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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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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7000 년 전~6000년 전(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의 키토이 문화부터, 5200~4700년 전(Горюнова О.И., 2002) 이사코보 문화, 5000~4500년 전(김재윤, 2018a) 세로보 문화로 변화된다. 각각 문화의 토기와 석기양상(그림 9)에 차이가 있지만, 연속적으로 확인되는 유물은 골제와 석제를 결합해서 제작한 조합식검(그림 10,11)이다.

 

그림9 . 바이칼유역의 신석기문화 유물(김재윤 2018b 재편집)(키토이문화의 유물(1:키토이 무덤 비트코프스키 1호, 2~7,14:키토이 무덤 비트코브스키 발굴 6호, 15, 22: 치클로드롬 1950년 10호;                                                                                                                                 이사코보문화의 유물(16: 포노모레보 11호, 17·18: 포노마레보 10호, 19: 포노마레보 12호, 29: 포노마레보 8호);                                                세로보문화의 유물(24~27: 포노마레보 7호, 28: 세레드키노 1호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중국 신강성에서 확인되는 석촉과 석창 가운데 세로보 문화와 관련성이 있는 유물도 보인다(그림12). 또한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에서 확인되는 시베리아의 망상문 혹은 격자문이 남아 있는 토기는 키토이문화, 이사코보문화, 세로보 문화에서 모두 확인된다(김재윤, 2018b).

세로보 문화는 앞선 문화에 비해선 토기가 좀 더 많이 확인된다. 동체부가 둥글고, 구연부로 올라갈수록 축약되었다가 다시 외반되며, 저부는 원저이다. 파수가 수직으로 구연부와 저부 부근에 달리는 것도 있다. 토기 기면에는 타날문 혹은 그물흔적을 지우고 정면을 해서 매끈하게 처리하였다. 문양에도 다치구를 이용해서 눌러서 시문한 것(그림9-22), 침선문(그림9-21), 구순각목문(그림9-20) 등이 있다. 그 중 침선문 토기는 구연부가 외반하면서 횡주어골문이 시문되었다.

석창은 전면이 타제로 제작된 것이다. 좌우 대칭이며, 세장한 능형이나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횡단면은 대체로 렌즈 모양이다(그림9-28). 인부는 가장자리에 형성되었는데, 잔손질되었다. 창의 용도 뿐만 아니라 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촉은 경부의 모양에 따라서 오목하게 들어가 홈을 이루거나, 다른 하나는 일단경식(그림9-24,25)으로 구분된다. 이사코보 문화에 비해서 슴베가 있는 것이 양이 좀 더 많으며, 석촉의 무게가 크고 무겁다.

세로보문화는 시묘노보, 세로보 유적에서 연대측정 되었는데 대략 5000~4700 년 전에 존재했다(김재윤, 2018a).

조합식 검은 키토이문화(그림 10-1~8), 이사코보문화(그림10-9~16), 세로보문화(그림11)에서 모두 확인된다. 키토이문화의 조합식검은 양면을 떼어낸 석기를 골제와 조합된 조합식검(그림10-1~8)도 출토된다. 이사코보문화에서는 조합식검(그림10-9~12,16)뿐만 아니라 구부러진 뼈를 이용한 조합식도(그림10-13~15)도 확인되되는데, 앞선 키토이문화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림 10. 키토이문화와 이사코보문화의 조합식검(키토이문화(1~4: 라스푸티노 5,6: 우스티-벨라야 69-4호, 7·8: 치클로드롬 48-3호 ;                     이사코보문화(9: 브랏스키ㅣ 카멘, 10·12·15: 포노마레보 10호, 11: 샤먼 ,13: 샤먼 3, 14: 베르홀렌스크, 16: 베르홀렌스크 30-4호)(김재윤 2019)

 

참고문헌

 

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 “Возраст некоторых неолитических и ненеолитических погребений Прибайкалья по радиоуглеродным данны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итоги и перспективы), pp. 19-30.

