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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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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활에 대한 염원 :나무 속의 미라 2

 

필자는 나무로 된 무덤방(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에서 사용된) 자체가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르잔-2호이다. 아르잔-2호에서는 14기의 무덤이 하나의 호석 안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중에서 5호 무덤에서만 나무로 된 무덤방이 발견되었다. 이곳은 주인공남녀가 매장된 곳이다. 그 외의 무덤은 석관묘이다.

 

즉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는 나무는 권력자를 위한 무덤의 자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알타이의 무덤 속에서 수 많은 부장품과 미라가 있었던 파지리크 유적,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과 통나무 관(그림 참고) 뿐만 아니라 구덩이를 수천개의 통나무로 채웠다. 이는 같은 알타이에 위치하지만 석관묘를 쓰거나 간단한 나무 무덤방을 썼던 추야계곡의 수많은 전사들의 무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나무에 대한 관념이 특별했다고 여겨진다.

 

그림. 파지리크 1호분의 통나무관

 

 

인간형상을 보존한 미라를 만들고, 나무로 된 무덤방에 사람을 묻어두는 행위는 이 지역에 현존하는 여러 민족들의 예를 보아서 부활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한다(르보바, 옥탸브르스카야 외 1988, 스몰랴크 1976,김재윤 2020, 김재윤 2021). 시베리아 남부의 투르크 인들은 부활을 위해서 아이를 나무 구멍 속에 매장했고, 나나이족에게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다. 나무무덤방이 있던 아크 알라하 3유적, 투엑타 유적, 울란드리크 I유적 등에서는 부활을 의미하는 물싸리꽃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 속의 미라는 나무 속에 묻어두었다고 볼 수 있다. 부활을 염원하는 것이다.

죽은 이의 부활을 염원한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 자신인지, 그의 아들, 딸일까? 혹은 미라로 만들어진 사람들이 권력자라면, 그의 권력을 상징화 한 것일까?

아무튼 인간을 닮은 인간형상물은 스스로가 인간형상물로 된 미라의 모습으로 극대화되어서 부활을 꿈꾸었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전통의 시작부터 극대화까지」, 『한국의 고고학』, 58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4. 09:22 책소개

인간형상물은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

 

인간형상물이 가장 극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철기시대이다.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는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장식, 마구, 무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을 집합한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상징적인 것은 동물장식이다. 동물장식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게 될 만큼 핵심적인 요소이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원형맹수장식으로 인해서 그 이전까지 알려진 카자흐스탄의 스텦지역과 흑해지역의 원형맹수장식이 시베리아에도 존재했고 심지어 더 이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동물장식의 특징으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으로 구분한다. 동물의 주제는 공통적이지만 표현방법과 자세 등이 차이가 있는 현상으로 구분한 것이다.

그런데 인간형상물도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에서 구분되어 나타난다.

 

스키타이 문화를 최초로 기록한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왕의 장례치르는 방법에서 미라처리에 관한 내용을 서술했는데, 실제 발견되는 곳은 알타이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신화속의 인물로 생각되는 인간형상물 등이 발견된다.

 

그림 1. 알타이(아크 알라하 3유적)의 미라

 

그림 2. 흑해(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신상

 

동부지역에 속하는 알타이에서는 미라가 해발 1200m이상의 무덤에서 발견되고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바사댜르 유적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바 있다.

미라를 만드는 이유는 파지리크 문화 사람들의 이데올로기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 부활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무로 된 무덤방과 통나무관, 내부까지 흙과 풀로 채워진 인간형상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 이후로 여러 유적에서 신화 속의 아르김파사로 여겨지는 여성상등이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 까지 지속적으로 출토된다. 무덤 뿐만 아니라 성곽(벨스크) 유적에서도 출토된다.

서부지역에서는 무덤 구조가 변화되어도 인간형상물이 발견되며, 사용방법도 거울이나 각배와 같은 의례품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실용적인 유물에 부착되는 변화가 있다. 재질도 변화된다. 신화와 같은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벽사의 개념을 지닌 부적과 같은 역할로 변화되었다.

 

그럼 인간형상물은 갑자기 생긴 것일까?

 

*이 글은 내일 필자가 한국고고학대회에서 발표할 내용을 간략하게 추린 글이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제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한국고고학회 (kras.or.kr)

posted by 김재윤23

 

 

 

오늘은 5월에 출판된 필자의 책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은 서문(프롤로그)에 적은 글이고,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필자의 관심사 등을 간단하게 적어 두었다. 웬지는 모르겠는데 매우 어색하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구가 있는데 '모든 책은 운명이 있다'.

 

1.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는 우리가 배웠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고, 독자들에게도 거대한 공백과 같다고 여겨질 것이다. 특히 분단된 한국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연구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면서 전달을 쉽게 하기 위해서 풀어적으니 내용이 자세해 져서 독자에 따라서는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시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실 것이라고 믿는다. 연구자와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 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5장에서 설명하겠지만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 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부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

 

3. 글의 전개과정

이 책에서는 ‘스키타이’ 문화라고 명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문화권을 잇는 스키타이 3요소 가운데서 가장 특징적인 동물양식을 ‘스키타이 동물양식’이라고 부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러시아 지역명이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점을 감안해서 간략하게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자 한다. 실제로 이 책에 다루고 있는 아르잔-1호(그랴즈노프 1980, 스미르노프 2012)나 아르잔-2호(추구노프 외 2017)를 다룬 책이나 논문에서도 ‘스키타이’라고 간략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참고로 했다.

