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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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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17. 12:49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의 스키타이 동물장식에서 이웃한 지역 가운데 그리스의 특징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다. 그럼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 속으로 침투?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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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스설은 파르마콥스키가 처음 제기했고, 이는 기원전 7세기 유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와 스키타이 문화가 어떤 양상이든지 매우 밀접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주체가 누구인가가 문제이다. 

 이때 흑해 북안의 올리비아라는 도시가 생겨났고, 케르치 해협에는 보스퍼러스 왕국도 있었다. 올리비아는 그리스 식민도시로 알려졌고 보스퍼러스 왕국은 여러 설이 있지만, 어찌 되었던 그리스의 영향력이 있는 국가라고 알려졌다. 올리비아에는 그리스인이 물건을 제작하는 공방이 있었고, 그 뒤에 보스퍼르스 왕국의 수도인 파니키움에서 올리비아의 역할을 물려 받았다고 알려졌다.

 

2020/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침발카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데, 몸통은 뱀의 형상이다. 유물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으나, 스키타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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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흑해북안의 도시인 올리비아 혹은 케르치 해협의 보스퍼러스 국의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로 생각되는 유물이 슈메이코 유적(그림 1-1)과 토마코프스키 고분(그림 1-2)에서 출토되었다. 나온 유물 가운데 검집 장식에 두 마리 맹수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발끝에는 발톱이 있고, 콧 구멍과 입은 서로 연결되어 타원형처럼 보이고, 주둥이는 길며, 꼬리 끝은 새의 머리모양이다.

두 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장면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끝, 은제 거울의 사자 2마리 등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림 1.기원전 5세기 유물의 검 손잡이에 나타난 맹수(1-슈메이코 유적, 2-토마코프스키 유적)

 

올리비아에서 발견된 십자형 장식판의 중앙 원에는 몸을 말고 있는 동물장식이 있고 끝에는 세 마리 독수리 머리가 부착되었다. 두 동물장식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인데, 기원전 7세기의 유물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중앙 원의 몸을 말고 있는 맹수 장식은 원형과는 다르다. 독수리 머리는 간두령의 장식으로 표현된 적이 있다. 비슷하게 생긴 청동판이 오피실랸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네모꼴 막대 부분에는 다리를 내린 맹수 4마리가 수직으로 그려져 있고, 원 안에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와 초식동물이 함께 그려져 있다.

가브릴로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거울 손잡이에는 맹수장식이 연속으로 표현되었고 끝에는 초본류가 표현되었다. 팔메트 문양이라고 불리는 이 장식은 그리스의 유물에서 자주 목격된다.

 

그림 2. 기원전 5세기 초의 그리스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청동 유물 1-오피쉬랸카 유적, 2-순투크 고분 출토, 3-가블릴로프카 유적 출토, 4-바소프카 유적의 482호 무덤, 5-올리비아의 청동장식판

 

위에서 보여드린 유물은 기원전 5세기 유물로 그리스 장인이 200~300년 전 스키타이 유물의 모티브를 리뉴얼 한 것이다. 스키타이인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모티브를 다시 가져와서 제작했으나 원래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말 그리스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에는 동물의 몸통의 스키타이 특징은 사라지고 그림 구성 및 자세만 약간씩 변형되어 결합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리스 장인들의 목적은 동물의 이미지를 재현한다기 보다는 보이기 위한 디자인과 이를 활용해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장식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장인이 초기 스키타이 유물에서 모티브를 채용해서 다시 재작업한 기간은 기원전 5세기 초부터 5세기 중반까지 그리 길지 않았다(일린스카야 1971).

스키타이 문화가 대체적으로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되어 대부분의 지역으로 확산된 것은 기원전 7세기이고, 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기원전 4~3세기로,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그 안에서도 복고풍?이라는 것이 생겨난 것 같다. 그럼 그리스 장인들은 왜 스키타이 인들의 모티브를 재사용해서 여러 물건을 만들었을까?

