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카자흐스탄 기원전 4세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식 유적의 어떤 무덤 중에는 소년의 무덤으로 높은 고깔모자와 의복을 갖춘채로 매장되었고 그대로 발견되었다. 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지역문화인 사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이 소년은 황금인간이라고 불리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시된 바 있다.

 

고깔모자는 높이가 60cm가 넘는데, 황금재질로 된 각종 형상물(동물과 식물)이 부착되어서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은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로 호랑이(그림 2-4~6)와 새(그림 2-1), 사자(그림 2-2), 말(그림 1-2)은 납작한 금판에 선각 기법을 넣어서 표현한 것이고, 산양(그림 1-1)과 염소(그림 1-7)만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림 1.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앞면(김재윤 편집)

 

 

그림 2. 이식 유적의 황금인간 고깔모자 측면(김재윤 편집)

 

알타이의 고깔모자가 모자 끝과 양 측면에 2~3개 정도의 장식을 붙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과도하게 황금장식으로 부착되었다.

알타이와 비교할 때 모자 뿐만 아니라 의복에도 차이가 있었다. 황금인간이라 불리는 소년은 상의가 짧고 여밈이 있는 스타일의 상의와 하의는 타이즈를 착용하고, 가죽신발을 신었다. 상의의 위는 허리띠를 두르고, 양쪽에 길이가 다른 검을 착용했다.(그림 3, 4).

 

그림 3. 이식 유적 황금인간 상의

 

그림 4. 이식 유적 황금인간의 벨트 및 복원도

 

그림 5. 흑해,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의 스키타이 전사

 

알타이의 남성이나 여성은 남녀 구분이 없이 비슷한 상의를 착용했고, 여밈이 없는 것(그림 6)이 특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피코트가 유적에서 그대로 출토되기도 했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허리띠를 착용하고 무기를 착장하는데, 한 쪽에는 고리트, 한쪽에는 검과 칼 및 투부를 착장했다. 아크 알라하-1호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림 6.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남성 상의

 

이식 유적의 소년 상의는 여밈이 있다는 점에서 흑해지역의 전사상(그림 5, 쿨 오바 유적 뿐만 아니라 솔로하 유적의 황금빗에서도 볼 수 있음, 아래 포스팅 참고)에서 볼 수 있는 복장과 유사하다. 양쪽에 검을 착용하는 것도 알타이와는 크게 닮지 않았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eastsearoad.tistory.com

 

종합하면 이식 유적의 의복은 단순한 고깔모자를 쓰는 흑해지역보다는 동물장식으로 장식하는 고깔모자는 알타이와 닮았지만, 복장은 오히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의복과 더 비슷하다.

이식 유적에서 발견되는 복장은 이와 같은 특징이 있지만 사카 문화에는 알타이적 요소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알마티 시와 가까운 곳에는 ‘이식’이라고 불리는 거대 봉분이 있는 무덤 150기가 있는 유적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 까지 거의 천년 동안 무덤으로 사용된 유적이다. 그 중에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무덤은 15세 가량의 소년이 화려한 복장을 입은채 묻힌 무덤이다. 물론 이 무덤도 도굴된 채 발견되어서 정확한 무덤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인접한 베스샤타르 유적을 참고로 할 때 지상위에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를 돌로 덮었던 구조였다는 점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소년은 황금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한 붉은 색 옷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황금인간’이라고 불린다. 특히 소년은 높이 60~65cm 가량의 고깔모자(직경 22cm)를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깔모자에는 각종 동물장식 및 자연(산)을 형상화 해 붙였던 황금장식으로 인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림 1. 이식 출토, 두개골과 고깔모자의 황금장식 출토장면

 

그림 2. 그림 1의 복원도

 

간접적으로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과 페르시아의 궁전(그림 3-2)에 남아 있다.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에서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언급한 바 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궁전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할 때 귀를 덮는 고깔모자가 표현되었다.

