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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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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년 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이 보낸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황금여성상은 보기드문존재이다. 소형 여성상이 주로 만들어지는 시기는 시베리아의 후기구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가운데 오쿠네보 문화이고 모두 골제로 제작되었다.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성을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다. 하지만 이 여성상은 나신으로 여성성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금으로 제작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의 흑해 북부, 크림반도, 코카서스 산맥 부근의 유적에서는 돌로 제작된 남성상들이 확인된다. 이 남성상은 기원전 7~3세기에 만들어졌는데, 시간에 따라서 손에 들고 있는 각배, 허리띠, 무기, 장신구(목걸이), 헬멧, 손모양 등에 따라서 연대가 구분된다. 간혹 여성상이 확인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남성상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인 표트르1세의 황금여성상은 나신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은 팔찌뿐이고, 머리에는 모자? 와 같은 것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여성의 손 모양은 왼손이 위, 오른손이 아래이며 나란히 가슴 바로 아래 전면의 정중앙에 두고 있다.

 

2021.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황금 여성상은 어디서?

18세기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은 1716년 12월 12일 표트르 1세에게 두 번째 소포를 보낸다. 그때 황제는 외국에 출장중이었고, 모스코프가 소포를 대신받았다. 이 사실은 표트르 1세와 함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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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남성석인상도 흑해북안과 카프카스 산맥부근에서 이런 손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기원전 7~6세기의 유적(그림 1,2)에서 발견된 것이다. 기원전 5세기 유적 이후의 석인상은 각배(그림 3)를 들고 있다. 석인상의 손 모양은 손을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 마주하고 팔꿈치를 굽힌 것, 양손을 아래로 내려 놓은 것, 손 한쪽은 위+ 다른 손은 아래로 한 것 등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에 따라서 손모양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특징을 황금 여성상에 대입한다면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상과 같이 매우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입상),기원전 7~6세기, 살라뱐카 유적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남성상(좌상),기원전 7~6세기, 상단-비노그라도프카 유적

 

그림 3.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석인 석인상(입상), 기원전 5세기, 테레노프카 유적

 

하지만 이 여성상은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된 여성의 모습은 대부분 어떤 유물의 한 부분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면 거울) 옷을 입고 있다. 옷을 거의 벗거나 얇은 옷을 입혀서 신체를 드러낸 여성상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추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물에서 발견된다.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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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성을 드러낸 청동기시대 유물도 대부분 옷을 입은 것으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성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흥미롭게도 머리카락 표현으로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후기구석기시대 이후로 나신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림 4.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의 여성상(4~7), 남성상(8~10)

 

그래서 이 표트르 1세의 황금여성상은 손 모양은 스키타이 지역의 유물이지만, 나신이라는 점에서  불확실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ая статуэтка из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оллекции.// СГЭ. [ Вып. ] XXXVIII. Л.: 1974. С. 41-44(자비투히나 1974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중에서 황금상에 대해서)

김재윤 2021,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 골제 인간형상물에 대한 검토」, 『영남고고학』, 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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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가운데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 중에 하나인 목걸이는 실제로 흑해 및 코카서스 부근의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발견된다. 특히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많은 양의 목걸이가 출토되는데, 금, 은, 동으로 제작되었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석인들도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은데 기원전 5세기 이후로 생각되는 석인상들은 목걸이를 착용하는 예가 많아진다. 남성석인상(그림 1)이 대부분이지만 여성석인상(무기가 없음)도 이 시기에 발견되는데 3중으로 목을 감고 있는 목걸이를 착용했다(그림 2).

 

그림 1.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남성(81-올호프치크 출토, 83-마리우폴 출토), 남성이 걸고 있는 목걸이 처럼 꼬인 줄도 유적에서 실제로 발견된바 있다.

