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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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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추야 강변의 스키타이 문화와 관련된 수 많은 유적 가운데 말 7마리가 매장된 유적이 있는데 보르탈 1 유적이다.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과 같이 많은 수?의 말이 매장되었다. 울란드리크, 유스티드,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에서는 1~2마리가 매장되었고, 말이 매장되지 않는 무덤(석관묘)도 많다.

 

보르탈 1 유적에는 백기 이상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크기는 다양하고 그중에서 6기가 스키타이 시대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1974년과 1975년에 발굴했다.

 

그림 1. 보르탈-1 유적의 무덤 배치도

 

백 기 이상의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은 7호이며, 직경 32×30m 정도이고 높이는 0.5~1m가량으로 넓고 편평한 보기 드분 형태이다.

 

7호 무덤에는 무덤의 북벽과 서벽에 말이 7마리 무덤구덩이에 매장되었다.

역시 통나무를 이용해서 무덤시설(5,7×4.7m, 깊이 5m)을 만들었고 바닥에도 통나무를 깔았다. 특이한 점은 무덤방의 바닥에서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3점은 못의 두께가 12×12mm로 매우 두껍지만 부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8개 이상의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청동못은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통나무관에 사용된 것이다. 보르탈-1 유적 7호에서 통나무관은 이미 없어졌지만 원래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은 남성의 무덤으로 오른쪽으로 눕고 다리를 굽은 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그림 3.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출토유물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이 유적은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약 100년 정도 늦은 바샤다르 유적곽 같은 시기의 유적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화살촉(그림 2-2) 때문이다.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쿠바레프는 화살촉의 형태로 유적의 편년했다.

 

보르탈-1 유적은 정확한 지점은 아직 못 찾았는데, 아크시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발르익-소오크 1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1 유적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한다.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100년 정도 늦으며, 유적을 만든 고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보르탈-1 유적의 7호분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등과 같이 말이 여러 마리 들어가는 점은 같지만 무덤의 북벽에만 말을 매장하는 방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통나무관을 쓰는 드문 무덤이다. 통나무관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 등 미라 처리된 시신에 사용되었는데 성인의 무덤이다. 반면에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몇몇 무덤에서는 미라 처리되지 곳에 통나무관을 쓰는 경우는 어린아이가 매장되었는데, 이 유적에서는 성인 남성의 무덤에 통나무관이 쓰는 경우가 확인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3. 8. 12:33 스키타이 무기

 

카자흐스탄의 동부지역 실릭티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화살은 단면(자른면)이 원형이고 양쪽으로 능이 붙은 형태이고, 평면은 자루를 끼울 수 있는 슴베가 있는 모습이다.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경에 발견되는 화살촉과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르다. 능이 같은 간격으로 3개 달린 것이 알타이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이다.

 

그림 1.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

실릭티 유적 보다 북쪽에 위치한 베렐 유적은 알타이의 산 자락에 위치했는데, 알타이의 높은 곳이 아니라 해발 1000m에 위치한 유적이다. 우코크 고원(2500m), 파지릭 계곡(1500m)보다 훨씬 낮다.

 

베렐 유적에서도 화살이 발견되었는데 청동과 골제 화살촉이다. 청동화살촉은 중앙에 원형의 빈곳 없이 삼각형에 가깝고 슴베 부분(자루에 끼우는 부분)이 길게 나와있다. 실릭티와 같은 유물은 막대를 화살촉 안으로 삽입하는 것이고, 베렐 유적의 화살촉은 나무 막대에 끼우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베렐 유적의 골제 화살촉은 슴베 부분이 없고 촉의 중앙이 비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골제 화살촉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림 2. 베렐 유적의 화살촉

 

쿠바레프(2007)의 의견에 따르면 베렐 유적과 같은 청동 화살촉(그림 2)과 골제 화살촉은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 이후의 유물이다.

 

베렐 유적은 실릭티 유적과 같은 국경(카자흐스탄)에 위치하지만 각각 산지, 평지에 위치해서 무덤의 구조 및 유물이 매우 다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3. 7. 13:05 스키타이 무기

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화살이다. 이 문화의 무기는 투부, 검과 칼 등이 있고 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전 지역에서 소재를 달리해서 출토되는 유물이며, 무덤 까지 들고 들어가는 유물이다.