 

그림 3. 흑해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 남성, 2: 아케메네스 궁전벽, 스키타이 사람들

 

 

유물 속에서는 흑해 지역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 속(그림 3-1)에 여러 남성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알타이에서는 실물자료가 발견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및 가장 높은 곳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 남성 전사 들도 고깔모자를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추야강 계곡의 남성전사들 무덤에서도 두개골 상단에 모자에 달았던 장식이 발견되어서 대부분 고깔모자를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고깔모자

 

그런데 고깔모자도 종류가 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그림 4, 5)는 동물장식으로 모자를 꾸몄다. 모자의 끝에 새머리 조각을 붙여서 장식하는 것인데, 모자의 안쪽으로 끼우게 되어 있고, 고깔모자의 하단에도 산양이나 염소상을 붙여서 장식하는 스타일이다.

흑해지역과 인접한 지역(그림 3)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는 장식 없이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대략적인 구분인데 세밀한 것은 차차 설명하도록 하자.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는 화려한 장식을 달았다는 점에서 알타이의 모자와 같은 아이디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깔모자의 가장 끝에 산양장식(높이 1.2cm, 너비 1.2cm)이 달려 있어서 모자의 끝을 동물장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같다. 또한 유적을 발굴한 아키세프는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도 펠트, 가죽, 자작나무 등으로 제작되어서 스키타이 문화가 끝난 뒤에도 아시아 여러 민족이 계속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와는 다른 재질?로 제작되었고, 모자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의 종류와 위치, 재질의 차이가 있고, 모자의 높이도 다르다.

알타이 남성전사들의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고, 동물장식을 나무로 만들어서 단 이유는 펠트가 저절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고깔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식 유적의 모자는 어떤 물질인지 정확하게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복원대로라면 매우 빳빳한 재질일 수 있다. 모자의 안쪽에 어떤 장치가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펠트는 알타이 무덤에서는 매우 많이 사용되는 직조물인데, 카자흐스탄의 산악지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그래서 이식 유적의 모자를 만든 재질 자체는 유럽 스키타이 고깔모자와 가까울 수 있어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5. 27. 13:17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잘 알려진 동물투쟁문은 두 마리 동물이 서로를 공격하거나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대부분 두 마리이지만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지만 동물투쟁문양이 아닌 수수께끼 같은 문양이 발견되는데, 투바와 몽골에서 확인된다. 투바(미누신스크 분지)의 헴칙- 봄 유적의 골제 빗에 새겨진 문양인데, '수수께끼 그림'으로 명명되었다(그라치 1980).

몸통이 있는 산염소는 3마리이고, 그 외에도 염소머리가 2개 더 있는 다중구도이다. 굽동물이 서로 엉켜 있는데, 염소가 중앙의 염소를 타고 올라 있어서 교미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림 1-3, 그림 2-2). 하지만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골제 빗에는 다리를 접은 염소가 있고 동물머리 3개가 더 표현된 유물도 있는데(그림 1-1, 그림 2-1), 모두 수수께끼 그림으로 불려졌다.

 

그림 1. 투바의 헴칙 봄 유적 출토 유물

 

그림 2. 수수께끼와 같은 동물장식, 1,2-헴칙 봄 유적, 3-타스몰라 유적, 4-사글리-바쥐 유적, 5-울란 곰 유적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에서는 맹금머리를 형상화 한 장식판에 멧돼지 아래에 염소 머리 3개가 덧붙여져 있다(그림2-3). 멧돼지 머리 위에는 구멍이 있는데 이음쇠를 끼우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뿔의 표현이라고 보기도 한다(그라치 1980). 하지만 멧돼지의 뿔(하이브리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도 있지만 타스몰라 문화를 연구한 카드이르예프(1979)는 멧돼지와는 독립된 작은 머리라고 한다. 또 멧돼지라고 보이는 동물의 몸통표현이 매우 애매해서 멧돼지 혹은 사슴일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스키타이 동물 스타일에서 모든 굽 동물의 몸통은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표현되는데 이 유물은 원칙을 벗어난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라치는 하나의 형상에 여러 동물의 특성이 혼재한다고 보았지만, 페레보드치코바는 하이브리드 형상이라고 보지 않았다. 스키타이시대 하이브리드 동물은 규칙적으로 표현된 어떤 동물이 명확하게 결합되는지 알 수 있지만 이 동물형상은 그런 규칙성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투바의 아르잔 고분보다 더 이른 사슴돌의 사슴표현과 더 유사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슴돌에 그려진 부리모양 입을 가진 사슴 표현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으나, 이 부분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페레보드치코바는 ‘수수께끼 같은 동물장식’이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문양으로 이해했고,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한 문양요소로 본 것이다. 그라치는 스키타이 동물양식 중에 하나로 생각했다.

