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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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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를 이해하는데 '집'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다. 그리스 역사가(헤로도투스) 들이 남긴 기록에는 스키타이 사람들은 방어된 마을과 집이 없이 바퀴달린 집(4륜마차)을 타고 광대한 스텝지역을 옮겨다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관념은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은데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입성(1812년)시 대화재를 두고 스키타이 인과 비교한 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러시아 연구자들은 드네프르강 유역에서 발견된 카멘스코예 성곽(돌 성이라는 뜻) 유적으로 헤로도투스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 유적으로 1200헥타르가 넘는데, 이곳에는 금속제품의 생산흔적(도가니, 주몰용 국자, 노지)이 엄청남게 많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철제품을 생산해서 다른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공급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에는 2 줄의 성벽이 있는데(그림 1-19), 스키타이 연구자들은 안쪽의 환호를 ‘아크로폴’이라고 부른다. 그리스 도시와 같이 구획(그림 1-18)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크로폴에서는 스키타이 귀족들이 살았던 석조구조물 흔적이 조사된 적이 있다.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 뿐만 아니라 돈 강 유역의 엘리자베토프 성도 알려져 있다. 대부분 지상식(그림 1-10, 14)이지만, 땅을 파서 만든 반움집(지하식)(그림 1-11,12,13,17)도 있다.

초원 스키타이는 아니지만 삼림지대의 스키타이 문화를 공유했던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목조로 된 집이 발견되기도 했다.

2021.02.22 - [볼가 중류: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동물장식] - 유라시아 타이가 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 옆에 집

 

유라시아 타이가 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 옆에 집

유라시아 초원 북쪽의 타이가 지대의 초기철기시대문화인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동물장식이 스키타이 문화의 것과 유사해서 초원지대와 어떤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유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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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카멘스코예 성곽과 엘리자베트프 성곽 유적, 10~17: 엘리제베트프 성곽(16: 전체 성곽 평면도, 10, 14-지상식 집, 11, 13, 17-지하식 집, 12-지하집복원), 18, 19-카멘스코예 성곽(18: 아크로폴 내부의 집의 구획도, 19: 성의 평면도)

 

두 유적은 기원전 5세기 유적이다. 흑해 부근에서 스키타이 쿠르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 까지 올려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럼 그들은 집이 없었을까?

 

러시아연구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스키타이 사람들의 생업경제가 유목적 목축이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위해서 목지를 계속 교체 할 수 밖에 없었고, 주거지도 단기간만 사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이 주요한 철기 공방이었다고 한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지 역할로서 성곽 유적이 존재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기원전 7세기에도 스키타이 철제품은 존재하기 때문에 분명히 이를 생산하던 유적이 존재했을 텐데, 발견되지 않았다. 집은 있었지만 남겨 놓지 않았던가, 아니면 너무 쿠르간 조사에만 목을 매었을 수 있다.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 사람들이 집이 없다고 한 것은 비아냥 거린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집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최적화 된 상태로 생업에 맞게 가성비 좋은 집을 가지고 다닌 것이고, 필요하다면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어제 일론머스크가 조립식 집을 스페이스 X근처에 만들었다고 하는  기사를 읽고 한참 웃었다.

 

참고문헌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흑해 북안과 카자흐스탄의 사이에 있는 지역은 우랄~볼가 및 돈 강 유역이다. 이곳에는 기원전 6세기 경 사우로마트 문화가 존재했는데,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내에 속하며 우랄-볼가 강 유역의 지역문화이다.

 

이 지역의 문화는 우랄 강 유역과 볼가-돈강 유역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대형 무덤구조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키리크-오바 II유저과 비슷한 무덤구조가 우랄 강 유역의 퍄트프마리( Пятпмары, Pyatpmary) I유적에서 있지만, 같은 시기의 볼가-돈강 유역에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덤 양상에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원전 6세기 퍄트프마리 I유적의 8호 쿠르간(직경 29m, 높이 3m)의 봉분 내부에는 지상식의 목조구조물을 만들었다. 바닥에 구덩이를 파기는 했으나 전면을 판 것은 아니고 피장자를 안치하기 위한 공간만을 팠고(그림 1-2) 그 위에 목조구조물을 설치했다. 목조구조물의 남쪽에 말을 5마리 매장한 후에 점토와 풀을 섞은 봉토벽을 쌓았다. 무덤의 북쪽은 이 부분이 결실되었다.

