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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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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지역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스키타이 남성이 유물속에 등장하는 일은 많지 않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그래도 등장하지만 그 이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 거울 속에는 스키타이 여신과 그 반대편에 남성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그림 1-5). 두 남성의 온몸은 털로 덮힌 것처럼 표현 되었는데,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다. 두 남성은 그리핀을 맨손으로 잡는 모습이다. 물론 이 거울 속에는 반인반수(그림 1-7, 그림 2-3)도 존재하지만 이들을 인간으로 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거울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거울

 

전체 거울의 그림 구도에서 여신과 남성만 제외하고는 거울의 각 칸에는 동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동물이 또 표현되어 있다. 반인반수(그림 1-7,그림 2-3) 아래에도 각각 그리핀과 표범이 그려져 있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날개를 펴고 양 손에 맹수를 잡고 있는데, 그 하단에는 별도로 동물은 그려지지 않았다. 반대편의 남성 2인 아래에는 동물 대신해서 기하학적 문양이 그려있다. 제작자가 그림 1-5를 반인반수라고 생각했다면 그 아래에 동물을 표현했을 것이다.

거울의 5번 칸의 남성과 그리핀이 싸우는 장면과 기하학적 문양 사이에는 선을 깊게 새겼다. 이 선은 양 옆의 동물의 발 아래에도 그려져 있는데, 거울의 다른 칸에는 확인되지 않는 선이다. 이로 보아서 거울의 세 칸은 한 장면일 수 있다.

 

이제까지 간과했는데, 이 거울의 여성만 주목했는데, 스키타이 남성도 거울속에 분명히 표현되었다. 스키타이 남성신이 가장 먼저 나타난 유물은 켈레르메스 거울일 수 있다. 이 유물은 그리스나 우라르트에서 제작했지만 스키타이 여신이 등장하고, 동물문양가운데 표범(3번 칸)(그림 2-3)등은 스키타이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제작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모든 연구자들이 거울속의 날개 달린 여성을 여신이라고 하니, 거울속의 남성은 스키타이 일반 남성이라고 볼 수는 없고, 스키타이 남성신 가운데 한명이었을 수 있다.

 

누구였을까? 만든이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까? 만든이가 스키타이 귀족의 주문을 충실히 따랐을까?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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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에서 세계관을 설명하는 유물로 간두령뿐만 아니라 동물문양이 장식된 검도 포함된다(페레보드치코바, 라에프스키 1981). 수직적 구조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유물이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검은 어느 지역에서나 출토되지만 간두령은 알타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다.

2020/12/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문화의 전사와 간두령

 

멜레틴스키(1976)에 의하면 스키타이 사람들의 세계관은 수직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가장 널리 유행한 원형의 맹수장식이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 동물장식은 머리와 꼬리가 둥글게 연결되었고 접은 다리 사이를 뚫어서 표현했다. 멜레틴스키는 이러한 표현방법이 어떤 것의 중앙을 감싸고 있는데, 동물의 몸통자체는 가장자리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가장자리는 하계를 의미하는 것이다(멜레틴스키 1976).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장식중에 가장 이른 유물이 원형의 맹수장식이고,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그림 1)에서 시작되었다. 이 유물은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미누신스크 분지, 중국 오르도스에서도 발견되고 청동, 금 등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크기,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사실 표범 혹은 호랑이와 비슷한 것은 시베리아와 그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흑해 지역의 것은 주둥이가 튀어나와서 늑대와 가깝다고 여겨진다.

대부분 장신구이겠지만 그 용도는 약간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르잔-1호의 원형 맹수는 단순히 말의 가슴장식으로 생각했지만, 스미르노프는 전차를 몰던 말의 장신구로 생각했던 것처럼, 각 지역의 원형맹수장식은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2020/1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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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다양한 동물의 種, 금속, 크기) ‘맹수’를 ‘원형’으로 만든 이유를 스키타이 문화연구자들은  유물에 내포된 ‘의미’때문이라고 로 본 것이다. 이것이 스키타이 인들의 세계관 중에 수평적 사고와 관련될 것이다. 또한 기호와 같은 역할이었을 것이라는 페레보드치코바(1994)의 생각에 필자도 동의한다. 스키타이인들은 매우 실용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실용적이었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 동물장식이 그냥 장식으로만 단독으로 존재한 것이 드물기 떄문이다. 어딘가의 부속품이었다. 가장 쉬운 예가 재갈멈치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이다.

