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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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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에 해당되는 글 301

  1. 2020.06.17 서 있는 사슴과 앉아 있는 말
  2. 2020.06.16 2700년 전 시베리아 무덤 속의 나무그릇
  3. 2020.06.15 시베리아의 사슴돌
  4. 2020.06.14 시베리아의 청동 무기
  5. 2020.06.13 2700년 전 시베리아 무덤 속의 말무덤2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에서 아주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동물장식이 확인되는데, 소재 및 용도가 다양하다. 검, 화살촉과 같은 무기에도 확인되고, 돌판에도 그려졌다. 의복으로 볼 수 있는 모자 장식에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 곳은 역시 주인공 무덤방인 5호이다. 여성의 모자 장식은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런데 남성의 두개골에서 약간 위쪽에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데, 남성의 모자장식이다. 앉아 있는 말(그림 1-4)과 서 있는 사슴 장식(그림 1-1)이다.

 

기본적으로 금판에 금사를 납땜해서 붙이고 그 사이를 청회색 아말감으로 채워넣은 것이다.

말은 서로 마주 보는 금장식 각각 2개씩 확인되었다. 말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서 앉은 모습이다. 눈, 코, 입, 귀, 턱에 청회색 에나멜을 채웠다. 말의 갈기 끝에 표현된 돌출부위는 아주 소형화된 날개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그림 1-5).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1,5)

 

사슴(사슴 그림 : 길이 6.4 cm, 높이 6.9 cm, 두께 0.06 cm)은 기본적으로 말과 제작방법이 같지만, 뿔과 귀를 따로 만들어서 붙여서 원래 금판에 리벳으로 붙인 것이다. 말 보다 훨씬 큰 느낌이 든다. 사슴문양은 다른 금판에 다시 붙여서 고정되었다. 사슴 아래의 금판(길이 7 cm, 폭 2.5 cm,)은 새를 형상화 한 것이다. 사슴 아래의 금판에는 14개의 고리가 있어서 머리장식(그림 2-1)에 고정시킬 수 있다. 금판 위의 사슴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6개의 구멍이 있다. 사슴다리의 끝을 약간 구부리고 그 끝을 금판 위에 고정한 것이다. 사슴의 가슴쪽에는 붉은색 칠이 확인되는데, 산화철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말리의 민족지자료를 참고하면 이 지역의 보석에 색을 입힐 때는 소금과 철 화합물로 된 물질을 발랐다고 한다. 그림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슴은 말과는 달리 다리를 뻗어 표현되었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 그림 1의 실측도

 

 

발견될 당시에 말보다 사슴은 머리 장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확인되었다(그림 3). 이는 의미가 있는데, 두 동물문양장식의 뒷판에 붙은 고리의 위치가 차이가 있는 점과 연결된다. 말 장식(그림 2-2)에는 너비 0.2cm 간격으로 16개의 고리가 2줄(그림 2-2)로 붙어 있는데, 단단히 고정시기키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슴장식은 별도의 금판에 고리가 붙어 있었다. 이 부분은 두 동물의 자세가 다른 점과도 관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의 남성의 모자장식 출토장면

 

말 장식판에는 금판에서 잘라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점으로 보아서 실제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과 사슴장식판에서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그대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는 경계석 안에 무덤 26기가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주인공은 무덤방 5호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무덤의 크기, 나무로 된 무덤방과 출토된 유물 때문이다. 나무로 된 무덤방은 5호 외에도 2호가 있었고, 통나무관이 설치된 유아묘인 11호도 해당된다.

 

무덤방 2호에는 나무바닥 아래에 안장으로 추정되는 목제품과 새머리 모양의 금판제품이 확인되었다. 새머리는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목제용기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토제, 청동제, 석제였다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제용기는 주인공 무덤방 5호인 여성의 머리맡에서 있었다.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가 한 개만 달린 목제그릇(입구경: 12cm, 높이: 5.7cm)이다. 손잡이는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손잡이에는 금박((길이 10.9 cm, 구멍 2.7 cm; 무게 57.21 g)으로 입혀져 있는데 동물다리의 모습이다. 목제 손잡이에 비늘모양으로 새겨져서 손잡이를 덮은 금박에 찍혀서 비늘 모양이 표현되었다. 금판 안쪽에 두 개의 구멍이 있어 핀으로 나무에 고정되었다. 이음새 부분은 바닥쪽으로 향했다. 손잡이 끝 부분은 타원형 판으로 마감되었고, 금판에는 붉은색 안료로 칠한 자국이 남아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그림1과 동일)