 

그림 1. 파트프마리 I유적 8호 쿠르간 평면과 단면(2,3)

 

보고된 바에 따르면 목조구조물을 덮은 층은 점토와 풀을 섞은 것으로 목조구조물의 전면을 덮었다. 키리크 오바II유적에서는 목조구조물의 주변을 둘러쌓은 것으로만 보고되었는데, 그 보고가 맞다면 점토벽의 구성물과 목조구조물을 지지하는 방법 등 축조방법의 차이가 있다. 이는 시간에 따른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쿠르간’은 일부 유적이고 무덤구덩이에 사람과 무기만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봉분은 높이 쌓지 않았다. 사우로마트 문화(스키토-사르마트 문화 1기)에서는 특히 무덤에 무기가 많이 발견된다. 무덤구조는 흑해연안의 유적과 차이가 있지만 무기는 유사했고, 역시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발견된다.

 

참고문헌

Смирнов К. Ф., Петренко В. Г. 1963, Савроматы Поволжья и Южного Приуралья. М., 1963(스미르노프, 페트렌코, 1963, 우랄남부와 볼가 강 의 사우로마트)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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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산맥의 남부를 흐르는 우랄 강변에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데, 유적들에는 국경이 없다. 이 지역의 기원전 5~4세기경 유적들은 아주 낮게 무덤구덩이를 파고 거의 지상식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봉토로 만들어 덮었다. 특이하게 이 지역의 무덤에는 점토를 블록으로 만들거나 점토벽을 만들어서 무덤의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필리포프카 유적과 마찬가지로 베소바 유적에서도 목조구조물 주변을 점토벽으로 둘러쌓아서 만들었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볼가-우랄 강변의 문화는 ‘사우로마트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문화는 사르마트 문화라고 불리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후기 사르마트 문화’라고 하기도 하지만 ‘훈-사르마트 문화’ 그냥 ‘사르마트 문화’ 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다. 후기 사르마트 문화부터 민족을 특정하는데 ‘훈’족의 문화라고 여겨진다. 후기 사르마트 문화는 스키타이 지역의 중심지 중에 한 곳인 흑해까지 퍼졌다는 것이 학계의 생각이다(그림 1).

그런데 사우로마트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을 모두 보이는 유적이 필리포프카 유적이다. 기원전 5~4세기 이며 이를 일컬어 ‘초기 사르마트 문화’라고 하기도 하고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 혹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그림 1).

 

좀 답답한 경우는 스키타이 문화와 훈 족의 문화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이 지역의 초기철기시대 이후의 문화 전체를 사르마트 문화라고 부르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해가 가는 면(다음에 설명하기로 한다)도 있기는 하지만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시대와 훈의 시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각 지역 명칭과 연대

 

앞에서 필자는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필리포프카 유적을 설명했는데,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것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스키타이 시대 지역명칭을 스키토 –사르마트 문화 1기(기원전 7~5세기), 스키토-사르마트 문화 2기(기원전 5~4세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후기 사르마트 문화는 훈-사르마트 문화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학계에서도 불리는 용어이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지역명칭은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스키토-사르마트 문화는 러시아 문법상에 따른 것이고,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로 이해하면된다. 같은 예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으로, 이미 한국학계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혼돈을 막기 위해서이다.]

 

우랄-볼가 강 유역의 유적들은 무덤구조에서는 흑해지역과 좀 더 유사하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쿠르간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이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지하로 매장구덩이를 파기는 했지만 목조구조물은 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리포프카 유적, 베소바 유적 등의 무덤은 이 지역민의 아이디어로 축조되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들도 네트워크가 있었을 것이고 선진 지역과 소통하기 위해서 낙타장식과 같은 동물장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유물이 또 하나 있는데 석제로 만든 쟁반이다. 베소바 유적에서는 원형과 장방형의 석제 쟁반이 무덤 속에서 출토되었다(그림 2).

