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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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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된다. 살아생전에 함께 사용하던 일상용구 중에 특히 식기는 무덤방 안에 관 밖에 몇 점 부장되었다. 말은 무덤방 바깥에 무덤구덩이의 북쪽벽에서 늘 확인되는데, 대부분 마구를 착장한 말이 많다.

투엑타 1호분은 말이 8마리 매장되었는데, 다양한 굴레장식(그림4 참고, 마구용어)이 확인되었다.

초본류를 형상화한 것과 동물을 형상화 해서 장식판으로 사용했다.

그 가운데 동물은 사슴, 호랑이, 그리핀 외에도 동물을 간략화한 굴레장식도 많다.

그리핀은 알타이에서 가장 많이 확인되는 독수리머리와 맹수의 몸통을 결합한 것이다. 독수리머리그리핀은 머리만 굴레장식에 많이 활용되었다. 이 유물은 100년 뒤의 파지릭 유적, 아크 알라하-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도 계속 확인된다.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뿔, 귀, 갈기가 독수리 머리에 합체되면서 생성된 것인데, 갈기가 없는 그리핀(그림 1)도 설명드렸다.

 

그림 1. 투엑타 유적 1호분

 

독수리 머리 그리핀과는 다른 종류인 합성동물도 있는데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구름 혹은 날개가 붙은 장식판(그림 2)이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1호분

 

또 호랑이 머리에 사슴뿔을 부착한 유물이 확인된다(그림 3).

 

그림 3. 투엑타 유적 1호분, 뿔 달린 호랑이, 가죽 아플리케

 

 

가죽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지릭 유적 1호분에서 안장장식으로 가죽으로 표현된 동물문양이 있어서 이 유물도 안장장식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합성동물이라는 점에서는 그리핀의 여러 종류 중에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이 유물은 다른 각도에서도 볼 수 있다. 호랑이와 사슴의 결합(동물투쟁문의 요소)이라는 점이다.

 

 

그림 4. 마구 명칭

 

 

파지릭 유적과 투엑타 유적의 유물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파지릭 유적의 유물을 소개한 것이 유투브 동영상에 떠서 소개해 드린다. 대부분 5호 출토품이다. 

코로나 약(백신 혹은 치료제)나오기 전까지 못갈 것 같은데, 구경하시기 바란다. 

 

youtu.be/rAvoeqxfEHI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한 무덤의 경계벽 안에 무덤 26기를 비롯해서 장례식에 관련된 여러 유구(퇴장지), 제단, 사슴돌 등이 발견된 곳이다. 의례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직경 80m에 이르는 거대한 제사장소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르다고 보는 아르잔-1호 유적보다는 늦지만 그래도 앞서 살펴본 2500년 전 알타이의 무덤 보다는 이르다.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우육고원에 위치한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하는데 일종의 지역명칭이다. 기원전 5세기대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와는 무덤구조가 다르다. 말과 함께 매장한다는 기본 컨셉은 이 시절에도 있었지만 실제 무덤구조는 다른 것이다.

 

심지어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도 같은 동네의 무덤이지만 시간차에 따라서 사회도 변했을 것이고, 무덤도 변했다. 무덤의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가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크고, 무덤을 축조하는 재료, 구조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르잔-1호는 도굴이 심해서 아르잔-2호와 유물의 비교는 쉽지 않지만 있는 유물로 비교해도 특히 마구의 변화가 심하다.

 

유물 가운데서 동물문양장식에도 변화가 있는데, 맹수의 자세가 눈에 띄게 변했다. 아르잔-2호에서는 아주 작지만 그리핀이 확인되기도 했다.

 

장례식에 사슴돌을 이용했다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내용물에는 차이도 있다. 특히 낙타가 이 시점에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낙타털을 이용한 직조물은 파지릭문화의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는데 이 보다 더 이른 시점에 낙타가 이 지역에서 알려졌다는 것을 점판암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여성의 머리장식에서도 알 수 있다.

