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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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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로 흘러가는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원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발견된 유물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다양한 남성들이었다.

인간형상물이 유적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인데, 흑해지역과 시베리아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그 전통은 계속이어지는데, 시베리아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순동시대에는 인간형상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다가, 청동기시대 오쿠네보 문화가 되면은 다시 여성상이 등장하며, 남성상도 출토된다. 물론 후기구석기시대에도 남성의 상징으로 생각되는 인간형상물이 있긴 하지만, 약간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시베리아의 오쿠네보 문화(기원전 15~19세기)에서는 남성은 여성과 분명하게 구분되면서 남성상이 등장한다(김재윤 2020).

오쿠네보 문화와 연대적 차이는 있지만 초기철기시대문화인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다양한 인간형상물이 확인되는데, 특히 흑해 지역에서 많이 나온다. 반면에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인간형상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흑해지역의 인간형상물은 매우 구체적인데, 아마도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장면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남성들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기원전 5세기 이전 유적인 코스트롬스카야, 멜구노프,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남성모습의 인간형상물은 없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적에서는 대량으로 등장한다. 아시다시피 기원전 5세기 이후 흑해지역에서는 그레코-스키타이 유형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대량으로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 인물들이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키타이 남성들의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는 스키타이 남성이 표현된 유물 가운데 갑옷과 투구를 쓴 모습의 남성이 발견되었다. 말탄 무사는 상대방의 목을 창으로 찌르고 있는 장면이다. 두 무사는 미늘 갑옷, 정강이 가리개와 화살통을 차고 있다.  투구는 기원전 4세기에 흑해에서 유행한 그리스식 투구인 코린트식 투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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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늘갑옷: 한국에서는 찰갑이라고 부른다. 작은 철제판을 가죽 끈으로 이어서 붙인 갑옷이다. 철제판의 가장자리에는 구멍이 있다. 흑해에서 찰갑은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과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이미 발견되었다. 

코린트식 투구: 기원전 7세기 코반 유형과 달리 이마 아래에도 철판이 덧대어진 것으로 볼만 가린 것과 눈만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있다. 

 

사람에 비해서 말이 매우 작게 그려져서 약간 이상한 느낌?도 들지만 말에도 보호장치가 있고, 특히 안장깔개가 눈에 뛴다. 

이 유물의 용도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물의 가장자리로 구멍을 뚫었는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통 장식도 가장자리에 구멍을 뚫은 것이다. 그래서 이 유물은 스키타이 초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곳은 드네프르강 하류의 게레메스 유적으로 기원전 4세기의 유적이다. 유적은 자벨린이 1859년에 발굴했으며, 전차와 마구가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전차는 두 무더기로 발굴되었다고만 전해지고, 그 전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마구와 다양한 그리핀이 발견되었다.

 

그림 1. 게레메스 유적 출토, 금제 장식판, 19×14cm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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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22. 13:18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는 다양한 남성이 입체상과 평면상으로 만들어졌다. 입은 옷과 머리에 쓴 모자로 보아서 페르시아 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어딘가에 걸터 앉은 모습으로 제작된 것이다. 왼팔에는 막대기를 쥐고 있고,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형상이다. 다리 사이에는 막대기가 있는데, 어딘가에 고정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페르시아 남성, 높이 7.4cm

 

제이말은 이 남성은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남성과 함께 전차를 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아래포스팅). 바퀴와 말이 없어진 전차에 앉았던 승객?이다. 이 남성의 모자는 끝이 뾰족하지 않고 앞쪽이 둥글게 혹은 앞이 기울어지게 만들어진 것으로, 턱을 가리도록 된 것이다. 모자의 뒷면에는 목얼 덮고 있다. 학자들은 모자와 복장은 페르시아의 것이라고 한다. 또한 턱아래만 길게 기른 턱수염도 페르시아 남성의 스타일이다.

 

2020/12/2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와 페르시아 문화...

 

기원전 5세기 시베리아와 페르시아 문화...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는 전차모형이 1점 더 발견되었다. 어제 보여드린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뒤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시다시피 말과 바퀴가 보존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깔모자 쓴 라이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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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 유적에서 출토된 벌거벗은 그리스 쿠로스 소년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소년이 쓰고 있는 모자의 앞쪽이 유사하다.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이 시베리아의 부굴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2020/12/11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누구 일까요?

 

누구 일까요?

아무다리야 퇴장 유적의 유물 가운데는 스키타이 스타일의 동물장식(7점은 동물장식 1점은 도깨비?)가운데 그리스의 쿠로스(kouros) 입상으로 추정되는 인간형상물(그림 1,2)도 발견되었다. 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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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자의 턱을 막도록 되어 있는 페르시아 모자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의 쿠로스 입상과는 차이가 있다. 부굴리 출토의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는 뒤는 길게 내려만, 턱을 막도록 되어 있지 않아서 다르다. 그런데 모자에 달린 턱의 장치는 말이나 전차를 탈 때 벗겨지지 않도록 고안된 부분일 수도 있다. 모자에서 중요한 부분은 남들에게 보이는 윗부분이다. 그렇다면 벌거벗은 소년이 쓰고 있는 모자, 페르시아 남성의 모자(그림 1), 부굴리 출토의 모자는 거의 비슷한 모자 일 수 있다.