일린스카야(1971)는 ‘스키타이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썼다. 즉 수요자가 스키타이 인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에 남아 있는 그리스적인 요소는 그리스 인들이 유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의 요소도 남겨지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유물에 그리스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해서 이를 그리스 문화의 대단함?으로만 연결시킨다면 너무 단세포적인 생각이다.

 

 

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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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6.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모양장식은 몇 가지 자세로 구분되는데 아시다시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가장 먼저 확인된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그렇다.

 

아르잔-1호의 연대는 기원전 9세기 중반이고, 이 유물이 흑해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미누신스크 분지까지 퍼지는 것은 흑해, 중앙아시아에는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기원전 6세기에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에는 원형 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몸을 펴고 있는 맹수장식도 여러 지역에서 나온다.

 

흑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 끝장식(그림 1-3), 금제 패식의 표범장식의 발끝 장식(그림 1-5), 켈레르메스 유적의 골제 굴레장식(그림 1-4)이다. 테미르 고라 유적의 뼈제품(그림 1-1), 다레프카 유적의 손잡이 끝 장식(그림 1-6)이다. 고대 이란 지역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그림 1-7) 나왔다.

 

그림 1. 흑해와 중앙아시아의 원형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서부의 마이에미르 유적(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10개의 금판에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8). 우이가락 유적에서도 청동판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12,13). 이 유물은 칠릭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과 크기는 다르지만 비슷 모습이다(그림 1-9,10). 이들 유물 때문에 표트르 1세의 원형 맹수장식도 카자흐스탄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아르타모노프 19, 루덴코 1962, 일린스카야 1971). 이들 유적은 카자흐스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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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에미르 유적은 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 알타이에서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존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 유물은 아르잔-1호 유물과 비교해 볼 때 목과 어깨 부위의 견갑부가 돌출되게 표현되었다는 점과 반대면을 강하게 눌러서 앞 면이 좀 더 튀어나오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점은 흑해 지역의 유물과도 구분이 된다.  또 흑해지역의 유물에는 지비예 유물의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유물은 지비예의 제작공인이 스키타이 유물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르잔-1호의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대표적인 유적: 살브익 고분)에서도 원형 맹수장식이 발견된다. 청동곳의 상단 혹은 청동고리의 상판에 만들어진 것이다. 귀의 모양은 반원형이고 입모양이 길다. 타가르 문화에서는 청동판의 칼집에 새겨진 문양 가운데 다리를 내리고 있는 표범장식이 있는데 원형 장식의 눈, 코, 입과 비슷하다.

 

그림 2. 미누신스크 분지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투엑타 유적에서 몸을 비틀고 머리와 꼬리가 붙은 호랑이 장식이 발견되었다.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의 전지역에서 발견되고, 기원전 6세기에는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문헌

С.И. Руденко.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САИ. д.3-9. 1962, табл. VI, 1, текст, стр. 31.(루덴코 19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

€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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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5. 12:51 스키타이 동물장식

 

아르잔-1호에서 처음 보이는 원형맹수장식은 가장 널리 오랫동안 사용된다. 삼각형 구도를 이루는 것은 기원전 5세기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에 검집 끝에서 발견되었다. 비슷한 유물은 이집트, 시리아, 박트리아 등지에서도 다양한 재질로 발견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런데 아르잔-1호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알타이의 투엑타 유적(기원전 6세기)에서는 호랑이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것이 발견되었다. 호랑이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유물은 S자형으로 변화된다. 물론 두 유물은 평면과 입체 이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 그러나 호랑이의 귀, 입, 눈은 변형 없이 날개만 부착되었다. 날개만 빼면 가장 사실적이다. 이 유물은 원형의 모티브 보다는 배제되고 호랑이라는 주제가 초점에 맞추어 진 것이다.