종이 한 장 차이처럼 보이는 견해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차이가 큰 관점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П.В. Агапов, М.К. Кадырбаев Сокровища древнего Казахстана.Памятники материальной культуры.// Алма-Ата: Жалын. 1979. (아가포프, 카드리예프 1979 고대 카자흐스탄의 유물)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Переводчикова Е.В. 1994 :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목걸이와 비슷한 스타일로 만들어진 팔찌는 대부분 흑해지역에선 기원전4~3세기 유물로 알려졌으며 있다. 넓은 판이나, 여러 번 감고 끝에 동물장식을 하는 스타일은 모두 스키타이 시대의 가장 마지막 시기(기원전 3세기) 혹은 그 보다 늦은 시기(늦은 사르마트 시기)에 발견되는 것이다.

 

시르다니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고분은 대부분 20세기 초에 파헤쳐져서 정확하게 연대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뒤에 발굴된 유적과 비교해 볼 때 기원전 5세기 대의 유물 중에서 팔찌들이 발견된다(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이곳에서 동쪽으로 더 이동하면 현재 카자흐스탄 중부 평원지역에서 발견되는 ‘타스몰린 문화’(기원전 7세기~기원전 3?2?세기의 스키타이 문화권내의 지역문화)에서도 팔찌는 발견된 바 없다.

 

타스몰린 문화에서 발견되는 유물은 알타이와 투바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의 유물과 유사한 점이 많아서 여러 나라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아르잔-2호에서 발굴된 유물가운데 유사한 유물이 많다(추구노프 2011). 하지만 타스몰린 문화의 유적에서도 팔찌는 발견되지 않았다(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발견되는 유적 군은 주로 시르다니야강과 아무다리야 강 사이 지역, 카자흐스탄 중부의 평원, 카자흐스탄 동부 산악지대(산악지대의 북쪽은 알타이와 가까운 쪽, 남쪽은 천산산맥의 일부지역)에 산포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동부 산악지대라고 하지만 비교적 낮은 지역에 무덤이 들어섰다. 모두 평지(혹은 비교적 낮은 구릉)에 높은 봉분이 있어서 눈에 쉽게 뛰었고, 이들의 운명은 흑해지역과 같이 거의 도굴 당했거나, 도굴과 같은 수준으로 조사되었다. >

 

그러나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 5호묘 여성, 13호묘 여성이 팔찌를 차고 매장된 것이 확인되었다. 5호묘 여성은 현대의 체인처럼 금을 꼬아서 만든 팔찌이고 13호묘 여성은 여러 종류의 돌을 구슬로 만들어 만든(그림 2-12~16, 17, 그림 3-8~24) 팔찌이다. 아르잔-2 유적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유적이기 때문에 가장 이른 팔찌라고 볼 수 있다.

 

그림1. 아르잔-2호 5호묘 여성의 팔찌(2)

 

그림 2. 아르잔-2호 13A호묘 여성의 팔찌(12~16), 17 복원품

 

 

그림 2. 아르잔-2호 13B호묘 여성의 팔찌(8~23), 24 복원품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 황금 여성상은 나신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으며, 흑해 북안의 남성 석인상은 목걸이와 벨트는 착용했으나 팔찌는 없었다(올호프스키 외 1994). 흑해 지역의 무덤속 주인공이 여성인 경우에만 팔찌가 나왔다.

 

그래서 스키타이 시대에는 여성만이 팔찌를 착용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 남성에게 팔찌 착용 전통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청동기시대 문화에서는 청동제 장신구가 대단히 많이 발견되고, 남성도 장신구 착용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스키타이 시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Петренко В.Г. Украшения Скифии VII-III вв. до н.э. М., 1978 // САИ. Вып. Д.4-5. С. 41.(페트렌코 1978,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의 장신구

Ольховский В.С., Евдокимов Г.Л. Скифские изваяния VII-III вв. до н.э. М., 1994(올호프스키, 에브도키모프 1994, 기원전 7~3세기 스키타이 석인상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Серия: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т. 10] М.: 1992. 494 с (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내의 아시아 초원지역)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 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 축조과정 복원과 절대연대에 대한 질문)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표트르 1세의 수집품 중 황금으로 된 여성상은 나신임에도 불구하고 팔찌를 착용한 것이 눈에 띄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팔찌는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의 특징적인 유물 중에 하나이다(사르아디니 1983).