 

목제용기가 출토된 지점과 멀지 않은 곳으로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서는 향나무제 뚜껑2점도 확인되었다. 뚜껑 중 큰 유물(그림 3-5)(직경 4.8cm, 높이 2cm)은 목제용기 부근에서 유기물질 흔적이 남아 있는데, 뚜껑의 용기로 사용된 그릇이다. 가죽이나 양모로 제작된 직조물로 된 용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자리로 9개의 구멍에 목제못이 삽입된 채 확인되었는데, 아래 용기의 입구와 크기를 맞추기 위한 것(그림 4-4)이다. 목제뚜껑(직경 2.9cm, 높이 2.1cm)(그림 3-4)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1-청동제 그릇, 2- 나무 조각, 4,5-목제뚜껑, 3: 금박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목제뚜껑(3,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는 목제용기 외에도 미니어쳐 청동제(그림 3-1, 그림 5-4), 석제 그릇(그림 5-5,6)이 확인된다. 이미 청동으로 된 솥이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되었으나, 청동으로 된 그릇이 한 점 더 있다. 무덤의 북동쪽 구역에는 주로 그릇이 확인된다.

청동제 그릇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달린 것인데 입구의 직경이 5.5cm, 높이가 2.2cm로 매우 소형이다. 무덤에서 확인되는 소형의 그릇을 명기(冥器)라고 부르는데, 미니어쳐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청동제 그릇(4)과 석제 그릇(5,6), 3번은 본 포스팅과는 관련없으나, 주인공 여성의 구슬이다.

 

무덤의 북서쪽 벽에서 석제그릇(그림 5-5) 2점이 출토되었다. 회색빛을 띄는 사암제(구경: 입지름: 11.2cm, 너비 8.7cm, 높이 1.cm)로 편평한 모양이다. 석제 그릇에는 식물이 담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석제그릇의 모양은 전체평면형태가 ‘S’자에 가까운데, 남성 칼집에 붙어 있던 금장식이라던지 곡선형태의 문양은 무덤에서 대유행 했던 문양이다. 석제그릇은 일종의 향로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평면형태가 둥근 석제 그릇 1점(그림 5-6)(입지름 12.5cm, 높이 3cm)도 사암제로 만들어진 것인다. 바닥은 둥글다. 한쪽벽면에 붉은색 직조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석제그릇을 포장한 붉은색 주머니였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방 5호 외에도 이미 소개한 무덤방 20호에서도 목제용기의 손잡이로 추측되는 뿔 손잡이가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25호에서도 목제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 용기는 무덤방 5호와 20호와 같이 손잡이를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처음부터 깍아서 만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용기가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기원전 5세기대의 유적인 얼음공주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크 알라하-3유적 및 파지릭 유적등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지역문화)의 유적과 아르잔-2호는 같은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구 및 굴레장식, 동물문양장식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그릇은 파지릭 2호분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한다(필자가 파지릭 유적을 소개하면서는 보지 못했는데 다른 곳에서 발표되었다). 손잡이가 동물다리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 보다 훨씬 늦은 울란드릭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도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목제그릇이 출토된다.

손잡이의 모습은 다르지만 앞서 소개한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호랑이 2마리가 표현된 목제그릇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의 무덤 계곡’이라고 부를 정도 였다. 그 중에서 아르잔-2호는 가장 최근에 발굴된 유적이다. 이를 발굴하고 보고한 추구노프는 무덤을 넘어서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주인공을 위해서 장례식은 4단계에 걸쳐서 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덤의 가장 상부에 위치한 것은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이다. 입석이라는 용어는 어렵게 생각하실필요가 없고, 그냥 서 있는 돌이다. 장방형으로 길게 우뚝솟아 있는.

 

사실 사슴돌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 청동기시대부터 카라숙문화 혹은 판석묘문화라고 알려진 문화에서 주로 많이 사용된 무덤의 의례품? 의례장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도 다들 의심한다. 이전부터 있던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에 그려진 것인지. 명칭이 ‘사슴돌’이니 사슴이 그려져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사슴이 그려졌다고 해도 전면(그림2, 3)에 그려진 것도 있고 아주 일부에 그려진 것도 있는 등 다양하다.