 

그림 2.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여성(프레그라드나야 석인상 1호)

 

기원전 4세기 이후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목걸이는 남성, 여성, 어린이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스키타이 장신구를 연구한 페트렌코는 목걸이가 내포하는 위세가 초원 스텝지역과 산림 스텝 지역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초원지역에서는 크게 특권의식이 없는 무덤 부장품이지만 초원 북쪽의 타이가 스텝지역에서 발견되는 목걸이는 귀족의 재산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코롤코바는 위세품이라기 보다는 목걸이를 통해서 서로를 구분하는 인식표시로서 보았다. 그녀가 목걸이와 함께 팔찌를 일종의 인덱스처럼 여긴 것은 다양한 형태의 목걸이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목걸이의 회전 수, 목걸이의 종류(두꺼운 와이어, 안이 빈 튜브구조, 주조한 것, 구멍을 뚫은 것)와 동물장식 및 목걸이의 연결 방법이 다양한데 여러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목걸이 끝장식이 닫히고 나선형으로 회전된 토크(목걸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지역은 흑해북안인데, 대부분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이 지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되는 기원전 7세기 및 기원전 6세기에는 이러한 형태가 발견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유적이 체르토믈리크 유적이다(그림 3-1,2).

 

그림 3. 1-체르토믈리크, 북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2-남서쪽 무덤방, 기원전 4세기, 3-크라스느이 페레콮, 22호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4-차얀 무덤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4세기 5-아판-사르차 유적 출토, 목걸이 끝장식 기원전 5세기, 6-목걸이 끝장식, 7-코발레프카 5유적, 2번 쿠르간 2번 무덤방, 기원전 4세기

 

목걸이 끝에 달린 동물은 맹수의 전신이며, 귀 모양이 약간 씩 다르다. 표트르 1세의 목걸이와 팔찌도 목걸이 자체의 모양도 차이가 있지만 달린 동물도 머리만 달리것, 전신이 달린 것(그림 4-3) 등 세부적인 차이가 있다.

 

그림 4. 표트르 1세의 수집품

 

목걸이가 내포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코롤코바 및 페트렌코의 의견모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롤코바의 2001년 글에서는 목걸이와 팔찌만을 이야기 했지만 대부분의 학자가 인식하듯이 머리장식도 집단을 상징하는 표식일 수 있다. 축구의 유니폼처럼. 흑해지역에서 목걸이가 특권의식이 없다고 보는 것은 시간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다른 장신구는 주인공 무덤이나 그 외의 무덤이나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지지만 유독 목걸이와 머리장식 만은 주인공의 것이 눈에 띄도록 제작되었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우너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Королькова Звериный стиль в оформлении гривен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й эпохи.// Ювелирное искусство 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1. С. 68-95. (코롤코바 2001, 스키토-시베리아의 목걸이의 형성과 동물장식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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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프로로그 중에서-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블로그에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프로로그 중에서-

 

위의 내용은 필자의 새로운 책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에 포함된 것이다.

제목은 여성상으로 국한되었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베리아 유적 및 알타이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과 흑해 여성상들의 출토지(무덤)와 함께 부장된 유물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제 인쇄만 남았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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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있는 알타이의 서부에서 발견된 베렐 유적(해발 1000~1100m)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해발 1500m)과 많이 닮아 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적들을 사카문화라고 하는데, 이 베렐 유적은 사카문화의 특징과도 다르다.

 

파지리크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깊게 파고 나무무덤방(세부차이는 있음)과 통나무관을 썼다. 남겨진 유물도 대부분 마구의 굴레장식과 누군가에게는 별로 쓸모없이 보이는 골제와 청동제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 등이다. 굴레에 달았던 장식은 대부분 나무가 주요소재이고 그 위를 금박종이로 덮은 것이다.

