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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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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십자형 그리핀과 산양머리 장식이 달린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 부근에는 청동거울이 놓여 있었고, 왼손 부근에는 갈색 빛의 소형 유리그릇이 놓여 있었다.

 

탁사이-1 유적 주인공 여성의 무덤구덩이에서 목제 쟁반 안에는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늑대의 송곳니와 이빨, 절구와 절굿공이, 골제 손잡이가 달린 칼, 새머리 모양의 투구, 목제 빗이다. 빗을 누르고 있는 유물은 소형 향유병이 발견되었다. 구연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항아리 모양으로(그림 1) 이미 파손된 상태였다.

 

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향유병

 

목제그릇의 장식판으로 추정되는 금판도 발견되었다. 여성과는 거리를 두고 나왔지만 이 여성도 목제 그릇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제그릇 옆에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솥은 입구에 반원형 모양의 손잡이(일반적으로)가 2개 붙어 있고, 새머리가 부착되었다. 입구에 붙은 파수에는 3개의 돌기가 달린 형태이다. 그런데 솥의 동체에도 고리모양의 손잡이가 수직으로 붙었다. 구연부에 붙은 손잡이는 실제로 사용되었다기 보다 장식이고, 동체부에 붙은 손잡이가 실제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그림 2).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청동솥

 

금판으로 장식된 목제그릇, 청동솥에 동물장식과 돌기가 달린 손잡이는 시베리아에서는 볼 수 없는 유물이다.

 

흑해지역에서 금판에 붙인 장식이 발견되며, 특히 가까운 필리포프카 유적(위치 아래의 지도)에서도 볼 수 있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벽 부근에서 발견된 여성무덤(2호묘)에서 유리병이 출토되었는데, 문신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뼈바늘과 함께 출토되었다.

 

2020.11.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숨겨진 여성무덤

 

우랄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 1호의 숨겨진 여성무덤

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무덤은 1호이다. 이곳은 1989년에 발굴되었으나 무덤의 가장 동쪽은 미처발굴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대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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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출토되는 청동솥은 장식이 거의 없다. 하지만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청동솥에는 일찍부터(기원전 7세기) 동물장식이 붙었는데, 흑해지역과 관련성이 많은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솥의 입구에 붙은 손잡이에 동물장식이 있고, 동체부에도 수직으로 고리모양 손잡이가 따로 붙었다. 기본적으로 장식적인 손잡이와 실제 사용된 손잡이를 붙이는 개념은 같지만, 장식된 동물 및 솥의 모양과 크기 등은 다르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2호묘 유리병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2호묘 목제그릇 장식판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

 

청동솥과 유리병은 필리포프카-1 유적과 탁사이-1 유적이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참고문헌

Лукпанова Я.А. Реконструкция женского костюма из элитного погребения Таксай–1: Взгляд археолога // Поволж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1 (19), 2017. – С. 234–244(룩파노바 2017, 탁사이-1 유적 엘리트 무덤에서 나온 여성의복 복원)

Яблонский Л.Т. Новые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находки из кургана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3 № 2 2015(야블론스키 2015, 필리포프카-1 유적의 1호 무덤에서 찾은 특별한 새로운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몽골 기원전 5~3세기 울란곰 유적에서는 9명까지 매장된 무덤이 발견되었다. 유적에서 가장 많은 인원이 들어간 무덤으로 부장품도 다른 유적에 비해서 풍부하다. 토기 9점 외에도 동물장식이 있는 거울, 무릎을 굽히고 있는 굽동물, 낙타가 있는 동물 장식 등이 출토되었다. 동물장식은 아니지만 나뭇잎 혹은 풀 잎이 4개 돌아가는 장신구도 나왔다(그림 1).

 그런데 이 유물은 금속만 남아 있으나 잎모양 안에는 돌이나 보석류를 끼워서 제작되었을 수 있다. 소형의 금속제품에 다른 재질을 끼워넣는 방법은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유물로 보아서 널리 유행했던 제작기법이다.

 

그림 1. 울란곰 유적 47호 출토 풀잎 모양 장신구

 

그런데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를 닮은 금속제 이미테이션이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에서 발견된 바 있다. 목이 긴 항아리 모양(그림 2-11, 53,54), 손잡이가 한쪽에 달린 목기(그림 2-21)가 발견되었다.

