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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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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가 흑해부터 시베리아 및 일부 만주지역까지 포함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3요소인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에서 공통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하고 이해되지 않는 유물은 동물문양장식이다. 왜냐하면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제 각각 다르고, 사실적이지만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한 지역에서만 특정적으로 나타나는가 싶으면, 또 여기 저기서 다른 시간대에 나타난다.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또 비슷해서 찝찝하다.

 

동물문양장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장식이다. 아르잔-1 유적의 말무덤에서 출토되어 말의 앞 가슴에 매달았던 유물이다. 아르잔-1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9세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가장 이르다고 할 수 있다.

 

흑해 및 그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현재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발견되었다(그림 1). 이 유적은 처음 발굴당시에는 기원전 10세기 까지 올렸으나 최근에는 기원전 750-650 유적으로 생각한다(알렉세예프 2003).

 

그림 1. 지비예 퇴장 유적 출토, 장식판

 

그런데 흑해 및 그 인근한 곳에서 원형의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 후반-5세기 경에 대부분 나타난다. 마키예프카, 바소프카, 차스티흐, 쿨라코프 등 유적이다. 특히 마키예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그리스 토기로 기원전 6세기 후반(갈라니나 1977)으로 보기도 하고, 연구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5세기 1/4분기로 보기도 한다(콜투호프 1999).

 

흑해 원형 맹수장식은 기원전 5세기 이전의 특징적인 유물이라기 보다는 기원전 5세기 이후로 보는 것이 더 많은 연구자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그림 2. 흑해 부근에서 출토된 원형 맹수장식 1-몰도바, 레스케이치이 노이 유적 출토, 2-마키예프카,3-바소프카, 4-차스티흐,5-스타이킨 베르흐 출토, 지팡이 끝 장식(scepter), 6-스타이킨 베르흐, 화살, 7,8-쿨라코프 유적의 지팡이 끝장식과 화살

 

 

 

그림 3-9,10-쿨로코프 유적의 장식판, 11-퍄노프카 채집, 장식판,12-볼가하류의 코스몰스키 출토 장식판,13-15: 코발레프카 출토

 

 

 

시베리아의 원형 맹수장식과 유물도 다른데, 아르잔-1호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원형 맹수장식에 비해서 흑해의 유물은 주둥이가 길다. 그래서 호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굽동물로 생각기 쉽지 않지만 몸을 둥글게 말 수 있는 동물은 호랑이과이고, 발톱을 날카롭게 표현한 점도 맹수이다.

맹수장식이 붙은 곳은 대부분 장식판이거나 혹은 지팡이 끝장식(그림2-4,7)이다. 이외에도 겁집과 도끼장식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흑해에서는 맹수장식이 기원전 6세기 후반 혹은 기원전 5세기 이후에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아르잔-1 유적과 비교적 가까운 중앙아시아, 아랄 해 주변, 미누신스크 지역에서는 이 보다 이른 시기(기원전 7세기)에 나타난다. 사실 아르잔-1호 보다도 더 이른 기념비에도 숨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1977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Поднепровья (Эрмитажная коллекция Н.Е. Бранденбурга). / САИ. Вып. Д1-33. М.: 1977. 68 с.(갈라리나 1977, 고대 드네프르 강의 스키타이)

С.Г. Колтухов 1999: «Золотой» Симфе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ХЕРСОНЕССКИЙ СБОРНИК. X -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 статей / Отв. ред. М.И. Золотарев: Национальный заповедник "Херсонес Таврический"; Крымский филиал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НАНУ. - Выпуск 10. - Севастополь, 1999. - 7-22 c.콜투호프 1999, 심페르폴 쿠르간의 황금)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황금항아리도 이 시기의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4세기 무덤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이 왕국은 흑해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던 여러 부족 중에서 그리스와 중계무역을 하던 국가 혹은 부족으로 알려졌다.