Горюнова О.И., 2002, Древние погребения могильник Прибайкалья, Иркутск: Издательство Иркут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pp.14.

김재윤, 2018a, 「요서지역 소하연문화의 재검토」, 『한국상고사학보』, 99호, pp.34~35.

김재윤, 2018b, 「제2장 신석기시대」, 『북방고고학개론』,(재)중앙문화재연구원, pp.62~88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서서 환단고기역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신강성의 신석기문화에 대해서 설명한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7/12/20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환국과 신강

 

환국과 신강

신강에서는 신석기시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아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묶어서 석기시대라고 한다. 앞서 포스팅한 바 있지만 흔히들 구석기시대 유물로 생각되는 세석기가 이 지역에서는 늦은 시기 까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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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국과 신강고고학 자료] - 신강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000~3000 부터.

 

신강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4000~3000 부터.

현재 조사된 신강의 석기시대 유적은 모두 33개소로 전해진다. 그런데 유적은 대부분 지표조사된 유적이고, 일부만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되더라도 주로 청동기시대 하층에서 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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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인접하고 있는 지역과의 비교가 필수적이다.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문화 뿐만 아니라 이와 인접한 켈테미나르문화의 유물도 중국 신강, 몽골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이 지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화가 위치한 곳은 천산산맥에서 발원해서 아랄해로 들어가는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니야강의 하류이다.

 

2019/07/03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중국 신강성과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비교1

필자가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인접한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신석기시대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강성의 천산산맥은 동서방향 보다는 약간 틀어져서 비스듬하게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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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테미나르문화

기원전 4000년기 후반~2000년 기 전반까지 아랄해의 서부 및 남부와 북부에 켈테미나르문화가 존재했다. 대표적인 유적은 잔바스-4, 대형주거지가 확인된 톨스토프, 카바트-7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카바트-7유적에서 발굴된 주거지는 타원형주거지(그림-5,6)로 크기가 30~31×18~19m정도이다. 유사한 주거지가 확인된 잔바스-4 유적(그림5-1)을 참고하면 이 집터는 수혈의 흔적이 거의 없는 텐트형주거지인데, 집의 건축재인 사슴의 가죽(360~380㎡)과 목채가 실제로 남아있었다. 집의 중앙에는 돌을 두른 노지 및 그 주변에서 저장구덩이 내부에서 대량 토기가 확인되었다.

토기는 저부가 약간 둥글며, 한쪽 끝이 주구처럼 형성되어는 소형토기(그림5-32) 및 구연부가 외반하는 옹형토기(그림5-33, 34)가 기본적이다. 문양은 침선하거나 찍은 방법으로 시문되었고, 대체적으로 횡방향으로 구연부 부근까지만 시문되는 토기가 많다. 토기 문양 중에서 기하학적인 삼각집선문(그림5-37) 혹은 지그재그(그림5-34), 방형문양(그림5-36) 등이 시문되었다.

석기는 규조암제를 이용한 눌러떼기기법을 이용해서 제작한 세석인석기(그림5-7~30)가 많은데, 특히 비대칭으로 가장자리를 잔손질 한 경우가 많다. 석촉은 양 가장자리를 비대칭으로 떼어내는데, 한쪽은 짧게 다른 한쪽은 길게 떼어내어 한쪽만 슴베(그림5-24~27)가 생기게 했다. 이 문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석인석기를 이용한 유물가운데 여러 형식의 뚜르개(그림5-18, 21~23)가 확인되는데, 한쪽변 만 잔손질한 뚜르개(그림5-22), 끝이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다듬은 뚜르개(그림5-23) 등이 확인된다.

긁개 가운데는 한쪽 변을 부채꼴 모양으로 들어가게 손질한 것(그림5-28)도 석촉(그림5-24~27)과 함께 이 문화의 특징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평면형태 방형에 가까우며, 끝을 약간 둥글게 잔손질한 긁개(그림5-13~15)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문화에서는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인 양인 마제석부(그림5-31)가 출토되었다.

