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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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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덤의 가짓수

 

환단고기 역주본에서는 ‘사구통형기’라 불리는 옥기를 신과 소통을 위한 도구로 설명된다고 앞서서 포스팅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은 곽대순이라는 중국학자가 먼저 이야기했다.

먼저 포스팅에서는 유적에서 18개나 출토되는데, 신과 소통을 위한 도구가 그렇게 많은지 의심한 내용이다.

 

2018/02/04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요서지역 흥륭와 문화의 옥기 및 토기와 한반도비교] - 환단고기비판: 관(crown)인가?

 

환단고기비판: 관(crown)인가?

그림 1. 홍산문화의 사구통형(斜口筒形)옥기: 입구가 비스듬한 옥기 2012년 환단고기에서는 홍산문화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옥기에 주목하고 있다. 옥기에 관한 해석은 중국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시각에 의해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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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순은 사구통형기 혹은 고(箍)라고 불리는 옥기는 구운형옥패, 동물형옥기와 함께 홍산문화를 대표하는 옥기라고 주장한 바 있다. 모두 중심대묘(곽대순의 주장에서 가장 급이 높은 무덤)에서 출토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를 살피기 위해서 우하량유적의 옥기를 각 무덤 별로 조사했다.

가령 1호라는 무덤이 있으면, 무덤의 생긴형태+옥기의 종류+양을 살피는 것이다.

즉 A라고 생긴 무덤의 기준을 정하고, 이렇게 생긴 무덤에서 출토되는 옥기가 어떤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래의 표1이다.

이 표를 바탕으로 필자가 파악한 우하량유적의 무덤을 설명할 예정이다.

 

표1. 우하량 유적의 무덤형식과 옥기의 상관관계(김재윤 2019)

사실 이 작업은 우하량유적을 해석할 때 최초로 했어야 할 작업이다. 곽대순은 우하량유적의 ‘계급’을 이야기 했기 때문이다. ‘우하량유적은 홍산문화 제사장의 무덤이며, 4등급으로 나누어진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앞선 포스팅 참고

2019/03/06 - [환단고기비판: 환단고기와 고고학/환단고기와 고고학] - 우하량 유적의 1지점을 왜 여신묘라고 주장했을까?

 

물론 곽대순은 우하량 유적의 유물을 4등급으로 나누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포스팅을 할 예정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덤 그림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석관의 제작방법에 따라서 6가지 형식으로 구분했고, 표의 가장 마지막 칸을 설명할 수 있다. 석관을 파기 위한 토광의 단수, 석재의 가로쌓기와 세로쌓기, 묘역, 일차장과 이차장 여부 등이 그 기준이 된다.

먼저, 6개의 형식은 곽대순이 의미한 등급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 짓는데 품이 많이 들게 생긴 무덤 안에는 옥기가 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아이러니 같은 무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형식’은 설명을 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표2이다.

표1을 만들기 전에 표 2부터 했고, 표2를 바탕으로 표1을 만들었다.

 

 

표2. 우하량유적의 무덤형식(가짓수)(김재윤 2019)

 

재미는 없으시겠지만,, 필자가 가장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표만들기이다. 유적별로 표만들고, 그런 표를 집합해서 필자는 지도를 위에 점을 그리고, 그걸 시대별로 정리해서...결국 또 표를 만든다. 오늘 포스팅은 그림없이, 표만 넣었는데, 쓰고 보니 역시 재미가 없다. 표는 그림과 세트가 되어야 하나보다.

그러나 오늘은 문장 한 구절을 쓰기 위해서 내가 하는 세밀한 작업을 보여드리고 싶은 날이었나 보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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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앞서 살핀 지역에서 신석기시대의 시작연대는 각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표1). 그런데 중국 신강성과 인접한 지역에서 공통적인 문화양상을 보이는 시점은 4500년 전부터이다(그림12).

 

표1. 각 지역의 신석기문화(현재까지 알려진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

중국 신강 3유형과 몽골 1단계는 5500년 전 께 해당되는데, 원통형 및 원추형 석인석핵이 출토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내용이 빈약하며, 각 지역에서 뒤를 잇고 있는 신강 4유형, 몽골 2단계의 유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5500년 전께는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강 4유형이 되면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스티-나림 문화와 몽골의 신석기시대 2단계는 아주 유사한 유물조합을 보인다(그림12). 원통형(그림12-2,5)과 원뿔형 석인석핵(그림11-1,4), 석핵형 긁개(그림12-3,13)는 이들 지역에서 모두 확인된다.