검은 손잡이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의례적인 성격이 강하다. 길이 짧은 검은 말탄 기마병에게는 유용한 무기는 아니다.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의 암각화에 그려진 기마병 들은 대부분 자루가 긴 일종의 동과나 동모를 들고 있었다. 말탄 전사가 활을 쏘는 장면도 발견된다.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서 발견된 아크 알라하-1 유적의 2호분은 어린 소년의 무덤이었는데, 소년은 자신의 신체 크기에 맞게 조정된 목검과 화살통(고리트)과 함께 부장되었다(폴로스막 1994). 어린아이에게도 뭍어줄 만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유물이었을 수 있다.

 

알타이의 추야강과 우슬라 강의 스키타이 시기 무덤을 수 백개의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도 화살촉으로 유적의 연대를 추정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유물이다. 그에 의하면 스키타이 화살통인 고리트는 모든 무덤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쿠바레프 1991).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점이라고 보는 아르잔-1호에서 화살촉은 도굴로 인해서 발견되지 않았다. 기원전 7세기 중반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서는 골제 화살촉과 청동제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청동제화살촉은 단면이 마름모꼴인 것(그림 1-3~8)과 원형에 능이 붙은 것(그림 9-10~13)이 있다. 앞의 것은 활대를 끼우도록 단면이 비어 있고, 뒤에 것은 자루를 끼우기 위해서 슴베가 있는 유물이다.

골제 화살촉은 단면이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우는 슴베가 뒤로 나와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청동제 화살촉, 기원전 7세기 중반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골제 화살촉(2),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청동제과 골제 화살촉은 아직 소개하지 않았지만 쿠바레프가 발굴한 알타이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를 발굴하기 전이었지만, 이러한 형식의 화살촉이 가장 이른 유물이라고 보았다(쿠바레프 2007).

 

그런데 화살촉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붙은 화살촉은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3-1~3,5)에서도 발견되고, 산림지대의 아나닌스카야 문화(그림 4)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화살촉, 기원전 7세기

 

그림 4.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화살촉, 기원전 6~5세기

 

물론 스키타이 서부 지역의 유물에는 자루끼우는 부분이 단순하지 않고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알타이에서는 없는 형태이다. 아마도 용도와 관련되어 있을 것인데, 정확하게 어떤 부분인지는 잘 모른다.

 

알타이 남쪽 카자흐스탄 동부 평지에 위치한 실릭티 유적의 화살촉은 단면이 원형이면서 능이 있지만 아르잔-2호와 알타이와는 다르다. 현재 아르잔-2호와 알타이에서 발견된 화살촉은 실릭티 화살촉처럼 생긴 것은 없고 오히려 흑해쪽(그림 5)에 가깝다.

포스팅

 

그림 5. 드레프르강 유역(흑해 북안)의 화살, 기원전 5세기 전후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고분)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의 북쪽 타이가 지대에 살던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사람들은 스키타이 사람들과 교류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습득했다. 동물장식, 무기등이다. 무기 중에는 검은 스스로 만들었던 유물이 많지만 화살촉은 스키타이 유물이 많다(그림 1의 붉은색 표시는 스키타이 화살촉과 비슷한 것이다. 평면도는 잘 구분이 안가는 경우가 많지만 단면도(자른면)은 유물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림 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청동화살촉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스키타이 화살 뿐만 아니라 특징적인 화살통인 고리투스를 사용했던 흔적도 인간형상물(그림2)에서 알 수 있다. 고리투스(혹은 고리트)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도록 고안된 스키타이 무기장치이다. 세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고리투스 안에 화살을 넣은 것이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만든이가 이를 강조한 것이다.

 

 

 

그림 2.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사포고프스키 유물퇴장지(Сапоговский клад) 출토품

 

시베리아 투바의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 유적에서부터, 알타이, 흑해 뿐만 아니라 볼가 중류에서도 발견된다. 심지어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화에서도 스키타이 인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군인들도 고리투스를 들고 있다.

