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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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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말이 2마리 이상 부장된 곳은 2호, 10호, 13호, 16호, 23호가 있다. 그곳에서 16호는 남성 2인이 말 3마리와 함께 매장되었고, 23호는 남성2인과 여성1명이 매장되었다. 23호는 21,22호와 무덤 상부의 돌이 함께 덮여서 16호와는 다른 정황이다.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16호 무덤, 1,2-재갈, 3-재갈멈치, 4-굴레장식, 5,6-항아리, 7,8-칼 편, 9-전투용도끼의 손잡이, 붉은색 색칠, 10-검, 11-여성의 땋은 머리카락 조각, 12-장식조각, 13-V자모양의 사슴조각, 14-모자장식(aigrette), 15~19: 금판으로 만든장식, 20-산양몬양의 사슴, 21~22: 맹수끝장식이 달린 목걸이, 23:나팔모양 목걸이 편, 24-말 모양 조각, 25-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표현된 원판모양, 거울장식, 25~27: 거울, 28,29-십자형 장식판, 30,31-구멍둘린 원판모양, 32,33-고리모양 귀걸이, 34-막대기, 35-검은색 물감의 흔적, 36-고리트 안의 활과 시위, 철제(1,2,7,8), 나무(3,4,13,20-22,24,28-31), 토제(5,6), 청동+나무(10,23), 청동(25-27),11(펠트), 금박(15-19), 가죽(14), 주물로 제작된 금(32,33)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16호 무덤, 그림 5와 유물번호 일치

 

그림 3. 유스티드 XII유적의 16호 무덤, 그림 5와 유물번호 일치. 제외 26

 

16호에는 무덤구덩이(270×250cm)를 파고 무덤방(200×131cm)은 설치하는 점은 같으나 무덤바닥이 다른 2인장 무덤과는 차이가 있다. 20호에는 무덤바닥에 시신이 안치된 곳만 나무를 깔고 무덤방의 북쪽은 나무를 깔지 않았으나, 16호에는 전면에 깔고 두 명은 약간 떨어진 채 묻혔다. 이 점은 별로 의미 없을 수는 있지만 이 유적에서 나무 무덤방을 쓴 경우는 전부 북쪽에 그릇 두는 부분은 나무를 깔지 않았으나 16호에만 전면에 나무를 깔았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유일하게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확인되었다(그림 3-26, 그림 1-25). 맹수 안에는 사슴 혹은 산양이 한 마리 더 표현되었고, 거울에는 손잡이 부분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는 몸통에 날개표현이 되어 있다. 이는 울란드리크, 파지릭 유적 등에서 S자형 날개표현이 있는 맹수 즉 그리핀이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유물이 우측 피장자의 것인지 좌측 피장자의 것인지 애매하다. 왜냐하면 그림 1의 캡션 설명에는 25번으로 되어 있으나, 그림 3에는 26번(우측인골)으로 되어 있다. 맹수장식은 거울의 이면에 붙인 장식판이다.

남성 2인이라고 알려졌으나 이 무덤의 좌측에 위치한 인골은 4호 여성과 비슷한 모자장식(그림 3-14), 19호 여성과 비슷한 모자장식(그림 3-13), 꼬은 머리채(그림 3-11) 등으로 보아서 이 피장자가 남성인지 의심스럽다. 상대편에 있는 남성은 전투용도끼와 고리트(화살통) 등이 있어서 두 명은 부장품에 차이가 있다. 이 유적에서 남성 2인이 매장된 17호(추가장 제외)에는 유물이 없어서 비교 불가능하다. 

 전체적으로 보아서 두 사람의 부장품에는 차이가 있고, 이 유적에서도 여성과 남성무덤에서는 부장품의 차이가 있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 무덤에도 성별이 다른 2인 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 가운데 유스티드 XII라고 명명된 유적에는 무덤 26기가 일열로 배치되었다. 열을 벗어난 2기는 유스티드 I유적의 예로 보아서 기원전 3~2세기 가량의 흉노시대 혹은 그 이후 초기 투르크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흉노와 초기 투르크시대 무덤은 꼭 열을 이루고 있는 스키타이 무덤 옆에서 확인된다.

 

이 유적에서 유일하게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가 함께 매장된 무덤은 20호 였다.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 남녀가 무릎을 굽인채 묻혔다.

그런데 무덤과 유사한 예가 이미 소개되었다. 앞에서 소개한 알타이의 ‘왕’급인 바샤다르, 투엑타, 파지릭 유적과 샤먼이라고 추정되는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는 통나무관을 나무방안에 안치해서 썼기 때문에 이 유적의 20호와는 다르다.

