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022. 7. 16.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외부지역에서 온 유물이 출토된다. 로마(다차 유적, 노보-알렉산드로프카 I유적) 에서 은제 그릇들도 있지만 파르티아에서 제작된 유물도 발견되었다.

비소치노 유적은 수십개의 쿠르간이 열을 지어서 발견된 유적이다. 그곳에서 비소치노 VII유적에서는 파르티아에서 제작된 주전자가 발견되었다. 은으로 제작된 후 문양에 금박으로 입힌 것인데, 매우 눈길을 끄는 유물이다.

 

쿱신(액체를 담는 용기)는 의례용이라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지만, 그 문양이 더 의미심장하다. 쿱신의 동체부는 상단과 하단이 나눠져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새와 맹수가 하단에는 물고기와 인간이 표현되어 있다. 특히 하단에는 사람이 물고기를 잡는 장면과 물고기를 타고 돌아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유적을 발굴한 루카센코는 이 유물이 의미하는 바를 아베스타에서 말하는 우주관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낚시하는 장면을 재생, 부활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 이란의 의례행위 가운데 가장 성스러운 행위가 목욕인데, 재생을 의미한다. 물고기를 타고 오는 장면 자체가 물 속에 있는 장면을 의미하며, 재생을 비유한 장면이고, 낚시는 재생을 위한 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림 1. 비소치노 II유적의 은제 쿱신

 

 

그림2. 그림 1의 상세

 

루카센코가 이 문양을 해석하려고 한 이유는 쿱신의 용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무덤속의 액체음료를 담아 두는 행위는 사카 문화 뿐만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사르마트 문화나 스키타이 문화에서 그릇에 동물을 장식하는 것은 주로 손잡이에만 장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용기의 몸통에 동물문양을 장식하는 것은 사르마트 문화 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방법이다.

 

기원후 1세기의 유라시아 동쪽에는 사르마트 문화 이남에는 로마제국과 파르티아 제국이 강성했을 때이다(그림 3, 클레인). 그래서 사르마트 문화 후기에는 아조프해연안에서 로마제국의 유물이 많다(클레인).

 

그림 3. 기원후 1세기 사르마트 문화와 그 외부 지역 (클레인 2016)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Е. И., Головкова H. H., Ларенок П. А. Поминальные памятники IV в. до н. э. — III в. н. э. Доно-Каргальницкого водораздела//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1989 №03(베스팔르이 1993, 기원전 4~기원후3세기 돈강 유역의 유적)

Клейн Л.С. Первый век.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ских курганов, СПб.: Евразия, 2016. (클레인, 2016, 1세기, 사르마트 문화 쿠르간의 보물)

С.И. Лукьяшко. Древнеиранский космологический сюжет на серебряном кувшине из сарматского погребения у г. Азова.//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루카센코, 2008, 아조프 해연안의 사르마트 문화 무덤에서 발견된 은제 쿱신에 새겨진 고대 이란의 우주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4.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과 함께 화려한 황금유물로 유명한 호흘라치 유적은 노보체르카스크 시에 위치한다. 이곳은 돈강 유역의 하류에 위치한 도시로 사르마트 문화의 또 하나 쿠르간이 잘 알려져 있다. 사도브이 유적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고분의 높이는 2.2m, 직경은 44~48m가량이다. 중앙에 무덤방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이미 도굴된 상태였다. 하지만 은제 쟁반과 청동제 솥과 금을 도금한 청동제 쟁반, 펠레라, 토기, 철제투구 등은 무덤의 경계 안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다차 유적처럼 유물을 숨겨두는 별도의 공간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봉분의 경계 안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1. 사도브이 유적의 평면도, 기원후 1세기

 

유물 중에 일부는 의례행위때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유물을 한 곳에 모아두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해서 이곳저곳 매장하는 방법도 일종의 도굴방지에 대한 대책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아니면 매장된 주인공의 성격이 사르마트 문화 보다는 다른 문화에 더 가깝다는 추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제 쟁반은 모두 8점(그림2)으로 바닥 중앙에는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그림 3)와 관련된 형상이 주조된 것이었다. 신화와 관련된 유물 가운데는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장면도 남아 있다(그림 4). 그런데 이 유적의 이름은 ‘사드브이(정원 주로 과수가 있는 정원을 의미)’이고, 유적이 발견될 당시에 포도재배연구소의 연구부지 내에서 발견되어서 상당히 상징적이다. 금도금한 청동쟁반(그림 2)은 뒤집어졌고 그 아래에서 은제 쟁반 8점이 발견되었다.

 

은제 쟁반 외에도 그리스의 특징적인 암포라(그림 5)도 출토되었다.