 

그림 1. 투엑타 유적의 날개 달린 호랑이

 

그런데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 호랑이머리와 독수리머리가 합체된 굴레장식(그림 2)에는 호랑이의 귀 끝은 뾰족하다. 날개 달린 호랑이의 얼굴과는 차이가 있다.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고 느낀 대로 설명한다면 이 동물의 얼굴은 대단히 희화되었는데, 처음에 봤을 때 웃는 느낌이었다. 필자가 생각할 때 이 동물은 호랑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애매하다(그림 2).  단순히 호랑이 얼굴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유물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림 2. 투엑타 유적 출토, 맹수장식

 

몸을 말고 있는 원형 맹수장식의 변화는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에서도 확인된다. 호랑이가 몸을 비틀어서 머리와 꼬리를 말고 있는 장식이다. 이 유물은 주둥이가 길어지고 귀의 모양도 삼각형에 가깝다. 호랑이라기 보다는 늑대에 가깝다(그림 4).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출토, 맹수 장식.

 

 

그림 4. 늑대장식

 

동물장식 가운데 귀가 뾰족한 것은 독수리 머리그리핀에 달린 귀에서 먼저 관찰된다.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에서 있다(그림 4).

 

2021/01/10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알타이의 그리핀

 

알타이의 그리핀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리크 문화에서 현재까지 가장 이르다고 알려진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에는 독수리와 호랑이를 변형시킨 그리핀이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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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투엑타 유적 출토 그리핀, 말의 이마 장식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은 S자형으로 호랑이에게 날개가 변화되는 것, 몸을 비틀어서 원형을 이루는 형태로 모습을 바뀌게 된다. 후자는 호랑이라기 보다는 늑대에 가깝다. 

 

왜 동물을 변형시켰을까?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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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4. 12:16 스키타이 동물장식

 

알타이에서 19세기(1865년)에 발견된 스키타이 시기(파지리크 문화)의 대형 고분 중에 하나이다. 유적은 현재 마을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카툰 강의 상류와 하류 강사이의 왼쪽 단구대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매우 우연하게 발견되었는데, 강둑 위에 설치된 19세기 말에 판 군대의 참호 때문에 무덤 구덩이가 우연히 드러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이미 말의 매장부분은 파손되었다.

19세기 말에는 라즈돌로프가 발굴했고, 100년 뒤에는 가브릴로바가 새롭게 발굴했는데, 라즈돌로프가 발굴한 스키타이 시기가 아닌 그 뒷 시기(투르크 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2020년에는 노보시베리스크 고고학연구소가 발굴해서 청동기시대(아파나시에보 문화,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무덤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카탄타 유적에는 많은 고분이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매우 도굴이 심했다. 라즈돌로프는 그 중에서 가장 큰 무덤인 높이 2.1m, 지름 40m의 무덤을 발굴했다(2호). 그 안에는 이중 천장이 있는 나무방이 발견되었다. 나무 방은 통나무 7~9개를 천장으로 쌓아 올린 형태였다. 나무 방 안에서는 관이 2개 발견되었다. 통나무가 8000개 정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졌다.

 

그림 1. 카탄다 유적의 1호(1~3), 2호(4~9) 무덤 발굴

 

이미 도굴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물이 잘 남아 있지 않았나. 모피코트가 잘 알려져 있다.

허리와 소매는 녹색, 노란색 및 갈색으로 염색된 모피이다. 모피에 달았던 아플리케는 비늘 모양으로 금판을 이어 붙인 것이다(그림 1). 금박은 3000여개가 붙어 있었다. 또 한 점이 알려져 있는데, 꼬리가 붙은 형태이다.

 

그림 2. 카탄다 유적의 모피코트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어제 보여드린 호랑이가 사슴의 목을 잡는 장면이 새겨진 나무장식과 함께 발견된 목제 동물장식이다. 여기에는 두 마리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데, 곰과 함께 신화적 동물이 그려져 있다고 라즈돌로프는 평가했다. 다리는 초식동물의 발굽이고, 새의 머리는 뿔로 장식된 그리핀이며, 몸통은 호랑이인 동물이 곰의 머리를 한 동물과 함께 엉켜 있는 장면이다(그림 3-2). 몸통을 표현하고 있지만 머리가 중점이 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부분이 많은 동물장식이다. 곰이라고 본 동물은 가장 중간에 큰 머리가 있는 동물이다. 이 유물은 반구형이다(그림 4).

