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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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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문화인 타스몰라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존재한 문화이다. 전반기는 기원전 7~6세기, 후반기는 기원전 5~3세기까지 존재했다. 기원전 4세기가 되면 스키타이 문화권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흉노문화, 볼가지역 및 흑해지역은 사르마트 문화 혹은 훈족 문화라고 하는 지역으로 변환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중부지역 및 동부지역 특히 평지에는 기원전 3세기까지 타스몰라 문화가 지속된다. 카자흐스탄의 동부 산악(천산산맥) 부근에는 사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지만,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고고문화의 구분은 선명치 않다.

 

카자흐스탄 타스몰라 문화는 사카 문화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베리아 아르잔-2호의 발굴로 다시 소환되었으나,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관심사와 약간은 빗겨나갔기 때문인데,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황금유물이 몇 몇 동물장식 빼고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덤구조도 ‘수염 달린 쿠르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산악지역(카자흐스탄 동부, 파지리크 문화) 및 아르잔-2호와도 전혀 다르다.

 

타스몰라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늦은 기간에는 황금유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동물장식 가운데 맹수모양의 황금장식(그림 1)은 이른 시간에 몇 점이 발견되고 그 이후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늦은 시기의 타스몰라 문화 유적에서는 유물 자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부분 무기(화살촉, 철칼)과 석제 쟁반, 마연석 등이 발견될 뿐이다.

 

시베리아 중부의 산악지역인 알타이와 천산산맥에서 황금관련 유물이 발견되는 시점이 기원전 6~5세기이지만 카자흐스탄 평지에는 소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 1. 타스몰라 문화 전반기(기원전 7~6세기) 동물장식, 황금제품

 

 

그림 2. 타스몰라 문화의 후반기(기원전 5~3세기)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그림 3. 타스몰라 문화의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중에 1,2-5a, 3,4-5b

 

아르잔-2호의 마구와 허리띠 장식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점은 틀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황금유물을 기준으로 할 때 두 문화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오히려 아르잔-2호의 황금제작 기술이 카자흐스탄 각 지역의 황금제작 기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견(Barbara Armbruster 2009)이 더 합리적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정해진 무기, 마구, 동물장식은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씩 비교해 보면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들이 더 많다. 황금유물은 이들 각각의 제품 가운데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의 재질이다. 그런데 필자는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세계를 묶는 유물은 일상용기로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제 쟁반은 아르잔-2호와 파지리크 문화의 이미테이션이다.

 

참고문헌

 

Barbara Armbruster 2009 Gold technology of the ancient Scythians –gold from the kurgan Arzhan 2, Tuva, Archeo Sciences, 33, 2009, p. 187-193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의 초기철기시대 고고문화인 타스몰라 문화는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와 자주비교되었는데, 염소와 사슴상 때문이다. 2000년대 투바의 아르잔-2호 발굴뒤에는 이 유적에서 나온 마구와 허리띠 장식 등이 타스몰라문화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무덤구조의 차이가 크고 아르잔-2호의 연대가 오히려 더 빠르기 때문에 타스몰라 문화가 북쪽에서 발견되는 유물의 특징에 대한 주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공통되는 유물은 그라즈노프가 아르잔-1호를 발굴하고 나서 세운 개념인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지역성은 분명하다. 그 중에 하나가 사슴과 염소상이다.

다리를 굽혀서 배쪽으로 접어 넣은 사슴은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줄임발)의 동과 서에서 모두 발견되지만, 표현된 사슴의 자세한 부분은 차이가 있다(그림 1, 그림 2).

 

그림 1. 스키타이 문화권의 서쪽-흑해 연안의 코스트롬스카야 출토 사슴패식

 

그림 2.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쪽-카자흐스탄 실릭티 유적의 사슴장식

 

유물을 보면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을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따분하게 느껴지는데, 그래도 해 보면 앞으로 난 뿔의 가지수, 뿔의 모양, 사슴몸통의 볼륨감 등이 가장 큰 차이로 여겨진다.