2021.07.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중부/타스몰라 문화] -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쟁반, 돌쟁반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나무쟁반, 돌쟁반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권은 기원전 9세기부터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 초원의 각 지역에 여러 유적이 발견되는 되면서 문화의 실체가 드러나는 기원전 7~4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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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베소바 유적의 제사용기, 카디르바예프는 이를 석제 제단이라고 했지만, 제사용기가 좀 더 자연스럽다.

 

인접한 타스몰라 문화에서 석제와 나무로 만든 쟁반이 발견되었는데, 베소바 유적에서는 다리가 붙어서 다른 형식이다. 다리가 붙은 나무쟁반은 알타이(파지르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소재가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유물처럼 보이지만 사용방법은 같았을 것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나무그릇에 붙이기 위한 장식판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렇다면 석제 쟁반이나 금장식을 붙인 나무그릇은 스키토-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동물문양 장식과 같이 스키타이 문화권을 묶는 공통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나중에 논문으로 밝히겠지만 스키타이 3요소 외에도 스키타이 문화권을 연결하는 문화적 유물 중에 하나는 그릇이다]

 

즉 우랄-볼가강 유역의 스키타이-사르마트 문화는 지역적 특징이 강하기는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의 특징적인 유물인 동물장식 뿐만 아니라 제사용기도 지역적 특징에 맞게 고안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аменные алтари–жертвенники из Северо–Запад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 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1977. – № 3. – С. 204–213. (카디르바예프 1977, 카자흐스탄 북서 지역에서 나온 석제 제단)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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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한 스키타이 시대의 유적에서는 쌍봉낙타 장식이 발견된다. 볼가~우랄 강 유역의 지역문화를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필리포프카 유적(그림 4)이 잘 알려진 곳인데, 베소바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 장식 중에서 낙타가 발견되는 곳은 볼가~우랄 강 남부의 유적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것은 금제의 낙타장식으로 두 마리가 머리를 서로 맞대고 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었고 납작한 장식판이다. 반구형 장식 펜던트에도 낙타 1마리가 늑대와 대결하는 구도로 발견되었다.

 

베소바 유적에서는 낙타 2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유물과 낙타 1마리가 받침대 위에 서 있는 펜던트 2종류가 발견되었다. 베소바 유적의 장식품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유적에서는 원형의 맹수장식도 발견되었는데, 눈, 코, 입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키리크-오바 II유적의 유물과 같은 늑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1.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쌍봉낙타

 

그림 2.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쌍봉낙타

 

그림 3.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맹수장식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의 낙타장식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쌍봉낙타를 단독 펜던트로 만든 경우는 이 지역이 유일하다. 물론 낙타장식이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 주인공 무덤에서 다른 동물문양장식과 함께(목걸이) 표현된 경우는 있고, 알타이의 펠트 조직에서 죽은 낙타털을 양털과 혼용해서 사용한 경우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단독의 펜던트로 존재하는 경우는 이 지역이 유일하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만 발견되었을 때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는 애매했다. 그러나 인접한 또 다른 유적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확인되었기에 좀 더 확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유적에서 비슷한 장식이 발견된다면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원형맹수장식을 모방한 맹수장식(그림 3)과 쌍봉낙타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양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낙타는 좀 어색한 동물이지만, 낙타는 버릴 것이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말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짐을 옮길 수 있고, 먹이는 것도 수월하며, 고기도 먹을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당시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동물이었을 것이고, 펜던트로 만들어서 자신들을 상징할 만큼의 동물이었을 수 있다. 눈, 코, 입을 표시하지 않을 만큼 맹수장식은 큰 의미가 없는 유물이었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구조나 시신의 장법 뿐만 아니라 동물장식에서도 이 지역의 패턴이 보여지기 때문에 볼가-우랄 강변의 유적들은 ‘한’ 그룹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манкулов Ж.К. Захоронения воинов савромат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левобережье р. Илек // Прошлое Казахстана по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м источникам. – Алма–Ата: Наука, 1976. – С. 137–156(카디르바예프, 쿠르마쿠로프, 1976, 일레크 좌안의 사브로마트 시기의 무덤)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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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는 카스피해가 위치하는데, 이 곳으로 흘러가는 우랄강변에는 많은 쿠르간이 존재한다. 우랄강은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카자흐스탄을 관통하기 때문에 이곳에 만들어진 쿠르간은 현재의 국경은 다르지만 당시(쿠르간이 만들어진 시점)에는 같은 문화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만들었을 수 있다.