시묘노프는 원통형과 원뿔형 석인석핵은 규조암을 눌러떼기 방법으로 석인을 잘라내는 가운데 생기는 것으로 구석기시대에는 부정형이다가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고착되는 것으로 보았다Семенов С.А. 1968). 끝이 둥글게 처리된 긁개는 석인기법을 이용한 석기로서 신강의 4유형(그림12-11,12)과 우스티-나림(그림12-10) 문화, 몽골 2단계(그림12-13), 3단계에서 동일하게 확인된다. 그 외에 석도는 세 지역에서 확인되는데, 인부가 직인으로 ‘ㄱ자 형 석도(그림12-16,18,22) 및 반타원형에 가까운 석도(그림12-15,19)가 우스티-나림과 신강 4유형, 몽골 3단계에서 확인된다. 마연된 어망추(그림 11-23,24)와 장타원형의 석인 제작도구(그림12-25,28)는 우스티-나림문화과 신강 4유형에서 같은 형태의 것이 각 지역에 출토되었다. 우스티-나림문화와 몽골에서는 유사한 타제 석부(그림12-29,30)가 확인되며, 몽골과 신강에서는 마제 공이(그림12-40,42)도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는 모두 켈테미나르문화의 흔적이 확인된다. 석인 가운데 한쪽변만 잔손질해서 다른 쪽 보다 길게 처리한 뚜르개(그림12-33)는 우스티-나림문화(그림12-36), 신강, 몽골(그림12-41) 모두에서 확인된다. 또한 켈테미나르문화의 석촉(그림12-33)도 신강 4유형(그림12-36)에서 보인다. 평면형태 사다리꼴인 켈테미나르문화와 유사한 형식의 마제석부가 신강(그림12-40), 몽골(그림12-42)에서 출토되었다.

한편 바이칼 유역의 석기는 타제석창(그림12-45)과 유경식 석촉(그림12-46,47)이 신강 유역(그림12-43,44)에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우스티-나림문화에서는 시베리아에서 가져온 석재로 제작된 석인석핵 및 골각기 가운데 낚시바늘, 납작한 석기, 조합식검이 시베리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또한 몽골에서는 바이칼 유역의 토기 및 조합식검이 바로 북쪽에 위치한 바이칼 지역에서 영향을 받았다(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따라서 카자흐스탄 동부~신강~몽골은 석기양상으로 보아서 한 문화권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시점은 4500년 전 부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몽골, 카자흐스탄 동부, 신강 지역에서 좀 더 이른 시기의 유적이 확인된다면 그 시기는 더 빠를 수도 있다. 또한 이 지역은 바이칼 유역 및 카자흐스탄 동부보다 서쪽인 켈테미나르문화와의 관련성도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12).

그림12. 4500년 전 카자흐스탄 동부~신강~몽골 및 관련된 지역의 석기양상

필자가 이 지역을 고고문화보다 좀 더 큰 의미인 문화권으로 설정한 것은 주거양상 및 토기 때문이다. 토기가 많지는 않지만, 지역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스티-나림문화에서는 시베리아 신석기토기와 인접한 켈테미나르문화의 토기가 확인된다(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신강 지역은 시베리아 토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채색토기가 출토되며(伊第利斯·阿不都热苏勒,1993), 몽골 3단계에도 채색토기(그림7-54~58), 시베리아 토기(그림7-59~65)가 있다. 만약 신강 4유형에 망상문 토기, 첨저토기 등 시베리아토기가 확인되었다면 몽골 3단계와 이 지역이 켈테미나르문화의 영향을 받은 카자흐스탄 동부에 비해서는 더 유사한 지역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주거양상은 카자흐스탄의 켈테미나르문화(그림4) 및 우스티-나림문화가 텐트형주거식(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인 것에 비해서 주거지가 확인된 몽골은 수혈식(그림7-5)이다. 즉 석기양상은 같은 문화권으로 보이지만, 주거양상이나 토기양상에서는 신강지역과 몽골이 더 관련성이 깊다.

