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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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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이다.

그랴즈노프는 이 유물이 말의 가슴을 했던 장식판으로 보았다(그림 1-67).

 그런데 이 유물의 용도를 달리 생각하는 연구(스미로노프 2012)를 찾았다.

 

아르잔-1호 원형맹수장식(그림 2-9)의 뒷면에는 꼭지가 2개 달려 있는데, 구멍의 방향은 위 아래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 1-67)의 말 가슴장식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는 꼭지의 방향이 옆으로 향하게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원형맹수장식의 꼭지대로 끈을 끼우면 그림 1-67처럼 착장할 수 없고, 마구가 완전히 흩틀어지게 된다. 가슴장식일 수 없다.

 

 

 

 

 

 

 

그림1. 아르잔-1호의 출토품(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그래서 스미로노프(2012)는 골제 멍에(그림 2-8)가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을 보고 아르잔-1호의 주인공은 전차를 타고 다닌 것으로 생각했다. 같은 무덤방(2호)에서 출토된 원형 맹수장식도 전차를 끌던 말의 장신구인데, 가슴이 아닌 말의 옆에 달았던 것으로 생각했다. 꼭지의 방향대로 끈을 끼우면 끈의 방향은 위아래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시리아 궁전벽화에서전차를 끄는 말을 장식했던 원형장식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했다.

멍에(그림 2-8)는 말의 어깨에 씌워서 뒤의 운반대를 끌게 하는 부분으로 전차부속품 가운데 바퀴만큼 중요한 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스미로노프는 알타이 유적에는 안장과 안장을 조이는 벨트가 없다는 사실을 밝힌 슐가(2008)의 연구를 참고로 했다. 거의 비슷한 마구세트 구성인 아르잔-1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안장이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림 2. 아르잔-1호의 전차 관련 유물(1~9)과 아시리아의 왕 아슈르나시르팔 II세(10, 10a)의 궁전벽 및 사르곤 II세의 궁전벽(11, 11a) (스미르노프 2012)

 

사실 원형의 맹수장식은 끈을 위아래로 끼우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말의 가슴장식이 아닐 수는 있지만 반드시 앗시리아궁전벽화처럼 사용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멍에는 이 유적의 주인공이 전차를 소유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중에 하나이다.

 

그럼 타가르 문화의 원형의 맹수장식이 모두 전차를 몰던 말을 장식한 것일까?

아니다. 아르잔-1호의 유물은 직경 25cm으로 알려진 고리모양 맹수장식 가운데 가장 크다. 하지만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은 10cm미만이다.

사실 앞에서 타가르 문화의 맹수장식이 맹수로서 불분명하다고 했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매우 작기 때문이다.

또한 어제 몸을 말고 있는 형태 때문에 고양이과 맹수장식이라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동물장식의 주둥이가 너무 길다. 

1점이 아니라 대부분 그런 스타일이어서 디자인의 의도는 주둥이를 길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늑대와 가깝다. 

 

소형 원형의 맹수장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스키타이-사르마트 시대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소비에크 고고학 시리즈 1992)

СМИРНОВ Н. Ю. На чем ездил аржанский «царь»?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Материалы международной научной конференции, посвящённой 110-летию со дня рождения выдающегося российского археолога М. П. Грязнова. – СПб., 2012. – Т. 2. – С. 424-431(스미르노프, 2012, 아르잔의 차르는 무엇을 타고 다녔나?)

ШУЛЬГА П. И. Снаряжение верховой лошади и воинские пояса на Алтае. – Ч I. Раннескифское время. –Барнаул, 2008. – 276 с.(슐가 2008, 알타이의 군사용과 승마용말의 마구연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에서는 타가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번성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적으로 살브이크 쿠르간은 1955년, 1956년 발굴되었는데 이 무덤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1955년과 1956년은 내부 조사작업이었고 1954년에 이미 외부의 덮힌 흙을 덜어내고 호석(울타리)를 찾아서 정리했다(그림3).