문화적으로 이곳은 우랄 산맥의 남쪽으로 우랄과 볼가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문화를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구분한다. 화려한 황금 사슴이 출토된 필리포프카 유적이 잘 알려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을 포스팅할 당시에 필자가 간과한 것이 이 유적이 지상식 구조물을 덮은 쿠르간이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땅을 약간 파기는 했지만 매장주체부를 지하로 만들지 않고 지상으로 만들었다. 당시에 연도와 목조시설, 감실 등만 강조되어서,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보고가 부실하다고만 여겼다.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중앙에 지상식구조물을 제외하고 동쪽벽에 숨겨진 곳에 지하로 무덤을 파고 따로 여성의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접한 유적들을 보면서 필리포프카 유적도 지상식 목조물 위를 덮은 쿠르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키리크-오바 II유적도 마찬가지이고,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도 같은 구조이다.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의 3호(직경 38m,높이 1.9m)에는 목조구조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지붕이 둥근 돔형일 것으로 통나무와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었다. 구덩이를 약간 파기는 했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남북방향은 깊이 60cm, 동서방향은 편평하다는 점이다(그림 1의 단면). 어쩌면 자연적인 현상을 발굴자가 놓친 부분일 수 있다. 이 무덤은 여성이 피장자로 매장되었는데, 북쪽에서 발견되었고 등을 편 채로 하늘을 본 상태로 발견되었다. 펠트천과 관목가지로 덮인채 발견되었다.

 

그림 1. 베소바 유적 3호

 

이 유적의 9호(직경 11.2m,높이 10m)에도 지상위에 목조구조물을 매장주체부로 한 것이 발견되었다. 높이가 약 3m로 추정되는데, 무덤 바닥에서는 기둥구멍의 흔적이 발견되어서 마치 집을 지은 것처럼 목조구조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둥구멍 중앙에는 점토로 만든 시상이 있고, 연도와 연결되었다. 평면형태는 팔각형이다.

 

그림 2. 베소바 유적 9호의 바닥

 

그림 3. 베소바 유적의 낙타장식

 

우랄 강변을 따라 위치한 무덤은 연도와 목조구조물이 있는 묘실로 특징지을 수 있다. 깊지 않은 묘광에 나무판을 교차해서 놓고 그 위를 나뭇가지 혹은 갈대로 얹었다. 지상구조물이 발견된 경우에는 이를 지지하기 위한 기둥구멍도 발견된다. 바닥에 석회가루나 재가루를 뿌리고, 나무껍질 혹은 풀로 깔개를 만들어서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피장자는 사지를 펴고 등을 대고 자세이며, 서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이는 카디르바예프가 카자흐스탄 서부지역의 쿠르간 조사를 통해서 내린 결론이다.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은 쿠르간 19기가 두 마을에 걸쳐서 발견되어서 베소바와 신타스 유적으로 불린다. 우랄 강의 지류인 일레크 강의 좌안에 위치하며, 1973년 당시 소비에트의 집단 농장의 영지내에 쿠르간이 확인되었다.]

 

카디르바예프가 설명한 내용을 참고로 하면 피장자를 묻는 장법은 시베리아 매우 다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사람들은 모두 굴신장(팔 다리를 굽힌 장법)으로 옆으로 누운 상태였다. 쿠르간 내부의 무덤구조 뿐만 아니라 피장자도 다른 장법으로 매장되었다.

이 점은 확실히 시베리아 알타이에 매장된 사람들과는 다른 관념 속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레보드치코바가 이야기 한바와 같이 ‘동물문양’은 공통된다. 뿐만 아니라 유사한 동물문양과 무기와 그릇들이 발견된다.