 

참고문헌

Семенов С.А. 1968, Развитие техники в каменном веке.(Ленинград:НАУКА, 1968). pp. 46~51.

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Неолит Северной Евразии, Москва, НАУКАIbid. pp.130.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 70~73.

Ошибкина С.В.(ред)., 1996, Неолит Северной Евразии, Москва, НАУКА Ibid. pp.130.

伊第利斯·阿不都热苏勒,1993, 「新疆地区细石器遗存」.『新疆文物』, 4期, pp.15~59.,宋亦箫, 2010, 「新疆石器时代考古文化探論」, 『西部考古』, 第4輯,pp.4~9.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바이칼 유역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7000 년 전~6000년 전(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의 키토이 문화부터, 5200~4700년 전(Горюнова О.И., 2002) 이사코보 문화, 5000~4500년 전(김재윤, 2018a) 세로보 문화로 변화된다. 각각 문화의 토기와 석기양상(그림 9)에 차이가 있지만, 연속적으로 확인되는 유물은 골제와 석제를 결합해서 제작한 조합식검(그림 10,11)이다.

 

그림9 . 바이칼유역의 신석기문화 유물(김재윤 2018b 재편집)(키토이문화의 유물(1:키토이 무덤 비트코프스키 1호, 2~7,14:키토이 무덤 비트코브스키 발굴 6호, 15, 22: 치클로드롬 1950년 10호;                                                                                                                                 이사코보문화의 유물(16: 포노모레보 11호, 17·18: 포노마레보 10호, 19: 포노마레보 12호, 29: 포노마레보 8호);                                                세로보문화의 유물(24~27: 포노마레보 7호, 28: 세레드키노 1호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중국 신강성에서 확인되는 석촉과 석창 가운데 세로보 문화와 관련성이 있는 유물도 보인다(그림12). 또한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에서 확인되는 시베리아의 망상문 혹은 격자문이 남아 있는 토기는 키토이문화, 이사코보문화, 세로보 문화에서 모두 확인된다(김재윤, 2018b).

세로보 문화는 앞선 문화에 비해선 토기가 좀 더 많이 확인된다. 동체부가 둥글고, 구연부로 올라갈수록 축약되었다가 다시 외반되며, 저부는 원저이다. 파수가 수직으로 구연부와 저부 부근에 달리는 것도 있다. 토기 기면에는 타날문 혹은 그물흔적을 지우고 정면을 해서 매끈하게 처리하였다. 문양에도 다치구를 이용해서 눌러서 시문한 것(그림9-22), 침선문(그림9-21), 구순각목문(그림9-20) 등이 있다. 그 중 침선문 토기는 구연부가 외반하면서 횡주어골문이 시문되었다.

석창은 전면이 타제로 제작된 것이다. 좌우 대칭이며, 세장한 능형이나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횡단면은 대체로 렌즈 모양이다(그림9-28). 인부는 가장자리에 형성되었는데, 잔손질되었다. 창의 용도 뿐만 아니라 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촉은 경부의 모양에 따라서 오목하게 들어가 홈을 이루거나, 다른 하나는 일단경식(그림9-24,25)으로 구분된다. 이사코보 문화에 비해서 슴베가 있는 것이 양이 좀 더 많으며, 석촉의 무게가 크고 무겁다.

세로보문화는 시묘노보, 세로보 유적에서 연대측정 되었는데 대략 5000~4700 년 전에 존재했다(김재윤, 2018a).

조합식 검은 키토이문화(그림 10-1~8), 이사코보문화(그림10-9~16), 세로보문화(그림11)에서 모두 확인된다. 키토이문화의 조합식검은 양면을 떼어낸 석기를 골제와 조합된 조합식검(그림10-1~8)도 출토된다. 이사코보문화에서는 조합식검(그림10-9~12,16)뿐만 아니라 구부러진 뼈를 이용한 조합식도(그림10-13~15)도 확인되되는데, 앞선 키토이문화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림 10. 키토이문화와 이사코보문화의 조합식검(키토이문화(1~4: 라스푸티노 5,6: 우스티-벨라야 69-4호, 7·8: 치클로드롬 48-3호 ;                     이사코보문화(9: 브랏스키ㅣ 카멘, 10·12·15: 포노마레보 10호, 11: 샤먼 ,13: 샤먼 3, 14: 베르홀렌스크, 16: 베르홀렌스크 30-4호)(김재윤 2019)

 

참고문헌

 

Мамонова Н.Н., Сулержицкий Л.Д. 1986, “Возраст некоторых неолитических и ненеолитических погребений Прибайкалья по радиоуглеродным данны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 этнограф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Восточной Сибири(итоги и перспективы), pp. 19-30.