 

아르잔-2호에는 사슴돌이 4점 확인되었는데, 1점은 발굴하기 이전에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사슴돌

 

산양과 멧돼지가 그려진 돌(그림 1-1)은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22m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에서 확인). 사암제(길이 120cm)로, 위에서 70cm떨어진 곳에 사방에 둘러가면서 홈을 만들었고, 사슴돌 상단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바닥은 거의 다듬은 흔적이 엇다. 넓은 면에 산양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멧돼지가 있다. 돌의 하단부가 무덤의 바닥에 위치하고 있어서 원래 세워진 장소였고, 무덤의 마운드 건설중에 파 묻혔던 것이다.

 

무사의 벨트가 그려진 돌(그림 1-2)는 A지점의 남서쪽(유적평면도에서 노란색 글씨로 2)에서 발견되었다. 무덤의 북쪽에서 확인되는 석주(돌기둥)와 같이 녹색돌로 제작된 것이다. 상단이 부러진 채 확인되었는데, 벨트 이미지만 남아 있다. 넓은 면에는 고리트(화살통)과 방패 다른 면에는 단검이 달려 있다.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무기 중에 방패는 없지만 고리트와 검은 출토되는 것이다. 목제방패가 유적에 있었을 수도 있다. 방패그림은 앞서 본 돌판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아르잔-2호에서 나온 사슴돌에는 없지만 사슴돌 무사의 벨트에는 투부(전투용도끼)가 있는 것도 있다.  달려 있는 무기의 위치는 실제 착장 방식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림 1-2에서 방패그림과 염소문양 사이에 있는 것을 사람형상이라고 보고되었으나, 필자는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돌의 하단부는 가공 흔적이 없는 쐐기 모양이다. 이 돌은 하단부와 함께 확인되어서 무덤의 가장 중앙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슴돌의 파편(그림 1-3)에는 귀걸이(길이 23.0 cm, 폭 10.0 cm, 두께 7.0 cm)가 그려진 것이다. 이 돌이 확인된 곳은 A지점에서 남동쪽에 위치하며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넓은 면에는 양쪽에 귀걸이 이미지가 있고, 좁은 면에는 비스듬한 직선이 3줄 그려진 것이다. 사암제이다. 이 돌은 크기가 매우 작고 파편이어서, 사슴돌의 하단부가 확인되지 않아서 발견된 지점이 원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1998년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된 것은 무덤 경계밖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점’ 사이에서 확인된 것이다. 열을 잇고 있는 점은 돌을 고리모양으로 두른 것인데, 장례식때 의식을 치루던 일종의 제단 시설이다. 이 사이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것은 원래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고리들을 발굴할 당시에는 정작 사슴돌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슴돌에는 3줄의 줄무늬와 원뿔모양의 치레걸이가 달린 귀걸이인데, 남아 있는 길이가 50cm가량이다. 이 유물은 도면은 소개되지 않았다.

 

앞에서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마치 기호와 같은 특성이 있다고 했다. 기호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서 통용될 수 있었다고. 사슴돌의 그림을 포함한 것이다.

사슴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동물문양이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것도 청동기시대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사슴돌에 그려진 그 의미는 현재는 알 수 없다.

 

아래 그림이 사슴이 그려진 ‘사슴돌’인데, 이제까지 사슴이 많지 않은 것만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2. 알타이의 사슴돌. 몽골의 아르한가이 아이막, 샤바르틴 암 계곡 출토품.(볼코프 2002)

 

 

그림 3. 알타이의 사슴돌(몽골)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Волков В.В. 2002 : Оленные камни Монголии. М.: Научный мир. 2002. 248 с.(볼코프 2002, 몽골의 사슴돌)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에 들어 있다. 이 복합체의 직경은 80m이다. 무덤의 경계벽 직경이 80m라는 것이다.

 

약간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왠지 마을을 그대로 무덤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선사시대에 마을에는 경계벽이 있었는데, 나무로 세우기도 했고, 흙으로 세우기도 했고, 돌로 쌓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으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예전에 신석기시대 집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포스팅한 바 있다.

