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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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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에서 일종의 지역문화)에서 남성은 고깔모자 및 투구형 모자를 썼다는 점을 알려드린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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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고깔모자에 대해서는 헤로도투스도 자신의 저서에서 스키타이 인들의 특징을 묘사할 때 적어 놓은 바 있고,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에 새겨진 조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손에 스타킹을 들고 있는 사람, 말을 부리고 있는 사람, 고리트(스키타이 인들의 화살통)를 차고 있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단순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흑해 북안의 쿨오바라고 하는 고분에서 출토된 황금 항아리에도 고깔모자를 쓴 사람이 확인된다. 그리스 장인이 만든 황금 빗(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에서)에서도 스키타이 전사의 목 뒤에 고깔모자가 매달려 있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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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 얼음 속에서 확인되는 우코크 고원의 고깔모자는 좀 더 장식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 남성 미라가 쓴 고깔모자(펠트)는 정수리에 목제로 된 새 머리장식이 붙어 있고, 그 상단에 산염소 한 마리가 장식되어 있다. 고깔모자의 앞과 옆에는 목제로 된 산염소가 부착되어 있다. 발견 당시에 산염소의 뿔은 없어지고 구멍만 남아 있지만 뿔을 조각해서 삽입했던 것이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가 썼던 고깔모자

 

그런데 이 남성은 모자가 한 점 더 있었다.

어제 소개해 드린 유물 배치도에 보면 어깨와 허리부위에 모자장식이라고 설명된 부분이 있다. 목제로 된 사슴 혹은 산염소 조각 장식이다. 뿔이 없어져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같은 종류의 동물 3마리이다. 가장 큰 한 마리는 고깔모자의 왼쪽옆에 붙어 있었고, 한 머리는 이마 앞쪽에 다른 한 마리는 고깔모자의 머리 끝에 붙어 있었다(그림2). 이 고깔모자는 장식만 나무로 만들어졌고, 기본적인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으며, 정수리 끝에는 새머리가 함께 재단되어서 제작된 것이다. 새는 부리가 표현되어 있고, 부리 뒤쪽에는 금박을 입혔다. 펠트제 모자는 모피코트 속에서 발견되었다. 모자는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앞에서 포스팅한 여러 곳의 고깔모자가 약간 씩 전부 다르지만 공통적인 점은 귀를 덮는 긴 끈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페르시아 시절의 페르세폴리스 아파다나 궁전 벽화, 쿨 오바의 황금 항아리 속의 남성 등 모든 남성의 모자는 정수리 끝 장식은 다르지만 귀를 덮은 점이 공통적이다.

 

이미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그림은 폴로스막의 책에 있었던 것에는 목제 장식이 따로 구성되었지만 필자가 실제로 본 사진에서는 원래 자리로 생각되는 곳에 복원되어 있었다(그림 2).

 

위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미라 모자(필자촬영)

 

 

 

그림 3. 그림2의 가장 상단에 부착된 동물장식 (필자촬영)

 

 

 

 

그림 4. 그림 2의 동물장식(필자촬영)

 

 

 

 그림 5. 그림 2의 동물장식(필자촬영)

 

그런데 이런 모자를 썻던 남성의 헤어스타일은 어땠을까?

 

이제까지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아크 알라하 3 유적)와 파지릭 2호분의 여성미라는 모두 삭발을 했었다. 파지릭 5호분에서 확인된 캐노피의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여성도 삭발했었다.

 

그러나 남성은 좀 더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남성미라는 앞부분만 머리를 밀었고, 파지릭 5호분에서도 남성미라는 앞부분만 밀고 뒤는 그냥 둔 채였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의 뒷 머리 스타일은 정확하지 않은데, 머리가 벗겨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남성은 머리는 좀 다르다. 이 남성은 머리의 정수리 부분의 머리는 길러서 땋았고, 그 주변은 밀었다.