 

주인공 여성은 30~35세로 사후에 두개골의 덮개 윗부분과 아래턱 오른쪽 절반이 날아갔다고 한다. 여성의 키는 무릎을 굽힌채 측정했을 때 대략 160.3cm이다.

남성은 40~45세 혹은 50세 정도 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남성의 두개골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두개골의 왼쪽 절반만이 확인되었다. 치아에 사후 손상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무릎을 굽힌 채 측정한 키는 166.3cm인데, 거의 170cm에 달했을 것으로 본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두개골, 위-남성, 아래-여성

 

형질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누신스크 분지에 분포했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문화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 문화)와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역시 스키타이문화의 지역명칭)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울람곰문화는 이 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5~기원전 3세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베리아 투바에서 몽골 서부로 문화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투바에서 확인되는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을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면 남부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인 아파나시에보 문화에서 확인되는 유로포이드와 관련이 있다. 특히 여성은 현재 중앙아시아의 민족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치키세바).

 

그래서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의 주인공 남녀를 복원한 모습은 아래와 같다.

 

그림 2. 아르잔-2후 무덤방 5호 주인공 여성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

 

시베리아에서 인류학적인 특성에 대한 논란 혹은 논의의 시작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알타이에서 있느냐, 없느냐로 계속 논쟁을 해왔고, 데니소바에서 화석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제3의 인류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2019/04/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앞서 데니소바동굴유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검색을 참 많이들 하시는 듯 해서....조금더 정보를 올린다. 유적의 위치 및 내가 알고 가진 정보.. 데니소바인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알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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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가장 쟁점 중에 하나는 과연 시베리아에 무스테리안 석기문화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무스테리안 석기문화는 유럽의 중기 구석기시대 문화를 일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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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질인류학은 뼈를 정밀하게 계측해서 그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DNA분석법이 발견되기 전에는 대단히 유용했으나, 현재는 DNA 분석법이 있다. 그러나 또 문제점이 고고자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DNA방법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필자가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반드시 co-work이 필요한 분야이다.(그렇다고 위의 형질인류학적 분석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정확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연구가 진행중일 수도 있다)

 

2018/01/16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한민족의 기원과 DNA연구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함께 확인된다.

우리나라에는 감정없는 AI판사가 필요한데, 비슷한 분야가 인류학이다. 형질인류학 보다는 DNA분석법이 더 정확할 것이다.

 

참고문헌

Т. Чикишева , Палео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ие материалы,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257-296c.(치카세바 2017, 「고인류학 자료에 대한 분석」,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9세기 까지 올라가는 유적이 있는 곳은 시베리아의 투바 이고, 아르잔 1유적에서 확인된다.

(아래 포스팅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권역에 대한 표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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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북안에서 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시간은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로 이 기간과 공간을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한다. 혹은 스키타이 세계, 스키타이 문화공동체라고도 한다. 그냥 쉽게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하자.

 

하지만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아르잔 1유적을 발굴(1971~1974년)하기 이전까지는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설은 흑해북안에 출토되는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과 관련된 것으로 믿었다.(앞에서 스키타이문화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을 설명한 바 있다)

왜냐하면 19세기 말 흑해북안과 가까운 쿠반 강(코카스서 산맥의 북쪽) 유역에서 발굴된 유물에서 동물문양장식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리스 스타일의 색채를 많이 띄고 있었다. 이름하여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그리스 스타일 유물은 스키타이 문화인들이 그리스장인에게 ‘오더 메이드’해서 만든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흑해 북안에도 식민도시를 두었다고 한다(헤로도투스도 그리스 식민도시인 흑해의 올리비아에 살았다.)