삶의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01/13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죽음과 고고학

 

죽음과 고고학

지난 해 여름에 중국 산서성에서 발굴된 송나라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바 있다가 적어본다. 그림1. 송나라 벽화무덤 http://www.fnnews.com/news/201708281009572832 뉴스 에서는 무덤

eastsearoad.tistory.com

 

 

아르잔-2호의 경계벽은 마을의 경계벽, 각 무덤방은 묻힌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해보면, 마을과 같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은 활(+화살), 검(+칼), 투부(전투용도끼)를 지니고 묻혔는데, 3종세트라고 생각된다. 기본소재는 철제였으나, 금박으로 장식되어서 의례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걸로 실제 썼을까?

 

그럼 다른 무덤에서는 무기 3종 세트가 발견된 바가 없을까? 실제로 썼을 것 같은..

 

필자가 이미 약간 스포일러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성 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호랑이 동물문양장식을 청동제로 제작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무덤 20호이다.

 

무덤방 20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선 무덤방 20호에는 남성 2인이 매장되었다. 둘 다 22~25세의 남성이다. 한 무덤방에 묻혔는데, 돌(1.8 × 2.2m, 깊이 1.1m)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매장시점이 다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2: BB'라인 단면도, 3: AA'라인 단면도)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인골 2호라고 불리는 남성은 1호 남성의 무덤방(그림 2)을 연장하고 묻힌 것이다. 원래 1호 남성만 매장되었다가 무덤의 동쪽을 연장하면서 벽석도 세로 세우고, 구덩이도 좀 더 파서 만든 것이다. 발굴당시의 덮개돌(그림 1-1)은 인골 2호를 매장한 후에 생긴 것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인골

 

 

그런데 그림 2에서 확인되는 2호 남성(우측)은 먼가 좀 부자연스럽다. (사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호 출토 사진은 출판되지 않았다).

뼈는 해부학적으로 순서대로 매장되었으나, 팔의 상완골과 하완골이 겹쳐졌고, 갈비뼈도 무질서하다. 뼈가 해체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2호 남성의 머리 위에는 목기그릇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청동물체 아래에서도 유기질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었다.

 

1호와 2호 남성은 함께 부장된 유물이 차이가 있다. 2호 남성은 청동칼 1자루(그림 7-3) 뿐이었지만 1호 남성은 투부(청동)의 머리(그림 3-1), 고리트(청동)와 그 부속품(그림 5-3,4), 화살촉(청동) 11점(그림 4-3~13), 칼(청동)(그림 5-5), 귀걸이(금제)(그림 5-1) 등 금속제품과 투부자루(목제) 2자루(그림 3-3,4), 구멍이 4개 뚫린 굽은 장식판(목제)(그림 4-2), 목제그릇의 손잡이(뿔)(그림 4-1), 화살촉(뿔)(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옷으로 보이는 직조물이 확인되었다. 1호 남성의 부장품은 좌측 골반뼈 주변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실측도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유물 사진만으로는 각 부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실측도에는 제작방법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재질

유물

그림번호

금속

청동

투부 대가리

3-1

6-1

고리트와 그 부속품

(그림 5-3,4)

7-2

화살촉

4-3~13

6-4,5

5-5

6-2

귀걸이

5-1

 

나무

투부자루 2자루

3-3,4

6-3

장식판

4-2

 

목제그릇의 손잡이

4-1

7-1

화살촉

4-14,15

 

표1. 아르잔 2호 무덤방 20호 1호 인골의 부장품

 

 

2호 남성의 청동칼(그림 7-3)은 손잡이가 없는데, 유기물질(나무 혹은 뿔)로 제작되어서 따로 끼워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호 남성의 칼(그림 5-5, 6-2)은 손잡이가 날과 함께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

 

 

1호 남성은 투부, 칼, 활(+고리트)라는 기본 3종 세트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무덤방 5호 남성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철제가 아닌 청동제이고, 칼은 있지만 검은 없다. 20호에서 출토된 무기도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투에서 썼을 것을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리고 앞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 포스팅만 보신분들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는 이미 철제 무기가 출토된다. 혹시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하시고 무슨소린가 하실까봐 말씀드린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1,2)와 2호인골(3); 1-뿔, 2,3-청동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알타이 지역의 일종의 지역문화를 파지릭 문화라고 한다. 이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아래에 나무방을 만들고 인간과 말을 함께 묻었다. 앞에서 살펴본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3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무덤마다 무덤방의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과 말을 멀리 묻지 않고, 같은 구덩이에 함께 묻었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라고 하면서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호의 무덤방 안에는 주인공 남녀만 확인되었다. 어제 살펴본 돌판 위에 말 그림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퉁’ 친것일까?