Горюнова О.И., 2002, Древние погребения могильник Прибайкалья, Иркутск: Издательство Иркут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pp.14.

김재윤, 2018a, 「요서지역 소하연문화의 재검토」, 『한국상고사학보』, 99호, pp.34~35.

김재윤, 2018b, 「제2장 신석기시대」, 『북방고고학개론』,(재)중앙문화재연구원, pp.62~88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서서 중국 신강성의 4500년 전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중국 신강성과 바로 인접한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과 그에 인접한 문화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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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동부의 신석기문화

중국 신강성의 석기시대문화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인접한 지역의 자료를 비교하고 있다. 우선 살핀 것은 바로 인접했지는 않았지만, 오늘 살펴볼 카자흐스탄 동부지역과 바로 인접한 지역의 문화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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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강성의 오른쪽은 몽골과도 접하고 있다.

 

몽골은 지리적으로 바이칼 유역과 가까워 이 지역의 신석기문화와 관련성이 많다(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몽골의 신석기시대는 대체로 2~3단계로 구분되는데, 1단계는 기원전 4천년기(6000~5000년 전), 2단계는 기원전 3천년기(5000~4000년 전), 3단계를 기원전 2천년기(4000~3000년 전)로 구분하는 의견(도르지)과 2단계의 문화가 순동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된다는 의견(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으로 구분된다.

1단계는 석기제작소와 주거지가 확인된 쏠론케르 쏘몬 유적이 있다. 원추형의 석인석핵(그림7-2,3), 석핵형 긁개(그림7-1), 조합식검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첨저의 토기도 확인되었다.

2단계는 탐차그-불락유적은 주거유적(그림7-5~9)으로 원뿔형태의 석인석핵(그림7-15), 뚜르개(그림7-26,27), 긁개, 한쪽변만 잔손질 된 세석인석기(그림7-20), 조합식석인검 (그림7-25)등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골각제인 화살촉과 송곳니로 제작된 장신구 등도 주거지 바닥에서 여러 점이 함께 출토되었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무덤 4기(그림7-6~7)가 확인되었는데, 피장자가 앉은 자세로 다리를 묶은 채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적을 기준으로 탐차그-불락 문화가 설정되었다. 듀나-2 유적에서도 유사한 유물양상이 확인되었다. 타제석도(그림7-34,36), 타제석부(그림7-37), 마제석부(그림7-38)등이 있다.

3단계는 사라바크-우스 유적의 상층이 대표적인데, 탐차그-불락문화의 유물과 거의 유사하다. 이 유적은 두 층위로 나눠지는데, 아래층은 원추형(그림7-40~42)과 원통형 석인석핵, 뚜르개, 끝이 둥글게 처리된 긁개(그림7-43~45), ㄱ자형으로 처리된 타제석도(그림7-52)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기하학적인 무늬가 침선된 그물문양(그림7-59, 50), 압인(그림7-63~65) 등이 확인되었다. 당시 아래층은 바이칼 유역의 이사코보문화(5000~4700B.P.)와 비교되어서(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2단계에 해당한다.

그림7 . 몽골의 신석기문화유물((1~4: 쏠론케르 쏘몬, 5~9,15~20,23, 25~30: 탐차크-불락유적 ,11,12,21,24,31,33,34,37~39: 듀나-II, 40~52: 사바라크-우수, 53~62: 투그르인-쉬레트, 63~65: 케룰렌강) (노보고르도바 1989 재편집)

상층에서는 석기는 하층과 유사한 바이칼 유역의 토기 뿐만 아니라 채색토기(그림7-54~58)가 확인되면서 3단계로 보았다. 뚜그르기인-쉬레트 유적에서도 비슷한 석기양상(그림7-53)과 채색토기가 확인되었다.