 

알타이에서 벗어난 투바지역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이었던 5호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부부가 나무방에 매장된 경우는 없었다. 나무를 쓴 몇 몇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판으로 무덤을 만들었고, 같은 성이 함께 매장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무덤이 17호이다. 말이 부장되지 않았고, 무덤안에는 유물이 없었으며 남성 2인만 매장되었다. 돌상자는 납작한 석판 1매 및 그 보다 작은 여러 매의 석판으로 덮었다. 인골의 두향은 동향으로 다른 무덤과 일치한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17호

 

그런데 이 무덤은 17호의 돌상자 무덤을 쓰고 난 후에 2번에 걸쳐서 무덤이 열렸던 정황이 있다. 덮개돌 위에 돌상자의 인골 발쪽에서 인골 1구가 확인되었고(그림2), 그 위에는 또 인골 1구가 확인되었다(그림 3).

17호-2번 인골은 무덤시설은 별도로 없었고, 돌 상자 위에 놓인 상태였는데, 두향은 서향이다. 17호-1번 인골은 무릎이 완전히 접힌 것으로 거의 접은 듯하게 매장되었다. 17-2호를 묻은 후 덮고 난 뒤에 구덩이를 다시 파서 묻었던 것이다. 이 인골도 서향이다.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17호-2번 인골과 그의 유물, 1-토기항아리, 2-철제 장식판(?). 3-철제 칼, 4-6: 뼈제품, 7-?, 8-골제품, 용도는 알 수 없음, 9,10-뿔제 허리띠의 버클, 11-13: 뿔제 허리띠 장식판, 14-11번 장식판 뒷면에 그려진 사슴그림

 

그림 3. 유스티드 XII유적의 17호-1번 인골과 그의 유물, 1: 토기, 2: 깨진 청동원판, 3,4: 청동고리, 5: 뼈, 돌, 청동거울 조각으로 만든 구슬이 달린 방울, 6: 철제품, 원형 고리가 달린 철막대기, 7,8: 청동 귀걸이, 9: 17-2호 인골(두번째 추가장의 인골), 10: 숯; 11-목제 막대기

 

 

17호도 무덤의 생김새와 소재, 유물과 말이 없는 점 등은 이 유적의 다른 무덤과 전혀 다르다. 인접한 울란디릭 I 유적에서도 돌상자 혹은 돌널무덤, 투바 아르잔-2호에서도 확인되는 무덤스타일이다. 울란디릭 I유적은 유스티드 XII유적과 비슷한 시점에 생겼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 유적에서 가장 먼저 생긴 무덤은 17호와 20호일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17호 위에 설치된 2개의 추가장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특히 이 유적의 인골 모두가 동향을 향하는데 서향은 그 뒤에 생긴 관습이다.

 

이제까지 이 유적의 포스팅을 유심히 보시면 알겠지만 17호의 추가장은 앞서 살펴본 무덤의 유물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허리띠에 달던 장식의 소재와 형식은 모두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파지릭문화) 이후의 것이다. 그래도 한정 없이 늦지는 않고, 기원전 1000년 기(기원전 1000~기원전 1년) 대의 유적일 것이라고 약간은 무책임하기도 하고 약간은 자기방어적인 편년관을 쿠바레프(1991)는 내었다. 물론 아마 지금이라면 좀 더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했을 것이다.알타이에서 스키타이 문화(파지릭 문화)가 끝나는 것은 기원전 3세기 가량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어느 계곡의 남성이 홀로 묻힌 경우(어린아이 제외)는 이미 소개한 13호, 25호 외에 2호와 25호가 있다. 13호에는 인골과 유물이 제대로 제자리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나(도굴의 가능성).

남성 1인이 묻힌 2호에는 말 1마리, 3호, 25호에는 말 2마리가 매장(포스팅참고)되었다.

 

 

2호(무덤구덩이: 280×230cm, 무덤방: 163×93cm)에서도 무덤방 안의 인골 및 말은 제자리를 벗어났다. 이 유적에서 모든 인골은 동향이고, 무덤의 남쪽벽에 치우쳐서 확인되었다. 말은 무덤방의 바깥 북쪽공간에 매장되는데, 이 무덤에서 말 머리뼈만 북벽을 벗어나서 동쪽구덩이쪽에서 확인되었다. 아마도 후대에 무덤이 열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1.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호분 남성무덤, 1,2-철제 재갈, 3-철제 칼, 4-6: 금박, 7-가죽조각, 8-투부(전투용 도끼)의 자루 조각, 9-11: 토기 그릇

 

 

2020/09/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고분 XII] - 알타이 스키타이 무덤의 말 2마리는...