 

이 유적은 파지리크 유적과 같은 시기로 보고 있다. 

 

그림 3. 카탄타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장식. 목제품.

 

 

 

그림 4. 카탄다 유적의 유물, 반구형의 동물장식은 그림 3-2와 동일유물

 

참고문헌

Радлов В. В. Из Сибири: Страницы дневника. М.: Наука. 1989.— 749 с.;(라드롤로프 1989, 시베리아에서, 야장(일기장)의 한 장면)

https://smotrim.ru/article/2464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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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3. 13:41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동물장식 가운데 두 마리 동물이 특정 구도를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인데, 서로 마주보도록 구성된 것으로 마치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어 뜯는 장면으로 투쟁장면이라고 불린다. 대부분 힘쎈 맹수가 자신의 먹이가 되는 굽동물의 목을 무는 장면이다. 투쟁장면의 동물은 아주 역동적으로 표현되어서 두 동물의 신체는 S자를 이루며 옆으로 눕혀서 표현된다.

 

데칼코마니처럼 마주보도록 된 동물의 표현이 가장 먼저 관찰되는 유물은 흑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고분인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1-3)과 멜구노프 유적의 검집 끝에서 발견된다. 두 유물은 매우 유사하며 의례용으로 제작된 유물이다. 대칭적으로 마주보는 사자의 모습이다. 오스트라야 토마콥스카야 마길라 유적의 검날 멈치에서도 확인된다. 몸이 면으로 처리되고, 눈, 귀, 주둥이가 강조되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특징이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검집장식

 

마주보는 동물 구성장면은 스키타이 문화의 형성기 유적인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검집 끝장식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1). 하트모양의 귀, 크고 둥근 눈, 과장된 주둥이 등이 강조되었고, 다리는 스타일화 되었다. 맹수는 상체만 표현되었는데, 흑해지역에서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림 2. 스키타이 문화의 인접 지역에서 발견되는 검집장식

 

두 동물이 싸우는 동물 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등장한다. 이 시점에는 그리스, 페르시아 지역과 매우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동물투쟁문양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양식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쿠반 강 유역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무덤 4호에서 출토된 각배에 부착된 금속판에 새겨진 동물장식은 맹수가 사슴을 공격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이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된 토기의 덮개판에는 비슷한 그림이 표현되어 있었다. 각배의 금속판에 그려진 동물장식은 맹수는 아직 스타일화 되지 않은 채 원근법이 살아 있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사슴은 스키타이화 된 것이다. 몸통을 면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했고, 사슴의 자세와 굽의 위치, 견갑부의 형태 모두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스키타이 스타일화 된 것이어서, 이웃한 지역의 동물장식을 차용하면서 혹은 인용하면서 동물투쟁문양이 생겼다고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널리 사용되는 동물투쟁문양은 특히 파지리크 유적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두 동물은 모두 이미 ‘스타일’ 화 되었기 때문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동물투쟁문(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에서 나타난 사실적 맹수+스타일화 된 사슴이 가장 먼저라고 보았던 것이다. 사실적 표현이 먼저이고 스타일화(규격화되면서 추상화됨)된 동물장식이 나중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적 표현이 먼저고 추상화된 스타일이 나중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이 유물이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에만 나타났다고는 볼 수 없다.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을 보고하면서 아주 간단하게 보고된 유물 가운데 나무에 새겨진 두 동물이 있는데, 카탄스키 유적의 유물로 보고되었다. 두 동물의 표현은 원근법이 살아 있고 사실적이다.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라면 카탄다 유적의 유물에 표현된 사실적 동물 2마리 표현이 더 먼저 일 수 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금속의 동물투쟁문양은 기본적으로 네모 플레임 안에서 구현되는데 이를 카탄스키 유물은 이를 따르고 있다.

 

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

그림 4. 알타이 카탄다 유적의 유물

 

페레보드치코바는 이와 같은 마주보는 구도의 동물장식은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에서나 관찰된다고 여겼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새로운 유적의 발견으로 같은 구도의 동물장식이 검에 표현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아르잔-2호 주인공무덤인 5호묘의 남성 칼의 검날멈치에도 호랑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이 확인된다. 호랑이는 몸을 거의 말고 있는 형태이다.