특히 시베리아 연구자들은 동쪽의 사슴 표현이 서쪽 보다 볼륨감이 없는 이유를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인 카라숙 문화에서 발견되는 사슴돌에서 찾는다. 원래 시베리아에서는 사슴을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고, 그 전통이 초기철기시대가 되면서 금판으로 제작되기는 하지만 서쪽만큼 몸통의 근육표현을 뚜렷하게 하지 않고 지역성을 따른다는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 새로운 발굴자료 때문에 밝혀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약간 수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동과 서로 크게 구분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타스몰라 문화에서 발견되는 염소상(그림 3)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염소상은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에서도 발견되기는 하지만, 타스몰라 문화의 염소상은 약간 다르다. 동물상이 부착된 유물의 용도(아르잔-1호: 간두령장식, 타스몰라 문화: 굴레장식)뿐만 아니라 특히 자세가 다른데, 타스몰라 문화의 염소는 ‘발 끝으로 선 자세’(기원전 6세기)이다.

 

그림 3. 타스몰라 문화의 굴레장식, 염소, 타스몰라 V유적

 

두 유적의 유물은 연대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세에 초점을 맞춘다면 발 끝으로 선 자세의 굽동물은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카라숙 문화의 사슴돌(아래 포스팅)에서 먼저 발견되고, 아르잔-2호의 5호묘 남성 모자장식(그림 4)으로도 사용되었다. 아르자-1호에서는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장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 유적의 주인공 무덤이 도굴당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아르잔-1호의 봉분 위에 세워진 사슴돌에도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이 그려진 것이다(아래 포스팅).

 

2020.05.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그림 4. 투바의 아르잔-2호의 5호묘 출토

 

그래서 발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이 청동기시대부터 전혀져온 문양으로 초기철기시대까지 이어지며, 이 자세를 한 다른 굽동물인 염소로 대체되면서 타스몰라 문화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다리를 접은 사슴은 스키타이 시대를 대표하며 동과 서에서 발견되는 문양이다. 이 자세 역시 사슴돌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발 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과 염소는 동(중앙아시아~시베리아)에서만 발견되는 지역적인 문양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М.И. Артамонов Скифо-сибирское искусство звериного стиля (основные этапы и направления)// Проблемы скифской археологии. / МИА №177. М.: 1971. С. 24-35(아르타모노프 1971, 스키토-시베리아 동물장식)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인 타스몰라 I유적은 여성의 무덤으로 타스몰라 문화의 이른시기를 대표한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카자흐스탄 중부지역 문화를 타스몰라 문화이고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한다.

 

이 여성의 무덤은 일명 ‘콧수염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무덤 속에 매장되었는데, 무덤구덩이 속에는 양머리 2개체와 말이 매장되었다. 무덤의 남동쪽 방향으로 돌이 1m가량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무덤이다. 그럼 무덤속으로...

 

 

그림 1. 타스몰라 I유적 19호

 

여성의 머리 아래에는 돌로 만든 장식을 깔고 눕힌 것인데, 모자장식이 아니라 돌베개의 이미테이션이다.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엉덩이뼈 부근(오른쪽)이다. 오른쪽 종아뼈 아래에는 말의 견갑골과 두개골이 있었다. 말의 두개골은 청동제 굴레장식(그림 2-1~8, 그림 3-5)과 재갈, 재갈멈치(그림 4-2), 동물장식(그림 4-1)가 있었다. 반대편에는 양 머리 2개체가 있었고 그 위에는 철제칼(그림 2-9)과 함께 칼을 가는 도구가 발견되었다.

무덤 19호 재갈멈치와 연결하기 위한 구멍의 모양이 사다리꼴 인점이 시베리아 아르잔-2호에서 발견되는 재갈과 유사하다.