 

 

 

 

그림 6.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남성미라의 헤어스타일

 

그렇다면 고깔모자 아래로 땋은 머리가 2갈래로 내려왔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전사는 2500년 전 어느 날 미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얼음공주 미라(아크 알라하-3)와 매우 가까운 곳에 묻혔고, 다행히 완벽하게 미라의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세간의 관심은 덜 했다. ‘얼음왕자’이런 별명도 없고, 그는 얼음공주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유적은 1994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발굴되었다. 1995년 얼음공주가 부산에 왔을 때 그는 이제 막 사람들이 무덤 속에서 끄집어 내었다.

 

 

앞에서 소개한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 3 유적과 마찬가지로 말은 무덤방 북쪽에 매장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그림 1에서 목제의 돌출부를 제외하고는 실제 무덤방은 164×113m가량이다. 나무는 통나무를 반으로 나누어서 사용한 것이다. 바닥의 나무는 4개만 깔렸고, 목기와 토기 등의 그릇이 놓은 부분에는 나무가 깔려 있지 않았다. 나무방의 벽은 통나무를 2층으로 올린 것이다.

 

나무방 덮개를 열자 나타난 것은 남성 미라가 무릎을 굽힌 채로 잠들어 있었다. 미라로 제작된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달리 통나무관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자세는 이제 까지 설명된 무덤에서 줄 곧 확인되는 자세이다. 쭉 뻗고 하늘을 쳐다보는 (앙신직지) 시신처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1.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무덤방의 유물은 여느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처럼 많지 않았다. 더욱이 부장된 말의 수와 출토된 유물도 적은 편이어서 전체 적으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림 2.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에서 출토된 유물

 

그림 2에서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를 알 수 있다. 목제 쟁반 위의 양뼈(엉덩이뼈), 그 옆의 칼, 그곳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토된 토기 1점, 목기 1점 등 실제로 사용했던 유물이다.

 

그런데 이 남성은 관이 없었지만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이 있었으며, 모피코트를 입고, 고깔모자를 쓰고, 펠트로 된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특히 남성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먼저 발굴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용도로 씌인 것인지 알게 했다. 이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발견된 남성전사 머리 위의 동물문양장식이 용도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말의 수는 적지만 출토된 마구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되었다.

 

그림 3. 시베리아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1: 얼음속의 미라; 2: 미라를 발굴하는 장면)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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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베르흐 칼쥔(Верх Кальджин, Verkh Kal'dzhin) II 유적은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해발 2500m)에 위치한다. 앞서 설명했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지도2)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된 남성 미라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남성미라(2호분,5호분)는 해발 1500m인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된 것이다.

 

지도 1. 스키타이 문화 중 파지릭문화의 유적

 

 

지도 2. 우코크 고원의 베르흐 칼쥔 II유적(푸른색)과 아크 알라하 3유적(오렌지색), 지도 1의 확대, 지도1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가능하다.

 

https://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적은 칼진(Кальджин, Kal'dzhin)강의 상류에 위치한다. 유적의 이름은 칼쥔 강의 베르흐(Верх: 상류)를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러시아 지명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유명사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나중에 혼돈이 적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책들은 이를 일일이 번역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그 유적이 어떤 유적인지 알 수 없다.

 

베르흐-칼쥔 II유적에는 4개의 고분이 일렬로 설치되었는데, 3개를 발굴했다. 그 중 남성미라가 확인된 곳은 3호분이다. 1호분에서 11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무덤, 까맣게 칠한 것이 발굴된 무덤이다. 위의 화살표 옆에는 칼쥔 강 입구까지 50m. 가장 오른쪽 화살표C는 북쪽을 의미.

