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알타이의 서쪽 사면 해발 1000~1100m에 위치한 카자흐탄의 베렐 유적은 앞서 살펴본 실릭티 유적과 무덤 구조 뿐만 아니라 유물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실릭티 유적의 동물장식은 금판을 뒤에서 눌러서 앞쪽에 튀어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베렐 유적은 나무를 깍고 그 위를 금박으로 싸서 만든 것이다. 물론 금박이 잘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몇 몇 유물에서 남겨진채 발견되었다.

 

베렐 유적은 이미 도굴당한채 발견되어서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대부분 말의 장식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서 말의 굴레에 달았던 굴레장식 가운데는 사슴 장식이 남아 있다(그림 1). 그런데 이 사슴장식은 약간 어색하다.? 어색하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파지리크 유적과 비교하면 이제까지 없었던 사슴이다. 사슴이 입을 벌리고 표현된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 투엑타 유적, 파지리크 유적에는 없었고, 대부분 호랑이나 표범 등 범 장식이 입을 벌리고 있다(그림 1). 두 동물이 대칭으로 표현되어도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등을 뒤로 돌리는 표현도 없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에서 출토된 사슴장식이 붙은 굴레

 

물론 두 동물이 대칭되도록 구성된 장식 중에는 엘크(그림 2)가 있다. 투엑타 유적 1호에서 굴레장식에 달린 사슴의 얼굴이 베렐 유적 11호분과 유사하기도 했다. 물론 뿔의 표현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투엑타 유적 1호분 사슴의 뿔은 초본류를 모방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슴의 원래 뿔일 가능성이 없다.(이것은 실제 엘크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위키백과 참고).

ko.wikipedia.org/wiki/%EB%A7%90%EC%BD%94%EC%86%90%EB%B0%94%EB%8B%A5%EC%82%AC%EC%8A%B4

 

말코손바닥사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무스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무스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말코손바닥사슴(학명: Alces alces)은 사슴과 말코손바닥사슴속에 속하는

ko.wikipedia.org

2020.07.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2600년 전 하이브리드 동물문양

 

사슴 장식에서 서로 가슴만 붙인 것도 해발 1500m이상의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사슴의 자세이다.

 

그림 2. 베렐 유적 11호분 엘크

 

필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베렐 유적의 유물은 나무를 깎고 금박으로 싸서 만드는 방법은 알타이에서 이미 소개한 유물제작법과 관련이 있지만 동물표현에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알타이 그리핀의 상징인 독수리머리 그리핀, 말의 마스크로 추정되는 부속품도 발견되어 파지리크 유적을 닮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동물장식은 비율이 맞지 않고, 특정 부분만 강조되어 만들어져서 감쪽같지는 않다.

 

그림 3. 베렐 유적 11호분 독수리머리 그리핀

 

그림 4. 베렐 유적 11호분, 인간+동물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부의 실릭티 유적은 알타이 산 보다 남쪽에 위치한 평지의 유적이었다. 알타이는 여러 국가와 경계를 나누고 있는데,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으로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에는 알타이에 위치한 유적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유적은 베렐이다. 1865년에 라돌프가 처음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자료는 남아있지 않고, 1998년 카자흐스탄에서 발굴한 정보가 남아 있다. 베렐 유적이 위치한 계곡에는 스키타이 시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기의 무덤이 100기 이상있다.

알타이의 추야강 계곡과 마찬가지로 무덤은 열을 지어서 발견되었다(그림 1).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1호분(직경 31.4× 28.6m, 높이 3~4m)인데, 무덤구덩이 안에 나무방을 넣고 빈공간에는 말 13마리를 묻었다. 나무방 안에는 통나무관이 있었고 남녀가 함께 안치되었다. 무덤은 여러 크기의 돌을 층별로 넣어서 축조했는데, 발견당시에 이미 도굴당한 상태였다.