 

 

그림 2. 타스몰라 I 유적 출토유물

 

그림 3. 타스몰라 유적 마연석, 1-타스몰라 I, 19호, 2-타스몰라 II 24호, 3-타스몰라 VI, 1호, 4-카라무룬 I유적 5a

 

그림 4. 타스몰라 유적 마구, 1,2,5-타스몰라 I유적 19호, 3-톨라가이 4-타스몰라 I유적 24호

 

무덤 19호에서 나온 재갈의 모양은 분명히 아르잔-2호과 유사하다. 청동거울도 뒷면에 꼭지가 하나만 달린 점, 거울 가장자리에 테를 두른 점도 아르잔-2호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잔-2호 5호묘 주인공 여성과 비교해 볼 때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고, 청동거울의 위치도 머리위가 아닌 엉덩이 뼈 부근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아르잔-2호의 장법과는 다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같은 무덤구덩이 속에 말 뼈를 부장하는 점도 다르다.

 

아르잔-2호를 발굴한 추구노프 박사는 ‘유물 중에서 이미 발견된 타스몰라 문화의 유물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그 의미는 아르잔-2호의 수많은 유물 중에서 몇 몇 유물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아르잔-2호와 타스몰라 문화는 몇 몇 유물 외에는 큰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덤 구조가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유물은 동산적인 것이어서 옮겨다닐 수 있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여러 지역 가운데 카자흐스탄 중부에는 타스몰라 문화라고 하는 지역문화가 있다. 마구와 일부 유물은 투바의 아르잔-2호와 유사하지만 무덤구조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은 ‘수염이 있는 쿠르간’이라고 불린다. 독특하게 생긴 외형 때문인데, 쿠르간의 동쪽으로 20~200m 길이로 긴 띠가 연결되는데 이 부분이 마치 수염과 같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긴 띠는 돌로 쌓은 것으로 부채꼴 모양인데 2개가 서로 마주보는 모양이다.

쿠르간은 시신을 안치하는 매장주체부와 말과 토기를 매장하는 방법에 따라서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쿠르간이 2개가 따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매장주체부의 동쪽과 남쪽에 따로 말을 매장하는 곳을 따로 두는 것이다(그림 1-1, 2).

그렇지 않고 매장주체부의 상단에 말과 토기를 묻는 경우(그림 1-3)와 말을 시신과 같은 구덩이에 묻고 토기는 구덩이의 바깥에 묻는 경우가 있다(그림 1-4).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무덤 형식

 

카자흐스탄 라브로다 지역의 아토가이 지구에 위치한 타스몰라 유적이 대표적인데, 지점에 따라서 타스몰라 I, 타스몰라 V, 타스몰라 IV 유적 등이 있다. 각 유적에는 여러 무덤이 있는데 크게 기원전 7~6세기 무덤과 기원전 5~3세기 무덤으로 구분된다. 이 시간단위 구분은 타스몰라 문화의 시간단위 구분(편년)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 유적명은 주로 행정구역명을 기반으로 하며, 찾아진 유적마다 번호를 붙인다. 타스몰라 I, 타스몰라 II 등등.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은 대부분 단독 무덤이 아니라 여러 무덤이 군을 이루기 때문에 번호가 다른 유적은 다른 무덤군 좀 더 확장하면 다른 유적이다. 각 유적에는 무덤 여러기가 있는데, 동일 시기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여러 시기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타스몰라 I 유적에는 36기의 무덤이 있고 그중에 기원전 7~6세기 무덤은 19~24호 무덤이고, 나머지 무덤은 기원전 5~3세기 무덤이다.)

 

기원전 7~6세기 타스몰라 문화를 대표하는 무덤은 타스몰라 I유적의 19호이다.