 

높이 18m의 대형 쿠르간 안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목조구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설명한 이 무덤의 구조에 대해서 좀 고치고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너무 단편적으로 여기저기에 있던 자료여서 정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마르살돌로프의 저서에서 무덤구조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은 동쪽에 입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덤의 입구는 서쪽에 지하로 나 만들어져 있었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호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구조물이 설치된 무덤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미로와 같이 연결된 길인데, 통나무로 연결해서 만들었다.

 

 

 

 

그림 1.  마르살돌로프(2010)가 보완한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구조, 1-돌, 2-나무, 3-자작나무껍질(발굴야장과 설명으로 복원함),4-그루터기, 5-화덕자리 흔적, 6-납작한 판돌, 생토층을 20cm로 덮음, 7-지하도로에 남겨진 사람들, 8-석판에 그려진 암각화,9-숫돌, 10-나무망치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 그림 2의 평면도(6)에서 입구를 동쪽이라고 했는데 서쪽이다.

 

그림 2.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외형(1,2) 내부 평면도(6)와 단면도(3,4,5, 7). 3,4,5는 남북방향의 단면도, 7은 동서방향의 단면도, 평면도(6)에서 왼쪽이 서쪽입구이다.

 

이 유적은 이미 18세기때 도굴당했다. 봉분의 서쪽에 도굴을 위한 입구(직경 19m, 깊이 5m)인 구덩이가 있었다. 이 유적을 처음 발굴한 키셀레프와 연구자들은 이곳을 먼저 조사했는데, 매우 큰 청동솥과 소형의 청동칼만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도 스키타이 피장자 중에 한 명이 발견되었는데 주인공의 하인?정도로 생각된다. 벨트에 청동칼과 원추형 장식판이 달려 있었다.

무덤내부에는 인골 외에는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앙 매장주체부에는 7개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70세 1인과 35~40세 가량의 6인이었다. 세 명의 인골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는데, 게라시모프는 2인이 형제자매라고 추정했다. 이 무덤은 부족장 혹은 부족 연합 수장의 가족 무덤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봉분 안에는 메인 매장지를 제외하고 2개의 매장지가 남쪽 지하실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남성이 발견되었다. 하인 혹은 무덤을 지키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호석(울타리) 아래에 북동부와 남서부모서리 아래에서는 4명의 사람인골이 발견되었다. 남서쪽에는 성인, 북동부에는 어린아이였다. 이들은 아마도 무덤을 건조하면서 생긴 피해자 혹은 봉양자?희생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1955년과 1956년에 발굴된 살브이크 쿠르간은 확인된 유물은 거의 없지만 무덤을 건조하는데 사용된 기술을 알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비슷한 무덤 구조가 나중에 발굴된 카자스흐탄 동부의 세미레치예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사실 무덤의 호석 아래에 사람을 묻는 행위는 투바 아르잔-2호에서도 22호묘와 24호묘에서 확인되었다... 

 

 

그림 3.  1954년 봉분 열기 전에 사전작업

 

 

참고문헌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논문집)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Киселёв С. В. Исследование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в 1954 и 1955 гг. //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на сессии Отд.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и Пленуме ИИМК, посвященных итога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1955 г.». M.-Л., 1956.(키셀레프 1956, 1954년과 1955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연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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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르 문화의 마구

 

타가르 문화에는 유라시아 초기 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의 여타 지역과 같이 수 많은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장식품)가 출토된다. 재갈멈치(그림 1-9~12)는 구멍이 3개 있는 뿔로 만든 제품이 기원전 7세기경에 청동제품(그림 1-11)으로 바뀐다. 그 후에 구멍의 수도 2개로 줄어들게 된다. 2공 재갈멈치 가운데 U자형(그림 1-10)은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 뿐만 아니라 흑해에서도 출토되는 유물이다.

 

재갈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보통 양 끝에 고리가 한 개씩 있지만 타가르 문화에서는 기원전 7세기경 재갈 멈치의 끝에는 구멍이 2개 만들어져 있다. 고리의 모양이 사다리꼴에 가까운(그림 1-1~4)가 기원전 7세기경의 것이다. 재갈멈치 고리의 모양이 삼각형(그림 1-6,7), 원형(그림 1-8)으로 변화하게 된다. 원형고리의 재갈멈치는 기원전 6~5세기 경이다.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3 유적과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 출토된 재갈도 둥근고리가 달린 것이었다.