 

손잡이가 한쪽에 달린 목기를 연상케 하는 유물은 필자가 이미 소개한 바 있고 새로운 정보는 아니다. 목이 긴 토기를 연상케 하는 유물 중 외형상으로 가까운 것은 그림 2-53.55이다. 금제품의 목이 길고 곧기 때문이다. 울란곰 유적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에서 발견되는 항아리(쿱신)을 형상화 했다. 손잡이처럼 보이는(그림 2-55) 부분은 어딘가에 달기 위해서 만든 고리 일 수도 있기 때문에 금속제품의 동체부를 비교하는 것이 더 유효하다. 토기는 아니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청동솥을 닮은 모형이 출토된 바 있어서 같은 의미 혹은 용도로 토기 모형을 만들었을 수 있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표트르 1세가 모은 황금 유물이 시베리아에서 가져간 것이기 때문에 도굴된 어떤 무덤 중에 한 곳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투바의 아르잔-2호가 발굴되기 전에는 그림 2에서 보이는 누금기법(작은 구슬을 덧붙이는 방법)은 시베리아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생겼다. 또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실제 청동솥은 무덤방 바깥에서 나왔고, 솥의 모형은 남성과 여성 인골 사이에서 위치했다.

수많은 유물 가운데서 금속 모형제품을 만드는 것은 토기, 목기, 청동솥 등 스키타이시대 그릇이 단순한 음식기의 용도이지 않고 어떤 특수한 의미 일 수 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Barbara Armbruster 2009 Gold technology of the ancient Scythians –gold from the kurgan Arzhan 2, Tuva, Archeo Sciences, 33, 2009, p. 187-193

Nowgorodowa E. 1980 : Alte Kunst der Mongolei. Leipzig: E.A. Seemann Verlag. 1980. 280 s.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3세기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토기, 목기, 청동제 솥 등이 무덤속에 부장되었다. 동 시대의 인접한 알타이에 비해서 토기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목이 긴 항아리모양(그림 1)의 토기는 주로 유제품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울란곰 유적에서는 내부에서 고기가 발견되었다. 액체류를 보관하기도 했지만 고기도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항아리 모양 외에도 목이 짧거나 없는 토기도 나오기 때문에(그림 2) 토기를 다양하게 사용했을 수 있다. 고기 덩어리가 발견된 33호의 청동솥은 그 용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그림 3).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토기, 유제품 보관 항아리(쿱신)

 

그림 2. 울람곰 유적의 토기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여러 유적에서는 목기로 가운데 손잡이가 한쪽으로 만 붙은 목제 그릇이 나오는데 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태가 온전치 않은 목제 그릇이 있기는 하지만 손잡이가 한 쪽으로 붙은 목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대신에 목제 쟁반은 낮은 굽이 있는 유물이 있고, 붉은 색 락커(옷칠)를 칠한 목기가 나온다고 보고되었다. 울란곰 북쪽의 투바 지역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목기의 사진이나 그림이 정확하지 않다.

 

그림 3. 울란곰 유적의 청동솥

 

스키타이시대 청동솥은 기원전 7세기 흑해 지역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에서도 나오지만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용되는 물건이다. 크기와 형태가 달라서 그에 따라서 용도가 달랐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지리크 2호에서 나온 청동솥은 높이가 13.8cm정도로 매우 소형이고, 그 내부에 불에 달군 흔적이 있는 돌과 향료의 씨앗등이 나와서 일종의 향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르잔-2호의 청동솥 2점은 무덤방 바깥 무덤 구덩이 사이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무덤방 축조시 제사를 지냈던 흔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 집자리에도 벽을 파서 토기를 묻어두는 행위가 있는데 의례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울란곰 유적에서는 고기를 직접 요리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볼가강 유역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청동솥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분 청동솥

 

 

그림 5. 아르잔-2호의 청동솥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솥

 

 

스키타이시대 이후의 고고학 자료로 기원전 3세기 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흉노,  2세기선비 문화에서도 청동솥은 발견되고, 3세기 가야의 무덤인 대성동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청동솥(동복)이 출토된다(이미지 검색이 쉽다. 청동솥이라는 명칭 대신에 동복이라는 용어를 쓴다). 스키타이시대 이후의 청동솥은 매우 실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무덤부장용으로만 사용되었고 그 수도 빈번하지 않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은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도 우랄 남부의 지역성격이 강한 문화를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지역성격이 강한 점도 있지만 그러나 시베리아와 흑해지역과 공통적인 유물들도 있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문양장식, 마구, 무기를 제외하고도 확인되는 유물은 청동솥(銅鍑)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상당히 크다.