생활방식은 다르지만 마치 스마트폰(아이폰 혹은 삼성폰)을 세계 어떤 사람들도 쓰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스키타이 문화권의 중심권과는 차별되지만 그들도 쿠르간을 만들었고,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연도와 묘실이 있는 무덤은 기원전 6~5세기경으로(카자흐스탄 연구자) 아랄 해 동쪽이자 사르다니아 강과 아무다리리야 강 사이에 위치한 이른시기의 유적에서도 관찰된다. 아랄해 동쪽의 두 강 사이 지역에서 나오는 문화는 ‘사카’라고 알려져 있으며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내에 속한다.

 

무덤구조가 비슷하다고 볼가강~우랄강변의 유적을 두 강(사르다니아 강과 아무다리아 강) 사이의 문화를 함께 묶지 않는다. 각각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 사카 문화라고 지역문화를 구분하며,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 속한다고 연구되어 왔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ганные некрополи верховьев р. Илек // Древности Евразии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Москва: Наука, 1984. – С. 84–93.(카디르바예프, 일레크 강변의 네크로폴 쿠르간)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манкулов Ж.К. Захоронения воинов савромат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левобережье р. Илек // Прошлое Казахстана по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м источникам. – Алма–Ата: Наука, 1976. – С. 137–156(카디르바예프, 쿠르마쿠로프, 1976, 일레크 좌안의 사브로마트 시기의 무덤)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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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 유적은 우랄 강변과 가깝고 탁사이-1 유적,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한 곳이다. 모두 우랄 남부에 위치한 유적이다. 키리크-오바 II유적에서 26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같은 유적 내에서도 무덤 구조가 다르게 만들어진 점은 매우 흥미롭다.

 

15호쿠르간(직경 40m, 높이 1.1m)에서는 매장 주체부를 점토벽(너비 4~5m,높이 0.5m)이 둘러싸고 있다. 점토벽 상단의 북편과 동북편에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뼈가 대량 발견되었다. 육각형으로 둘러싸진 점토벽 안에는 연도(무덤의 복도시설)가 있는 목조 구조물이 발견되었는데, 땅을 파지 않은 지상식으로 목조구조물 아래에도 점토로 바닥을 만들었다. 나무로 된 무덤방으로 위쪽에 폭이 10~25cm인 목재가 열을 지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연도의 입구에는 말의 시신이 4구 이상 있었고, 식물로 만든 깔개가 부식된 상태로 발견되어 있다.

 

그림 1.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5호

 

16호 쿠르간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판 것으로 기다린 복도형 입구가 있고 비슷한 구조가 12호 분에서도 발견되었다. 18호 쿠르간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연도를 설치한 것으로 주인공 외에도 시신 여러 구가 더 발견되었다. 1호묘 주인공(그림 2-2) 피장자 주변에는 접시, 각배, 토르크형 목걸이, 솥 등이 발견되어서 다른 피장자와는 사회적 지위가 달랐을 것이다. 3호묘와 4호묘에는 구덩이를 따로 파고 말 1필과 피장자를 묻었는데, 주인공과 함께 철검을 부장했다.

 

그림 2.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와 출토유물, 1-18호 평면도, 2-1호묘의 피장자, 3~10: 1호묘 출토유물

 

그림 3.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의 3호묘(상단)와 4호묘(하단), 상단의 3,4, 45-철제품이고, 그 외는 청동제, 하단의 2~4: 철제품, 5: 토제, 그 외는 청동제

 

그림 4. 키리크-오바 II유적의 쿠르간 배치도

 