 

그럼 어떻게 그리스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림 1은 켈레르메스(유적의 위치는 아래 포스팅 참고)라고 하는 유적의 4호분에서 출토된 거울이다. 은제 거울인데, 얼굴을 볼 수 있는 면은 은제로 주조된 것이고, 그 반대부분에는 중앙에 고리가 달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8부분으로 섹션을 나누어서 주제가 그려져 있다. 8개의 각 섹션은 금제로 만든 판을 은제 원판에 붙이도록 제작된 것이다. 섹 션 사이의 눈금이 있는 부분은 금테인데 뗌질 되었다. 주조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거울의 가장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주조방법을 설명할 때 붕어빵 굽는 것을 대입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4호분 출토, 17.3cm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1의 세부

 

거울의 가장 상단부에 그려진 여성은 사이벨레(그리스의 아르테미스)로 양손에 표범을 들고 있고, 여신과 대칭되는 곳에는 털로 덮인 괴물들이 사자머리 그리핀과 싸우고 있다. 날개달린 여성, 털달린 괴물, 사자머리 그리핀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요소이고, 양과 같은 동물은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이다. 그리고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는 거울은 시베리아 남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그리스적이지 않은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도 확인된다.

 

금제 유물 장식으로 표범을 형상화 한 것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기원전 7세기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 그림 3과 같은 유물이 가장 이른 동물문양장식으로 여겨졌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길이: 32.6cm, 높이 16.2cm, 방패장식으로 생각됨. 

 

위의 말은 바꾸어 말하면,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고 나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스키타문화에서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으로 동물문양장식이 생겨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이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에서 확인되는 것은 맞다.

 

현재 이 유물들은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어 있다.

원래, 이 유물들은 표트르 1세가 모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과 함께 처음에는 쿤스트카메라에서 보관되었다. 그런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시베리아 황금 유물과 흑해북안의 유물 중에서 비슷한 공통점이 발견되었고, 헤로투투스가 기록한 대로 이 문화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헤로도투스는 올리비아에 살았기 때문에 당시 흑해북안에 살던 이민족을 ‘스키타이’라고 불렀고, 이 문화의 이름도 여기서 연유하게 되었다.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859년에 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시작했다. 켈레르메스 고분은 1904년에 발굴된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발굴되어서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스 기원설은 시베리아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학계에서 대세를 이루었다.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파지릭 유적은 1920년대 1호분 이후에 1947~1948년에 발굴되었고, 아르잔 1유적(스키타이문화의 가장 오래된 유적)은 1971~1974년에 조사되었고 현재는 스키타이문화의 기원 및 중심은 시베리아이다. (아르잔 1 유적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할 예정입니다)

 

2020/04/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기원전 9세기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여러의견

 

기원전 9세기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여러의견

우리는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대형의 벽걸이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다른 남녀가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 남성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지역의 2500년 전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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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대형의 벽걸이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다른 남녀가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 남성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지역의 2500년 전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짧고 달라붙는 상의 자켓과 하의를 착용했지만, 남성이 타고 있는 말은 달랐다. 알타이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흡사한 굴레장식과 고리투스(활과 화살통), 안장 및 덮개 등이 그렇다. 이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에서 확인된 반인반수로 표현된 사람도 얼굴은 말탄 남성과 유사하다. 반인반수, 피닉스, 말탄 남성 뿐만 등은 알타이가 아닌 외부적인 성격으로 생각된다. 의자에 앉은 여성이 들고 있는 꽃 모양 등도 마찬가지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표트르 1세는 17세기 후반부터 스키타이 유물을 수집했고, 황금 유물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학문적’인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 흑해북안에서부터 이다.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공통점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지만, 켈레르메스 등 여러 유적이 발굴되고, ‘다르지만 비슷한 요소’가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림 1. 흑해 북안과 쿠반강. 쿠반강은 코카스서 산맥의 북쪽 지역이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필자는 흑해북안의 유물이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과 함께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쿤스트카메라에 같이 소장되기 시작하면서 더 그런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이관하기 이전에는 쿤스트카메라에 소장되었다.

 

지도를 펴서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흑해(현재 우크라이나 남부)는 그리스와 가깝다. 그래서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유물은 스키타이 민족들이 그리스의 소 도시에서 주문받아서 만들게 되면서 스키타이 요소+그리스 혹은 근동적인 요소가 함께 섞인 유물이 나오게 되었다. 이를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이라고 하는데, 알타이가 발굴되기 이전까지 동물문양장식의 기원을 그리스-이오니아양식에서 찾으려고 했다(파르마콥스키 1914).

