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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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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7. 13:17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잘 알려진 동물투쟁문은 두 마리 동물이 서로를 공격하거나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대부분 두 마리이지만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지만 동물투쟁문양이 아닌 수수께끼 같은 문양이 발견되는데, 투바와 몽골에서 확인된다. 투바(미누신스크 분지)의 헴칙- 봄 유적의 골제 빗에 새겨진 문양인데, '수수께끼 그림'으로 명명되었다(그라치 1980).

몸통이 있는 산염소는 3마리이고, 그 외에도 염소머리가 2개 더 있는 다중구도이다. 굽동물이 서로 엉켜 있는데, 염소가 중앙의 염소를 타고 올라 있어서 교미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림 1-3, 그림 2-2). 하지만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골제 빗에는 다리를 접은 염소가 있고 동물머리 3개가 더 표현된 유물도 있는데(그림 1-1, 그림 2-1), 모두 수수께끼 그림으로 불려졌다.

 

그림 1. 투바의 헴칙 봄 유적 출토 유물

 

그림 2. 수수께끼와 같은 동물장식, 1,2-헴칙 봄 유적, 3-타스몰라 유적, 4-사글리-바쥐 유적, 5-울란 곰 유적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에서는 맹금머리를 형상화 한 장식판에 멧돼지 아래에 염소 머리 3개가 덧붙여져 있다(그림2-3). 멧돼지 머리 위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음쇠를 끼우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뿔의 표현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라치 1980). 하지만 멧돼지의 뿔(하이브리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지만 타스몰라 문화를 연구한 카드이르예프(1979)는 멧돼지와는 독립된 작은 머리라고 한다. 또 멧돼지라고 보이는 동물의 몸통표현이 매우 애매해서 멧돼지 혹은 사슴일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스키타이 동물 스타일에서 모든 굽 동물의 몸통은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표현되는데 이 유물은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라치는 하나의 형상에 여러 동물의 특성이 혼재한다고 보았지만, 페레보드치코바는 하이브리드 형상이라고 보지 않았다. 스키타이시대 하이브리드 동물은 규칙적으로 표현된 어떤 동물이 명확하게 결합되는지 알 수 있지만 이 동물형상은 그런 규칙성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바의 아르잔 고분보다 더 이른 사슴돌의 사슴표현과 더 유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슴돌에 그려진 부리모양 입을 가진 사슴 표현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으나, 이 부분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페레보드치코바는 ‘수수께끼 같은 동물장식’이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문양으로 이해했고,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한 문양요소로 본 것이다. 그라치는 스키타이 동물양식 중에 하나로 생각했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는 견해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차이가 큰 관점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П.В. Агапов, М.К. Кадырбаев Сокровища древнего Казахстана.Памятники материальной культуры.// Алма-Ата: Жалын. 1979. (아가포프, 카드리예프 1979 고대 카자흐스탄의 유물)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Переводчикова Е.В. 1994 :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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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으로 알려진 유물 가운데는 유물의 형태나 기본적인 모티브 뿐만 아니라 유물의 제작방법을 시베리아 아르잔-2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유물이 많다.

‘시베리아’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간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은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아무다리야 퇴장지 및 카자흐스탄 동부산악지대와 비교된 연구가 많다(Piotrovsky B., 1986, 코롤레바 2003 등 다수)

 

수집된 경위가 매우 다양하고(시베리아 총독 가가린에 의한 수집, 비트겐의 수집품을 옥션을 통해서 수집)유물의 연대폭이 넓어서 다양한 장소에서 수집되었을 수 있다.

게다가 17~20세기 중반까지도 ‘시베리아’는 우랄산맥 동쪽에서부터 극동까지 시베리아라고 불렀기 때문에 추정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넓다.

 

그런데 투바의 아르잔-2호 발굴로 출토된 유물은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누금’기법이라고 불리는 작은 알갱이의 금을 유물에 부착하는 제작방법은 주로 흑해지역과 카자흐스탄 동부 산악지대에서 발견되는데,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경에 발견되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먼저 생겨난 제작방법이라고 알았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이 존재한다. 역시 그리스와의 관련성이다.

 

그러나 투바 아르잔-2호에서는 누금기법이라고 불리는 제작방법으로 장신구를 제작한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귀걸이이다(그림 1). 주인공 무덤 5호의 여성 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의 무덤으로 생각되는 13호에서 출토된 귀걸이도 마찬가지 방법이 가미된 것이다(그림 2). 아르잔-2호 5호묘의 여성귀걸이(그림 1-1)는 둥근 고리 2개를 연결하고 그 아래에 원뿔 모양의 펜던트를 붙이는 방법이다. 아르잔-2호 13호묘 여성귀걸이(그림 2-5)는 원뿔 펜던트 아래에 구슬을 포도송이처럼 붙인 것이다.