 

2020/11/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필리포프카 유적] -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이다. 1호에서는 페르시아 그릇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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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크기의 청동솥은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유물의 예로 보아서 일종의 향로 혹은 제기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55cm가량, 구경 70cm가량의 솥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유적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미누신스크 분지에 있는 타가르 문화의 유적이 보야르( 암각화에서 확인된다. 이 유적은 볼샤야 보야르(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유적과 말라야 보야르(Малая Боярская )야르 두 곳이 알려져 있다. 예니세이 강의 좌안에 위치하고 보그라드스키 지역의 트로이츠코예 마을에서 6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볼샤야 보야르 유적은 보야르 능선의 상단 도로에서 약 6km 가량 곳에 이어서 확인된다. 이곳에는 13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통나무 집이 있는 마을에서 염소, 사슴, 숫양, 소를 유목하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동의 개와 활을 쏘는 사람 등도 등장한다.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는 그림에는 집 사이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대형의 솥이다. 그 가운데 소와 청동솥에 함께 그려져서 청동솥은 유제품을 가공하는 도구로 생각된다(데블렛 ). 흐지이일 하야 유적에서도 막대기를 넣고 청동솥 안에서 젖는 장면이 나와서 유제품 가공과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암각화 유적은 타가르 문화(기원전 7~3세기)부터 타쉬트익 문화(기원전 2~기원전1세기)까지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유적이 타가르 문화부터 그려졌을 것이라고 하는 근거도 청동솥이다. 그림 가운데 손잡이에 꼭지 모양(그림 4, 그림 5)이 달려 있는데 타가르 문화에서 발견되는 청동솥의 모양이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은 5리터에서 수백리터까지 다양하게 발견된다. 크기차이 때문에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청동솥과는 용도가 다르다.

 

대형의 청동솥은 암각화에 그려진 유제품 가공 뿐만 아니라 고기국 등의 음식을 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림1.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그림 2.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2

 

그림 3.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3

 

그림 4.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4

 

그림 5. 타가르 문화의 그릇, 토기 1~14, 청동솥 15~18

 

그림 6.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

 

참고문헌

Дэвлет М.А. 1976 :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писаница. М.: 1976. 36 с.(데블렛 1996, 볼샤야 보야르 유적)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серия ]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소비에트 연방 아시아 지역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초원지역,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이다. 1호에서는 페르시아 그릇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이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은 아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 중에서도 청동솥 4점이 발견되었다. 4점의 청동솥 가운데 3점은 손잡이가 청동솥의 입구에 아치모양으로 붙은 것이고 나머지 1점은 가로 방향으로 붙은 것이었다. 전자는 흑해 지역에서도 가장 이른 유적 중에 하나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는 스타일과 같다.

 

손잡이가 붙은 청동솥이 출토되는 무덤은 3호, 7호와 10호이다. 7호는 유적에서 가장 인골이 많이 출토된 유적 중에 한 곳으로 인골 5번 발 아래에서 출토되었는데, 청동솥(높이 17cm)은 손잡이가 2개만 아치모양으로 붙은 것이다.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7호 청동솥, 높이 17cm

 

10호 무덤에서 출토된 청동솥은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형태(그림 3), 무덤의 입구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10호는 무덤구조가 7호와 다른 원형이고 남쪽에 입구가 달린 형태이다. 10호 무덤입구는 현관처럼 나무기둥을 세우고 목제 구조물을 만들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1호의 무덤구조와 가깝다. 이를 참고로 하면 1호 무덤도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 손잡이가 아치모양처럼 위로 붙은 것은 흑해 지역에서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오는 형태이다. 그런데 흑해에서는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고 우랄 남부에서는 손잡이가 가로방향으로 붙은 청동솥이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온다(그림 4-3, 24).  필리포프카 유적은 기원전 5~4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손잡이의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청동솥이 출토된다.

 

더보기

이 시점에는 두 가지 형태의 청동솥이 사용되다가 점차 손잡이가 아치모양으로 붙은 유물만 남았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손잡이 뿐만 아니라 동체부와 바닥의 모습은 지역성이나 시간성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0호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0호 청동솥, 높이 44cm, 구경 50cm

 

그림 4.  우랄 남부사브로마트 문화와 사르마트 문화의 청동솥과 생활용구(상단 기원전 4~2세기, 하단 기원전 7~5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의 10호(44cm, 구경 50cm)와 1호의 솥(구경 70cm, 높이 55cm)은 매우 큰 유물이다(그림 5). 그러나 7호의 유물은 높이 17cm로  크기가 작다. 같은 유적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지만, 용도가 달랐을 수 있다.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은 높이 13.8cm로 그 내부에 달군 돌과 대마씨가 발견되었다(아래포스팅참고). 일종의 향로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작은 크기의 7호 청동솥도 일상용기가 아닌 일종의 제기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20/03/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러시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문화권에서도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은 8세 소년의 무덤이다. 고깔모자, 토기, 금제 귀걸이, 청동 목걸이, 투부(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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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 청동솥 옮기는 장면

 

일상용기로서의 대형 청동솥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1989. 464 с(소베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1989)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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