 

그림 2. 사도브이 유적의 금도금 청동쟁반(가장 큰 것)과 은제 쟁반

 

그림 3. 사도브이 유적의 은제 쟁반 세부

 

그림 4. 사도브이 유적의 은제 쟁반 세부

 

그림 5. 사도브이 유적 그리스 토기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솥과 동물문양으로 장식된 팔레라도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6. 사도브이 유적의 팔레라

 

그림 7. 사도브이 유적의 청동솥

 

무덤방은 텅비어 있었기 때문에 피장자(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출토된유물이나 부장방법은 사르마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의 그 어느 중간 쯤에 있는 무덤이다.

 

참고문헌

Клейн Л.С. Первый век.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ских курганов, СПб.: Евразия, 2016. (클레인, 2016, 1세기, 사르마트 문화 쿠르간의 보물)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3. 09:22 사르마트 문화

 

돈 강 유역에 위치한 다차 유적은 매우 화려한 사르마트 문화의 유물이 출토되어서 주목받았다. 화려한 유물은 주로 마구와 말을 장식하던 도구와 피장자의 검과 팔찌였다.

말을 치장하는 도구는 재갈멈치나 덮개 외에도 둥근 원판형으로 팔레라(Phalera) 라고 불리는 유물이 있다.

 

사실 팔레라는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늦은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도 나오는데, 사르마트 문화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금속제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인물들이 표현되었다. 하지만 사르마트 문화의 팔레라는 황금과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다차 유적의 팔레라는 여러 유색 돌을 감입해서 만들었다. 팔레라는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여러 점이 부장되었는데 그 중에는 쌍으로 발견된 것이 있다. 중앙에는 마노가 박혀 있고 그 가장자리는 황금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상단을 여러 유색보석으로 감입한 것이다.

마노를 둘러싼 부분에는 사자 3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사자 3마리의 사이에는 4개의 붉은색 타원형 석류석에는 여성을 새겨 넣었다.

 

 

그림 1. 다차 유적에서 출토된 팔레라, 직경 13.5cm, 마노의 직경 8cm

 

그림2. 그림 1과 동일 유물

 

그림 3. 그림 1의 세부

 

그림 4. 팔레라의 사용 예(클레인 2016)

 

팔레라 라고 불리는 유물은 흑해 주변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늦은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재질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이미 기원전 5세기경 유적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는 굴레에 나무로 된 여러 장식들을 달았다. 사람얼굴, 동물장식, 원판형 장식 등이 있었다.

 

 

그림 5.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마구세트

 

다차 유적은 1세기로 알타이의 유적과 비교하면 500년 이상 후의 유물이기 때문에 재질과 만드는 방법과 형태 등은 변화가 심하다. 하지만 말에게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서 치장시키는 그 행위는 오랫동안 남아 있다. 어쩌면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참고문헌

Клейн Л.С. Первый век.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ских курганов, СПб.: Евразия, 2016. (클레인, 2016, 1세기, 사르마트 문화 쿠르간의 보물)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2. 09:22 사르마트 문화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은 호흘라치 유적과 함께 화려한 유물로 인해서 유명하다. 기원후 1세기경 유적으로 사르마트 문화의 후기에 해당된다. 사실 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발견당시에 이미 도굴당해서 그곳에서는 많은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따로 마련된 감실에서 화려한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주로 마구와 말 장식과 관련된 유물들이었다.

 

특히 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적인 기법인 유색돌을 황금으로 된 장식판에 감입해서 만든 것으로 말의 재갈과 팔레라(Phalera)라고 하는 원판형 장식품(그림 1-4, 5, 6)도 여러점 출토되었다. 팔레라는 대부분 말을 장식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림 1. 다차 유적 1호분의 감실 유물 출토

 

팔레라는 사실 스키타이 문화에서부터 출토된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없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의 유적에서는 간간히 보인다. 대부분 금속제로 만들어지다가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다차 유적과 같이 매우 화려하게 변화된다. 다음에 소개할지도 모르겠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팔레라 중에 아주 중요한 점을 내포하고 있는 유물도 있다.

 

암튼 팔레라도 다차 유적에서는 팔레라도 여러 점 나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팔찌(그림 1-7)이다. 팔찌는 사슴 4마리로 구성된 것인데, 3부분으로 나누어져서 걸쇠로 연결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완전한 형태의 2마리는 마주보고 있도록 만들어졌고, 각각 별도로 만들어졌다. 나머지 한 부분에는 사슴의 머리가 있는 전반부를(몸통의 반통) 반대방향으로 붙여서 만든 것으로 전신으로 만들어진 부분과 걸쇠로 연결되어 있다. 황금으로 제작되었고 터키석과 홍옥수석도 감입되었다.