 

흑해북쪽과 가까운 곳으로 쿠반강 유역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서 이란(페르시아)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의 특징에서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자도 있었다(로스톱체프 1925). 그는 아주 빈약한 유물로 이란의 청동유물, 쿠반 강, 흑해북안, 중국의 오르도스 지역의 유물을 유사성을 주장했는데, 그가 주장한 바는 20년이 지나서 유물이 구체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1947년 이란의 북쪽 지비예 유적에서 확인된 유물이다. 이 유적의 유물은 여러 이란적인 요소+스키타이 동물문양이 묘사되었고, 고다르드는 기원전 9세기 까지 올라간다고 생각되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일정정도 연관이 있다고 믿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러나 이 유적은 연대가 지나치게 빠르고 흑해북안의 스키타이문화권 유적인 켈레르메스(기원전 7~6세기)정이다. 왜냐하면 그 뒤에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유적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대략 기원전 7~6세기대의 유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남부 투바 아르잔에서 1971~1974년에 걸쳐서 발굴된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옮겨놓게 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9~8세기로 연대가 확정되었고 그 근거는 나무나이테 연대측정법과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한 것이었다(테르네노시킨 1976, 그랴즈노프 1980). 발굴당시에 연대측정되었고, 2000년대 들어와서 다시 유적들의 연대측정을 실시했으나 같은 결과였다(알렉세프 외 2005). 아르잔 1유적에서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표범장식이 확인되었고, 무덤의 구조물로 쓴 부자재 가운데 사슴이 그려진 돌들이 발견된다. 이름해서 사슴돌이라고 하는데, 사슴돌에 그려진 사슴의 모습은 알타이 유적의 유물과도 그 모습에서 관련성이 확인된다.

 

 

그림 2.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아르잔 1, 왼쪽 가장 상단의 그림(1)과 오른쪽 상단(5)에 사슴이 그려져 있는데, 사슴돌이라고 한다.  아르잔 유적의 위치는 포스팅되었다. 사슴돌은 비석과 같은 모습이다. 글자 대신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외부와 내부설이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스키타이문화권이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에 걸쳐서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면, 그 외연인 흑해북안은 그리스와 이란 지역과 멀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서로 문화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되는 남성의 모습이나 꽃 모양 등이 이유 없이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그랴즈노프 1980, 초기스키타이문화의 차르 무덤, 아르잔)

파르마코프스키 1914, Фармаковский Б.В. 1914, Архаический период в России. — MAP, 1914, №34. (파르마코프스키 1914, 러시아의 고대시대)

로스토프체프, 1925. Ростовцев М.И. Скифия и Боспор. Л., 1925 (로스토프체프 1925, 보스포르 지역의 스키타이)

테레노시키니 1976, Тереножкин. А.И. Киммерийцы. Киев, 1976.(테레노시킨 1976, 킴메리츠 )

알렉세프 외 2005, А.Ю. Алексеев 2005, Евразия в скифскую эпоху: радиоуглеродная 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хронология. СПб: «Теза». 2005(유라시아 스키타이 시대: 탄소연대)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Godard A. Le trésor de Ziwiye (Kurdistan). Haarlem,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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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을 중심으로 기원전 5세기 가량에 확인되는 문화는 ‘파지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지릭 유적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다. 1920년대부터 발굴되었으며, 1947~1948년에 대부분의 대형고분이 발굴되었다. 파지릭 5호분은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며 대형고분이다. 남녀 미라 2구와 마차, 말 등이 확인되어서 특별한 무덤으로 생각된다.