 

그림 2. 타스몰라 I유적 19호, 1-19호 무덤 평면도, 2-단면도,3-무덤바닥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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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는 스키토-시베리아(스키타이)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흑해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스키타이 문화의 범위를 시베리아까지 넓히면서 생긴용어이다. 유라시아 초원 지역을 연결하는 여러 공통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 학계에서는 무기, 마구, 동물장식을 꼽았고 그 중에서 동물장식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특히 맹수장식과 사슴장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워낙 넓은 지역에 문화권이 형성되어서 지역성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알타이에는 파지리크 문화,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타가르 문화, 카자흐스탄에는 타스몰라 문화, 흑해에는 스키타이 문화 등 각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 흑해 북안과 코카서스 북쪽의 문화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부르는데, 좁은 의미의 기록에 따른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줄임말)에서 가장 이른 유적이 나오는 곳은 투바인데, 기원전 9세기의 아르잔-1 유적과 이 보다 늦은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 유적이 있다. 아르잔-2호 무덤은 도굴되지 않았고, 지하에 무덤이 설치된 이유로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아르잔-2 유적은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 문화와 관련성은 이 유적을 발굴한 추구노프 박사가 이야기 한 바 있다. 워낙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서 여러 지역과 연결할 수 있는 유물이 많은데, 타스몰라 문화와 관련해서는 무덤구조 보다는 유물이 관련이 깊은데 마구(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 허리띠 장식 등은 매우 관련이 있어 보인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청동유물, 굴레장식(1~10, 12,13, 20)과 버클 장식(11, 14~19), 타스몰라 I 유적

 

 

 

그림 2. 타스몰라 문화의 청동허리띠 장식 1-누르만베트 IV유적 3호, 2-누르만베트 IV유적 1호, 3-타스몰라 II 유적 1호

 

타스몰라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우랄 남부부터 이르티시 강까지 시베리아의 서쪽에 분포했고, 기원전 5~3세기 경에는 천산산맥 부근까지 유적이 발견된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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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6. 30. 13:13 스키타이 동물장식

 

 

유라시아 초원지역을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으로 잇는 3요소는 무기, 마구, 동물장식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장식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인 유럽과 동쪽인 카자흐스탄 및 시베리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동물장식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 넣은 사슴, 원형의 맹수장식, 다리를 접은 맹수이다.

 

주제는 같지만 개별 동물양식은 동과 서의 표현이 다르다. 동쪽의 동물장식은 몸통의 표현이 더 볼륨감 있게 부조기법으로 처리되지만, 미누신스크 분지와 카자흐스탄에서는 몸통 표현이 동쪽처럼 확실하지 못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이 점은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도 몸통 표현이 확실한 동물장식이 발견되기 때문에 단순히 동과 서의 문제로 보아야 할지는 앞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이를 제외하고도 배쪽으로 다리를 접어 넣은 사슴은 서쪽에는 이마쪽으로 뻗은 가지가 2개인데, 동쪽은 하나씩이다. 뿐만 아나라 서쪽에는 머리를 뒤로 돌려서 엉덩이쪽을 향하는 장면이 있지만 동쪽에는 대부분 앞으로 향한다.

공통적인 주제이지만 동물장식의 표현은 동과 서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진짜 궁금한 것은 새와 맹수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동물인 그리핀이다. 현재 그리핀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이 발견되는 곳은 알타이이다. 해발 1500m이상의 고분에서 말의 굴레장식과 머리장식에 그리핀이 사용되었다. 이들 무덤은 깊은 구덩이에 나무방과 통나무관이고 경우에 따라서 미라처리된 시신도 발견된다. 해발 2000m이상의 추야강변의 무덤에서도 그리핀 장식이 발견되지만 말 보다는 머리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 유적은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이다.

 

알타이에서 이를 벗어난 곳은 발르익-소오크 1 유적이다. 그리핀 장식은 머리장식과 목제테이블의 다리받침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7~6세기 사이로 알려진 곳이다. 알타이에서는 다른 유적 보다 빨리 발견되기도 했지만, 평지의 아르잔-2호(기원전 7세기 중반)에 비해서는 늦다.

 

하지만 서쪽에서는 그리핀의 사정이 더 복잡하다.

흑해에서 가장 이른 유적중에 하나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거울 속의 그리핀과 간두령 장식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지만 인접한 지역에서 제작된 유물이 많기 때문에 주체가 누구인가가 늘 문제시 된다. 스키타이 지역에서 제작되지는 않아도 스키타이 인의 주문에 의해서 스키타이 주제가 그려진다고 바라보는 관점과 제작지가 더 우선시 되는 관점이다.

