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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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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18. 12:04 고깔모자와 코트

유라시아 서부지역에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했으며, 현재의 이란에는 앗시리아부터 페르시아 제국이 존재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와 고대 이란 국가는 서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양 지역 모두 동물문양장식을 이용한다. 하지만 자연환경이 다르고 그곳에 살수 있는 동물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선호하는 문양에도 차이가 있다.

 

기원전 7세기 코카서스 북쪽의 쿠반강에는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20세기 초에 발굴했는데, 이미 많은 유물이 유실된 상태였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가 얼마나 인접한 국가와 영향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코카서스 남쪽의 아나톨리 지역의 우라르투, 앗시리아, 그리스의 유물과 스키타이 문화 유물까지 그나마 남아 있다.

특히 앗시리아의 유물은 금으로 된 잔과 투부, 의자 장식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수입품이라고 단순하게 알려져 있지만, 외교품일 가능성이 크다.

 

철로 된 투부는 전투용 도끼를 의미하는데 자루 부분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동물문양으로 뒤덥혀 있다(그림 2). 특히 동물문양은 북방의 스키타이 문화와는 다르다. 가장 쉽게는 동물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구분하는 선을 2줄로 넣는 방법(그림 1의 우측)은 북방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페레보드치코바).

 

그런데 필자가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투부에 스키타이 사람이 표현되어 있었다. 고깔모자를 쓰고 투부를 아래로 들고 있는 사람(남성)이다(그림 1의 좌). 같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금잔은 틀림없이 이란의 전통이지만, 투부는 스키타이 왕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제작했을 것도 같다.

 

그림 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투부 중 세부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기원전 7세기에도 앗시리아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고깔모자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또  이 유적에서 발견된 순도 100%의 앗시리아의 금잔과는 달리, 이 투부를 만들때 선물 할 대상을 매우 신경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단순한 수입품이라기 보다는 외교품일 가능성도 크다.

 

 

참고문헌

Яценко С.А. 2006 : Костюм древней Евразии (ираноязычные народы). М.: 2006. 664 с. («Культура народов Востока»)(야센코 2006, 유라시아의 고대 의복)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8.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해발 1500m 무덤에는 매우 다채로운 물질문화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에서 제작된 유물도 있지만 흑해지역이나 고대 오리엔트에서 들어온 문화도 있었다. 특히 흑해지역에서 들어와서 재해석한 문양은 양모천에 사용되기도 했다. 페르시아 계통의 동물투쟁문양도 그대로 사용되지 않고 재해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파지리크 5호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는 벽을 장식한 캐노피인데, 그곳에는 반인반수가 발견되었다. 다양한 색을 사용한 것으로 앞다리와 뒷다리의 모양도 다르고, 날개, 꼬리 표현 등 일반적인 알타이 유물과 다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중에서 반인반수

 

반인반수의 전통은 기원전 2000년기(기원전 14세기경)에 고대 오리엔트에서 처음 나타난다. 히타이트 도시의 조각품에 발견된 바 있다. 비슷한 주제는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우라르투에서는 청동상 등 다양한 유물이 있고 앗시리아의 인장 및 시리아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시리아(그림 2)에서 발견된 반인반수는 동물의 자세가 파지리크 5호품과 유사한 편이다. 또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그림 3)에서도 발견된다.

 

그림 2. 시리아의 반인반수

 

그림 3. 앗시리아의 Nimrud Palace의 부조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투에서도 반인반수가 상당히 유행했고, 기원전 7세기경에는 이미 흑해지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반인반수도 고대 오리엔트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흑해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던 문양의 재해석일 수 있다.

 

그런데 반인반수가 문양이 그려진 카페트에는 동양인 얼굴을 한 여성과 서양인 얼굴을 한 남성이 만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남성은 스키타이 무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복장은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남성의 복장과도 달라서 전혀 다른 민족이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재해석 된 유물과 함께 복합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020.03.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에르미타주 소장,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속 벽걸이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4.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에는 북쪽의 스키타이 사람들과 남쪽의 오리엔트 지역의 사람들은 서로 교류를 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유물과 유적에서 그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페르시아의 아카메니드 왕조 궁전벽에도 남아있고, 알타이의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카펫이나 가죽 아플리케 장식에서 외부세계에서 온 요소들이 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의 페브릭

 

그림 2. 기원전 5세기 페르세폴리스 궁전

 

그림 3. 기원전 8세기 우라르투의 카미르-블루르 유적, 사르두리 II세의 청동방패

 

 

사자가 표현된 동물장식은 크게 별다를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선 사자의 존재는 알타이에서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다. 특히 고대 오리엔트 지역(코카서스 남쪽)에서 유행하던 문양이다. 또한 이 사자의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가 표현되어 있다. 사자의 다리는 4개가 뚜렷하고 꼬리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이와 같은 사자가 페르시아에는 기원전 5세기경에 지어진 페르세폴리스 궁전벽에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인 기원전 8세기경의 우라르투 유적인 카미르-블루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뒷다리에는 보이지 않지만 앞다리에는 기호와 유사하며 비슷한 포즈로 걷고 있다.