 

그림5. 아랄해 주변의 켈테미나르문화(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재편집, 김재윤 2019)(1~4: 잔바스 4유적, 5·6: 카바트-7, 7~39: 톨스토프 출토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인접한 카자흐스탄과 몽골의 신석기시대와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강성의 천산산맥은 동서방향 보다는 약간 틀어져서 비스듬하게 흐르고, 몽골지역과도 접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과도 접하고 있다. 특히 천산산맥은 고기산지로 산맥사이로 강이 흐리고 있는 지형이어서, 산맥이 문화의 경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산맥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문화가 이동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유물 때문이다.(아래 포스팅의 그림 참고)

 

2019/07/03 - [교과서 밖의 역사:유라시아선사시대/신석기시대] - ‘신석기혁명’과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

 

 

카자흐스탄은 매우 넓은 나라이다. 현재의 수도인 누루술탄이 있는 카자흐스탄의 북부지역은 원래는 남부시베리아로 명명했던 곳이다. 러시아는 영국과는 ‘The Great Game’이라고 불리는 전쟁에서 이 지역에 떠돌던 ‘카자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모아서 국가를 만들었다. 원래 중앙아시아의 맹주는 제국이라고도 하는 ‘돌궐’사람들의 나라인 우주베키스탄이다. 이들을 견제하고, 인도를 차지한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카자흐인들을 불러모아서 카자흐스탄을 만들어줬다고들 한다.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이다. 러시아인들이 매우 잘 쓰는 방법이다.

카자흐스탄을 설명하다가 약간 딴 곳으로 셌는데, 그만큼 그들의 영토는 넓고 자연환경도 매우 다양하다. 천산산맥과 접한 동부, 시베리아 바로 남쪽의 북쪽, 아랄해 등 다양한 자연환경에 따라서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도 다양하다.

본고에서는 중국 신강성의 소위‘석기시대’문화를 파악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영역을 소분할 필요가 있다.

 

 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는 신강성과 인접한 동부지역 뿐만 아니라 북부, 아무다리야 강의 상류, 하류 등에서 알려졌다(그림 4). 북부지역에는 우랄산맥의 동쪽지역 신석기토기와 비슷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 새롭게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시베리아 및 카자흐스탄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토기가 존재하며 그 문화는 마흐안다르스카야 문화로 밝혀졌으며 카자흐스탄의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는 토기이다. 첨저토기이지만 우랄산맥이동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리 구연부가 외반하는 기형으로 바닥의 끝이 매우 뾰족하며 전면이 마연되었다. 뿐만 아니라, 천산산맥의 산지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강의 상류에는 8000년 전의 기사르문화와 제이툰문화가 알려졌으나, 토기, 토벽을 세운 지상식주거지 등이 확인되어 문화적 양상 차이가 뚜렷하다. 즉 카자흐스탄 북부 및 천산산맥의 산지이자,아무다리야강 상류의 카자흐스탄의 문화는 본고와는 관련성이 많지 않아서 제외할 수 있다.

 중국 신강성과 비교할 수 있는 지역은 카자흐스탄에서는 천산산맥과 인접한 동부지역이고, 이 지역의 문화는 우스티-나림이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로 대표된다. 또한 이 지역은 아무다리야강의 하류에 위치한 켈테미나르문화라고 하는 문화의 특징도 보임으로 이도 함께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림 4.카자흐스탄의 신석기문화(김재윤 201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참고문헌

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Неолит Северной Евразии, Москва, НАУКА, pp.130-132

Шевнина,И.В. 2012, “Гончарство Маханджарско культуры”, Вестник археологии, антроп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2(17), pp.26.

 

posted by 김재윤23

바이칼 유역의 키토이문화 이후의 문화로 알려진 문화이다. 주로 무덤유적이 알려져 있고, 앙가라 강에서 이 문화의 유적이 확인된다.