드네프르 강 하류의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스타르샤야 마길라 유적에서 발견된 재갈멈치는 골제로 제작된 막대기 형태로 끝에만 동물문양이 부착되었다(그림2). 그러나 기원전 5세기 경에는 재갈멈치가 S자 형으로 변화되면서 동물의 몸통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그림3).

 

그림 2. 스타르샤야 유적의 재갈멈치, 뼈제품(12제외)

 

그림3. 악슈틴츠 유적 1호의 재갈과 재갈멈치(2), 철제품

 

비슷한 현상은 알타이에서도 확인된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대부분 재갈멈치의 양쪽 끝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이때 동물은 전신이 부착되지 않고 머리 등의 부분이 달려 있다. 그런데 파지리크 1호에서 출토된 3번, 4번, 6번 말의 굴레장식에는 사슴, 산양 등 동물의 전신이 부착되었다. 이때 동물은 앞다리를 접고 뒷다리는 뒤로 펴서 ‘하늘을 나는 자세’처럼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는 스키타이 초식동물의 일반적인 자세와는 다르게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재갈멈치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즉 매우 장식적인처럼 보이지만 실용적이라는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특징은 알타이에서도 통용된다고 볼 수 있다.

 

2020/04/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서는 한 가족 혹은 친족의 무덤이 함께 만들어진 것이 확인된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된 무덤방과 그 안에는 관을 두고, 무덤방 밖에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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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А. Скифы днепровского Лесостепного Левобережья. Киев, 1968.(일린스카야 1968, 산림스텦지역의 드레프르 강 좌안의 스키타이 유적)

Мелетинский Е.М. Поэтика мифа. М., 1976(멜레틴스키 1976, 신화의 시학(poetics))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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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남성이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몇 몇 남성들이 남아 있는데, 카라고데야쉬흐 유적의 여성관모장식인 삼각형 장식판에서 묘사된 남성은 삼각형의 장식판의 2번째 칸에 쌍두마차를 타고 있었다. 이 남성의 발 밑에는 그리핀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왼발을 올리고 있는 상태였다. 중앙에는 어떤 물체가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그리핀은 맹수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상태인데,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등장한다. 특히 간두령 장식속에서 발견되는데,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이 대표적이다.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가운데 가장 늦지만 가장 큰 무덤으로 알려졌다.

2020/08/2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멸망직전 흑해 스키타이의 여신

 

멸망직전 흑해 스키타이의 여신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스키타이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된 유물들이 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후반기에는 여신의 모습이 각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침발카 유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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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두령장식으로는 아르김파사가 발견되었는데, 양 손에 동물을 쥐는 대신에 자신의 허리를 쥐는 형태로 변형된 것이 있다. 동물이 올라간 간두령장식 가운데 날개달린 그리핀이 네모 프레임안에서 들어간 것이 발견되었다. 모두 앞다리 가운데 한쪽 발을 들어올리고 날개는 접어서 올린 채로 묘사되었는데, 4점이 알려졌다.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출토, 간두령장식

 

간두령장식 외에도 네모의 장식판 속에 그리핀이 묘사된 유물도 있지만 서 있지 않고 앉아 있는 형태이다. 간두령장식은 지팡이나 막대기에 달았던 유물이고 네모장식판은 옷에 달았던 장신구라는 점에서 인간과 관련된 유물이다.

이 외에도 그리핀 가운데는 말을 장식했던 유물도 있는데 황금으로 제작되었다. 긴 띠모양의 장식판과 반타원형 프레임 속에 묘사되어 있다.

 

이 유적에서 남성은 전신상이 아닌 얼굴만 원판형장식에서 발견된다. 모두 7점인데, 얼굴형태가 명확하지 않지만 동일물이 2명인 것으로 보인다(그림2). 그리스인의 얼굴도 발견되었다.

