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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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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카자흐스탄 동부지역에 위치한 지역문화는 사카 문화이다. 사카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 가운데 베스샤타르 유적은 일리 강을 끼고 형성된 유적으로 평지에 위치한다. 쿠르간 31개가 남북2km, 동서 1km 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중에 돌로 덮은 봉분은 21기, 그 외는 10기는 흙으로 덮은 것이다.

 

매장주체부로 생각되는 지상 위의 목조 구조물(3.6×3.3m)은 3면은 16개의 통나무를 가로로 세워서 쌓았고(높이 4m), 동쪽면은 복도처럼 생긴 문 시설이 있는 구조이다. 세로로 통나무를 두 줄을 세우고 그 사이를 가로로 통나무로 눕힌 것이다.

 

그림 1. 베스샤타르 유적 1호의 지상위 목조 구조물의 평면도

 

북쪽에 큰 쿠르간이 모여 있는데 그 중에서 1~10호, 14호가 지상 위에 연도가 있는 매장주체부를 만들고 그 위를 돌로 덮은 것이다. 무덤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지하에 카타콤 시설이 따로 있는 무덤은 6호 뿐인데, 정확하게 용도는 알 수 없다. 매장주체부가 지상에 있는 무덤에 남겨진 유물은 거의 없다.

 

봉분을 돌로 덮는다고 해도 그 내부의 구조는 다를 수 있는데, 25호와 같은 무덤이다. 직경이 8.5m, 높이는 1.08m인데, 지하에 타원형 모양의 구덩이를 파고(3.5×2m) 매장주체부를 만들었다. 인골 2구가 발견되었는데, 왼쪽에는 고리트, 오른쪽에는 철검을 착장했다(그림 2).

철검은 스키타이 단검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청동제 화살이 50개나 들어간 고리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화살은 모두 같은 형식은 아니라고 12개의 형식이다. 허리에 철제장식이 있는 허리띠를 착장했다. 인골주변에서 구슬이 나왔는데, 목걸이를 착용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림 2. 베스샤타르 유적 25호의 무덤과 출토유물

 

베스샤타르 유적에 수혈(구덩이)을 파지 않은 무덤은 목조 구조물로 무덤방을 지상에 만들었고, 구덩이를 판 무덤은 목조구조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두 무덤의 차이는 결국 장례치르는 사람이 목제와 인력을 수급능력 즉 경제력의 차이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유적을 발굴한 아키세프는 가장 큰 무덤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약 4만명 정도의 인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흑해 지역에도 평지에 높은 봉분을 만드는 무덤이 유행했다. 기원전 7세기 코스트롬스카탸 유적도 지하시설이 있지만 지상위에 목조구조물을 만드는 구조였다. 그리고 기원전 5~4세기 이후에도 높은 봉분을 만들었다.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 문화도 마찬가지이고 사카 문화도 높은 봉분을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공통적 특징중에 하나도 이 높은 봉분이 있는 유적도 포함될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왜 만들까? 결국 보여주기 위해서일 텐데.....

 

참고문헌

К.А. Акишев, Г.А. Куш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саков и усуней долины реки Или.// Алма-Ата: 1963. 320 с.(아키세프, 쿠샤예프 일리강 변의 고대 사카문화)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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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예니세이 강 지류인 헴칙 강 변에는 기원전 7~6세기 무덤이 확인되었다. 1965년에 발견되었는데, 항공사진이 촬영 가능할 만큼 눈에 띄는 무덤이다(그림 1).

 

헴칙-봄 이라고 명명된 이 유적은 지점에 따라서 헴칙-봄 I~III유적(그림1) 이 있고, 헴칙-봄 V유적까지 있는 것으로 보고서에 적혀 있다.

 

그림 1. 헴칙-봄 I~III유적의 항공사진 (1: 헴칙-봄 I유적, 2: 헴칙-봄 II유적, 3:헴칙-봄 III유적), 구글지도에는 헴칙 강의 위치 표시, 유적의 정확한 지점은 찾지 못함.

 

 

그 중에서 헴첵-봄 III유적에서는 쿠르간 2기가 발견되었다. 1호에는 한 봉분 아래에 12기의 무덤이 있고, 2호에는 2기가 있었다. 2호 쿠르간 아래에서 1호 쿠르간이 발견되었다(그림 2). 2호 쿠르간은 9~10세기 투르크 시대의 것으로 역시 돌널무덤을 썼다.

 

그림 2. 헴칙-봄 III유적 1호, 2호 쿠르간

 

1호 쿠르간은 기원전 7~6세기 무덤으로 쿠이루그-헴 I유적과 같은 시대이다. 하지만 지상위를 덮은 돌의 평면형태는 네모꼴에 가깝고 12기나 무덤이 만들어져서 구조상에 차이가 있다. 예니세이 강변의 같은 지류이면서 동시대이지만 무덤 구조가 다르다.