 

 

그림 1. 베렐 유적의 무덤

 

 

그림 2. 베렐 계곡의 무덤군, 그림 1의 무덤은 북서방향을 길게 서 있는 무덤군(I)이다. 구글 위성지도(우측 지도 참고)에서 무덤 봉분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설명상으로는 같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과 비슷해 보이지만 신기하게도 베렐 유적은 나무로 된 무덤구조물에 큰 차이가 있다. 나무방을 통나무를 쌓아서 만들지 않고 나무를 잘라서 만든 납작한 목판으로 만든 것이다. 통나무관은 낙엽송을 파내어 만든 것이다. 그 위에는 물싸리 나무의 줄기와 가지를 얹은 후 자작나무 껍질을 두겹으로 덮었다(그림 3).

 

그림 3. 베렐 유적의 11호분

 

베렐 유적에서 나온 많은 유물은 파지리크 유적과 닮아 있다. 목제로 제작된 말의 굴레 장식, 토제 항아리 등이다.

 

해발 1500m의 파지리크 유적도 도굴당했는데, 1000~1100m가량의 베렐 유적은 더 쉽게 도굴당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Самашев З. Берел. – Алматы: «Таймас», 2011.(사마세프 2011, 베렐)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3. 8. 12:33 스키타이 무기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 실릭티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화살은 단면(자른면)이 원형이고 양쪽으로 능이 붙은 형태이고, 평면은 자루를 끼울 수 있는 슴베가 있는 모습이다.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경에 발견되는 화살촉과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르다. 능이 같은 간격으로 3개 달린 것이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이다.

 

그림 1.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

실릭티 유적 보다 북쪽에 위치한 베렐 유적은 알타이의 산 자락에 위치했는데, 알타이의 높은 곳이 아니라 해발 1000m에 위치한 유적이다. 우코크 고원(2500m), 파지릭 계곡(1500m)보다 훨씬 낮다.

 

베렐 유적에서도 화살이 발견되었는데 청동과 골제 화살촉이다. 청동화살촉은 중앙에 원형의 빈곳 없이 삼각형에 가깝고 슴베 부분(자루에 끼우는 부분)이 길게 나와있다. 실릭티와 같은 유물은 막대를 화살촉 안으로 삽입하는 것이고, 베렐 유적의 화살촉은 나무 막대에 끼우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베렐 유적의 골제 화살촉은 슴베 부분이 없고 촉의 중앙이 비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골제 화살촉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림 2. 베렐 유적의 화살촉

 

쿠바레프(2007)의 의견에 따르면 베렐 유적과 같은 청동 화살촉(그림 2)과 골제 화살촉은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베렐 유적은 실릭티 유적과 같은 국경(카자흐스탄)에 위치하지만 각각 산지, 평지에 위치해서 무덤의 구조 및 유물이 매우 다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3. 7. 13:05 스키타이 무기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화살이다. 이 문화의 무기는 투부, 검과 칼 등이 있고 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 지역에서 소재를 달리해서 출토되는 유물이며, 무덤 까지 들고 들어가는 유물이다.

검은 손잡이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길이 짧은 검은 말탄 기마병에게는 유용한 무기는 아니다.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의 암각화에 그려진 기마병 들은 대부분 자루가 긴 일종의 동과나 동모를 들고 있었다. 말탄 전사가 활을 쏘는 장면도 발견된다.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분은 어린 소년의 무덤이었는데, 소년은 자신의 신체 크기에 맞게 조정된 목검과 화살통(고리트)과 함께 부장되었다(폴로스막 1994). 어린아이에게도 뭍어줄 만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유물이었을 수 있다.

 

알타이의 추야강과 우슬라 강의 스키타이 시기 무덤을 수 백개의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도 화살촉으로 유적의 연대를 추정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유물이다. 그에 의하면 스키타이 화살통인 고리트는 모든 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쿠바레프 1991).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아르잔-1호에서 화살촉은 도굴로 인해서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서는 골제 화살촉과 청동제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청동제화살촉은 단면이 마름모꼴인 것(그림 1-3~8)과 원형에 능이 붙은 것(그림 9-10~13)이 있다. 앞의 것은 활대를 끼우도록 단면이 비어 있고, 뒤에 것은 자루를 끼우기 위해서 슴베가 있는 유물이다.