 

그림 2.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출토, 원판형장식

 

 라에프스키는 유라시아 스텝의 유목민을 포함한 고대인의 우주를 수직으로 위치하는 3세의 세계로 이해한다고 했다(라에프스키 1985). 상계(하늘), 중계(사람이사는땅), 하계(지하)로 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들어 있는 것이 세계수(世界樹)라고 불리는 사물이다. 나무가 수직으로 자라고 나무의 각 부위가 위치한 곳이 3개의 세계로 대비될 수 있고, 나무의 구조대로 세계가 구성되었다고 여긴 것이다. 이와 같은 도식적인 추상은 산(山), 사다리, 기둥과 같은 수직 물체로도 구현될 수 있다(라에프스키 1985, 페로도드치코바 1994).

 

 스키타이 인들이 이를 가장 잘 구현한 유물 중에 하나가 간두령이라고 페레보드치코바는 꼽았다. 간두령의 가장 위에 위치한 것은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와 연관된 존재물인 새, 그리핀 혹은 굽동물로 장식되었다(페로보드치코바, 라에프스키 1981).

그렇다면 여성의 관모장식이었던 삼각형 장식판도 3세계의 세상을 의미할 수 있다. 쌍두마차를 탄 남성은 사람이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그릇에 남긴 물을 봉양받는 여성은 지하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상계에 표현된 인물은 얼굴이 뚜렷하지 않은 그리스 복장의 여성이다.

그러나 이 유물의 전체적인 의미는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관을 그대로 내포하기 때문에 가장 꼭대기의 인물은 어떤 복장을 입고 있던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고 여길 수 있다.

 

참고문헌

Д.С. Раевский Модель мира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Проблемы мировоззрения ираноязычных народов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 М.: ГРВЛ. 1985. 256 с. (라에프스키 1985, 스키타이 인들의 세계 모델)

Переводчикова Е.В., Раевский Д.С. 1981 : Ещё раз о назначении скифских наверший. // Средняя Азия и её соседи в древности и средневековье. М.: ГРВЛ. 1981. С. 42-52(페레보드치코바, 라에프스키 1981, 스키타이인의 상계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Полин С.В., Алексеев А.Ю. 2018 :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Александ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в Нижнем Поднепровье. Киев, Берлин: «Видавець Олег Філюк». 2018. 930 с. («Курганы Украины». Т. 6)(폴린, 알렉세예프 2018, 드레프르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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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는 수 많은 유물 가운데 쿠반형 헬멧(투구)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이 투구는 기원전 7세기부터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며, 몽골과 중국동북지역까지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흑해 지역에서 초기 스키타이 시기부터 사용되었다.

 

반면에 그리스 스타일헬멧도 발견된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말탄 스키타이 전사와 보병 전사가 싸우는 장면에도 등장하고, 솔로하 유적에서 발견된 빗 상단에 그리스 병사가 쓰고 있는 헬멧도 쿠반형과는 다르다.

 

2020/12/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흑해의 스키타이 전사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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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쪽에서 발견되는 그리스식 헬멧은 두 가지가 있는데, 코린트(그림 1-5,6)와 아틱(attic) 스타일이다. 코린트 스타일은 완전히 머리를 덮는데, 눈만 내 놓은 것이다. 두개골 부위와 얼굴부위가 따로 제작되어 붙인 것으로 하단의 얼굴보호대는 목까지 보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코린트식 투구가 발견된 2곳인데 한 곳은 로메이코프카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을 발굴했던 베셀로프스키가 1913년에 발굴했다고 알려졌으나 유적에 대해서는 거의 남겨진 정보가 없다. 로메이코프카 고분에서 발견된 것은 턱부분이 파손된 것이다. 다른 한 점(그림 1-6)은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되었다고만 알려지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완전한 유물이 한 점 더 전해진다. 파손된 부분 없다. 로레이코프카 유적에서 나온 투구에 비해서 정수리 부분이 매우 높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1. 흑해 북안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투구, 코린트 스타일 투구(5,6), 트라키아 스타일 투구(2~4), 아틱 스타일(1)

 

아틱 스타일(그림 2, 그림 1-1)은 역시 두개골을 보호할 수 있는 부분과 얼굴 보호 부분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하단은 코린트 스타일과는 달리 볼을 가릴 수 있는 형태이다. 파스트르스코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림 2. 흑해 북안에서 출토된 아틱 스타일의 투구와 정수리 보호대, 화살촉