 

이상한 점은 같은 봉분 아래에 무덤이지만 돌을 쓴 무덤과 나무로 관(8호묘, 10호묘, 11호묘)을 만든 차이점 이 있다.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사람들의 평범한 장법인 굴신장(무릎을 굽힌 채 묻는 법)과 2차장(뼈만 추려서 묻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나무를 무덤방으로 만들었지만 사글리 바쥐 II유적, III유적과 같이 2인 혹은 그 이상의 사람이 넉넉하게 묻힐 정도의 크기가 아닌 1명이 꼭 맞게 들어갈 정도로 돌널무덤과 같은 크기이다(그림 3). 통나무로 제작되었다.

 

그림 3.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8호묘

 

10호묘에서는 나무판을 사용한 것인데 인골이 북쪽으로만 몰려서 확인되었다. 11호묘는 관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통나무를 이용했다(그림 4)

 

그림 4.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1-10호묘 , 2-11호묘, 3-12호묘

 

그림 5. 헴칙-봄 III유적 1,2호 쿠르간의 9호묘

 

한 봉분 아래에 여러 기의 무덤을 함께 묻는 다는 점에서 우육분지의 아르잔-2호와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헴칙-봄 III유적에서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애매하다. 위치나 무덤의 재료 등으로 보아서 8호묘로 생각되지만 유물은 9호묘(그림 5)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르잔-2호묘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 비교적 중요한 인물들은 대부분 부부합장무덤인데, 이 유적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투바의 우육분지 아르잔-2호가 축조되면서 한 봉분 아래에 여러 기의 무덤을 만드는 방법이 여러 곳으로 전해졌을 지도 모른다. 그 중에 하나가 헴칙-봄 III유적일 수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쿠이루그-헴 I유적의 7호 쿠르간 아래에서도 3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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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이지 않는 아나닌스카야 문화는 스텦지역의 북쪽에 위치한 타이가 지역의 초기 철기시대 문화이다. 하지만 이 문화에는 스키타이 무기인 화살과 전투용도끼, 검 뿐만 아니라 동물장식도 발견된다. 마구는 많지는 않지만 약간 있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이는 스텦지역 가운데 현재 카자흐스탄 동쪽에도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유적들이 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스키타이 지역문화는 ‘사카문화’이다. 카자흐스탄의 고분은 알타이에 남쪽에 위치하는데, 평지에 있는 유적과 천산산맥의 자락에 있는 유적들이 있다. 앞서 화살촉이 출토된 실릭티 유적은 평지에 있는 유적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실릭티 유적도 주변이 평지이고 높이 6m의 봉분 때문에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해서 도굴당한 유적이었기 때문에 유물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동물장식이 많이 출토되어 세간에 관심을 받았다. 도굴때문인지 어쩐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무덤 안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무기는 화살촉 외에는 보고되지 않았다(그림 3). 알타이에서는 검집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고, 투바의 아르잔-2호는 검과 칼이 세트로 부장되어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도굴꾼은 무덤의 구조를 없애지는 못했다. 무덤에서도 알타이의 미라가 나오는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과 차이가 있다. 물론 무덤에 나무구조물을 만들고 봉분을 만들어 덮는 아이디어는 같지만 큰 차이점이 있다.

실릭티 유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5호무덤이다. 직경 66m, 높이 6m의 외형이다(그림 1). 봉분 안의 무덤구덩이(7.1×8.3m)의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이 1m정도 이고, 무덤구덩이의 바닥은 1m가 되지 않게 매우 얕게 팠다.

 

그림 1. 실릭티 유적의 무덤 평면도, 1- 무덤구덩이, 2-연도(무덤입구에서 들어가는 일종의 복도), 3-무덤 구덩이를 판 흙, 4-무덤의 경계돌(호석), 5-도굴입구, 6-발굴범위

 

 

그림 2. 실릭티 유적의 매장주체부의 나무구조물

 

그림 3. 실릭티 유적의 매장주체부 나무방 바닥 모습 1-무덤구덩이와 연도의 범위, 2-통나무, 3-사람뼈, 4-황금 장식판 출토범위, 5-황금 유물, 6-화살통

 

1960년대 발굴한 실릭티 5호분과 근접한 곳에 위치한 실릭티 3유적(82호분)은 2003년에 발굴되었는데, 무덤구조물 자체는 차이가 있지만 구덩이를 거의 파지 않고 땅위에 무덤을 만든 것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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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에서는 타가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번성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적으로 살브이크 쿠르간은 1955년, 1956년 발굴되었는데 이 무덤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1955년과 1956년은 내부 조사작업이었고 1954년에 이미 외부의 덮힌 흙을 덜어내고 호석(울타리)를 찾아서 정리했다(그림3).

 

높이 18m의 대형 쿠르간 안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목조구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설명한 이 무덤의 구조에 대해서 좀 고치고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너무 단편적으로 여기저기에 있던 자료여서 정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마르살돌로프의 저서에서 무덤구조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은 동쪽에 입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덤의 입구는 서쪽에 지하로 나 만들어져 있었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호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구조물이 설치된 무덤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미로와 같이 연결된 길인데, 통나무로 연결해서 만들었다.