그래서 중요한 점은 그리핀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어떤 유물까지를 그리핀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일각에서는 반인반수도 그리핀의 범주에 넣는 연구자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서쪽의 인접한 지역에 너무 많은 고려사항이 생긴다.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을 특정할 수 없다.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리핀이 가장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되는 지역을 알타이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면 스키타이 문화에서 나는 동물에 대한 동경으로 맹금과 새의 조합물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꿈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있었고 코스텐키 I유적(흑해)(그림 1)과 말타 유적(그림 2)과 같이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무덤 속이나 집터에 남아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후기구석기시대 이래로 철기시대까지 늘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림 1. 흑해 코스텐키 1 유적의 새형상물, 말타 유적의 동물형상물을 날개를 펴고 있는 새로 본 것은 코스텐키 1유적과 비교해서 생긴 결과이다. 두 유적 모두 동유럽과 시베리아에서 비너스상과 동물형상물이 가장 많이 출토된 유적이고, 집자리가 여러 동 발견된다는 점에서 많이 비교된다.

 

 

그림 2. 시베리아 말타 유적의 새 형상물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Абрамова З.А. Палеолитическое искусство на территории СССР. – М.; Л.: Изд-во АН СССР, 1962. – 85 с., (아브라모바 1962, 소비에트 내의 후기구석기시대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의 기원전 6~3세기 유적에는 무기류가 발견되는데 주로 철제검과 철제칼 뿐만,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등이 있으며, 이미 여러번 언급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유적이 아니지만 철제검을 착용한 방법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이 출토된다. 코르-케추 유적(그림 1), 테르베독 유적(그림 4-4, 그림 5) 등이다. 철제검 뿐만 아니라 철제검을 신체에 부착할 수 있도록 가죽집에 달린 끈 까지 발견되었다.

 

림 1. 알타이의 코르-케추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검

 

이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검은 대부분 길이가 짧아서, 단순히 허리에만 착용할 수 없다. 허리끈에 보조끈을 달아서 우측 허벅지 위에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11).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에서는 검은 대부분 오른쪽에 착용한다. 하지만 간혹 왼쪽에 착용한 것도 발견된다. 짧은 검이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사이에 고정해서 착장하기 위해서는 검집에 특수한 부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화에 그려진 그림의 검은 검집 한쪽이 날개처럼 달린 부분에 허리와 연결시킨 흔적(그림 2-13~16)이 남아 있다. 실제로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 등에서는 같은 스타일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그림 3).

 

 

 

그림 2. 단검의 착용 방법

 

 

그림 3. 멜구노프 유적 출토 의례용 철검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장식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짧고, 일주식(거푸집에서 검의 손잡이부터 날까지 한 번에 주조)이고 검날멈추개(손잡이와 날의 경계부분)가 나비 형태 혹은 그 변형인 점은 흑해지역과 유사하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이 아닌 일반적인 견해이다.) 알타이의 청동검은 가죽집이나 목제검집에 넣어서 사용되었는데, 검집의 한쪽 끝을 날개처럼 만들어서 허리띠와 연결시키지 않고, 검집에 가죽으로 된 일종의 단추를 만들어서 끈을 끼워서 사용했다(그림 1).

 

그러나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도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청동이라는 물질 자체가 철보다는 무른 소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얇아서(그림 4-4)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림 4. 테르베독 유적 출토

 

 

그림 5. 테르베독 유적 출토 청동검과 가죽제 검집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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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시베리아의 해발 2000m 알타이에 위치한 알라-가일- 3유적은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서 있다. 그 중에서 5호는 가장 먼저 생긴 무덤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재갈과 재갈멈치의 형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11기의 무덤이 동시에 생겼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1호는 돌널무덤인데, 무덤에서 발견된 허리띠의 버클 장식(그림 1-6,7)과 끈을 끼워서 고정하는 판(그림 1-5)는 기원전 4세기의 것이다(267).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에 가까운 버클의 앞판 장식(그림 1-20)은 추야강과 우르술 강 일대에는 보이지 않던 유물이다. 그 이전(기원전 6~4세기)에는 허리띠 방형의 장식판만(그림 1-11, 13) 달았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장식성이 강한 장식판을 달았다. 동물문양(그림 1-1), 기하학적 문양(그림 1-3), 꽃 문양(그림 1-5) 등이다.