 

그리스의 소년상은 벌거벗은 채 모자를 써서 어색하다고 했다. 유물속의 그리스인들은 몸을 드러낸채 표현되지만 모자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페르시아 남성을 참고로 한다면 그리스 소년은 페르시아의 모자를 썼을 가능성이 있다.

 

 

앉은 자세의 페르시아 남성이 전차를 모는 스키타이 인과 함께 세트였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가 있었던 장소에는 스키타이 인, 페르시아 인, 그리스 인 등이 모두 모였다는 결론이다. 물론 이 결론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이 점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어떤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어떤 문화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 장소에서는 어떤 문화와 어떤문화를 구분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냥 그들은 어떤 시점에  그들이 좋아했던 문화를 공유했다고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평면판 속의 남성들은 모두 무엇가를 들고 봉헌?하는 장면이라면 어떤 사원지에 모여서 제사를 지냈을 수 있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20. 13:0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는 전차모형이 1점 더 발견되었다. 어제 보여드린 전차와 유사한 형태로 뒤가 개방된 형태이다. 보시다시피 말과 바퀴가 보존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깔모자 쓴 라이더는 운전대에 앉아 있으며, 얼굴에는 눈코입이 없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머리가 없는 한명이 더 있는데 오른손은 구부려서 창을 쥐고 있고있다. 이 유물 역시 속이 비어 있다. 마차에는 양쪽에 바퀴달 렸던 흔적이 남아 있어 이륜의 전차였을 것이다.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

 

2인이 타고 있는 전차에서 라이더는 정면을 바라보고 말을 몰고 있지만, 앉아서 전차를 모는 이의 좌석은 전면을 바라보도록 고안된게 아니라 전차의 측면을 보도록 되어 있다. 제이말과 달턴 등 아무다리야 유적의 유물을 연구한 사람들은 앉아서 전차를 모는 사람들이 사람이 더 놓은 계급일 것으로 보았다.

 

초창기 연구에서 2인이 타고 있는 전차와 함께 이 전차는 아케메니드 왕조의 전차라고 생각되었다. 특히 동전 및 여러 기념물에 유사한 전차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Boardman 1970, 제이말 1979). 전차가 앗시리아에서 기원했을 것이라는 것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서 전차의 기원은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인 기원전 2000년 경 안드로노보 문화에서 기원했고, 주변 국가(앗시리아 포함)로 영향을 미쳤다는 쿠즈미나의 연구(1994)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와 관련한 후속연구(데이비드 앤서니 2015, 쿠즈미나 외 2014)가 잇따르고 있다. 시베리아 안드로노보 문화의 전차가 중국동북지방의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에도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최근의 연구(강인욱 2020)도 눈길을 끈다.

 

그렇다면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전차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많다. 필자가 최근에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을 다시 살펴보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을 한 점 발견했는데, 연꽃모양으로 자른 가죽으로 된 조각 이다. 물론 파지리크 유적에서 캐노피 장식으로 연꽃이 표현된 펠트 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 아플리케 장식은 아무다리야 퇴장지 속의 평판속 남성들이 들고 있던 꽃과 매우 유사하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연꽃 모양 가죽 아플리케

파지리크 유적을 발굴한 루덴코도 연꽃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들어온 문양이라고 생각했다. 시베리아와 페르시아가 관련은 파지리크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9세기의 아르잔-1호 속에서 주인공 무덤 속에서 나온 실크 조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주인공 무덤은 통으로 도굴당해서 조각만 남아 있었다.

 

시베리아의 문화는 이웃한 지역으로도 전해졌을 것이고, 페르시아 문화도 시베리아로 전해졌을 것이지만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Кузьмина Е.Е. 1994 : Откуда пришли индоарии? Материальная культура племён андроновской общности и происхождение индоиранцев.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464 с.(쿠즈미나 1994, 인도아리아인은 어디서 왔는가?)

Е. Е. Кузьмина, В. А. Новоженов, А. В. Епимахов,, К. Алтынбеко, А. Р. Хазбулатов, К. М. Линдафф, И. Н. Швец, Э. Р. Усманова , И. В. Чечушков, А. Б. Ипполитова). Таинство этнической истории древнейших номадов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 Алматы: Остров Крым, 2014.  454c.(쿠즈미나 외 2014, 유라시아 초원의 고대 유목민 역사의 비밀)

https://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digital-collection/25.+archaeological+artifacts/3510475

강인욱 2020, 전차의 확산으로 본 청동기시대 고대 북방 유라시아와 동북아시아의 네트워크와 그 영향, 동양학연구원 제50회 국제학술회의, 단국대학교