미라는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에서만 출토된다. 지리크 문화의 유적 가운데 아크 알라하-3 유적은 이미 국내에 번역서(N.A.폴로스막(강인욱 역) 2016)가 있다. 그러나 파지리크 유적에 대한 소개는 자세하게 없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알타이와 인접한 중국 신강성에서도 미라는 발견되지만 중국 자료는 러시아 자료에 비해서 이미 잘 알려져 있기에 이에 대해서는 제외했다.

이와 함께 스키타이 문화권의 기원지로 일컬어지는 아르잔-1호와 인접한 아르잔-2호 유적도 포함된다. 최근에 발굴되어서 도굴되지 않은 유적으로써 아르잔-1호와 다른 아르잔-2호의 무덤 구조는 파지리크 문화와도 일정정도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아르잔-1호는 그랴즈노프(1980)의 책과 아르잔-2호는 종합보고서 성격의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2017)를 참고로 했다.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인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및 파지리크 유적은 루덴코(1953, 1960)과 그랴즈노프(1950)의 책이 주요 원천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은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면서 가장 완성도 높은 미라가 출토된 유적이다. 필자가 촬영한 사진을 위주로 정리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폴로스막(2016)의 저서를 참고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라고 명명된 III절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랴즈노프(1980), 추구노프 외(2017), 루덴코(1953, 1960), 폴로스막(2001, 2016)의 책을 정리하고 필자의 의견을 붙인 것이다. 각 소절의 마지막에 참고문헌을 표기해 두었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권은 매우 넓은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알려져 있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은 흑해이다. 1859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설치 되기 전부터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원래 스키타이 문화를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필자가 이 지역에 관심을 두었던 이유는 미라가 출토되지 않지만,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어떤 지역보다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베리아와 함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비너스상’이 출토되기 시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인 시베리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지역의 문화적 공통성이 나타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고, 학교 강의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서 그 자료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흑해지역의 무덤은 평지에 높은 봉분이 있는 외형으로 인해서 쉽게 눈에 띄어서, 고고학이란 학문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도굴이 성행했다. 그래서 아르잔-2호 유적과 같은 수많은 정보를 알기가 힘들어서 가장 이른 유적으로 일컬어지는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위주로 설명했다.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인간형상물이 발견된 유적을 중심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시베리아 유적은 20세기에 발굴되어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지만, 이 지역의 자료19세기 이전부터 연구되기 시작해서 여러 사람에 의해서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정보의 내용도 흡족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아쉬운 점이 많다.

심리적으로 섬나라인 한국에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먼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립운동을 했던 만주지역의 가장 끝인 대흥안령만 넘어 가면 바로 유라시아 초원이다.

 

끝으로 파랑새처럼 검색어로 나의 블로그에 찾아온 네티즌과 자신이 아는 바를 블로그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라고 권유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2017년 이후는 필자가 매우힘들었는데, 바빠지고 정신없이 살면서 삶의 원동력을 찾았다. 책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싶다. 또 이 책을 엮는데 고생을 한 부산대학교 박사과정의 강나리 학생에게도 감사를 표시한다. 러시아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신 경희대학교 강인욱 선생님께도 감사를 표시한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선사시대 유적에 부장되는 인간형상물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커서 유학 당시부터 그에 관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시작은 아무르강 하류의 극동전신상토우(김재윤 2008) 였지만 중국동북지방(김재윤 2019b)부터 최근에는 시베리아(김재윤 2019 a, 김재윤2021)와 흑해(김재윤 2019a)까지 넓히고 있다.

인류사 전체에 있어서 인간형상물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곳은 후기구석기시대 흑해와 시베리아 지역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까지 인간형상물이 이어지다가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동부지역에서는 인간 스스로 형상물이된 미라가 이를 대체했다고 생각한다. 미라를 연구한 학자들은 시신을 미라 처리하는 이유를 ‘부활’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으로 해석한다.  때문에 그 이전 시대무덤에 부장된 인간형상물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오랫동안 전통이 이어진다는점에서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상징물로 볼 수 있다.

스키타이 서부 지역인 흑해에서는 미라를 대신해서 여신상이 유물에 표현된다. 기원전 7세기부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부터 기원전 5~4세기 귀걸이, 장신구, 등에서 여신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동부 지역에서 미라가 발견되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비너스상 전통이 연속된다고도 볼 수 있다.-프로로그 중에서-

 

 

교과서 밖의 역사의 시작은..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검색어 덕분에 시작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2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고,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강의는 몇 년 째 했지만 둘을 연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검색어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 복원’이라는 검색어가 어느 날 블로그에 집중되었고, 유라시아의 고대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날 이후로 몇 년 째 모아오고 있는 대학교 강의 자료를 블로그에 풀기 시작했다.