 

 

무덤은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의 1,2,5호분과 마찬가지로 지표상에서는 큰 돌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2). 돌을 들어내자 무덤 가장자리를 둘러싼 호석(6~7.6m)(그림 3)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표토를 벋겨내자 드러난 돌. 화산암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적석을 들어내고 남은 호석

 

그런데 이 무덤의 단면도(그림 4)를 보면 앞서 본 아크 아라하 3유적과는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무 무덤방이 설치되는 가장 아래의 무덤구덩이를 한 번에 파지 않고 단을 만들어서 팠다는 점이다. 표토의 생토를 기준으로 50cm정도 들어가저 첫 번째 단인 확인되었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단면도

 

2020/0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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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구덩이(2.6×2.2m)의 깊이는 2m이고, 구덩이 안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했다. 위에서부터 121cm정도 들어가자 무덤방의 덮개가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무덤방 덮개

 

무덤구덩이에 나무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 방 바깥에는 말을 부장하는 구조는 앞에서 본 2500년 전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에서 보았던 것이다.

무덤방은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결구한 무덤방인데, 내부에 관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무덤방이 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무덤방 바깥에는 말을 매장했는데, 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2 마리 이상이지만 정확하게 몇 마리를 매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잘 남아 있는 목제 굴레장식과 철제 재갈은 한 벌이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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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이 넘게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을 살펴보았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유적은 다시 2500년 전 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일명 ‘얼음공주’의 몸에 문신을 남긴 같은 타투이스트가 이 남성의 몸에도 타투를 남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성 미라의 무덤이다.

 

처음부터 이 유적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사진 자료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신한 3인을 모두 소개해 드린다는 목적에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앞서 문신한 미라가 얼음공주와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외에 베르흐 칼쥔 II 유적이 있음을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 사실 미라와 문신은 상당히 높은 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 산통을 깬 유적이 바로 이 유적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유물이 출토되는 직업은 군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남성이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아래그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미라’가 스키타이 문화에서 모든 무덤유적에서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알타이와 중국 신강성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미라가 된 사람들을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소략하더라도.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3 유적의 미라에 비해서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문신은 간단한 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필자가 아침마다 듣는 뉴스공장에 타투이스트가 나왔는데, 문신비용은 시간당 계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문신의 너비가 넓을수록 많은 시간이 드니 비용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타투이스트가 가장 몸값이 높다는 이야기도.

 

관계없어 보이지만,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무사 어깨에 새겨진 문신도 앞의 2명보다는 간단한데, 문신 계급론에 대한 아쉬움을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세 명의 미라는 모두 같은 타투이스트가 새겼을 것이라고 한다. 필적도 감정을 할 수 있듯이 그림도 누가 그렸는지 감정할 수 있다. 문신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러시아 유학 당시에 잠깐 문신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같은 곳에, 러시아여성들이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해서다. 머 그러다가 말았지만...

 

암튼 잠시 잊고 있던 얼음공주 생각도 해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과는 어떤 관계인지 실마리가 있는지도 알아 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사실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베르흐 칼쥔II유적의 남성미라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외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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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방에 사용된 나이테를 분석해서 통계분석 결과 기원전 671~602년에 유적이 축조되었다. 그런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절대연대 측정방법은 만년 이하의 자료는 탄소연대측정법이다. 아르잔-2호에서 남아 있는 유기물질 가운데 목제, 직물, 가죽, 펠트, 식물류 등을 샘플 채취해서 그라니겐, 웁살라와 애리조나 등지 여러 곳에서 연대분석을 했다. 그런데 탄소연대의 결과 이 유적은 기원전 790년~540년 사이에 존재했다고 한다( A.Yu. Alekseev 외 2002).

 

탄소연대의 결과에 따르면 이 무덤의 장례식을 250년간 행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 남녀를 위해서 200년이 지나서도 계속 이 무덤을 축조하고 있었다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의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이양되었을 것이고 권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200년 넘게 얼굴도 모르는 부부를 위해서 무덤을 계속 축조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필자는 이 경우는 나이테분석법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아르잔-2호에는 다행히 주인공 남녀의 뼈가 남아 있었다.

주인공 남성은 키가 170cm 정도이고 현미경 검사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뼈에서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악성 전립성 종양이 뼈 전체에 퍼졌다. 전립선 암이 주인공 남성의 직접 혹은 간접적 사망 원인이다.