그런데 2,3 단계 유물은 3단계의 채색토기를 제외하고는 석기 및 토기양상이 거의 유사하다(그림7-54~58). 뚜그르기인-쉬레트 유적에서 채색토기가 출토되면서 사바라크-우스 유적의 상층과 같은 3단계로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쉬레트 지역의 듀나-II유적의 출토품이 우스티-나림유적과 비슷하다고 연구되었다(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김재윤 2019).

그림8 . 바이칼유역과 몽골의 신석기시대 유적 위치(1: 브랏스키 카멘, 2: 라스푸티노, 3:세로보유적, 4: 베르홀렌스크, 5: 포노마레보, 6: 키토이, 7: 치콜로드롬, 8 뚜그레인-쉬레트, 9: 사바라크-우수, 10: 듀나-II, 11: 쏠로케르-소몬, 12: 탐차크-불락유적(김재윤 2019)

 

 

 

 

참고문헌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Первоытная Монглия-К впросы древнейшеи история Монголя, УБ. pp.39-40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63.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4, Первоытная Монглия-К впросы древнейшеи история Монголя, УБ.

Новгородова Э.А.,1989,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осква:НАУКА, pp.60.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여간해서는 낮에 자지 않는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거의 혼자 있는 이 공간에서도 필자는 내 나름의 규칙이 있다.

재미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머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을 뿐이다.

 

지난주월요일에 답사,,,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밤비행기타고 아침에 왔는데, (뱅기타는날은 천산산맥 중에 한 곳으로 해발 3000m 올라갔다왔다.)

부산오자마자 점심먹고 샤워하고 학교갔다. 줄줄이 소세지 같은 원고촉박타령때문에

그 뒤 거의 이틀을 꼬박 12시까지 일하고 나서...

그 뒤 부터는 체력이 못버티는지 토요일밤에는 10시간을 자고, 어제는 낮잠도 잤다.

 

며칠간 일본불매운동이 아주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지만,

난 댓글하나 달 시간도 없었다.

나도 고고학자이고, 고고학자가 역사학자이니,,한 마디 해야하긴 하는데...하며

소심하게 인스타에 표식을 걸었다.

 

항일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건 아마 오래동안 잠재된 일본에 대한 항일감정 때문일 것이다.

역사문제이다.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기에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다.

나의 하루하루가, 너의 하루하루가 모여서 역사가 되는게 아닌가.

나는 진짜 한반도의 울타리를 찾고 싶다.

중국의 민족주의 논리에 따른 환단고기역주본 같은 그런 거 말고.

 

나는 환단고기 원본에 대해서 한번도 언급한적 없다.

왜냐하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환단고기(한문본)는 불행하게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출판된 것이다.아다시피.

그 부분부터 섞연치 않다. 이유립, 1979년, 광오해이사,

그리고 가지모노보루라는 일인이 일본어로 역주했고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역주된 환단고기는 1985년 김은수가 처음으로 역주했고, 1986년 임승국의 역주본은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임승국은 가지마노보루가 일역한 것을 한국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어쩌면 환단고기는 우리에게 아직 전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문화범위가 지금 국경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각종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은 한반도의 유적과 같은 성격의 것이 많기 때문이다.

국경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선사시대 문화권이 지금의 국경과 다른 것은 환단고기를 거명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선사시대문화권은 국경을 넘어선 ‘문화권’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의 초점은 토기이다. 고고학에서 문화권을 설정하는 것은 비슷한 생활권을 구분하는 일인데, 그 생활의 가장 밑바탕에는 토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북한에서도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본에서도 문화권의 구분은 토기의 구분에서부터 시작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고고학에서 기원 혹은 기원지 찾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에 대한 별다른 고민없이 현대의 국경을 기본인식으 해서, 기원지로 여겨지는 지역을 외부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화단위별로 연구되지 않는 한국고고학의 특성상 양 지역에 보이는 어떤 특정문화요소만을 비교하게 되면 맹목적인 기원지 찾기의 단순성이 야기된다.

그래서 필자는 원류나 계보 문제를 다루기 이전에 최소한 현재의 행정구역을 벗어난 선사인의 생활권역으로서 문화권의 구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김재윤 2017, 11페이지)

 

김재윤 2017, 『접경의 아이덴티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