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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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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에 들어 있다. 이 복합체의 직경은 80m이다. 무덤의 경계벽 직경이 80m라는 것이다.

 

약간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왠지 마을을 그대로 무덤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선사시대에 마을에는 경계벽이 있었는데, 나무로 세우기도 했고, 흙으로 세우기도 했고, 돌로 쌓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성으로 변하게 된다.

 

필자가 예전에 신석기시대 집이 무덤으로 사용되는 경우를 포스팅한 바 있다.

삶의 공간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화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2018/01/13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죽음과 고고학

 

죽음과 고고학

지난 해 여름에 중국 산서성에서 발굴된 송나라 어느 귀족의 무덤을 보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바 있다가 적어본다. 그림1. 송나라 벽화무덤 http://www.fnnews.com/news/201708281009572832 뉴스 에서는 무덤

eastsearoad.tistory.com

 

 

아르잔-2호의 경계벽은 마을의 경계벽, 각 무덤방은 묻힌 사람의 집이라고 생각해보면, 마을과 같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성은 활(+화살), 검(+칼), 투부(전투용도끼)를 지니고 묻혔는데, 3종세트라고 생각된다. 기본소재는 철제였으나, 금박으로 장식되어서 의례품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런 걸로 실제 썼을까?

 

그럼 다른 무덤에서는 무기 3종 세트가 발견된 바가 없을까? 실제로 썼을 것 같은..

 

필자가 이미 약간 스포일러 한 적이 있는데, 주인공 남성 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호랑이 동물문양장식을 청동제로 제작한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무덤 20호이다.

 

무덤방 20호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선 무덤방 20호에는 남성 2인이 매장되었다. 둘 다 22~25세의 남성이다. 한 무덤방에 묻혔는데, 돌(1.8 × 2.2m, 깊이 1.1m)로 제작되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매장시점이 다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2: BB'라인 단면도, 3: AA'라인 단면도)

 

무덤방의 동쪽에 위치한 인골 2호라고 불리는 남성은 1호 남성의 무덤방(그림 2)을 연장하고 묻힌 것이다. 원래 1호 남성만 매장되었다가 무덤의 동쪽을 연장하면서 벽석도 세로 세우고, 구덩이도 좀 더 파서 만든 것이다. 발굴당시의 덮개돌(그림 1-1)은 인골 2호를 매장한 후에 생긴 것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인골

 

 

그런데 그림 2에서 확인되는 2호 남성(우측)은 먼가 좀 부자연스럽다. (사진이 있으면 좋겠지만, 20호 출토 사진은 출판되지 않았다).

뼈는 해부학적으로 순서대로 매장되었으나, 팔의 상완골과 하완골이 겹쳐졌고, 갈비뼈도 무질서하다. 뼈가 해체된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2호 남성의 머리 위에는 목기그릇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청동물체 아래에서도 유기질의 흔적이 약간씩 남아 있었다.

 

1호와 2호 남성은 함께 부장된 유물이 차이가 있다. 2호 남성은 청동칼 1자루(그림 7-3) 뿐이었지만 1호 남성은 투부(청동)의 머리(그림 3-1), 고리트(청동)와 그 부속품(그림 5-3,4), 화살촉(청동) 11점(그림 4-3~13), 칼(청동)(그림 5-5), 귀걸이(금제)(그림 5-1) 등 금속제품과 투부자루(목제) 2자루(그림 3-3,4), 구멍이 4개 뚫린 굽은 장식판(목제)(그림 4-2), 목제그릇의 손잡이(뿔)(그림 4-1), 화살촉(뿔)(그림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옷으로 보이는 직조물이 확인되었다. 1호 남성의 부장품은 좌측 골반뼈 주변에 놓아 두었던 것 같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실측도를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유물 사진만으로는 각 부위의 모습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실측도에는 제작방법도 함께 알 수 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재질

유물

그림번호

금속

청동

투부 대가리

3-1

6-1

고리트와 그 부속품

(그림 5-3,4)

7-2

화살촉

4-3~13

6-4,5

5-5

6-2

귀걸이

5-1

 

나무

투부자루 2자루

3-3,4

6-3

장식판

4-2

 

목제그릇의 손잡이

4-1

7-1

화살촉

4-14,15

 

표1. 아르잔 2호 무덤방 20호 1호 인골의 부장품

 

 

2호 남성의 청동칼(그림 7-3)은 손잡이가 없는데, 유기물질(나무 혹은 뿔)로 제작되어서 따로 끼워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1호 남성의 칼(그림 5-5, 6-2)은 손잡이가 날과 함께 거푸집에서 만들어졌다.