 

베렐 유적의 11호분에는 파지리크 유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인간이 둔갑?을 하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인간얼굴에 머리에는 뿔이 있고 몸통은 맹수를 하고 있는 유물이다(그림 1). 유적을 발굴한 사마세프 박사는 그림 1의 유물이 11호분 남성의 모자장식이라고 생각하고, 스핑크스라고 이름 지었다. 사실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캐노피에 묘사된 동물흉내를 내고 있는 남성(그림 2-4)을 스핑크스라고 했던 루덴코(1953)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베렐 유적의 유물은 얼굴만 동물이고, 스핑크스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의 인간+맹수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의 사슴으로 둔갑한 남성

 

뿐만 아니라 말의 마스크 부속품인 목제 뿔이 발견되었다. 산 염소 뿔을 흉내낸 것인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앞서서 베렐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보여 드린 바 있는데, 같은 카자흐스탄의 유적인 실릭티 유적과도 차이가 있었다. 베렐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무덤(구조), 동물장식(소재와 형태), 무기(형태) 등 차이점이 많다. 베렐 유적은 스키타이 동부 지역(투바와 알타이), 실릭티 유적은 스키타이 서부(흑해지역)과 좀 더 닮아 있다. 그러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모두 화살을 주인공과 함께 부장했다는 공통점은 있다.

무기에 대해서 좀 더 적고 싶으나 카자흐스탄 유적의 정보들은 대부분 황금유물에만 집중되어 보고되어 있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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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7. 13:05 스키타이 무기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화살이다. 이 문화의 무기는 투부, 검과 칼 등이 있고 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 지역에서 소재를 달리해서 출토되는 유물이며, 무덤 까지 들고 들어가는 유물이다.

검은 손잡이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길이 짧은 검은 말탄 기마병에게는 유용한 무기는 아니다.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의 암각화에 그려진 기마병 들은 대부분 자루가 긴 일종의 동과나 동모를 들고 있었다. 말탄 전사가 활을 쏘는 장면도 발견된다.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분은 어린 소년의 무덤이었는데, 소년은 자신의 신체 크기에 맞게 조정된 목검과 화살통(고리트)과 함께 부장되었다(폴로스막 1994). 어린아이에게도 뭍어줄 만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유물이었을 수 있다.

 

알타이의 추야강과 우슬라 강의 스키타이 시기 무덤을 수 백개의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도 화살촉으로 유적의 연대를 추정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유물이다. 그에 의하면 스키타이 화살통인 고리트는 모든 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쿠바레프 1991).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아르잔-1호에서 화살촉은 도굴로 인해서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서는 골제 화살촉과 청동제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청동제화살촉은 단면이 마름모꼴인 것(그림 1-3~8)과 원형에 능이 붙은 것(그림 9-10~13)이 있다. 앞의 것은 활대를 끼우도록 단면이 비어 있고, 뒤에 것은 자루를 끼우기 위해서 슴베가 있는 유물이다.

골제 화살촉은 단면이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우는 슴베가 뒤로 나와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청동제 화살촉, 기원전 7세기 중반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골제 화살촉(2),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청동제과 골제 화살촉은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바레프가 발굴한 알타이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를 발굴하기 전이었지만, 이러한 형식의 화살촉이 가장 이른 유물이라고 보았다(쿠바레프 2007).

 

그런데 화살촉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붙은 화살촉은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3-1~3,5)에서도 발견되고, 산림지대의 아나닌스카야 문화(그림 4)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화살촉, 기원전 7세기

 

그림 4.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화살촉, 기원전 6~5세기

 

물론 스키타이 서부 지역의 유물에는 자루끼우는 부분이 단순하지 않고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알타이에서는 없는 형태이다. 아마도 용도와 관련되어 있을 것인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른다.

 

알타이 남쪽 카자흐스탄 동부 평지에 위치한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은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있지만 아르잔-2호와 알타이와는 다르다. 현재 아르잔-2호와 알타이에서 발견된 화살촉은 실릭티 화살촉처럼 생긴 것은 없고 오히려 흑해쪽(그림 5)에 가깝다.

포스팅

 

그림 5. 드레프르강 유역(흑해 북안)의 화살, 기원전 5세기 전후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고분)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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