2020/06/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화려한 무기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화려한 무기

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eastsearoad.tistory.com

카자흐스탄의 동부 산악지역 유적인 실릭티 유적에서는 새가 머리를 뒤로 돌리는 동물장식도 발견되고,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같은 화살촉이 발견되었다(그림 3).

 

 

 

그림 3. 실릭티(카자흐스탄 동부)의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화살촉

 

알타이에서는 뼈와 청동화살촉이 발견되었고, 대부분 지역에서 화살촉 재료로 사용되는 것은 청동이다. 뼈는 알타이에서 좀 더 선호되었던 것 같다. 알타이의 유적을 많이 조사한 쿠바레프(2007)는 수많은 유물 가운데 화살촉을 기준으로 스키타이 문화의 연대를 나누어서를 파악했다(우리나라 삼국시대 연구자들 가운데도 철촉을 기준으로 편년(연대를 구분하는 작업)을 한다)

스키타이 무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 중에 하나가 화살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Черников С.С. 1965 : Загадка Золотого кургана. Где и когда зародилось «скифское искусство». М.: 1965. 190 с. («Из истории мировой культуры»)(체르니고프 1965, 수수께끼 황금 쿠르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스키타이 예술은 시작되었을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https://www.hermitagemuseum.org/wps/portal/hermitage/digital-collection/25.+archaeological+artifacts/1442618

 

Art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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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우코크 고원의 베르흐 칼쥔 II유적에서 3호분에 뭍인 남성미라는 살아생전에 직업군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근거는 고리트(화살과 활을 함께 넣는 스키타이 식 활통)라고 가 출토되기 때문이다. 러시아학계에서는 고리트는 기마전사의 복식으로 생각한다.

 

시위, 화살, 고리트 등은 모든 남성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울란드릭 유적에서는 42기의 고분에서 7기에서만 위의 무기가 출토되었고, 유스티드 유적에서는 44기의 고분에서 6기에서만 확인되었다. 아르잔-2 유적에서도 활과 화살, 투부, 검과 칼 등 무기가 완전히 출토된 것도 주인공 무덤 외에 2기의 무덤에서만 출토되었다.

 

그렇다면 남성미라도 화살, 고리트, 투부 등이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서 그는 기마전사였다. 앞에서 이 남성의 무덤 속에서 각 유물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 중에서 26, 27번은 머리장식일부라고 적혀있었으나, 사실은 26번은 고리트의 덮개(그림 1)이다. 고리트의 덮개가 고깔처럼 생겨서 그렇게 적었고(필자는 그대로 번역함),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고깔모자가 아닌 고리트의 덮개이다. 펠트로 만들어진 고리트 덮개에는 양털을 꼬아서 만든 끈이 6줄 달려 있었고, 그 끝에는 방울모양이 달려 있었다. 비슷한 끈이 확인된 유적은 바샤다르 2호분(루덴코 1960)에서도 확인되었고,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도 매듭이 출토되었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과 같은 고리트 덮개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의 고리트(활통) 덮개, 펠트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의 고리트(활통) 아래부위, 모피+펠트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기마전사는 고리트의 덮개 뿐만 아니라 고리트의 아래 부위도 나왔다. 모피로 만들어진 것으로 왼쪽 허리부근(유물배치도 27)에 놓여 있던 유물이다. 이 모피 부분안쪽에서 활의 부속품(그림 3)이 출토되어서 고리트의 일부라고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유물의 아래쪽에는 화살이 5점 놓여 있었다. 모피의 끝에는 펠트조각이 붙어 있는데, 고리트 덮개와 연결부위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 기마전사 활의 부속품, 1,4,5-나무, 2,3-뿔

 

이 유물은 전체길이가 85cm가량으로 고리트가 덮어지는 것까지 계산하면 전체 활의 길이는 110.6cm가량이다. 출토된 화살은 79cm가량으로, 화살촉의 단면은 삼각형이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의 남성 기마전사의 화살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의 남성 기마전사의 고리트 복원도

 

*위의 그림은 아래 참고문헌에 수록된 것이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с.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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