데이비드 W. 앤서니(저), 2015, 󰡔말, 바퀴, 언어: 유라시아 초원의청동기 기마인은 어떻게 근대 세계를 형성했나󰡕, 에코리브르

 

쿠즈미나에 대한 설명.

ru.wikipedia.org/wiki/%D0%9A%D1%83%D0%B7%D1%8C%D0%BC%D0%B8%D0%BD%D0%B0,_%D0%95%D0%BB%D0%B5%D0%BD%D0%B0_%D0%95%D1%84%D0%B8%D0%BC%D0%BE%D0%B2%D0%BD%D0%B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8. 13:14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유물 속에 인물이 많이 숨어 있다. 평면판 속의 사람들, 입체상으로 만들어진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다. 그런데 여성도 발견되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는 티아라를 쓰고 있는데, 끝이 뾰족하게 처리된 것이다. 양 손에 연꽃(왼손)과 새(오른손)를 들고 있다. 이 여성은 반지에 음각된 유물로, 도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반지

 

원통형 관의 끝이 뾰족하게 처리된 것은 페르시아의 티아라와 유사하다. 입체상 가운데 은제품으로 만들어진 남성상은 머리 모양으로 보아서 페르시아 남성으로 추측한다. 평면판 속의 인물가운데 페르시아 티아라를 쓰고 있는 남성(225)과 발견되었다. 그는 오른손에 막대기를 그리고 들고 있다.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241, 254 남성은 너무 대충만들어져 뚜렷하지는 않지만 한손에만 꽃(연꽃)을 들고 있다. 비록 모자는 다르지만 꽃을 든 남성은 236, 238, 239, 242, 243, 244,246, 247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평면판 1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평면판 2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코로나를 쓴 남성

 

평면판에 표현된 인간형상물이지만 그림 2,3은 평면판에 음각한 것이고, 평면판을 잘라내서 표현한 인물상도 1점 발견되었다(그림4). 그는 역시 반지의 여성과 같은 모자를 쓰고, 왼손에는 꽃을 들고 있다. 발에는 신발을 신고 있는데, 걷고 있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그림 1의 반지속에 인물은 수염이 없고, 복장은 여성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평면판 속의 인물은 수염이 없는데, 수염없는 왕은 종종 다리우스 왕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래서 다리우스 왕 중에 한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석제 원통형 도장(석제도장은 그림 1의 상단 그림 참고)에 새겨진 이미지 가운데 비슷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평면으로 된 말과 함께 짝일 가능성이 있다(제이말 1979).

 

아무다리야 유물 속에 여러 인물들은 불명확한 점이 많은데, 의복은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머리모양이나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들은 표현이 비슷한 것과 다른 것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고대 여러 민족이 모자에 대한 관념이 아닐까?

 

그리고 연꽃 혹은 꽃을 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신에 대한 봉헌물을 바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아무다리야 퇴장지는 원래 어떤 신전 혹은 사원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7. 12:55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현재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의 아무다리야 강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의 유적은 그리스-박트리아 유물, 페르시아 유물, 스키타이 유물이 출토된다(제이말 1979).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8점은 스키타이 금제품을 제작하는 기술로 만들어졌다(Scythians 2017).

 

인간형상물 가운데 평면판 속에 고깔모자를 쓰고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인(그림 1)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평면판속의 인물은 43명으로 모두 무엇가를 들고 있다. 그 중 23명은 막대기를 들고 있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손동작은 아닌데,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람, 막대기를 두 손으로 든 사람, 막대기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받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 가운데 2인은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다. 그 중에 한명은 고깔모자를 쓰고 아키나케스 검을 찬 스키타이 인이다.

그는 왼손에는 막대기, 오른손에는 뚜껑이 있는 잔을 들고 있으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스키타이 남성들이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그림 2). 오른손에만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도 턱을 가리고 있지만 입을 가리지는 않았다(그림1).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그림 2)에는 고깔모자 위에 V자 모양의 매듭이 있고, 마스크는 모자 위로 연결되어 있다. 이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붙은 것이다. 이 남성의 오른쪽 종아리에는 새가 3마리 스타킹(기억하시겠지만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펠트제 스타킹은 남성도 착용했다.)(그림 3-227, 그림 2와 동일) 에 새겨져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1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2

 

그림 1과 그림 2의 두 남성이 스키타이 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깔모자와 아키나케스 검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성과 유사한 모자와 복장을 한 사람은 6~7인(그림 3-217, 218, 221, 223 224?, 그림 4-237, 239)인 정도 더 있다. 평면판 위에 그림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제외했다. 그림 4-236은 턱수염이 아니라 콧수염이어서 스키타이 사람에서 제외했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1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2

 

먼저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지만 이 평면판의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면이 아닌 측면을 표현했고 두 손에 들고 있는 기물등은 동일한 사건? 혹은 동일한 상황을 연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스크를 쓴 남성은 궁금하다. 아마 1년 전만 해도 이 유물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텐데...지금 우리처럼 마스크를 쓴 스키타이 남성은 왜 마스크를 썼을까?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 p.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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