울란드리크 I 유적의 5호에서는 가죽 끝의 끝에 청동고리가 연결(그림 1-8)된 채 발견되었다. 가죽끈은 청동칼과 연결되었던 유물이다.

 

그림 1. 추야강과 우루술 강 유역의 띠(허리띠 및 기타)의 여러 부속품, 20,21-알라가일-3 유적 1호분.

 

알라-가일-3유적의 1호는 5호묘와 달리 돌널무덤이다. 1호에서는 보기 드문 유물도 발견되었는데, 불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그림 2-9,10)이다. 어떤 유물을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조각(그림 2-11, 12)이 발견되었는데, 두텁고, 꿰맨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나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1호분, 1: 알라-가일-3 유적의 무덤배치, 2: 무덤의 덮개와 단면도, 3: 무덤 내부의 모습, 4-뿔제 사슴, 5-7: 뿔제 연결고리와 버클 장식판, 8-꼬인 가죽, 9,10-불을 피우는 목제품, 11, 12-두꺼운 가죽, 꿰맨 흔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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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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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무덤이 일렬로 열을 이루는 현상이 확인된다. 그런데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해발 2000m이상의 기원전 5세기 이후인 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이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가량의 발르익-소오크 (1, 2) 유적, 보르탈 (1,2) 유적 등에서는 아직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해발 1000m가량에 위치한다.

 

그런데 해발 2000m이상에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알라-가일-3 유적(그림 3)에서는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발견된다. 무덤이 일렬로 서 있는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 이후로 바르부르가지 I 유적,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무덤이 일렬로 서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기원전 6~5세기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거대 고분은 해발 1500m 가량의 높이에서만 발견되며, 무덤을 열로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 보다 높은 해발 2500m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3 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이제까지 유적을 종합한 결과로 쿠바레프, 폴로스막, 루덴코, 그라즈노프 등(위 유적의 저자)은 언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라-가일-3 유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재갈멈치이다.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화살촉,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등으로 유적의 늦고 빠름을 판단했다. 알라-가일-3유적의 5호(그림 1)와 알라-가일 유적의 11호묘 출토의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2)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빠른 형식으로 보았다.

알라-가일 유적 11호 재갈을 연결하는 구멍(그림 1-1)은 크기가 다른 2개로 큰 구멍의 형태는 원형이라기보다는 약간 네모꼴에 가까운 것과 다른 쪽은 원형이다. 구멍이 2개인 재갈멈치, 양쪽 구멍의 형태가 다른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른 재갈멈치(그림 1-4)의 단면은 원형이고,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와 다르다.

 

 

그림 1. 알라-가일 유적 11호, 1- 무덤 평면도, 2-청동제 재갈과 부착된 가죽, 3-청동과 철로 만든 검의 손잡이, 손잡이의 프레임은 청동, 안쪽 줄기는 철제로 제작됨. 4, 철제 칼, 5-가죽 옷 조각, 6,7-목제 재갈멈치, 8-유적 6호 무덤의 평면도와 단면도

 

 

알라-가일-3유적 5호묘의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하는 부위의 구멍(그림 2-2)좌우가 다르며, 재갈멈치 역시 장식성이 가미된 것이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5호, 1-청동재갈멈치, 2,3-뿔제 끈 연결고리, 4-뿔제 재갈멈치, 5-두께운 금판, 찍은 문양, 6-8: 청동제품, 9-황금 장식판, 10~12: 홍옥제 구슬 

 

 

그림 3. 알라-가일-3 유적 무덤 배치

 