 

트라키아 스타일의 투구(그림 1-2~4)는 역시 두개골 보호부분(상단)과 얼굴보호부분(하단)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단의 형태가 뒤로 젖힐 수 있는 모자형태차럼 만들어진 것이다. 하단에는 아틱 스타일처럼 볼 가리개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흑해 북안에서 발견된 외국(코린트식, 아틱, 트라키아)의 투구는 대체로 연대가 기원전 5세기 이후의 것이다. 매우 오래전에 발굴 혹은 도굴되면서 정확한 유적의 정보가 없다.

 

흑해 북안에서 발견된 외국의 투구는 모두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 투구는 상단과 하단이 따로 만들어지고 땜질해서 연결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하단은 매우 작은 못으로 고정할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된다. 유적에서는 발견될 때는 하단은 결실된 채 많이 발견된다. 결국 가장 실용적인 스키타이 스타일의 쿠반형태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쿠반형 헬멧은 현대에서도 볼 수 있다..ㅋ

 

 

 

그림 3. 흑해북안에서 출토된 다양한 스타일의 투구변화

 

 

 

그림 4. 쿠반형 투구,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말탄병사와 보병의 병사가 싸우는 장면이 표현된 장식판의 투구는 코린트스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럼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의 말탄전사는 어떤 스타일의 투구일까요?

 

사실 코린트 스타일 투구는 다스베이더의 투구와 매우 닮았다고 우기고 싶다. 영화잡지에서는 일본 사무라이의 투구를 모티브 했다고 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의 갑옷)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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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인들은 7신을 믿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아베프 1962). 헤로도투스가 그리스신과 비교해서 적어 놓은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그 중에는 헤라클레스의 역할을 하는 스키타이 신도 있는데, 스키타이 이름은 남겨지지 않았다. 그가 남긴 스키타이 신의 이름은 타피티, 파파이, 아피, 고이토시르, 아르김파사, 파기마사다이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는 둥근 원판에 남성이 동물과 싸우는 장면이 묘사된 것이 발견되었다. 이 남성은 벌거벗은 채 사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그림 1). 거의 같은 구도로 스키타이 남성이 그리핀과 싸우는 장면이 네모장식판으로 만들어져 유적에서 출토되었다(그림 1). 이 남성은 턱수염과 복장으로 보아서 스키타이 남성이다. 둥근원판을 헤라클레스라고 한다면 이 남성은 헤라클레스의 역할을 하는 스키타이 신이었을 것이다(그림 2).

 

그림 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원형 장식판 직경 2.1cm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장식판 2.6cm

 

이 두 유물은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주인공의 4번 무덤방에서 출토되었고, 주인공 여성이 입고 있던 옷에 달던 일종의 스팽글이었을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아킬레스가 주인공인 화살통장식과 제작지가 각기 다른 검과 검집은 주인공 무덤이 아닌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5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것이다.

<무덤의 구조>

2020/11/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흑해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무덤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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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 화살통>

2020/11/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체르토믈리크 유적]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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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검집>

2020/12/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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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이후의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뚜렷해진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문화 외에도 코카서스 남쪽에 위치했던 앗시리아와 우라르트 문화의 유물이 발견되는데 비해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흑해와 아랄해를 연결하는 케르치 반도에 보스포러스 왕국이 들어서고 이 국가는 케르치 해협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원전 5세기 이후의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남성인간형상물은 그리스인과 스키타이인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도 기원전 4세기 흑해의 드네프르 강 하류의 체르토믈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페르시아에서 제작된 검의 자루가 스키타이 검과 조합되어 무덤에서 발견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유적에 묻힌 여성의 옷에는 스키타이 신화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이 표현된 장식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무기는 다른 상황이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

혹시 체르토믈리크 무덤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지 않았을까? 소설같지만.

 

 

 

참고문헌

Абаев В. И. 1962, Культ «семи богов» у скифов // Древний мир. Академику В. В. Струве. М.(아베프 1962, 스키타이의 7신에 대한 신화)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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