이 없는 것(그림 6)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피코트가 유적에서 그대로 출토되기도 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허리띠를 착용하고 무기를 착장하는데, 한 쪽에는 고리트, 한쪽에는 검과 칼 및 투부를 착장했다. 아크 알라하-1호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남성 상의

 

이식 유적의 소년 상의는 여밈이 있다는 점에서 흑해지역의 전사상(그림 5, 쿨 오바 유적 뿐만 아니라 솔로하 유적의 황금빗에서도 볼 수 있음, 아래 포스팅 참고)에서 볼 수 있는 복장과 유사하다. 양쪽에 검을 착용하는 것도 알타이와는 크게 닮지 않았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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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하면 이식 유적의 의복은 단순한 고깔모자를 쓰는 흑해지역보다는 동물장식으로 장식하는 고깔모자는 알타이와 닮았지만, 복장은 오히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의복과 더 비슷하다.

이식 유적에서 발견되는 복장은 이와 같은 특징이 있지만 사카 문화에는 알타이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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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은 1972년에 처음 발굴되었는데, 1호로 명명된 무덤이 가장 최대의 성과였다고 한다. 이 무덤에서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이 붙은 토기(그림 1)가 발견되었다. 이 염소와 사슴 아플리케 장식은 출토지가 명확하고,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암각화의 동물그림도 언제 그려졌는지를 추정할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노보고르도바는 이 토기 때문에 유적을 전부 발굴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 출토 토기

 

1호는 이미 서쪽이 모래 채취로 인해서 파괴되었는데, 처음 발굴에서 트렌치의 벽에서 반쯤 썩은 통나무가 나왔고, 이를 정리해서 무덤구덩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발굴을 하기 전에 문화층 조사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유적의 단면을 잘라서 보는데 그 때 구덩이를 파게 된다. 우리나라는 긴네모꼴로 파지만, 러시아에서는 정사각형으로 판다. 트렌치는 그 구덩이를 일컫는다. 필자가 어렸을때는 수박장수는 수박을 세모로 잘라서 익은정도를 보여주고 팔았는데, 비슷한 행위이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지만... )

 

1호(그림 2-A, Б-, В)는 나무무덤이 다. 통나무방은 높이 80cm이고, 4단을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다. 동쪽은 2.4m, 북쪽은 2.5m, 남쪽은 1.85m이고 바닥에는 직경 5~8cm의 나뭇가지가 깔려 있었다.

통나무 위는 두꺼운 나무로 나무방과는 반대방향으로 덮었고, 그 사이의 작은 나뭇가지로 메꾸었다. 무덤구덩이는 모래와 잔돌로 채웠다. 바닥에는 나뭇가지 위에 커다란 판석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일부만 보존된 인골, 완전히 보존된 2기의 인골이 각각 놓여 있다. 무덤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인골은 2기만 있었고 나머지 3기는 부서진 상태이다. 4명의 성인(성인 남성, 장년남성, 장년 여성, 성인여성)과 10~12살 어린 아이의 인골이다. 완전한 인골은 모두 다리를 웅크린 상태이다.

피장자의 다리 부근에서는 화살촉 두 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화살통 2기가 들어간 것이다. 골제 화살촉(단면 삼각형)이 대부분이고 청동화살촉은 2점 발견되었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1호 무덤과 출토 유물, A- 단면도, Б-무덤 평면도, В-무덤방덮개, 1-철제 칼, 2-5: 청동칼, 6-청동거울, 7-12: 화살촉 13,14, 16-18, 25-27: 청동버클장식, 15-청동제 갈고리, 19-청동제 송곳, 20-축소된 투부(전투용도끼),21,22-청동화살촉, 24-멧돼지 이빨 펜던트, 28-청동제 버클, 29-석제 원판? 용도미상

 

두개골 부위에서 중요 유물들이 나왔는데, 손잡이가 달린 청동거울, 축소된 투부, 청동버클, 은제 반지, 석제 원판, 토기 항아리(그림 1)도 두개골 근처에서 나온 것이다. 울란곰 유적의 모든 용기는 대부분 두개골 위에서 발견된다. 인접한 지역과의 차이이다.ㅋ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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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2. 13:18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는 다양한 남성이 입체상과 평면상으로 만들어졌다. 입은 옷과 머리에 쓴 모자로 보아서 페르시아 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어딘가에 걸터 앉은 모습으로 제작된 것이다. 왼팔에는 막대기를 쥐고 있고,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형상이다. 다리 사이에는 막대기가 있는데, 어딘가에 고정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페르시아 남성, 높이 7.4cm

 

제이말은 이 남성은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남성과 함께 전차를 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아래포스팅). 바퀴와 말이 없어진 전차에 앉았던 승객?이다. 이 남성의 모자는 끝이 뾰족하지 않고 앞쪽이 둥글게 혹은 앞이 기울어지게 만들어진 것으로, 턱을 가리도록 된 것이다. 모자의 뒷면에는 목얼 덮고 있다. 학자들은 모자와 복장은 페르시아의 것이라고 한다. 또한 턱아래만 길게 기른 턱수염도 페르시아 남성의 스타일이다.

 

2020/12/2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와 페르시아 문화...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와 페르시아 문화...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는 전차모형이 1점 더 발견되었다. 어제 보여드린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뒤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시다시피 말과 바퀴가 보존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깔모자 쓴 라이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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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 유적에서 출토된 벌거벗은 그리스 쿠로스 소년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소년이 쓰고 있는 모자의 앞쪽이 유사하다.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이 시베리아의 부굴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2020/12/11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누구 일까요?