이사코보문화에서 확인된 유물은 바닥이 뾰족한 첨저토기로 망상문토기로 알려졌다.

러시아에서는 망상문(그물문)토기라고 하지만, 필자는 타날문이라고 본다(사진1,2).

 

타날문은 나무판자 같은 박자에 끈을 감아서 만든 도구를 토기표면에 두드려서 생긴 것이다.

사실은 토기제작기술과 관련되어 있지만, 문양으로도 보기도 한다.

 

사진 1. 이사코보문화의 토기

 

사진 2. 이사코보문화의 토기: 박자흔 표시

 

사진(1)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타날문을 남기게 한 박자의 흔적이 보인다.

사진(2)는 필자가 대략 그 모양을 표시한 것이다.

 

 

박자의 너비가 비슷한 걸로 봐서 아마도 하나의 박자를 사용했다.

토기의 구연부(입술부의)끝까지 박자로 두드렸다.

구멍은? 

박자로 두드린 후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박자를 두드린 이유는 토기를 좀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구멍은 일종의 문양이다. 기능과는 관련 없는 개인 혹은 집단의 표식 같은 걸로 볼 수 있다.

 

다른 유적에서도 구멍문양이 확인되면 집단표상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인 취향일 것이다. 이름하여...개취.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은 잘 모르겠다이다.

왜냐하면 집단표상으로 볼 만큼 많이 토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표상 즉 문화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 좀 더 확대해서 바이칼 유역 전체의 토기는 바닥이 뾰족한 토기이며, 타날문 혹은 망상문양이 지속적이다.

이 특징은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토기 특징으로 뒤에서 이야기 하게 될 알타이산맥과 천산산맥을 따라서 경계에 있는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나타나는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가 전해진 일종의 코드?로 파악하고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줌앤아웃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토기하나를 요리저리 뜯어보고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한다. 그러고 나면 그 문화에 어떤 토기를 사용했는지는 그냥 저절로 알아질 수 있게 하기 위한 나의 방법이다. 내 의도가 얼마나 먹힐 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꽤먹힌다고 생각된다. 수업만 집중하면...문제는 집중하지 않는 애들....

필자가 강의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고 넓은 지역이어서, 문화 하나만을 놓고 보면 별꺼 아니지만, 배운거 다 모아서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걸 방지하려고 매우 자세하게 부터 그 자세하게를 모아서 넓은지역을 아우르는 공통점 까지를 설명한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유라시아 초원의 선사시대 > 신석기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키토이문화의 토기  (0) 2019.02.21
posted by 김재윤23

앞서 자이사노프카 문화의 토기, 석기, 집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http://eastsearoad.tistory.com/124?category=732912

http://eastsearoad.tistory.com/125?category=732912

http://eastsearoad.tistory.com/126?category=732912


이 문화는 한반도 두만강 유역의 서포항 유적에서 확인된다.
필자가 이를 서포항 상층문화로 논한바 있다(김재윤 2009).


연해주의 자이사노프카 문화는 두만강 유역, 연해주 내륙, 목단강 유역까지 넓게 퍼져 있었다.



그림1. 동해안북부문화권(5000~3800B.P.)


그림 2. 동해안북부문화권에서 출토된 토기


이를 필자는 ‘동북한문화권’이라고 논한 적이 있다(김재윤 2009). 그러나 동북한이라는 말은 국경이 포함된 내용으로 국경이 없었던 선사시대와는 대치된다. 그래서 ‘동해안북부문화권(김재윤 2017)’으로 정정한 바 있다.




그림3. 러시아,중국,북한의 접경지역. 다리로 이어진 곳이 러시아와 북한이고, 사진을 서서 찍은 곳이 중국이다

(http://eastsearoad.tistory.com/99?category=714181)


*이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국경 수립전과 후로 나누어서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으니....현실은 그리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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