 

그림 1. 아르잔-1호의 5호묘 여성 귀걸이

 

그림 2. 아르잔-2호의 13b호묘 여성 귀걸이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귀걸이(그림 3-3)는 둥근고리 아래에 원뿔모양의 펜던트를 붙이는 구조는 아르잔-2호 출토품과 같다. 그 아래에 붙인 구조물(그림 3-3-3)은 좀 더 복잡하다. 둥근 고리도 꼬아서 사용한 것(그림 3-3-1)이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유물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유물도 있는 것이다.

 

 

그림 3.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금제 알갱이를 붙이는 방법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성머리띠 장식에서 발견되지만, 알갱이가 매우 크고 그 크기가 균일하지 않아서, 아르잔-2호와 비교해 볼 때 조잡해 보인다. 그리스에서 수입한 유물로 알려졌다(그림 4).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리스+스키타이 스타일, 1903년 슐츠 발굴품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은 여러 지점에서 수집되어서 황제의 수집품으로 등록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아르잔-2호의 발굴로 그 지점이 좀 더 여러 곳이며, 좀 더 명확해 질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Е.Ф. Королькова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первое российское археологическое собрание. // Основателю Петербурга: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Эрмитаже]. СПб: «Славия». 2003. С. 190-199.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칭거,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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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나무로 만든 나무방 무덤 뿐만 아니라 돌판을 이용한 돌널무덤도 발견된다. 유적이 위치한 찬드만 산 혹은 울라안 산에서 채취한 분홍빛의 화강암 판석으로 만든 것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돌널무덤은 대부분 단인장이지만 인골이 2구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25호(1.15×1m)인데(그림 1-B) 남성은 왼쪽으로 굴신(다리를 굽힘)하고 있는 1구와 다리뼈만 남아 있는 인골이 1구 더 있다. 머리 위에서는 납작하게 눌러진 토기, 청동화살촉이 발견되었다(그림 1-B의 우측), 날이 세 개 달린 것이다.

 

그림 1. 울람곰 유적의 무덤, 24호(A), 25호(B), 26호(C), 28호(D)

 

24호(1,05×0.6m)에는 남성의 뼈가 무질서 하게 발견되었고, 바닥에는 가죽을 깔았다. 그 외의 출토유물은 없다. 26호에서도 1구가 발견되었는데, 인골이 무질서하게 흩뜨러졌고, 두개골은 찌그러졌다. 하지만 인골은 오른쪽 측면으로 무릎을 굽힌 채 피장되었고, 머리맡에서 토기(그림 1-C-2)가 발견되었다. 그 외 출토유물은 25호와 같은 청동화살촉, 청동단검(그림 1-C-1), 토기가 발견되었다. 청동단검의 끝에는 새 머리 모양의 그리핀이 마주보고 있는 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몽골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미누신스크 지역문화)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또 인접한 추야강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림 2)

 

그림 2. 울란드리크 유적 출토

 

28호는 다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유물도 없고 완전히 무릎을 굽힌 웅크린 자세이다. 두향은 북서방향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널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이미 추야 강 계곡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본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2700년 전)에서도 주인공의 무덤인 5호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널무덤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돌널무덤 문화는 아르잔-2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 묘제는 주로 돌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나무를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아르잔-1호 이후로 나무를 무덤 시설구조물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청동기시대에 나무를 무덤에 이용한 경우는 없을까? 물론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소재를 나무로 쓴적은?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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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 강 지류인 바르부르가지 강 유역이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러시아연방 내의 알타이 공화국이다. 이 유적 보다 북쪽에 위치한 부구준 강 유역에서도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말라투 IV유적이다. 이곳은 거의 알타이 공화국을 벗어난 투바 공화국에 위치한다. 물론 러시아 연방의 연방국가 중에 하나이다. 투바는 우육 계곡의 아르잔-1 유적이 있던 곳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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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투 IV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 24기의 무덤이 발굴되었으나 이제까지 본 유적과는 다르다. 열을 이루는 듯 해 보이지만 세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물론 바르부르가지 I유적도 2열로 있었으나 1열과 2열 사이에는 거리가 멀지 않았으나, 말라투 IV유적은 확연하게 거리를 두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 듯 해 보인다.

 

 

그림 1. 말라투 IV유적, 26번은 투르크 시대 무덤 그 외는 스키타이 무덤.

 

말라투 IV유적에서는 대부분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들었다. 어제 살펴본 바르부르가지I유적처럼 돌널무덤(석관묘)가 사용되지 않았다.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세 그룹의 무덤이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매장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번 그룹과 2번 그룹 사이에 매장된 9번은 중간의 공간을 이용한 무덤으로 가장 늦은 무덤으로 생각했다. 부장된 유물도 거의 없다.

이 유적에서 말이 매장된 무덤은 11~13호와 9호이다. 그 외는 말이 없었다.