 

누구 일까요?

아무다리야 퇴장 유적의 유물 가운데는 스키타이 스타일의 동물장식(7점은 동물장식 1점은 도깨비?)가운데 그리스의 쿠로스(kouros) 입상으로 추정되는 인간형상물(그림 1,2)도 발견되었다. 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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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자의 턱을 막도록 되어 있는 페르시아 모자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의 쿠로스 입상과는 차이가 있다. 부굴리 출토의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는 뒤는 길게 내려만, 턱을 막도록 되어 있지 않아서 다르다. 그런데 모자에 달린 턱의 장치는 말이나 전차를 탈 때 벗겨지지 않도록 고안된 부분일 수도 있다. 모자에서 중요한 부분은 남들에게 보이는 윗부분이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소년이 쓰고 있는 모자, 페르시아 남성의 모자(그림 1), 부굴리 출토의 모자는 거의 비슷한 모자 일 수 있다.

 

그리스의 소년상은 벌거벗은 채 모자를 써서 어색하다고 했다. 유물속의 그리스인들은 몸을 드러낸채 표현되지만 모자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남성을 참고로 한다면 그리스 소년은 페르시아의 모자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앉은 자세의 페르시아 남성이 전차를 모는 스키타이 인과 함께 세트였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가 있었던 장소에는 스키타이 인, 페르시아 인, 그리스 인 등이 모두 모였다는 결론이다. 물론 이 결론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 점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어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어떤 문화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 장소에서는 어떤 문화와 어떤문화를 구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냥 그들은 어떤 시점에  그들이 좋아했던 문화를 공유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평면판 속의 남성들은 모두 무엇가를 들고 봉헌?하는 장면이라면 어떤 사원지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을 수 있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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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3. 13:20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현재 타지기스탄 국경으로 추정되는 아무다리야 퇴장지의 유물 중에 한 그룹은 인간형상물이다. 평면형과 입체형으로 구분되고, 거의 남성이다. 각 유물에 표현된 남성의 의상과 모자가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민족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 페르시아인으로 추정되는 은제 입상(높이 14.8cm)(그림 1)이 있다. 이 남성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는데, 정수리가 낮은 스타일이다. 끈으로 뒤쪽으로 묶은 것으로 원통형 모자로 계단형으로 만들어서 티아라로 만들었던 생각된다. 특히 입상의 뒷면은 머리카락을 뒤로 말아서 접은 형태이다. 머리카락은 타래모양으로 말려 있다. 윗 옷은 긴 주름, 매우 넓고 느슨한 소매로 보아서 페르시아 복장이다. 발등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출토 은제 입상

 

B. Goldman(1974)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불균형적으로 큰 머리, 짧은 팔, 긴 다리, 납작하고 단단한 입체상 등으로 보아서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귀족으로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의 페르시아 귀족 복장이라는 점은 달턴도 지적했다.

 

그런데 달턴(1905, 1964)은 모자 상부에 고리가 돌아가면서 계단처럼 생기는 모양으로 보아 Achaemenid 왕조의 왕 중에 한명( Cyrus II)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르네트는 달턴이 이 입상이 시러스II세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거쉬만도 이 입상을 페르시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손에 들려 있는 물체가 신성함을 의미하는 나뭇가지 한 다발이 아니라 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제이말도 거쉬만을 지지했다.

 

 

원통형 모자를 쓴 은제 입상은 얼굴생김새도 평면판에 등장하는 스키타이 인과 다르다. 큰 눈과 코 끝이 화살표처럼 생긴 모습도 그러하고, 수염 스타일도 스키타이 인이 턱 전체를 덮는 것과는 달리 턱 아래만 길게 길렀다.

실제로 페르시아 왕(남성)의 입상으로 추정하는 석상에는 뒷머리 스타일이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다. 라피스라줄리(청금석)에 조각되었는데(그림 2) 아파다나 궁전 벽에 새겨진 왕(그림 3) 들의 티아라는 원통형 끝에 이빨처럼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 3의 페르시아 남성들의 모자 혹은 티아라는 가장 상단이 이빨처럼 표현되어 있긴 하지만 그 표면도 굴곡이 있다. 그림 2의 티아라가 표면이 매끈 한 것과는 다르다. 그림 3에 나오는 모자는 금속이 아닌 두터운 직물로 제작되었다면 가능하지만 금속으로 저런 표현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있다면 구부러지는 것이 쉬운 물질일텐데...

뿐만 아니라 그림 2의 입상이 남성인지도 의심스럽다. 유물 속의 페르시아 남성들은 수염을 기른 상태인데, 라피스 라줄리의 입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림 2. 페르세폴리스 32번 방 출토, 높이 6.6cm, 너비 6cm

 

그림 3. 아파다나 궁전벽에 새겨진 페르시아 남성들

 

그래서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의 은제 입상은 모자 끝이 납작하고, 머리를 뒤로 말고 있는 스타일, 타래모양의 머리카락, 의복 등을 보아서 페르시아 인 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히 모자의 표현은 아파다나 궁전에 나오는 형상과는 차이가 있어서, 왕으로 추정하기는 힘들다. 

 

참고문헌

Goldman B. Origin of the Persian Robe. — «Iranica Antiqua», Leiden, 1974, vol. 4, fasc. 2, p. 133-152.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Examples of Early Oriental Metal-work. 2nd edition. London, 1926; 3rd edition. London, 1964.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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