 말은 9마리 부장되었고 그 가운데 굴레장식이 있는 말은 모두 4마리이다. 아직 말과 관련된 유물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 중에는 다른 유적에서 보이지 않는 유물이 있다. 아시다시피 말은 재갈을 채워야 부릴 수 있는데, 입에 물리고 고삐를 연결하기 위해서 재갈멈치가 필요하다(링크된 첫번째 포스팅 참고). 사실 재갈멈치와 굴레는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재갈멈치와 굴레는 장식이 없는 유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도 그리핀이 주요한 굴레장식의 컨텐츠였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은 위의 유적과는 달리 대형고분이 대부분 도굴된 채 발굴되었기 때문에 굴레장식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2호분도 그러했다. 파지릭 5호분에는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는 대부분 Y자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코크 고원에서는 대부분 선을 조각하는 정도 였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는 늑대가 조각된 ‘Y’형 고리(그림 1-5)가 확인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5호분의 굴레장식. 이 그림을 이해하시려면 이미 포스팅(아래참고1) 된 아크 아랄하 3유적의 말 굴레장식을 보시면 됩니다.호랑이(표범)과 늑대의 구분은 주둥이가 긴 것을 늑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림 1-5의 늑대는 귀에 뿔이 달려 있어서 흥미롭다. 동물문양장식에서 동물의 눈과 귀 표현은 규칙성이 있는데, 이 유물은 늑대의 귀가 아니다.

 

다시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필자가 스키타이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의 표를 제공해 드린바 있다. 아주 광대한 지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아래 포스팅-그리스장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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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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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문화권에 대한 포스팅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단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기와 마구의 어느 부위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의복류에 부착되는 종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어떤 동물이 대상이 되었을까?

크게 우제류 라고 불리는 굽이 붙은 동물, 맹수류, 맹금류로 구분된다. 굽동물은 사슴, 말, 산양, 염소가 자주 확인되고, 야크와 낙타도 드물지만 있다. 맹수류는 표범 혹은 호랑이, 늑대가 있다. 곰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필자는 보지 못했다. 맹금류는 독수리이다. 또 한 동물이 있는데, 깍두기 같은 멧돼지이다.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맹수류와 굽동물을 조합하고 독수리 날개를 붙이면 그리핀이 된다. 멧돼지는 그리핀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마리가 전신, 반신, 두상으로 표현되지만 두 마리가 한 번에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스타일로 구분되는데, 두 마리가 물고 뜯고 싸우는 주제와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서로 물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한 마리가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도 있다. 전자는 주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후자는 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금속으로 제작되고 벨트의 장식이 된다. 후자는 사람이나 말의 모자장식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은 평면형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직사각형 모양(그림 2-1)이거나 한쪽은 직사각형이고 다른 쪽은 원형(그림 2-3~8)에 가깝게 표현된다.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규칙이 있다. 필자는 그런 규칙성은 대상 동물의 선정, 용도에 따른 표현방법, 용도에 따른 평면형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2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가 그림 2-7,8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콜렉션. 길이 12.3cm, 너비 151.2g. 그림 2-8과 같은 유물.

 

그림 3에서 보시다시피 이 유물은 대칭으로 구성된 또 다른 장식판과 쌍(그림 2-7)을 이룬다. 뒷면에는 4개의 고리가 땜질로 부착되어 있었다. 동물의 몸체에 있는 삼각형과 원형에는 색깔이 있는 보석류를 끼워넣었다. 이 유물은 벨트 장식으로 보기도 하고, 마구장식, 칼집장식, 옷의 장식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동물은 자세가 S로 하반신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 말을 공격하는 동물은 사자몸통 및 얼굴+날개+영양의 뿔이 조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그리핀 가운데 호랑이나 표범이 아닌 사자얼굴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원래 서양미술에서 알려진 그리핀은 페르시아 혹은 그리스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으나, 기원전 4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졌고, 이미 시베리아 알타이에서는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된다. 물론 이 그리핀은 호랑이 혹은 표범과 굽동물이 결합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타이에서도 사자의 모습을 한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재지의 컨텐츠가 아닌 수입된 것이다. 매우 먼? 거리와 서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의 페르시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위의 링크된 포스팅의 표에서 확인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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