 

 

1호 남성은 투부, 칼, 활(+고리트)라는 기본 3종 세트는 확인되었다. 그러나 주인공 무덤방 5호 남성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철제가 아닌 청동제이고, 칼은 있지만 검은 없다. 20호에서 출토된 무기도 청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전투에서 썼을 것을 것 같지는 않다.

 

아. 그리고 앞에서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이 포스팅만 보신분들은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철기시대에 해당한다.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는 이미 철제 무기가 출토된다. 혹시 청동기시대라고 생각하시고 무슨소린가 하실까봐 말씀드린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인골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1호(1,2)와 2호인골(3); 1-뿔, 2,3-청동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르잔-2호 무덤의 무덤방 5호 남성은 무기 3종 세트를 지녔다.

1-검과 칼, 2- 활과 화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체칸'이라고 불리는 투부로 전투용도끼이다.

 

어제 소개한 고리트의 오른쪽 옆에서 확인되었다. 고리트와 함께 벽에 걸려있었을 것이다.

도끼의 날 부분과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로 만들어졌고, 손잡이(길이 62cm)는 나무이다. 날 앞부분은 원통형(단면은 각이 짐)에 포인트 부분은 매우 날카롭다. 날의 뒷 부분은 납작한 장방형으로 끝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도끼의 신부(몸체)와 손잡이 끝에 전체적으로 나선형 문양이 묘사되었다. 무덤 주인공 남성의 철제검과 철제칼, 여성의 철제검과 가슴장식, 모형솥에서 확인되는 나선형 문양이다. 도끼의 날 아래에 호랑이 머리(그림 1의 화살표)가 달려 있다.  이 부분은 도끼날을 손잡이에 끼운 후 은제 못(그림 1-2, 2-1)으로 고정한 후에 별도로 마지막에 추가되어 달렸다. 손잡이 끝 장식은 철제 끼우개(그림 2-6)에 금박을 덧입힌 것으로 홈을 내서 상감한 것은 아니다.

 

그림 1.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2. 아르잔-2 무덤방 5호 출토, 그림 1과 동일

 

철을 상감하거나 다른 물질로 입히는 기술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아파다나 궁전 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무기를 들고 있는 페르시아인은 스키타이인들에게 입수한 것을 들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투부는 페르세폴리스의 ‘백 기둥 홀’ 바닥에서도 발견되었고, 스키타이 문화권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에서도 많이 확인된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이 아닌 곳에서도 금박은 없지만 철제 투부(그림 6)가 많이 확인되어서, 일반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다. 아르잔-2호가 위치한 곳과 인접한 지역에서 사슴돌(장방형의 입석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슴 없는 사슴돌도 있다)이라고 불리는 입석에 무기가 달린 무사의 벨트가 그려져 있다(그림 3,그림 4).

 

 

그림 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출토, 사슴돌, 이 사슴돌에는 사슴이 없다. 직사각형으로 세워진 입석에는 대부분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이 없는 사슴돌도 있다. 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아래에 링크된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그림 4. 아르잔 출토, 사슴돌, 그림 3과 동일, 투부, 검, 고리트(화살통)가 벨트에 달려 있다. 아래 지도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위치를 알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ll=52.0966411900486%2C93.56780343358592&z=11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투부는 직접전투에서 사용되었다. 도끼의 전단부의 단면이 원형이고, 끝이 뾰족한 형태가 기원전 4세기까지 계속 이 형태가 유지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머리에 투부로 맞은 상처가 3곳이 있었다. 시베리아 남부에서 현재 우크라이나(흑해북안)(그림 7)까지 무덤에서 투부에 맞아 머리터진 사람들이 묻혔다. 뿐만 아니라 말을 죽일 때도 투부를 사용한 흔적이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투부는 그 당시에 치명적인 개인 무기였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투부 복원도(그림 1을 복원)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 출토, 투부

 

 

 

그림 7. 흑해 북안의 체르도믹 유적, 투부,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동물문양이 금박에 찍혀 있다. 날과 손끝에 같은 문양이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새겨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의 유물 중에서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고 있는 남성전사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서는 고리트가 실제로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활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이 가득 담긴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을 제거한 후 드러난 모습,

 