특히 비슷한 시기의 타샨타 유적에서 대부분 발견되던 목제의 말 모양이나 산양모자장식이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 금박종이에 동물문양이 남아 있는 무덤은 말이 있는 무덤에서는 확인된다. 말이 있는 무덤에서 대부분 발견되는 유물은 간단한 칼이나 무기류이다. 가장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남아 있는 무덤은 18호로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타샨타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몇몇 무덤에서 발견된 맹수달린 목걸이도 이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재갈멈치에도 거의 장식이 없었다.

즉 이 유적의 사람들은 모자에 목제로 된 동물인형이나, 맹수달린 목걸이 장식을 하지 않았다.

 

 

그림 2. 말라투 IV유적의 9호분

 

 

그림 3. 말라투 IV유적의 11호

 

 

그림 4. 말라투 IV유적의 12호

 

그림 5. 말라투 IV유적의 13호

 

 

그림 6. 말라투 IV유적의 13호 유물

그림 7. 말라투 IV유적의 18호 유물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맹수 달린 목걸이 장식을 한 무덤이 4호(늑대), 10호(불명확), 17호(호랑이), 18호(산양), 26호(늑대)에서 확인된다. 목걸이 끝을 장식한 동물은 늑대와 호랑이 장식이다. 타샨타 I유적 2호분에서는 재갈멈치에 호랑이가 부착되었고, 늑대모양 맹수 끝장식을 단 무덤이 있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호랑이와 늑대는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지 않는 동물로 알려졌다. 원래 호랑이 장식이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부터 목제로 확인되고, 좀더 이전인 아르잔-2호에서는 금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동물장식이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호랑이도 있지만 같이 살지 않는 늑대도 나타난다(늑대는좀 더 이른 시기에도 있으나 이 시점에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그런 동물문양이 없어지는 말라투 VI유적과 같이 있다. 혹시 이 시점 쯤에 호랑이는 전설의 동물이 되고, 대신 늑대가 그를 대신해서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 이유는......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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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에서 대 유행했던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된 시점을 알리는 유적으로 시베리아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1호에서는 통나무 6000여 개 이상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르잔-1호와 10km가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전혀 무덤 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연대가 늦어서 무덤구조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매우 크다.

 

특히 무덤방에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가장 나무를 많이 사용한 무덤방은 주인공 남녀가 묻힌 5호무덤이다. 우선 무덤 구덩이는 윗부분이 5.40 × 4.40 m이고 밑면이 4.65 x 4.20 m로 바닥이 약간 작다. 깊이 4.35 m이다. 나무는 낙엽송으로 제작되었다. 무덤의 방향은 북서-남동향이다.

 

무덤방의 덮개는 2중으로 가장 위에는 통나무 22개(남서-북동방향)로 덮였고(그림 1-1, 그림 2), 그 아래에는 11개(그림 3-1)의 통나무를 사용해서 무덤 천장으로 만들었다. 무덤방의 천장이 된 11개의 통나무는 가장 위쪽의 나무와 방향이 다르게 교차되는 방향으로 덮였다(그림4).

 

 

남동쪽의 무덤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그 틈을 통해서 내려온 흙은 무덤방의 남동쪽까지 흘러들어왔다(그림 1)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분의 가장 위쪽 덮개(1)와 단면도(2), 무덤천장의 균열된 틈을 통해서 무덤구덩이 상부를 채운 흙이 흘러들어왔다. 무덤구덩이는 흙으로 채웠지만 무덤은 전체적으로 납작한 판석으로 채웠다는 점을 단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최상위 천장, 통나무 22개 이용

 

 

 

그림 3.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 천장(1)과 단면도(2)

 

그림 4. 아르잔-2호의 무덤방 가장 상부 덮개와 무덤방 천장

 

 

무덤방의 높이는 1.4m가량이고, 2중 무덤방이다. 바깥의 1차무덤방은 크기가 3.68 × 3.41m, 2차 무덤방은 2.58 × 2.42 m이다. 외부에 있는 1차 무덤방은 9개의 통나무를 쌓아서 올렸다(그림 1-2). 1차 무덤방은 바닥을 따로 만들지 않고, 사방으로 무덤방의 벽만 올렸다(그림1-, 2, 그림 3-2).

2차 무덤방의 바닥은 통나무 12개를 이용했는데, 가장자리를 큰 나무를 이용하고, 상대적으로 작은지름의 나무 10개를 이용해서 무덤방의 바닥이 땅에서 약간 뜬 상태로 보인다(그림3-2).

 

그러나 내부 통나무방을 제거한 후에 그 바닥에 점토로 채워진 흔적이 발견되어서 무덤구덩이 바닥과 무덤방 바닥사이를 채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토 채움 흔적은 무덤의 북동부, 남동부, 남서부에서도 확인되었다.

 

 

통나무 나무방은 미리 만들어졌고, 무덤안에서 조립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는 무덤방을 만든 통나무를 결구하기 위해서 만든 홈과 나무를 다듬은 흔적으로 보아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그림 5,6)

 

그림 5. 아르잔-2호의 무덤방 모서리 결구상태 

 

그림 6.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내부)의 통나무 다듬은 흔적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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