키리크- 오바 II유적은 일렬로 무덤이 나란히 서 있어서 규칙성이 있어 보이지만 각 쿠르간 마다 무덤의 구조가 다르다. 이웃한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있었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와 13호에서도 매장주체부를 점토벽으로 둘러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목조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매장주체부를 위한 구덩이를 파기는 했으나 깊지 않으며 연도가 있었다. 1호에서는 점토벽으로 둘러싼 중심 매장부와 달리 쿠르간의 동쪽에 깊게 판 수혈에 여성 무덤이 따로 숨겨진 채 남아 있어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심매장부를 만드는 방법은 같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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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필리포프카 유적의 7호와 8호에서는 점토벽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무덤구덩이의 형태도 달라서 같은 유적에 구조가 다른 쿠르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1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1호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 유물인 금제 항아리와 은제 각배 등이 출토되기는 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지역의 유물이었다. 입이 과도하게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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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크-오바 II유적과 필리포프카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 볼가~우랄 강 유역에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인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일 수 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Гуцалов С.Ю. Погребальные сооружения могильника Кырык–оба II в Западном Казахстане // Россий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2010. – № 2. – С.51–66(굴차로프, 2010,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유적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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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는 스키타이 문화가 영유되었던 시기에 매우 다양한 무덤이 발견된다.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에서도 ‘유사 쿠르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외형은 크지만, 매장주체부에는 관 조차 만들지 않은 무덤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유적이 세렉티-1 유적과 같은 곳이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엘리트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지역의 엘리트 일 수 있지만, 왜 쿠르간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앞서 소개한 카자흐스탄 서부이자 우랄 산맥의 남쪽에 위치한 탁사이-1 유적과 가까운 곳에는 ‘키리크-오바’ 유적이 있다. 자이이크 강변에 위치했다고 하지만 사실 우랄 강변의 유적으로 보는 것이 문화적 의미로써 더 가치가 있다.

더보기

카자흐스탄은 러시아로부터 독립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가 많이 이용된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는 가는데, 좀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다.  문화의 지역적 구분, 연대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서 억지스럽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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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크-오바 II유적에서는 금제 드리개(그림 1, 그림 3-14)와 원형 맹수장식(그림 2)이 발견되었다.

금제드리개는 탁사이-1 유적의 여성과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가장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원뿔 모양이다. 원형 맹수장식은 동물이 이빨을 다 드러낸 것으로 아르잔-1호의 맹수장식과 자세는 같지만, 대상이 된 동물은 다르다.

원형 맹수장식은 2호 쿠르간 뿐만 아니라 18호 쿠르간에도 출토되었고, 같은 얼굴을 한 맹수장식이 15호 쿠르간에도 재갈멈치의 끝장식으로 발견된다. 늑대로 볼 수 있는데, 유적을 상징하는 동물일 수 있다. 평지에 위치한 유적에서는 발견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림 1. 키리크-오바 II유적 15호분(쿠르간)의 3호묘

 

그림 2. 키리크-오바 II유적 2호분(쿠르간)

 

그림 3. 키리크-오바 II유적 15호분 출토 유물, 1-12, 화살촉, 13- 거울, 14-드리개, 15-18: 장식판, 19-칼의 손잡이, 청동(1~13), 금(14~18), 뼈(19)

 

키리크-오바 II유적은 탁사이-1 유적의 여성처럼 어떤 특정 인물이 크게 조명되지는 못했지만 26기의 쿠르간이 일렬로 배치되면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제까지 소개한 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한 유적에서는 처음 보이는 현상이다.

이 유적과 5km 떨어진 키리크-오바 I유적은 고분 3기로 구성되었다.

 

키리크-오바 II유적이 탁사이-1 유적 여성처럼 특정인물이 조명받지 못하는 것은 무덤의 구조와 피장자의 장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탁사이-1 유적 6호 쿠르간에는 2명의 여성은 목이 잘린 채 묻혀서, 주인공과 차별되었다. 하지만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5호 쿠르간에서는 인골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고, 18호는 여러 구가 한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런 점에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그 당시에 지역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었던 인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카자흐스탄 중부지역과 마찬가지로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발견되는 무덤도 매우 가깝게 위치하지만 무덤의 구성 뿐만 아니라 구조, 출토유물은 차이가 크다.

 

 