골제 화살촉은 단면이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우는 슴베가 뒤로 나와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청동제 화살촉, 기원전 7세기 중반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골제 화살촉(2),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청동제과 골제 화살촉은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바레프가 발굴한 알타이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를 발굴하기 전이었지만, 이러한 형식의 화살촉이 가장 이른 유물이라고 보았다(쿠바레프 2007).

 

그런데 화살촉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붙은 화살촉은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3-1~3,5)에서도 발견되고, 산림지대의 아나닌스카야 문화(그림 4)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화살촉, 기원전 7세기

 

그림 4.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화살촉, 기원전 6~5세기

 

물론 스키타이 서부 지역의 유물에는 자루끼우는 부분이 단순하지 않고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알타이에서는 없는 형태이다. 아마도 용도와 관련되어 있을 것인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른다.

 

알타이 남쪽 카자흐스탄 동부 평지에 위치한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은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있지만 아르잔-2호와 알타이와는 다르다. 현재 아르잔-2호와 알타이에서 발견된 화살촉은 실릭티 화살촉처럼 생긴 것은 없고 오히려 흑해쪽(그림 5)에 가깝다.

포스팅

 

그림 5. 드레프르강 유역(흑해 북안)의 화살, 기원전 5세기 전후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고분)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권은 인접한 지역과의 비교도 이루어지지만, 넓은 지역에 문화가 묶여 있는 만큼 각 지역간의 비교 연구도 활발하다.

초원 북쪽에 위치한 산림지대인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철제품은 널리 사용되고, 자신들의 제작기술이 있었어나, 스키타이 문화의 철제품 보다는 덜 정련된 철제품을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쿠즈미니흐 1983).

 

그럼 스키타이 문화의 주요 유물중에 하나인 황금 유물은 어떨까? 황금 유물은 주로 흑해지역과 카자흐스탄에서 두꺼운 금제품을 사용해서 시베리아 알타이의 유물보다는 잘 알려져 있다.

실릭티 유적에서는 흑해지역보다는 얇지만 금박보다는 두터운 금판으로 제작된 동물장식이 잘알려졌는데, 사슴장식(그림 1), 몸을 말고 있는 범 장식(그림 2), 새 장식(그림 3, 4), 멧돼지 장식이다. 앞의 두 유물은 면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새 장식은 선이 강조되었다.

 

그림 1.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사슴장식

 

그림 2.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범 장식(1,2-앞면, 3,4-뒷면)

 

그림 3.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새 장식

 

그림 4. 실릭티 유적 5호분 출토 새 장식의 실측도

 

그 중에서 사슴장식은 흑해지역의 코스트롬스카야에서 발견된 사슴장식(그림 4)과 비교된다. 두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은 자세는 같지만 몸통표현에 차이가 있다. 실릭티 유적의 유물은 몸통이 편평하게 표현되었고, 코스크롬스카야 유물은 앞서 여러 번 이야기 했지만 양적으로 표현된 유물이다. 물론 뿔의 가지 수, 뿔의 모양, 눈과 콧구멍의 모양 등 세부적인 표현 차이도 있다. 그러나 두 유물이 전혀 다른 제작기술로 만들어지게 보이는 것은 몸통 표현의 차이 때문이다.

 

 

그림 5. 흑해(코카서스 북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의 사슴장식

 

코스트롬스카야 유물과 실릭티 유물의 제작기술 차이처럼 보이는 그 배경에는 소재의 차이도 있다.

실릭티 유적은 이미 도굴당하고 남은 유물은 전부 금제품이었는데, 원래는 엄청나게 많은 금제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금이 부족해서 금을 아끼기 위해서 얇게 금 장식을 만든 것 같지는 않고 얇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수 있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