 

주인공 여성의 키는 162cm 정도이다. 두개골에서 매우 작은 양성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윗 앞니(upper incisors)에 좁은 홈이 있었는데, 여성이 3세 때 형성된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매장된 사람은 영양부족을 경험했거나 장기 질병을 겪었을 것이다. 여성의 팔다리 골격과 척추관절의 마모 징후가 확인되지 않아서, 뼈로서는 사망원인을 진단할 수 없었다.

 

아르잔-2호에서 심한 영양실조의 흔적이 남은 인골이 또 있는데, 22호 여성이다. 20~21세의 여성으로 두 어깨의 표면에 근육이 매우 발달했던 흔적이 있는데, 특히 오른족 쇄골에만 힘줄이 발달해서 물리적 변형이 있었던 것이 나타났다. 이 여성은 오른손 잡이로 키는 161cm로 큰 병은 없었다. 사망 몇 달 전에 양쪽 앞니가 모두 없어졌고, 나머지 치아에서는 가로줄무늬가 확인되는데, 어린 시절에 영양 부족을 경험했거나 혹은 심하게 아팠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치아에 남은 스트레스 흔적은 생후 3~7년 동안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과도하게 발달했던 오른쪽 쇄골의 근육 흔적으로 보아서 여성군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죽은 원인은 머리에 난 구멍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난 상처는 정수리 부근에 난 것으로 서 있는 여성을 체칸으로 가격했고, 그 이후에 등이 땅에 닿인 채로 넘어진 여성을 세 번에 걸쳐서 가격했을 것이다. 두 번째 가격은 왼쪽 눈 위에 나 있는 흔적이다.

 

22호 여성관련 포스팅-->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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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에 묻힌 남성은 50~59세이다. 그의 치아 상태는 고기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키는 171cm가량이고, 팔과 다리 뼈에 근육자국이 남아 있어서 그의 근육이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쇄골에 깊은 근육자국이 남아 있다. 왼손잡이 경향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허리, 손, 척골, 왼쪽 경골 등에 부상이 있었으나 치유된 흔적이 남아 있다. 죽기 전에 그는 수년간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이는 말을 타거나 이와 관련된 활동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24호 남성은 정수리 오른쪽에 큰 구멍(48×46mm)이 나면서 사망했다. 짧은 거리에서 내려 찍은 흔적인데, 무기에 의해서 제거된 두개골 뼈가 두개골 안에서 확인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무덤방 24호 남성

 

스키타이 인들이 말을 오랫동안 타면서 생긴 병에 대한 이야기는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언급한 바 있 바 있다.

 

2020/03/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해발 3000m, 7월 모습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로 헤로도투스를 꼽는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실제로 보거나 방문해서 알아낸 기록이라기 보다는 전해들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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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러시아 스키타이문화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8살 남자아이의 무덤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낮다. 여성은 29.6세, 남성은 38.5세 라는 점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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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와 24호 모두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묻힌 사람들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살해된 사람들로 장례식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성의 인골에서는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22호 여성과 주인공 여성에게는 어릴 때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 매우 궁금하다. 22호 여성이야 일반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주인공 여성 조차 영양실조였다니. 물론 사회적 여건 때문에 그럴 수 있었겠지만, 24호 남성과 주인공 남성에게는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아르잔-2호는 다행히 인골이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했고,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A.Yu. Alekseev, N.A.Bokovenko, Yu. Boltrik, K.V.Chugunov, G.Cook, V.A.Dergachev, N.Kovaliukh, G.Possnert, J.van der Plicht, E.M.Scott, A.A.Sementsov, V.Skripkin, S.Vasiliev and G.I.Zaitseva. Some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chronology of the ancient nomadic cultures in Eurasia (9th - 3rd centuries BC) // Geochronometria - Journal on Methods and Applications of Absolute Chronology. Vol.21. pp 143 - 15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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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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