 

초원 유목민이 흑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레치 반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역에 살던 부족은 자신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보스퍼러스 국의 수도는 파니카페움(Panicapaeum)으로 이 곳에는 공방이 있었고, 스키타이 귀족의 유물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올리비아는 이미 쇠퇴하고 그 역할을 이 도시가 물려받았다. 올리비아, 파나카페움 등에 있던 공방에서 그리스-스키타이 양식의 유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도. 쿨-오바 유적의 위치, 올리비아(노란색)

 

지역민과 함께 그리스인도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무덤이 쿨-오바 무덤이다. 무덤의 외부형태는 스키타이인의 무덤이지만, 그 내부의 무덤방은 그리스의 건축물인 판테온 스타일이고, 그 중앙에 놓인 관은 스키타이 관인 나무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

 

이 무덤의 벽을 장식하던 프리즈(frieze)로 사용된 장식판에는 말을 탄 남성무사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금판의 반대면을 눌러서 표면을 솟아나게 만든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긴 머리와 턱수염, 콧 수염, 벨트 자켓, 통이 넓은 바지, 부드러운 신발(moccasin)등은 스키타이 무사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이 가죽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로방향의 침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신발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데, 원래는 가장자리 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장식판에는 바늘구멍이 확인되는데, 무덤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하다가 무덤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4세기, 금, 너비 5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단면(상)과 무덤 바닥면(하)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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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스키타이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된 유물들이 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후반기에는 여신의 모습이 각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침발카 유적에서는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쥔 여성, 쿨 오바 유적에서는 어깨에 그리핀이 달리고, 한 손에는 단검, 다른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이 확인되었다.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에서는 그리핀과 손의 표현은 없고 대신 날개달린 여성이 장식판에 표현되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450~400년(기원전 5세기 후반)에 해당된다(알렉세예프 2003).

 

*앞의 포스팅에서 유적의 연대를 기원전 4세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마다 약간씩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세예프가 정리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연대는 유적에서 채취한 탄소연대와 유적의 유물을 직접 비교한 그간의 업적을 총정리 한 것이다.  비교적 유적의 연대를 세분화 하고 있어서 그가 정리한 연대를 참고로 하고자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에게 날개가 생기고, 양 손이 모두 표현된 유물이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다. 이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대형고분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300년 경(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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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다고 했으나(아르타모프 1966), 두 손에 옷자락 끝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막대기 끝을 장식하는 일종의 간두식(竿頭飾: 막대기 머리 장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의례용품이다.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15.7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은 흑해에서 가장 큰 무덤 중에 하나인데 높이가 21m 이상인, 둘레길이는 320m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3).  봉분 주변으로는 흙으로 된 벽이 둘려져 있고, 해자도 설치되었다(그림 4-4). 1851년에 봉분의 남쪽에서 철판이 확인되고, 그 때 청동으로 만든 여신(그림1)의 여신과 청동 삼지창(그림 2)이 함께 노출되었다. 발굴은 1853년, 1855-1856년에 했다.

 

그림 2.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28.9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가장 중앙에 만들어져 있다. 중앙 무덤의 통로에는 인간 두개골이 확인되었고, 복도의 앞부분에는 말 뼈가 확인되었는데 14마리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도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북동쪽에는 두 번째 무덤이 있는데, 봉분이 만들어진 이후에 생긴 추가장이다. 입구와 무덤방으로 연결되는 복도로 구성된 것이다. 두 무덤방 모두 도굴당한 흔적이 생생하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은 도굴이 매우 극심했지만 남아 있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무덤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체르도믹 유적, 솔로하 유적과도 다른 무덤 구조이다. 두 유적의 무덤은 외형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지만, 내부는 그리스식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프키폴 유적은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양식 그대로이지만 당대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림 3.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발굴 전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의 단면도, 단면도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것은 도굴의 흔적을 그린 것이다. 1,2-도굴입구, 3-추가장(북동쪽 무덤방)의 무덤방단면도, 4, 봉분과 중심무덤방의 동서단면도, 5-중심 무덤방의 남북단면도, 6,7,8-중심무덤방 복도의 단면도

 

 

알렉산드로프스키폴에서 나온 아르김파사는 동물문양이 없고, 날개와 손이 있는 여신이다....

이 모습이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신화속의 인물일까?

곧 없어질 자신들의 세상을 알았을까?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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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8~7세기)에서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에는 꼭지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부착되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이 유적의 굴레장식으로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이른 스키티이 유적인 시베리아의 아르잔-1 유적(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1903년부터 슐츠가 발굴했는데, 그 중 2호분(슐츠의 번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다리가 나팔상으로 붙어 있고, 손잡이에 산양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의 입구 가까이에는 삼각형 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1).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그림 2.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청동솥은 1점 더 있는데, 동체부에 산양장식과 기하학적 문양이 붙어 있고 손잡이에도 산양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다. 청동솥 바닥에는 아래에 다리가 붙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모양은 그림 1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당시에 이미 부서진 채 확인되었다.