 

이 팔찌는 그냥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사르마트 문화의 팔찌이지만 도굴된 무덤에 대한 여러 단서를 제공한다. 우선 무덤의 주인공은 최소 여성일 수 있다. 그리고 기존에 알려진 스키타이문화 및 사르마트 문화의 팔찌는 대부분 환상의 동물(그리핀)이 대부분이었으나 사슴을 주요한 주제로 했다는 점은 큰 차이가 있다. 페르시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품(포스팅 참고)을 비교해 볼 수 있다.

 

2020.12.07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으로 알려진 유물의 대부분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인간형상물(입체), 팔찌와 목걸이, 반지, 원판형 장식판, 평면금판(인간형상). 토기, 동전 등 1300여점이 알려졌다. 주

eastsearoad.tistory.com

 

2020.12.09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동물장식 팔찌

 

스키타이 동물장식 팔찌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은 현재로는 타지기스탄과 아파카니스탄의 국경에 위치한 곳으로 이 강의 우안에 위치해서 타지기스탄 국경 내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는 발견된 황금유물은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2. 다차 유적 1호분의 팔찌

 

 

그림 3. 다차 유적 1호분의 팔찌

 

또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왜 감실에서 팔찌가 출토되었을까? 피장자가 착용한 유물은 피장자와 함께 들어가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팔찌와 황금검은 피장자와 떨어진 곳에서 출토되었다. 어쩌면 감실을 만든 이유와도 상통할지 모르겠다.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들이 대거 도굴당하는 것을 사르마트 문화의 시기(기원전 4~기원후1세기)에도 알았다면 전통에 따라서 봉분이 있는 무덤은 만들었지만 뭔가 대책을 세웠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무덤에 감실을 만드는 행위가 기원전후에 많이 성행했다. 뭔가 주인공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유물은 별도의 공간에 따로 두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미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문화 마지막시기에 나타나고 있었다.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유난히 복잡한 구조로 무덤을 만든 것이 발견되었다(포스팅 참고).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9.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지역 가운데 돈강 유역부터 서쪽은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사르마트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역사에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내고 사르마트 문화가 점령한 것 처럼 표현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연결되는 특징들이 많다.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생기니 기원전 4세기 정도 되면 300년 동안 문화의 특징들이 그대로 있었을 리가 없다. 조금씩 변화되기도 하고, 유목민의 특징적인 문화 대신에 주변의 여건들이 바뀌면서 초원 지역의 문화들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냈다는 표현은 좀 맘에 들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스키타이 문화를 이어 받은 것은 사르마트 문화이고 이들 역시 동물문양장식을 사용했다. 물론 도상학적인 변화는 있다. 예를 들면 사실적이면서 부분적으로 강조된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 대신에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알 수 없는 동물들이 많아진다.(괴기스럽게 변했다.) 몸통이 길어진 말은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자들은 스키타이 유물과 사르마트 유물을 구분할 때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가 상감기법을 꼽는다. 특히 금으로 제작된 유물에는 유색의 돌을 잘라서 감입하는데 이러한 유물들을 모두 기원전 4세기 이후, 사르마트 문화의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사르마트 문화의 늦은 시기인 기원후 1세기 유적인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관(crown)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이른시기에는 터키석 등 푸른색 계열의 돌을 많이 썼지만 후기로 갈수록 홍옥수를 특히 많이 사용했다.

 

아조프해와 연접한 다차 유적은 기원후 1세기 유적으로 이곳에서는 아주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유물 중에 한 점은 검인데, 손잡이와 검집은 황금과 유색돌로 치장되어 있고 검날은 철제이다. 전체 길이는 40cm가량이고 검날 부분만 25cm가량의 단검이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 기원후 1세기

 

이 검을 보면 생각나는 유물이 있다. 나만 특별하게 그런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들을 떠올린다. 아프카니스탄 틸랴테페 유적에서 발견된 북방초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철제 단검으로 역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검집의 형식이나, 검의 모습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황금관, 다차 유적의 철제 단검은 틸랴 테페 유적과 관련성이 큰 것으로 연구되었다.

 

2022.01.08 - [이름없는 왕의 무덤:틸랴-테페유적] -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에 남아 있는 틸랴-테페 유적은 북방 유목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방유목문화는 기원전 5세기경의 스키타이 문화와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가 모두 남아 있다. 특히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И.П. Засецкая, Р.С. Минасян. Золотые ножны кинжала из кургана Дачи — уникальное произведение древнего ювелир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 (자세츠카야, 미냐샨, 2008, 다차 쿠르간의 황금단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