참고문헌

Гуцалов С.Ю. Погребальные сооружения могильника Кырык–оба II в Западном Казахстане // Россий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2010. – № 2. – С.5166(굴차로프, 2010,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유적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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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가장 중앙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에는 다양한 무덤구조가 발견된다. 카자흐스탄 우측에 위치한 알타이 및 투바지역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 흑해지역은 대략 서부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양 지역 무덤이 몇 개의 형식으로 정해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카자흐스탄 중부 지역에 흐르는 자를리 강변의 누르켄-2 유적에서는 연도가 있는 무덤이 발견되었다. 무덤의 입구와 연도, 매장주체부를 구분해서 돌로 덮어서, 무덤의 구조가 잘 드러난다. 이 유적과 가까운 곳(직선거리 5km 이내) 세렉티-1 유적에서는 또 다른 무덤 구조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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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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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상으로 드러난 직경은 50m로, 가장 상부는 돌로 덮은 것이었지만, 그 내부는 좀 복잡하다. 무덤구덩이는 장방형이고 연도(길이 2.75m)가 서쪽으로 있는 모습의 매장주체부이다. 그러나 입구는 봉분과 연결되지 않았다. 매장주체부에는 돌과 함께 흙을 채웠고 그 상부를 점토 덩어리로 덮었다(직경 34m, 그림 1의 평면도와 단면도 참고). 점토덩어리로 채운 경계와 떨어진 곳에 호석을 둘렀는데, 그 곳을 기준으로 한 직경 45m이다.

 

그림1. 세렉티-1 유적의 10호 평면도와 단면도

 

세렉티-1 유적에서 ‘연도(무덤안의 복도)’라고 불리는 시설은 입구와 연결되지 않아서 실제로 연도인지는 의문스럽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연도라고 분류했다.

 

그림 2. 세렉티-1 유적의 점토 덩어리

 

특이한 점은 무덤 내부를 채운 점토 덩어리이다(그림 2). 1960~70년대 발굴된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보고된 바 없으나,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에서는 점토덩어리가 무덤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

 

세렉티-1 유적, 탈디-2 유적, 나자르-3 유적 등 카자흐스탄 중부지역에 위치한 많은 스키타이 시대의 많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무덤축조 재료 중에 하나이다. 이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건축재료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돌을 구할 수 없으니, 대안일 것이다.

 

이 무덤의 매장구덩이는 길이 3m, 깊이는 0.25m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무덤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지 않았고, 매장구덩이 안에 납작한 석판을 구덩이 중앙에 세워 놓았다. 아마 더 이상의 무덤구조물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연도는 단을 만들어서 무덤바닥으로 내려 가도록 되어 있다(그림 3). 바닥에서는 뼈로 만든 빗, 철제품, 청동화살촉(그림 3-2~4)이 나왔다.

 

그림3. 세렉티-1 유적의 무덤구덩이(1)와 출토유물(2~4)

 

세렉티-1 유적을 보면 매장주체부 보다는 무덤을 크게 만드는데 더 주력했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직경 50m, 높이 3.9m로 만들기 위해서 점토 덩어리를 대량으로 써서 무덤을 높고 크게 만들었다. 인접한 누르켄-2 유적과 불과 5km 내외에 위치했으며, 동시대의 무덤인데, 이렇게 외관과 내부구조가 다른 무덤이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참고문헌

 

Бейсенов А.З. Дромосные курганы сакской эпохи на реке Жарлы (Центральный Казахстан). // Самар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 Самара: СГСПУ, 2016б. №3 (16).– С. 77–86. 베이소노프 2016, 카자흐스탄 중부의 자를리 강에 위치한 사카시대의 연도가 있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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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지역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여러 무덤은 각 지역 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 카자흐스탄 동부인 산악지대와 인접한 지역은 그래도 유적간의 공통성이 있지만, 카자흐스탄 중부와 서부 지역은 유적 마다 공통성이 빈약하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하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시베리아)와 서부(흑해부근)처럼 어떤 특징으로 묶이지 않는다.

 

앞의 포스팅에서 카자흐스탄 중부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를 타스몰라 문화라고 일컫는다고 했다. 이 문화에서는 ‘수염이 달린 고분’이 특징이라고 했는데, 고분 뒤에 길게 이어진 석열이 마치 수염과 같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다.

하지만 이런 석열이 길게 딸린 고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고분도 많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은 석열이 없어도 ‘엘리트’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누르켄-2 유적, 세렉티-1 유적등은 연도(무덤 입구에서 매장 주체부로 들어가는 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이다. ‘연도’는 흑해지역 무덤에서도 관찰되었지만, 이 지역의 연도는 봉분 안에 설치된 것으로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에서 발견된 연도가 있는 무덤은 입구부터 연도, 매장주체부를 돌로 덮었는데, 각 부위만을 덮어서 무덤구조가 드러난다.