 

 

 

 

그림 1.  마르살돌로프(2010)가 보완한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구조, 1-돌, 2-나무, 3-자작나무껍질(발굴야장과 설명으로 복원함),4-그루터기, 5-화덕자리 흔적, 6-납작한 판돌, 생토층을 20cm로 덮음, 7-지하도로에 남겨진 사람들, 8-석판에 그려진 암각화,9-숫돌, 10-나무망치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 그림 2의 평면도(6)에서 입구를 동쪽이라고 했는데 서쪽이다.

 

그림 2.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외형(1,2) 내부 평면도(6)와 단면도(3,4,5, 7). 3,4,5는 남북방향의 단면도, 7은 동서방향의 단면도, 평면도(6)에서 왼쪽이 서쪽입구이다.

 

이 유적은 이미 18세기때 도굴당했다. 봉분의 서쪽에 도굴을 위한 입구(직경 19m, 깊이 5m)인 구덩이가 있었다. 이 유적을 처음 발굴한 키셀레프와 연구자들은 이곳을 먼저 조사했는데, 매우 큰 청동솥과 소형의 청동칼만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도 스키타이 피장자 중에 한 명이 발견되었는데 주인공의 하인?정도로 생각된다. 벨트에 청동칼과 원추형 장식판이 달려 있었다.

무덤내부에는 인골 외에는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앙 매장주체부에는 7개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70세 1인과 35~40세 가량의 6인이었다. 세 명의 인골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는데, 게라시모프는 2인이 형제자매라고 추정했다. 이 무덤은 부족장 혹은 부족 연합 수장의 가족 무덤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봉분 안에는 메인 매장지를 제외하고 2개의 매장지가 남쪽 지하실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남성이 발견되었다. 하인 혹은 무덤을 지키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호석(울타리) 아래에 북동부와 남서부모서리 아래에서는 4명의 사람인골이 발견되었다. 남서쪽에는 성인, 북동부에는 어린아이였다. 이들은 아마도 무덤을 건조하면서 생긴 피해자 혹은 봉양자?희생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1955년과 1956년에 발굴된 살브이크 쿠르간은 확인된 유물은 거의 없지만 무덤을 건조하는데 사용된 기술을 알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비슷한 무덤 구조가 나중에 발굴된 카자스흐탄 동부의 세미레치예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사실 무덤의 호석 아래에 사람을 묻는 행위는 투바 아르잔-2호에서도 22호묘와 24호묘에서 확인되었다... 

 

 

그림 3.  1954년 봉분 열기 전에 사전작업

 

 

참고문헌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논문집)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Киселёв С. В. Исследование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в 1954 и 1955 гг. //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на сессии Отд.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и Пленуме ИИМК, посвященных итога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1955 г.». M.-Л., 1956.(키셀레프 1956, 1954년과 1955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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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대형과 소형의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그 중 대형 청동솥의 용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타가르 문화의 암각화 그림이었다. 이 문화는 스키타이 문화(권)가운데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다.

 

(지도에서 여러 사람이 올려놓은 현재 그곳의 경관을 살필 수 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타가르 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잘 알려진 곳은 살브이크 쿠르간(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Salbyksky Kurgan)이다. 키셀료프가 1954~1956년에 발굴했다. 살브이크 계곡에는 높이 20m까지 거대한 쿠르간이 30여기 이상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키셀료프가 발굴한 쿠르간은 높이가 11m가량이고 꼭대기가 편평한 봉분과 거대한 판돌로 된 호석(무게 약 50톤)이 무덤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호석의 높이는 3~6m가량이고 한 변의 길이가 70m이다. 입구는 동쪽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마르살돌로프가 키셀료프 발굴 무덤과 그 주변의 타가르 문화 유적을 새롭게 조사한 바 있다.

 

무덤 주변을 돌린 호석의 판돌은 20km 정도 떨어진 흐질-하야(Хызыл-Хая) 산(구글지도 참고)에서 운반한 것으로 키셀레프는 판단했다.( 산에는 타가르 문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청동솥이 그려진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볼샤야 보야르 유적과 비슷한데, 청동솥으로 요리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그림 1. 키셀료프가 발굴하기 전 살브이크 쿠르간

 

그림 2. 살브이크 쿠르간의 동쪽 호석 가운데 한 곳, 1956년 (데블레트 2019)

 

그림 3. 살브이크 쿠르간의 입구, 북쪽을 향해 찍음 1956년 (데블레트 2019)

 

그림 4. 키셀료프가 발굴한 살브이크 쿠르간의 외형(1)과 평면도(2), 발굴 전

 

 

그림 5. 마르사돌로프가 복원한 축조당시의 볼쇼이 살브이크  무덤

 

이 유적은 새롭게 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기원전 8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알려졌다.

 

살브이크 쿠르간은 도굴당했지만 타가르 문화의 유물은 여러 유적에서 발굴당해서 많은 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청동검과 투부, 마구 등이 출토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Киселёв С. В. 1956, Исследование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в 1954 и 1955 гг. //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на сессии Отд.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и Пленуме ИИМК, посвященных итога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1955 г.». M.-Л., 1956.(키셀레프 1956, 1954년과 1955년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의 연구)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

Л. С. Марсадолов 2015, НОВАЯ ДАТИРОВКА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Научное обозрение Саяно-Алтая № 1(9) 2015 (마르사돌로프 2015,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새로운 절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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