 

슐츠는 무덤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대에 발굴된 바에 따라서 살펴보면 슐츠는 무덤의 크기를 매우 과장되게 설명했다(갈라니나 2006).

 

한편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호에는 2중으로 나무방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에 청동솥 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솥은 나팔상의 다리가 달린 점은 비슷하지만 손잡이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유사하다.

 

2020/05/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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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8~7세기 청동솥은 동물문양장식이 주요하게 부착되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 문양의 요소에도 그리스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다.

 

그림 3. 라스코파나 모길라 출토, 기원전 4세기

 

기원전 8~7세기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모두 청동솥이 확인되지만 아르잔-2 유적 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은 동물문양이 부착되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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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숭배하고 스키타이 왕족 또한 포세이돈에게 희생물을 바친다. 스키타이에서 헤스티아는 타피티(Табити, Tabiti), 제우스는 파파이(Папай, Papai), 땅은 아피(Апи, Api), 아폴론은 고이토시르(Гойтосир, Goytosir),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아르김파사(Артимпаса, Artimpasa 혹은 Argimpasa) , 포세이돈은 파기마사다(Фагимасада, Fagimasada) 라고 한다.’

 

헤로도투스가 남긴 짧은 메시지에서 스키타이 신의 이름을 알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스키타이 문화에 일곱 신 숭배사상이 있었다고 여겨진다(아바예프 1962). 7신 가운데 여성은 타피티와 아르김파사이다. 헤로도투스가 그리스와 스키타이 신을 비교한 것은 각 신의 기능이 같았기 때문이다.

타피티는 그리스의 헤스티아와 같은 기능인 난로 혹은 불의 신이고, 아르김파사는 다산의 여신이다. 헤로도투스는 아프로디테와 비교했으나, 고대 이란(아나톨리) 지역의 신인 ‘아르티’와 이름이 거의 유사해서 아르티(Арти, Artie)와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기하학적인 문양보다는 주제가 있는 문양표현이 많다. 그중에 인간도 많이 등장하는데, 여성이 표현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거울이다. 은제거울에 표현된 여성은 양 손에 맹수를 손에 쥐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는 맹수를 대신해서 그리핀 혹은 헤라클레스의 머리와 단검을 손에 쥐기도 한다. 손이 없이 날개표현만 있는 유물도 있다.

 

 

2020/08/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북안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탄생설화가 있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들이 하는 이야기가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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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했을 때 인접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그리스, 우라르트,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제작했던 것이다. 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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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침발카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데, 몸통은 뱀의 형상이다. 유물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으나, 스키타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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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여신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는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스키타이 여신인 아르김파사 혹은 소아시아(현재의 아나톨리지역)에서 유행한 키벨레(Cybele)가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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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유적인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는 귀걸이 장식판에 두 여성이 표현되어 있다.

양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고, 하반신 옷자락 부근에 두 마리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다. 다른 유물과 다른 점은 하반신의 옷자락 중간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데, 임신한 모습일 가능성도 있다.

 

그림 1.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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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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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 나온 귀걸이의 여성은 같은 시간대의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에 표현된 여성과 비교해 볼 때 세부 표현이 매우 불분명하다(한마디로 허접하다). 각 유물의 제작지가 다르고 만든 이가 달라서 이기 때문일 수 있다.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종교의 엄격하고 근엄한 여신이라기 보다는 유행하던 문양일 수 있다. 다산의 여신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배가 나오게 표현했을 수 있지만, 다른 유물의 여성은 그렇지 않다. 그 만큼 이 시기의 여신숭배 혹은 스키타이 신화가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엄격한 분위기라면 배 나온 여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

 

헤로도투스가 알았던 스키타이 신화는 원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을 수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에 그려진 여성은 기원전 8~7세기에 통용되던 신화 속의 인물이고,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490년~480년 사이를 배경으로 기원전 440년에 기록(역사)을 남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Абаев В. И. Культ «семи богов» у скифов // Древний мир. Академику В. В. Струве. М., 1962.(아베프 1962, 스키타이의 7신에 대한 신화)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모졸레프스키 1979, 톨스타야 마길라, 우크라이나어, 도면참고, )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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