쿠바레프는 이러한 정황을 들어서 알라-가일 유적 11호와 알라-가일-3 유적 5호가 알타이에서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라-가일’ 유적은 이 명칭이 붙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인데, 유적명 뒤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알라-가일-1 유적이다. 모두 7기의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1호를 포함한 4기가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명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행정구역명칭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알라-가일-3 유적과 같은 해발고도에 위치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Мартынов А.И. (ред.). Южная Сибирь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ую эпоху, 1985 (마르티노프 외 1985,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시베리아 남부)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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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추야 강과 그 지류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해발 1500m이상에 있는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해발 2500m 이상의 아크 알라하-3 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대단히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들 유적에서는 가족 혹은 동료 등의 무덤이 일렬로 생기는 현상은 없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 해발 2000m이상의 유적(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등에서만 확인되고, 해발 1000m가량의 유적(보르탈1,2, 코르-케수, 발르익-소오크 1, 2) 등에서는 아직 산발적으로 무덤이 배치된다. 해발 1000m가량의 유적이 1500m이상 유적보다 이르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무덤은 높이 올라가고 일렬로 배치되는 현상이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해발 1000m가량의 유적(발르익-소오크 1, 발르익-소오크 2, 코르-케수, 보르탈 1 유적, 엘로-2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발르익-소오크 1유적에서 출토된 목제 테이블의 다리 싸개에 붙은 그리핀은 매우 독보적? 이상한? 눈에 띈다.

 

반면에 해발 2000m가량의 유적에서는 거대고분이 아니라도 동물장식이 많이 발견되는데 주로 머리맡에서 출토되어서 모자의 장식이다. 유스티드 XII유적 7호, 울란드리크 III유적, 울란드리크 II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비슷한 환경(해발 2000m 이상, 일렬로 된 무덤군)이지만 약간 다른 현상의 무덤도 있다.

아크- 코비 II유적에서는 무덤이 7기 발견되었는데, 1호 무덤은 어린아이(2~4세)가 매장된 곳인데 통나무관이 설치된 곳이다. 상부에 드러난 돌을 깐 범위는 5×4m(높이 40cm)로 매우 작다. 무덤 구덩이에는 납작한 나무로 무덤구덩이 전체를 덮고 돌로 고정했다(그림 1-3). 그 아래에는 통나무 관이 매장되어 있었고, 무덤구덩이와 통나무관 사이에는 화산돌을 넣었다.

 

그림 1. 아크-코비 2유적, 1-무덤 배치도, 2-통나무관 안, 3- 나무덮개 관, 4-나무 잔, 5-나무 쟁반, 6-목제 단추, 7-목제 단추, 8-철제 칼, 9- 목침

 

통나무관에는 어린아이가 매장되었고, 머리 위에는 목침, 나무쟁반, 나무잔이 차례대로 배치되었다. 나무쟁반 위에는 양의 꼬리뼈와 목제 단추 장식 및 철제 칼이 놓여 있었다.

 

시신을 미라처리한 파지리크 유적,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 아크 알라하 3 유적을 제외하고 통나무관이 설치된 어린아이의 무덤은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지만 관 안에 나무쟁반과 나무잔이 세트로 확인된 예는 흔치 않다.

물론 고고학적으로 나무잔의 형태를 따지면 손잡이가 하나만 붙은 형태는 아르잔-2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등에서 변형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통나무관에 묻어서 부활의 의미를 살린 것은 울란드리크 I유적 6호분, 울란드리크 I유적 4호분과 같다.

2020.10.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 통나무관과 부활의 의미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자연교통로가 된 추야 강에는 북쪽으로 유스티드 강, 남쪽방향으로는 울란드리크 강이 흐른다. 울란드리크 강 유역에는 8개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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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코비 II유적의 나머지 무덤은 스키타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발굴되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다. 울란 드리크 유적 등에서도 어린아이의 무덤이 열의 가장 첫 번째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초기 투르크 시대의 무덤은 인접한 지역에서 따로 확인되는데, 아크-코비 유적, 아크-코비 III유적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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