이미 유라시아 초원의 역사와 문화는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아직도 기초자료에 대한 정보는 역부족이다. 필자는 ‘인간형상물’과 그 출토지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미약하지만 앞으로 여러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프로로그 중에서-

 

위의 내용은 필자의 새로운 책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에 포함된 것이다.

제목은 여성상으로 국한되었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베리아 유적 및 알타이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과 흑해 여성상들의 출토지(무덤)와 함께 부장된 유물에 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제 인쇄만 남았다.

 

 

 

 

 

참고문헌

 

김재윤 2021,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교통로가 되었던 추야강의 지류인 바르부르가지강에도 스키타이 시대 여러 유적이 산재한다.

그중에서는 바르부르가지 I유적 25호분과 같이 미라가 출토되는 유적도 있지만 대부분 미라는 없다.

25호와 인접한 23호 유적도 스키타이 시대 돌널무덤이다. 23호(위의 덮은 돌 범위 6m, 300×210×200cm)에도 무덤 안에는 2마리 말과 사람 2명이 부장되었다. 그러나 무덤구덩이는 바닥까지 파서 말을 매장했다. 25호와 같이 계단처럼 단을 지게 무덤바닥 시설을 하고 그 위에 말을 매장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무덤방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았다. 출토된 유물도 미라가 출토된 무덤에 비해서 소략한 편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3호, 1~3: 마구장식(목제), 4-재갈(철제), 5~8: 목제 목걸이와 이를 덮은 금박종이, 9,10-칼(청동), 11-송곳?, 12-모형 전투용 투부, 13-갈고리 모양 장식(청동), 14-실크 조각, 15- 토기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 23호의 유물

 

그림 3.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미라무덤) 유물, 1-목제쟁반, 2-칼, 3-목제 잔(손잡이가 둥근), 4-의복조각, 5-목걸이를 둘러싼 금박종이 조각

 

그림 4.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유물 2, 6-이마장식, 7,8-목제 말모양 인형, 9-사슴머리, 10-산양몸통의 사슴,11~14-원뿔모양의 펜던트, 15-빗, 16-모형 검, 17-칼, 18-모형의 전투용 도끼, 19~21: 모형 활, 22-화살통 일부, 23-목제 말뚝,

 

그림 5.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유물 24, 25-허리띠 장식, 26~28: 허리띠 장식, 29-전투용 투부에 부착된 장식판, 30-화살통 장식, 31,32-단추, 33-멧돼지 송곳니 모양 장식, 34-거울, 35, 36-물고기 모양의 장식. 37-토제 항아리, 38-돌 베개, 39-아주 얇은 가죽, 40-펠트조각

 

2020/10/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 - 알타이의 미라와 부활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바로 북쪽에 위치한 26호 무덤(직경 9.5m, 300×250×220cm)은 상황이 약간 다르다. 나무무덤방 안에 2인이 매장되었고, 말 2마리가 있었다. 나무무덤방은 긴 나무통을 그대로 이용해 동서의 단벽을 쌓고 남북의 긴 벽을 이용한 무덤이다. 바닥에는 통나무를 깔았다.

 

그림 6.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6호, 1,5-철제 재갈, 2,3-구멍 뚫린 장신구, 4,6-동물장식이 달린 재갈멈치, 7-이빨모양 장식판, 8- 동물문양장식금판, 9~12: 새 모양 장식판(금판), 13-산양뿔 모양 장식판, 14, 15-원뿔모양 장식판, 16-목걸이, 17,18-거울, 19-20-펜던트, 21,22-칼, 23-끈 벨트의 걸쇠, 24-단추형 장식판, 25-목제 검집, 26-목제 쟁반, 27-2개의 토제 항아리, 28,31-돌 베개, 29-검은색 물감의 범위, 30-허리띠 장식판(1,22,25-철제, 2,3-뼈, 4,6,14,24,26,28,30-목제품, 5, 17-21,23-청동제, 7-13, 15-금박, 16-청동+목제, 27-토제, 31-돌)

 

그림 7.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6호 유물

 

 

 흥미로운 점은 미라가 나온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바로 남쪽에 위치한 24호로 명명된 무덤은 사실 무덤이 아니었다. 위에만 돌을 직경 5m가량으로 덮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3~25호가 거의 붙어 있는 무덤이었고, 25호 북쪽에 위치한 26호무덤은 약간 떨어져서 확인되었다. 23~25호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무덤이고, 26호는 무덤의 시설물과 유물의 차이로 보아서 시간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25호 무덤에서 나온 목제쟁반(그림 3-1)은 이제까지 출토된 쟁반과 달리 바닥에 받침이 붙은 모습이다. 당장 26호에도 목제쟁반의 바닥(그림 7-26)은 편평하다. 이 유물 26호와는 시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떤 의미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은 이를 미라로 만든 무덤과 그렇지 않은 무덤(23호)은 말의 부장과 무덤시설에는 크게 차이가 없지만, 미라가 들어간 무덤의 유물은 의례용 무기를 더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단순한 비교이고,  최소한 같은 유적에서 같은 시간대에 만들어진 무덤 안에서 비교할 때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