알타이 스키타이 무덤의 말 2마리는...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스키타이 문화사람들이 묻힌 장소인 유스티드 XII 유적에는 인간도 2명 이상 매장되지만 말도 2필 이상 매장되는 경우가 있다. 3호, 10호, 13호, 16호, 23호, 25호이다. 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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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남성무덤처럼 어린아이가 아닌 여성1인과 말 1마리가 부장된 무덤은 27호(그림2)이다. 여성 1인과 말 2마리가 부장된 무덤은 이미 소개한 19호(포스팅 참고)가 있고, 도굴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10호도 있다.

 

2020/09/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고분 XII] -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사람, 그리핀, 말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사람, 그리핀, 말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제사복합체 유적에서 확인된 사슴돌 가운데 돌고리 유구 가운데 서 있던 사슴돌 옆에는 그리핀인듯한 동물이 그려진 사슴돌이 누운 채 확인되었다. 같은 계곡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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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7호분 여성무덤,1-재갈, 2,3-원판형장식, 4-항아리, 5-둥근고리가 달린 칼, 6-고깔모자의 상단부를 지지하기 위한 막대장치, 7-사슴모양의 장식조각, 8-고깔모자의 앞부분 장식, 말모양, 9,10-사슴모양의 뿔, 11~13-동물머리모양장식판, 14-모자장식(이빨모양장식판), 15-늑대모양의 목걸이 끝장식, 16-거울, 17-다리4개달린 쟁반, 18-목제주머니, 19-낙엽수로 만든 막대기, 20-낙엽수 껍질, 철제(1,5), 뼈제품(2,3), 토기-(4), 목제(6-8,15, 17, 18, 19, 20), 금박(9-14), 청동(16)

 

 

 

 

 

그림 3. 알타이 유스티드 XII유적의 27호분 여성무덤의 출토유물, 번호는 그림2와 일치

 

27호 무덤은 같은 조건(여성 혼자, 말 1마리)으로 만들어진 19호에 비해서 무덤구덩이의 크기(332×262cm)가 작고, 무덤방 크기(109×176cm)도 작은 편이다. 19호에는 구덩이의 남과 서쪽에 돌을 채워넣었으나 27호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었다. 시신이 안치된 곳에만 나무바닥을 깐 것은 마찬가지이다. 말은 매장되었으나 이미 썩은 상태로 확인되었다.

 

2호가 도굴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2호(남성1인, 말1마리)와 27호(여성1인, 말1마리)가 제대로 비교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26기의 무덤 시작과 끝이 남성과 여성 1인 무덤으로 끝나는 것은 계획된 것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 여성 1인 무덤(19호, 10호),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매장된 무덤(20호), 여자아이 2명(11호), 여자아이 1명(6호)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여성이 매장된 경우 중에 여성과 아이가 매장된 4호와 8호가 있다.

 

4호 무덤인데, 나무로 된 무덤방은 1기이지만, 함께 나란히 매장되었다. 네모꼴 무덤구덩이(264×317cm)안에 나무무덤방(208×125cm)안에 나무껍질을 바닥에 깔고 함께 두 피장자가 매장되었다.

 

그림 1. 유스티드 XII 유적 4호무덤방, 1-재갈과 끊어진 재갈멈치, 2,3-굴레장식, 4,5-거울, 6-나무장식, 7,8-동물문양장식, 9-모자에 달았던 장식, 10-모자장식, 11-이빨모양의 장식판, 12, 13-고리모양의 귀걸이, 꽃 장식이 달렸음. 14-2개의 토기편, 15-목제쟁반, 16-철제 칼, 17-양의 엉덩이뼈, 18-목제 잔, 19-검은색 물감의 흔적, 20-낙엽수 껍질

 

그림 2. 유스티드 XII 유적 4호 유물, 그림 1과 번호 일치

 

 

8호에서도 역시 여성과 아이가 매장되었는데, 무덤방의 구조가 약간 차이가 있다. 8호에서는 무덤방 바닥에 바닥시설을 각각 따로 해서 깔았다. 무덤방의 크기(222×105cm)는 비슷하다.