남성의 좌측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으나 원래는 무덤방의 북동쪽벽에 매달려 있었고 나중에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활이 고리트에서 빠진 채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고리트(그림 3-4)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가죽은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나무는 금박 혹은 금판(크기누락, 필자가 금판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주 소형의 유물에 덮힌 금박보다는 두꺼울 것이기 때문이다)으로 덮였다(그림 3-1), 금으로 고리트의 바닥(그림 3-2)도 만들어졌다, 길이 50cm 나무뼈대에 새겨진 비늘 모양이 금판 위에 그대로 찍혔다. 나무 뼈대가 누르면서 금판의 비늘도 만들고, 고리트도 단단하게 했을 것이다. 나무 뼈대의 반대면은 매끄러운데, 고리트에 연결했던 장식판이 눌러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판에는 24개의 구멍이 있어서 나무핀으로 금판과 연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금판은 고리트의 앞면에만 장식되었고, 금판의 한쪽 끝은 직각이 되게 하단부가 만들어지고, 따로 제작된 금판(그림 3-3)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고리트에는 앞서 남성과 여성의 윗옷에 달린 적이 있는 황금 멧돼지 장식판(두 종류 크기)(그림 12)이 세 곳(그림 4-26,27,28)에 312점이 나눠서 부착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그림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유물평면도, 우측은 남성, 좌측은 여성이다.

 

고리트 위쪽에서는 활이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의 모습

 

활(그림 5, 그림 6-7)은 나무를 세로로 네 조각으로 잘라서 만들어서 단면이 각(그림 5)이 졌다.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을 비스듬하게 감아서 만들어졌다. 활의 윗부분에는 붉은색 염료가 칠해진 금박(그림 7-1~4)이 장식된 것이 있다. 활은 가장 긴 것은 24cm가량이고, 막대는 20개 정도 확인되었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7)과 부속품, 1~4: 활대에 붙은 금박, 5,6:용도미상, 5는 40개, 6은 3개출토되었음, 그림 5에서 가장 우측에서 나란히 놓인 채로 확인되었다.

 

화살은 앞에서 촉은 소개해 드린 바 있다. 활대는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처음 제작당시의 길이는 60cm이다(단면은 0.6~0.8cm). 횡단면은 타원형이고, 끝은 둥그스럼하고 틈을 파서 제작되었다. 어떤 화살대에는 빨간색 세로 줄무늬가 파란색 바탕에 그려졌거나 혹은 그 반대도 칠해진 것이 있다(

 

 

 

 

그림 8.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1,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많이 휘어진 상태인데 화살대이다.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활 아님.

 

 

 

그림 9.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2,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0.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활 아님) ,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활과 화살통) 복원도, 활은 화살통에 넣어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림 12.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파다나 궁전 북벽, 페르시아인이 스키타이 고리트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활은 나무판을 덧 붙인 복합궁이라고 불리면서 아주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론-쿠린-고레-10(Олон-Курин-Голе-10)유적에서 출토된 활은 나무판을 여러겹 덧붙여서 제작된 것이다. 보다시피 아르잔-2호와는 차이가 있다. 그림 6과 그림 6-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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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무기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3요소를 설명하는 것 중에 하나의 유물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유물 중에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 2인의 무덤에서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투부는 전투용 도끼라고 불리지만 무기만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례에도 사용되었던 정황이 확인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45세 가량의 남성관에서는 붉은색 바지옆에서 오른쪽 무릎과 같은 높이에서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가 출토되었다. 이 투부는 머리가 위쪽을 향했다.(아래포스팅에서 투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2500년 전 알타이 산맥 남성전사 붉은색 바지의 허리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45~50세 남성의 무덤을 다시 보자.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오른쪽이 45~50세 남성전사이고, 오늘 설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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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투부

 

투부는 소년의 관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그림이 소개되어 있다. 이 투부는 길이가 65cm가량이 나무손잡이와 도끼의 날이 함께 착장된 채 출토되었다. 도끼의 날은 자루를 끼우는 부분과 날 부분이 함께 주물기법으로 성형된 것인데, 철제이다. 손잡이의 끝에는 장타원형 안에 능형으로 침선을 한 표식이 새겨져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중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 투부는 주로 날이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이 보다 좀 더 작다. 좀 더 예리하고 작은 크기의 투부가 무기로서 사용하기에는 훨씬 유리한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는 이와는 좀 다른 양상이다.

 

 

그림2.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되는 전투용 도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과는 도끼의 날과 그 반대부분이 전혀 다르다.

 

쿠바레프(1987)는 이 유물의 손잡이 단면에 주목했다. 그는 창과 같은 무기의 손잡이 단면은 둥근 것이 사용하기에 편하다고 하면서, 만약에 손잡이가 타원형이라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투부는 전쟁이나 싸움할 때에는 주로 허리춤 벨트에 손잡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고정시켰다.