 

그 외에도 굴레를 연결하는 이음 장식(절약)들이 출토된다. 원뿔모양의 이음장식(그림 1-29,30)은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 퇴장지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모습이다. 굴레를 장식했던 새머리 장식(그림 2-14, 15)도 있다. 멧돼지 송곳니 모양의 장식(그림 1-13, 18)은 알타이에서는 목제로 제작되었으나 미누신스크 분지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말을 장식하는 도구 가운데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유물도 있는데 말의 뺨을 장식하는 도구(그림 1-16, 17)이다. 그런데 말의 뺨을 장식한다기 보다는 괴롭히는 도구처럼 보인다. 장식판 반대편에 끝이 뾰족한 침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타가르 문화의 마구, 재갈(1~8)과 재갈멈치(9~12), 장식(13~30), 1~30 청동, (츨레노바 1992)

 

타가르 문화의 재갈과 재갈멈치, 굴레장식 뿐만 아니라 말을 꾸미는 유물은 모두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알타이에서는 청동, 철제, 목제, 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나 미누신스키 분지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이 지역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소재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타가르 문화의 청동제품은 특히 잘 만들어졌는데, 주조업이 매우 발달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조하여 만든 도구들은 석제, 토제, 청동제 거푸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그리신, 티호노프 1960)

크라스노야르 주의 남부지역에서는 구리, 주석, 금 등을 지표에서 채집할 수 있는 수많은 광산 유적들이 발견되었다(순추가세프 1975). 처음에는 비소가 섞인 청동으로 제품을 만들다고 기원전 7세기경에 주석 청동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주석의 시대라고 하는 기사를 여러 건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주석이 각광받는 시대가 온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참고문헌

 

Членова Н.Л. 1992 : Тагарская культура. //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М.: 1992. С. 206-224.(츨레노보 1992, 타가르 문화, 스키타이-사르마토프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내의 아시아 추원지역/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Сунчугашев Я.И. 1975 : Древнейшие рудники и памятники ранней металлургии в Хакасско-Минусинской котловине. М.: 1975. 176 с.(순추가세프 1975, 하카시아-미누신스크 분지의 고대 광산과 야금술 유적)

Гришин Ю.С., Тихонов Б.Г. Очерки по истории производства в Приуралье и Южной Сибири в эпоху бронзы и раннего железа. МИА №90(그리신, 티호노프, 1960,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우랄과 시베리아 남부 지역 제작기술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문화인 타가르 문화에서 상징적인 유적인 살브이크는 1954년과 1955년에 발굴되었고,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아시다시피 큰(大) 살브이크 쿠르간(봉분무덤)이라는 뜻이다.

높이 18m의 무덤은 최상부가 편평한 형태이다. 앞서 보여드린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크다.

 

무덤의 입구는 동쪽에 위치하는데 울타리의 석판에서 시작해서 14m의 복도처럼 긴처럼 생긴 것으로 이곳의 벽은 석판으로 만들어졌고 두 개의 큰 돌기둥이 세워졌었다(그림1). 무덤의 입구 바닥은 돌로 깔려 있었다. 큰 돌기둥에 기대어 낙엽송 5개가 나란히 눕혀서 층층히 쌓여 있었다. 무덤 내부의 목조 구조물에서 2~3m 되는 지점부터 통나무를 나란히 세웠다(그림 2-3,4).

무덤 구덩이는 봉분의 가장 높은 부분 아래에 있었고, 목조 구조물이 만들어졌다(그림 2-6).

 

그림 1. 1956년 7월 18일 체레호바가 무덤 내부에서 찾은 돌 기둥을 보여 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여성들이 치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림 2. 1955(?)년 예프투호바가 일하는 모습, 무덤의 외관을 쌓은 납작한 돌을 실측하는 중이다. 뒤에 있는 돌 기둥은 현재도 남아 있다. 구글에서 볼 수 있음.

 

그림 3.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내부 평면도(6)와 단면도(3,4,5, 7). 3,4,5는 남북방향의 단면도, 7은 동서방향의 단면도 , 평면도(6)에서 왼쪽이 동쪽입구이다.