 

 

그림 3.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 1-재갈, 2-굴레장식, 3-토기, 4, 5-칼, 6,7-다양한 장식판, 8-동물의 머리모양장식, 9-이빨모양장식판, 10-체칸(전투용도끼), 11-장식판, 12, 13, 16,17-허리띠 장식판, 14-체칸(전투용도끼)에 달았던 송곳니형태의 장식판, 멧돼지 송곳니의 이미테이션, 목제, 15-원판형 단추모양, 16, 17-장방형장식판, 18-화살촉, 19-22: 활대의 끝부분, 23, 24-활대의 중간, 25-검손잡이, 26-검, 27-체칸에 연결하는 벨트의 부분, 28-체칸의 잘, 29-머리띠, 30-목걸이의 걸이부분(안은 비었음),31-산양화된 사슴장식, 32-말장식, 33-새 장식, 34- 모자장식(aigrette)의 일부분, 35-모자장식의 일부분으로 양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맞대는 모양, 36-투구형 모자장식의 끝장식으로 말 모양, 37-투구형 모자, 38, 39-토제그릇 2점, 40-다리 4개 붙은 쟁반, 41-검은색 물감 흔적, 42-낙엽수의 껍질, 철제(1,4,5), 목제(2,3,11-17, 19-26, 29, 31-37),금박(6-9), 가죽(10, 27), 뿔(18), 청동+나무(28), 청동(30)

 

그림 4.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의 출토유물, 번호는 그림 3과 일치

 

 

그림 5. 유스티드 XII 유적 8호무덤방의 출토유물 번호는 그림 3과 일치

 

 

그런데 이 아이도 소형화된 도끼와 칼을 가지고 있었다. 소형화 된 도끼와 칼은 3호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성인여성이었다. 체칸이라고 불리는 도끼 자루의 끝장식, 도끼에 달았던 멧돼지 송곳니 모형, 화살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자아이의 것과 비슷하다. 목제칼, 고리트까지 소년의 몸집에 맞게 소형화되어서 무덤에 부장되었다. 그렇다면 8호의 여성과 함께 묻힌 아이는 남자아이일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녀 혹은 모자 지간이겠지만 어떤 이유로 함께 매장되었을까? 아이가 죽어서 일까? 엄마가 죽어서일까? 아니면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혹시 요즘처럼 역병이 돌아서 그랬던 건 아닐까? ‘역병’이라는 존재를 알았다면 화장을 했을텐데..당시에 왜 사람이 갑자기 죽는 지 이유를 몰랐을까?(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다. 일년 전에 이런 무덤을 보았다면 아마 코웃음을 쳤겠지.) 일렬로 서 있는 26기의 무덤은 몇 년 사이에 만들어졌을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2인 이상이 묻힌 무덤이 4,8,11,16,17,20,23호가 있다. 그 가운데서 여성 2인이 묻힌 곳은 4, 8, 11호인데, 4호와 8호는 성인 여성과 아이가 매장된 곳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성 아이만 2명이 묻힌 곳이 11호이다. 말은 매장되지 않았다.

 

무덤방의 크기는 매우 작으며(137×107cm), 출토유물도 소략하다(그림 1). 뿐만 아니라 무덤상부의 봉분크기도 작았다(그림 4).

이 유적에서는 여성아이 1명이 묻힌 무덤도 있는데, 특이하게 통나무를 파서 말 구유모양으로 만든 통나무관(길이 160cm, 너비50cm)에 묻힌 아이(6호묘)도 있다(그림 2). 유스티드 계곡 전체에서 통나무관이 이용된 경우는 유스티드 XII유적 6호를 포함해서 3곳 뿐이다. 이 유적에는 통나무관의 뚜껑이 없지만 뚜껑이 있는 어린아이의 통나무관이 유스티드 유적 I호 7호분에서 발견되었다.  6호(그림 2)의 여자아이는 모자를 쓰고 항아리와 철제 칼 1점과 함께 나무속에 부장되었다. 이 유적에는 나무 무덤방에 묻힌 여성아이(7호,9호)도 있다. 7호무덤의 방 크기(100×80cm)는 길이가 1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그림4).

 

 

 

그림 1. 유스티드 XII 유적 11호 무덤, 1-토기, 2,3-철제 칼, 4,5-목제 사슴머리장식, 6-목제 말 장식, 7-목제 머리장식, 8-말사슴의 송곳니, 9-목제 잔의 손잡이, 10-황토흔적105

 

 

그림 2. 유스티드 XII 유적 6호 무덤

 

그림 3. 유스티드 XII 유적 7호 무덤

 

그림 4. 유스티드 XII유적 무덤 배치도

 

그런데 아르잔-2호 유적에서도 통나무관을 쓴 경우도 어린 아이의 무덤이었다. 그렇다면 통나무관에 사람을 매장하는 관습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시작되어서 계속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쿠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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