 

이 점은 투부의 출토위치나 상태로 보아서 이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에서 출토된 투부의 손잡이는 타원형으로 빠르고 정확함을 요구하는 무기로 쓰기에 불편하다. 이 유물은 상태가 매우 좋은채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그림1에서 확인하면 날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무디고, 반대쪽도 거의 날이 서 있지 않다. 그림2의 도끼와는 사뭇다른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파괴력이 크려면 작고 예리해야 하는데, 이 유물은 다른 투부에 비해서는 크기가 크다. 어쩌면 장례식이나 의식 때 말을 죽이거나 혹은 사람을 죽일 때 사용했던 유물일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작년에 필자가 진짜 재밌게 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나 빼고도 다 재밌게 보셨겠지만.

그런데 여주인공이 처음배웠다는 영어단어

Gun, Glory and sad endding이었다. 오늘 제목은 그걸 살짝 바꾼 것이다

얼굴 가리고 총들고 지붕 위에서 적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다. 그리고 명예...

주인공이 들고 있던 총의 옛 모습이 검이었을 테니깐. 우리가 살고 있는 배경이 그 때 그 슬픈시절이 아니니, 새드엔딩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다. 

오늘 약간 풀어놓을 것은 인류사 최초의 무기이다.


 

사실 요즘 필자는 환단고기 때문에 홍산문화를 난도질하는 중이다. 첫걸음은 토기인데,,왜냐하면 고고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편년문제 때문이다. 편년은 그냥 시간 혹은 기간 쪼개기로 생각하면 된다. 이 부분은 논문은 두어편 있어야 할 듯한데,, 한편은 곧 공개될테고, 다른 한편은 시베리아 자료가 약간 부족해서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좀 많이 안타깝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는 유물이 아래의 사진이다.


 사진1.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조합식석인검(적봉박물관에서 필자촬영)


조합식석인검, 석인창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석인골병도(石刃骨柄刀)라고 한다.

주로 나무나 뼈를 갈고 홈을 파서 석인(石刃)을 끼워넣은 것이다.

석인이라는 용어는 어려워 보이나, 영어로 하면 blade인데, blade는 그냥 쓸 수 없어서 어딘가에 끼워서 쓰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늘 설명한다. 석기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변화된 것은 컴퓨터가 방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크기로 변한 것과 같은 거라고 설명하면, 모두 잘 이해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과 만들기 적합한 재료, 그리고 이 도구를 쓸 수 있는 환경은 후기구석기시대 부터라고..(이 부분은 논점에서 벗어남으로 다음에 설명한다.)


이 유물이 중국요서지역에서 보이는 것은 홍산문화부터이다.

그런데 이 유물은 시베리아의 것이다.

시베리아에서는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인 글라스코보문화까지, 청동검이 등장하기 직전까지 지속된다. 또 이 유물이 주로 분포하는 바이칼 유역의 아래 동네인 몽골, 중국신강, 카자흐스탄 까지 5000년 경에 출토된다. 아마도 알타이 산맥과 붙어 있는 천산산맥을 따라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




그림 2. 후기구석기시대(1~4)와 순동시대(5~7)의 조합식검과 창




그림 3. 시베리아 신석기시대 조합식 석인검


필자는 이 유물이 언제 어디서 없어지고, 생겼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동쪽의 끝은 중국요서지역 홍산문화(6000~4500년 전) 및 그 이후의 소하연문화(4500~3500년 전)이다. 제대로 알려면 홍산문화의 언제적부터 이 유물이 나오는지도 살펴야 하고, 어떤 상황(유적)에서 출토되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유물이 들어가는 서쪽과 남쪽도 궁금한데,,,..확실한건 시베리아에서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나온다는 점이다. 시베리아에서는 청동검 등장까지 사용된다. 그리고 정확하게 청동검과 이 유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인류사 최초의 무기라고 생각된다. 혹은 무기형태...무기에 사회적역할을 부여하면 후기구석기시대무기는 약간 어불성설이지만, 그런데 무기의 모습을 띤 것은 맞다.

 그래서 필자는 이미 구석기시대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의 첫 모습은 다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국요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이 유물의 기원 찾기 때문에 시베리아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영의 Great game 이전에 시베리아에 포함되었던 현재의 카자흐스탄에도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이는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진 배경과 관련 있는데,,,아마 다른분들이 많이 포스팅했을 가능성이 많다)


유라시아를 내가 통째로 다 할 수는 없으니, 지역도 한정시키고, 주제도 몇 개로 줄일려고 한다. 시베리아는 중앙유라시아에 포함된다. 서울대 김호동교수는 중앙유라시아의 가장 북쪽지역으로 보고 있다(김호동,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 이 유물 때문에 시베리아 후기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포스팅하고,,,,원고도 적어야 한다.


필자의 수업자료에서..(중앙유라시아로 규정된 부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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