대표적인 무덤이 누르켄-2 유적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무덤구조와는 전혀 다른데, 입구부터 지하로 들어간 연도와 무덤방의 바닥 높이가 같다. 지하라고 표현했지만 깊이 1m(2호기준)정도이고, 연도와 매장주체부까지 납작한 돌을 세워서 축조했다(그림 1-2). 매장주체부는 납작한 돌을 눕혀서 무덤 벽을 쌓아 올린 것이다(그림 1-3).

 

그림 1. 누르켄-2 유적 1호

 

그림 2. 누르켄-2 유적 2호

 


최상부의 돌로 덮힌 부분(m) 납작한 판돌로 덮힌 부분(m) 무덤방(m) 무덤구덩이(m) 연도(m)
1호 직경 41
높이 4.3
직경 38 직경 10
높이 1.15
2×2.2×0.75 15×1×0.7
2호 직경 54
높이 6.1
직경 52
3×2.75×1 11×1×0.7

 

1호와 2호는 매장주체부의 지붕 모양이 다른데, 2호(그림 2)는 천장이 둥글게 만들어진 것이다. 무덤의 벽은 역시 납작한 판돌을 눕혀서 세운 것이다. 1호와 2호 모두 판돌 위는 다시 돌로 덮었다.

 

 

무덤의 구조상 도굴이 성행 할 수 밖에 없다. 무덤을 대강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규모가 크고, 그렇다고 어떤 규칙성에 의해서 꼼꼼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없다. 외형만 크게 만드는 경쟁이 일어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내가 우리 아버지 무덤을 이렇게 크게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참고문헌

 

Бейсенов А.З. Дромосные курганы сакской эпохи на реке Жарлы (Центральный Казахстан). // Самарский научный вестник. – Самара: СГСПУ, 2016б. №3 (16).– С. 7786. 베이소노프 2016, 카자흐스탄 중부의 자를리 강에 위치한 사카시대의 연도가 있는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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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탁사이-1 유적의 여성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무덤의 구조이다.

 

탁사이-1 유적에는 무덤이 6개 존재하는데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6호분은 낮은 곳에 위치한다. 사실 1~5호분과 다른 계곡에 위치해서, 같은 구성원이 아닐 수 있지만, 발굴자들은 같은 유적으로 묶어서 6호분이라고 명명했다(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다른 유적은 6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무덤인 6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무덤의 중앙구덩이에서도 동쪽벽에 치우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중앙은 비워둔채였다. 그리고 무덤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도 열을 아주 많이 받았고 청동이 녹은 흔적이 둘러쌓고 있었다. 일부분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덤구덩이를 둘러쌓고 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고, 의례행위의 과정중에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을 3겹이나 둘러쌓고 있는 붉은색과 황색의 퇴적물도 내용물은 달랐겠지만 그런 행위 중에 한 부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림1. 탁사이-1 유적의 무덤 배치도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6호 평면도

 

탁사이-1 유적의 6호분 여성과 유사한 유물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지도에서 확인가능함)에는 무덤구조는 전혀 다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곳이나 있으며 지하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들어가도록 된 구조이다. 무덤의 입구는 봉분 위가 아닌 측면이다. 대개 이런 무덤 구조는 한 번 무덤을 만들면 후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많이 관찰된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만든 후에 따로 입구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도(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구조는 나중에 다시 열 것을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무덤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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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이-1 유적과 거리상으로는 필리포프카 유적보다 멀지만 같은 국경 내에 있는 이식 유적은 무덤구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나무 구조물 안에서 십대 남성(황금인간)이 발견되었다. 여러 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탁사이-1 유적 6호와는 다르다.

 

그래서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알타이와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특징들이 일률적이지 않다. 다만 봉분을 높이 쌓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알타이와 흑해처럼 어떤 정형성, 규칙성들이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한 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 이식 유적, 탁사이-1 유적, 타스몰라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안에 무덤이지만 각각 다르며, 전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볼 때 중부지역에 위치한다. [여기서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의 자락에 위치해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유사하다.]

 

따라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자신이 살아생전 지녔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묻힌 무덤도 아마도 재지적이거나 혹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무덤일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사제(샤먼)의 신분이었을 수 있다. 특히 무덤 안에 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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