 

평면이 정사각형이고, 그 크기는 5×5×1.8m이다. 벽은 수직으로 기둥을 세웠고 바닥에는 가장 두꺼운 통나무를 깔았다. 구덩이의 바닥과 무덤벽과 통나무 사이의 빈 공간은 붉은 점토로 채웠다. 점토 바닥에는 판자 바닥에 자작나무 껍질로 덮은 것이다.

무덤의 상부는 외부에 경사가 생기도록 통나무 15개 층으로 교차해서 덮어서 만들었다. 그 중에 가장 높은 층 6개는 자작나무 껍질로 싼 것이다. 봉분의 바깥쪽에는 높이 0.7m의 호석을 두르고 납작한 사암이 섞인 흙을 쌓아서 상부의 통나무 구조물을 덮었다(그림 4-B).

 

무덤의 주변을 조사한 결과 일시적으로 나무 울타리를 세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림 4-A).

 

그림 4. 마르사돌로프가 복원한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A-일시적으로 세운 나무 울타리가 있을 때의 무덤 전경, B-무덤구조 복원)

 

봉분을 덮은 목재 층의 상부가 편평해서 무덤의 외관도 편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봉분 위에 말을 타고 올라간 모습에는 약간 불룩해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서 쌓인 흙 때문이고 원래 꼭대기는 편평하게 만들어 진 것이었다.

 

 

참고문헌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집)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스키타이-사르마트 시대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소비에크 고고학 시리즈 1992)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미누신스크 분지 지역문화인 타가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주로 무기(검과 칼, 투부)와 마구 등에 함께 묘사되어 나타난다. 물론 원형장식, 버클에서도 관찰된다.

산염소(горный козел, Capra), 산양(горный баран, Ovis ammon), 사이가(Сайга, Saiga tatarica), 멧돼지, 사슴(олень, deer), 엘크(Лось, Elk), 말, 반당나귀(Кулан, Equus hemionus), 대형 우제류, 고양이과 맹수, 늑대, 그리핀머리, 새, 물고기 등이 타가르 문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알려졌다. 산염소, 산양, 사이가, 사슴, 엘크 등은 뿔이 있는 동물로 뿔 형태로 동물을 구분한다.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은 이 지역의 청동기문화였던 카라숙문화의 전통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츨레노바 1967). 청동검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그리핀이 서로 머리를 맛대고 있고 검코에는 늑대가 서로 이마를 맛대고 있는 것이다(그림 1).

 

그림 1.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 길이 19.4cm

 

그런데 특히 청동검이나 칼 손잡이 끝에 장식된 동물문양가운데 멧돼지로 분류된 유물이 많다. 하지만 멧돼지로 분류된 것 중에는 꼬리가 매우 짧은 동물은 멧돼지로 보기에는 좀 애매한 동물이라고 생각된다. 멧돼지는 꼬리가 퇴화된 것처럼 짧지 않다.

 

 

그림 2.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 멧돼지형상의 손잡이 끝장식

 

그림 3.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동물형상 손잡이 끝장식

 

그림 4. 타가르 문화의 청동칼

 

멧돼지로 보이는 형상이 청동검의 끝에 날린 것(그림2)은 청동칼에 달린 동물형상(그림3)과는 다르다. 그림 2의 멧돼지는 굽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꼬리가 등으로 올라갔지만 퇴화된 모습은 아니다. 그림 2의 동물은 꼬리가 짧고 굽표현이 없다. 청동칼(그림 3-두번째, 세번째, 그림 4)에 달린 동물형상은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 구분하기 힘들지만, 고양이과의 맹수(호랑이), 늑대, 멧돼지와는 다르다.

어떤 동물이라고 해야할까?

 

참고문헌

Завитухина М.П. 1983 :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на Енисее. Скифское время. / Публикация одной коллекции. Л.: Искусство, Лен. отд., 1983. 192 с.(자비투히나 1983, 예니세이강의 고대 예술)

Членова Н.Л. 1967, Происхождение и ранняя история племён тагарской культуры. М.;Л., 1967.(츨레노바 1967, 타가르 문화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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