표트르 1세의 켈렉션 중에는 목걸이 뿐만 아니라 팔찌도 여러 점 포함되어 있다. 장소가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진 유물 2점은 1909년에 시르다니아 강 유역의 ‘두즈락’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림 1. 1-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1716년 가가린 수집품(루덴코 1962)

 

그림 2. 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는 러시아 최초의 고고학연구기관인 ‘제국고고학위원회’의 활동으로 모은 유물도 있다. 이 기관은 1859년에 공식적으로 창립되었고 1909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시르다니야 강 유역의 ‘두즈락’이라고 하는 지역에서 얻은 금제 팔찌 2점을 에르미타주 박물관으로 보냈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으로 일컬어지는 유물 가운데1716년이 가가린이 모은 수집품, 1734~1735년 밀러가 발굴한 유물 보다 가장 늦게 입수된 유물 중에 하나이다.

 

이 유물에 대한 정보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물질문화연구소의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시르다리아 지역을 관할하던 주지사가 보낸 편지(1907년 7월 31일)에 금팔찌와 금으로 된 뱀을 보냈다고 기록되었다. 당시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는 이 두 유물을 금의 양을 기준으로 150루블을 책정했다. 표트르 1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으나 당시에 표트르 1세의 수집품을 연구하던 제국고고학 위원회장(스트로가노프 С.Г. Строганов)의 주도로 유물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과 함께 등록되어서 전시되었다.

 

 

두즈락에서 발견된 팔찌 2점은 전혀 다른 스타일이다. 그림 1-1의 ‘팔찌’는 늑대의 머리와 그리핀의 머리가 표현된 것이다. 하지만 이 유물은 팔찌로 보기에는 너무 작지만 팔찌라고 추정하는 이유를 그림 1-2의 유물에서 찾는다. 그림 1-2의 팔찌는 16번 감긴 코일 모양의 팔찌의 가장 끝장식이다(그림 3). 그림 3은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유물로, 16번 감긴 코일에 연결되어 발견되었지만, 보관중에 분리되어 루덴코(1962)(그림 1-2)가 보고한 것이다.

 

그림 3.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1-2와 동일 유물, 동물장식 끝에 땜질한 흔적이 있다)

 

두즈락에서 발견된 또 다른 팔찌는 양쪽으로 개페가 가능한 것인데, 경첩으로 연결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호랑이가 장식된 개폐가 가능한 목걸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것인데, 연구자에 따라서 기원전 4세기, 기원전 2세기 등 연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미냐예프는 자바이칼 지역(바이칼의 우측)에서 출토되는 흉노 유물(기원전 3세기 이후)과 비교했고, 아르타모노프는 기원전 4세기의 팔찌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시르다니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 유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과 비교하는 것은 빼 놓을 수 없는 논쟁 중에 하나이다.

늑대와 그리핀의 조합은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벨트 장식(그림 4)에서 발견되는 주제이지만, 그 표현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벨트장식과의 관련성은 약한 것으로 이 유물의 연대를 기원전 일천년기 후반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연구(자비투히나 2001)도 있다. 중앙아시아에는 여러 곳에서 비철금속이 채굴되었으며 제작장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 1세의 수집품(호랑이와 싸우는 늑대+그리핀)

 

참고문헌

 

М.П. Завитухина Золотые браслеты из местности Дуздак (Туздак) в Средней Азии и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Евразия сквозь века. СПб: 2001. С. 200-203.(자비투히나 200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켈렉션과 중앙아시아 두즈락에서 발견된 황금팔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М.И. Артамонов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1973 // М.: «Искусство». 1973. 280 с (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부)

М.П. Завитухина Собрание М.П. Гагарина 1716 г. в Сибирской коллекции Петра I. // АСГЭ. Вып. 18. Л.: 1977. С. 41-51 (자비투히나 1977, 1716년 가가린이 수집한 표트르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Сарианиди В.И. : Афганистан: сокровища безымянных царей. М.: ГРВЛ. 1983. (사리아디니 1983, 아프카니스탄 이름없는 차르의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