 

이를 두고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장식에서 발견되는 기호와 같은 표식이 페르시아 보다 더 오래된 고대 오리엔트 지역일 것으로 루덴코는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되는 여러 특징들은 우라르투 보다는 페르시아와의 관련성을 더 보여주는 유물이 많다. 이 점은 기원전 5세기에 지역간의 교류가 활발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앗시리아와 우라르투의 문화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사자동물문양이나 반인반수는 분명히 우라르투도 사용했기 때문에 두 문양을 고대 앗시리아 특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알타이와 근동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켈레르메스 유적에는 당시에 인접한 지역의 유물들이 다 있는 듯 하다.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루투에서 제작한 철제 검, 앗시리아의 금제 그릇, 그리스의 디아뎀 등이다.

 

그런데 철제 검은 아키나케스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단검으로 검날 멈추개가 나비 모양으로 생긴 것이다. 철제 검은 화려한 황금 검집 속에 들어가 있는데, 검집에는 우라루투의 칼디 신을 형상화 한 문양, 생명의 나무, 스키타이 사슴 등 복합적인 문양이 들어가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같은 시기의 멜구노프 유적에서는 거의 유사한 철제 검(검집 포함)(그림 1,2)이 발견되었다.

 

그림 1. 멜구노프 유적의 철제 검

 

 

그림 2. 멜구노프 유적의 철제 검 입구

 

그림 3.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청동상, 테이시바 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슴의 표현방법과 철검의 동체부에 새겨진 반인반수, 검집의 입구에 표현된 신의 모습 등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검집 입구에 있는 날개 달린 남성은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데(그림 2),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출토된 테이시바 신(그림 3)과 같은 물건이다. 또 검집의 입구에는 머리를 돌리고 있는 산염소(그림 2)는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에 있는 염소와 많이 닮았다.

 

다시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를 살펴보면 투부의 머리에는 염소 뿐만 아니라 도끼를 들고 있는 남성(그림 4의 왼쪽)도 발견된다. 또 염소가 하고 있는 자세도 중간에 나무를 두고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그림 5)은 우라루투에서 발견된 모습과 같다. 생명의 나무를 중앙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는 두 신의 모습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머리쪽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머리쪽(좌)과 끝 부분(우)

 

그림 6. 그림 4,5와 같은 유물, 투부의 손잡이 부분문양

 

 

그렇다면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투부가 앗시리아적인 특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앗시리아와 우라루투는 비슷한 종교적 믿음을 가졌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투부에는 완전한 스키타이 사슴 장식은 없는데 이 점은 철제 검과 다르다.  투부의 머리부에 발견된 사슴장식(그림 4의 오른쪽)은 다리를 접고 있는데, 스키타이 사슴 자세이지만 이 사슴은 다리와 몸통 사이에 2줄의 침선이 있어서 표현법에서 스키타이 동물장식과는 다르다. 그래도  이 사슴은 투부의 손잡이에 새겨진 사슴(그림 6)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물론 이 투부가 앗시리아에서 제작되었을 수는 있지만 우라루투의 신(神), 스키타이 사슴의 자세를 취한 앗시리아 사슴장식, 염소와 나무의 배치 등 결국 앗시리아에서도 우라루투와 스키타이 동물장식을 염두해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К вопросу о происхождении скифского искусства. // Omagiu lui George Oprescu cu prilejul împlinirii a 80 de ani. Bucureşti: Editura Academiei Republicii Populare Romîne. 1961. P. 31-46.(아르타모노프 1961, 스키타이 예술 기원에 대한 질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7세기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 검은 우라루투에서 수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제 검의 끝에 그려진 마주보는 사자(그림 1)는 아르메니아의 카미르 블루르 유적에서 골제로 된 판에 표현된 유물이 출토된 적이 있다. 또 흑해의 스키타이 유적인 타만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그림 3). 2점은 사자라기 보다는 호랑이에 가깝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철제 검의 검집 장식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철제 검의 검집 동체부

 

그림 3. 1, 카미르 블루르 유적 출토 골제 판, 2. 타만 유적 출토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철제 검의 끝(그림 1)에 그려진 사자는 동체부(그림 2)에 그려진 사자와는 표현방법이 다르다. 검의 동체부의 사자는 앞발과 뒷발의 표현이 달라서 합성된 동물을 표현하고 있다. 목덜미의 표현방법도 상당히 다르다.

 

철제 검 끝의 사자는 어깨에 태양 표식이 있는데, 오히려 같은 유적(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투부의 동물표현법과 더 유사하다(그림 4). 동물의 가장자리 및 몸통과 다리선의 구분에 2줄 선을 넣는 방법이나, 별 혹은 태양을 표식하는 장식하는 방법이 그렇다. 투부는 앗시리아에서 수입한 유물로 알려진 것이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투부의 동체부

 

하지만 사자의 표현방법은 앗시리아 방법을 선택했을 수 있지만 마주보는 사자의 자세는 스키타이 동물표현법이다.

 

따라서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 검은 스키타이 사슴장식과 맹수 자세가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스키타이 사람들의 주문으로 우라루투에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앗시리아의 사자표현방법과 스키타이 맹수 동물자세가 함께 복합되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투 반 왕조)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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