 

물론 아니다. 이미 무덤구조를 살펴볼 때 장례식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말의 의식이 있었고 말무덤이 따로 있었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무덤방인 5호와 가장 가까운 곳인 2호에서 안장이 확인되면서 말이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무덤이라고 일컬어지는 16호는 특별한 무덤이다. 왜냐하면 나무로 무덤방을 만든 경우가 주인공 무덤 5호, 무덤방 2호, 9달된 어린아이의 무덤 외에는 전부 돌로 만들어졌다. 주인공 무덤방을 나무로 만들었으니, 나무가 특별한 소재 임을 알 수 있다. 아르잔-1호와는 전혀 다르다. 거기는 나무를 펑펑 썼고(통나무 6000개 이상), 여기는 아주 아껴서 나무를 썼다. 요즘도 곧게 뻗은 나무는 매우 비싸다. 가장 비싼 건축재료라고 들었다.(남대문 복원때 문제가 생긴것도 나무였다.  나무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자살하신 분도 있다.....)

 

주인공 무덤방 5호와 같은 건축재인 나무를 쓴 무덤방 16호에는 말이 14마리 묻혔다(그림 6). 무덤의 남동쪽에 위치하는데 남동쪽 구역에서는 유일하게 스키타이 시대의 구조물이다. 말무덤은 우선 돌판으로 만들어졌는데,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 위(그림 1, 2-2,3)에 올린 것이다. 돌판을 드러내자 나무덮개(그림 2-2, 3)가 드러났다.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구조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우선 가로 방향으로 2~3m 간격으로 통나무를 배치하고 그 위에 세로방향으로 돌 상자를 채웠다. 나무덮개는 돌상자 전체를 덮었다(그림 3).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의 돌 덮개 및 16호의 단면도(2,3), 3번 그림에서 나무바닥은 만들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돌 덮개 개방 후

 

나무 덮개를 열자 14마리의 말이 배를 바닥으로 향하고 사지를 구분린 채 확인되었다(그림 4). 말 1,2는 가장 남쪽, 그 위쪽으로 2~5번 말 4마리, 그에 이어서 6~8번 말(그림 6-2), 가장 북쪽에는 9~14번 말이 배치되었다. 배치된 상태에 따라서 말의 장식이 차이가 있지 않고 모든 말이 같은 장식이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마구

 

청동재갈(그림 4-6)(길이 18.7 cm, 폭 2.8 cm, 두께 0.9 cm)과 재갈멈치(그림 4-7,8)(길이 15.8 cm, 너비 0.9 cm), 청동으로 된 원뿔모양의 장신구(그림 4-4,5; 9~14), 꼬리(그림 4-2, 그림 5-2)와 갈기(그림 4-1, 그림 5-1)를 장식하는 금판장식이다.

 

갈기장식(길이 12.7cm, 너비 4.5cm, 두께 0.03cm; 무게 8.92g)과 꼬리장식(길이 8.3 cm, 폭 2.3 cm, 두께 0.03 cm; 무게 3.88 g)을 제외하고 모두 청동제이다.

청동제 재갈과 재갈멈치는 거의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원뿔모양의 장식은 두 종류가 있는데, 재갈과 재갈멈치와 마찬가지로 가죽끈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원뿔모양 장식이 모든 말에서 확인되지만 위치가 제각각이어서 정확하게 추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재갈과 재갈멈치에서 연결된 굴레의 끈을 연결부위를 이어주는 매듭 혹은 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없다.

 

이외에도 말 머리에서 떨어진 채 확인된 청동제 장신구(그림 4-3)(길이 5.1cm, 너비 1.4cm, 두께 0.3cm)가 있다. 주몰로 제작되었고, 구멍이 있어서 어딘가에 달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8번 말의 마구(그림 4와 동일)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말(1-말의 출토상태, 2-나란히 배치된 3마리 말, 3-말의 두개골과 주변에서 확인되는 말 장신구, 4-말의 엉덩이 부위, 꼬리를 장식했던 금판이 눈에 띈다)

 

아르잔-2호 무덤방 16호 출토 말 14마리는 모두 같은 마구 및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이 점은 파지릭 5호분과 차이가 있다. 파지릭 5호분에는 가장 아래에 들어간 9번 말은 마면까지 썼고, 실크로 된 안장덮개가 세트로7 가장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다른 말도 안장이 있는 말과 없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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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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