 

그림 5. 아르잔-2호 5호묘

 

마주보는 두 동물의 구도는 1990년대의 연구성과와는 달리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스키타이 문화에서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까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검 집 장식으로 돌아가 보자. 검집 장식 가운데는 두 동물이 마주보는 장면도 있지만 이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장면도 발견된다. 로스토프체프(1929)는 루부르 박물관에 있는 상아로 된 유물(그림 1-7)을 주목한 적이 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이다. 현재는 이 유물이 검집장식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생긴모양으로 보아서 앗시리아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했다. 이 유물의 용도를 알 수 있게 한 것은 페르세폴리스의 궁전 벽에 새겨진 조각 덕분(그림 2-4~6)인데, 모두 검집 끝을 장식했다. 이 검집 끝장식은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으며, 머리로 보아서 굽동물이고, 몸은 매우 추상화되었다.

하지만 여러 연구자들은 이 동물 장식의 원형(原形)은 스키타이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으로 보았다(Bernard 1976, 페레보드치코바 1994).

 

비슷한 동물장식이 시리아 북부의 테베 –규욱(그림 2-8), 박트리아(그림 2-9) 등에서 발견되었다. 그럼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페르세폴리스에 검집 장식(그림 2-4~6)으로 새겨질 수 있었을까? 이 궁전은 페르시아가 이를 지을 당시에 인접한 국가 들의 장인을 모두 불러 보아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 장인들이 자신이 새긴 검집 장식의 원형(原形)에 담겨진 주제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검집장식이 삼각형에 가까워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과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항상 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7-6세기 테미르-고라(그림 6-1) 등에서 발견된 유물은 원(圓)형은 아니라 삼각형에 가깝다.

 

그림 6. 흑해 지역에서 발견된 원형의 맹수장식

 

Bernard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검집장식과 이집트에서 발견된 상아제 검집장식은 모두 아케메니드 시기로 보았다. 이 생각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검집장식이 페르세폴리스의 조각 보다 먼저 일것이라고 본 것을 부정한 것이었으며, 검집장식에 표현된 동물장식이 일정한 발전방향으로 모양이 변하면서 생겼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검집장식은 그 지역에서 재생산된 것으로 보았다. 페레보드치코바는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궁전을 지었던 일은 매우 큰 사건으로 이웃한 지역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여러 장인들은 이를 또 인용(차용, 모방)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대로 인용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전통에 맞게 고쳐서 해석했을 수도 있다. 만든 각자의 장인들은 상호간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의 언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전통은 교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물장식은 그 매개가 된 것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페르세폴리스의 건조가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폭발적으로 주변지역으로 전달된 사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경에 스키타이 동부지역에서 서부지역까지 서로가 서로의 문양을 공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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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지만 이미 그러한 계기가 된 어떤 이유는 기원전 7세기(아르잔-2호) 경에 나타났을 수 있다. 물론 페르세폴리스의 건조도 더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원형의 호랑이 장식과 S자형 호랑이 장식은 시베리아에서 먼저 나타났다. 동물투쟁문양도 카탄스키의 예를 볼 때 알타이를 배제할 수 없다. 동물투쟁문양에 S자형 동물장식이 가미되는 것도 알타이에서 먼저 관찰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동물의 결합인 하이브리드형 동물은 흑해 지역에서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 보다 이른 유물은 아직 없다. 두 동물이 마주보는 구도의 동물장식은 좀 더 숙제가 남아 있다. 몸을 말고 있는 원형의 맹수상 만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널리 사용된 예는 아직 없다.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처럼 발전적인 양식을 따르지 않고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인접한 지역으로 전달된 것은 맞지만, 마주보는 동물구도를 검집 끝에 장식하는 방법이 변형된 방법으로 변화되는 것은 발전 혹은 진화론 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참고문헌

Rostovtzeff M. The Animal Style in South Russia and China. Princeton, 1929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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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