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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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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7. 12:55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현재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의 아무다리야 강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의 유적은 그리스-박트리아 유물, 페르시아 유물, 스키타이 유물이 출토된다(제이말 1979). 그 중에서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8점은 스키타이 금제품을 제작하는 기술로 만들어졌다(Scythians 2017).

 

인간형상물 가운데 평면판 속에 고깔모자를 쓰고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인(그림 1)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평면판속의 인물은 43명으로 모두 무엇가를 들고 있다. 그 중 23명은 막대기를 들고 있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손동작은 아닌데,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람, 막대기를 두 손으로 든 사람, 막대기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받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 가운데 2인은 다른 손에는 그릇을 들고 있다. 그 중에 한명은 고깔모자를 쓰고 아키나케스 검을 찬 스키타이 인이다.

그는 왼손에는 막대기, 오른손에는 뚜껑이 있는 잔을 들고 있으며, 마스크를 쓰고 있다. 스키타이 남성들이 턱수염을 길게 길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입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점은 특이하다(그림 2). 오른손에만 막대기를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도 턱을 가리고 있지만 입을 가리지는 않았다(그림1). 양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스키타이 남성(그림 2)에는 고깔모자 위에 V자 모양의 매듭이 있고, 마스크는 모자 위로 연결되어 있다. 이 남성이 들고 있는 잔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붙은 것이다. 이 남성의 오른쪽 종아리에는 새가 3마리 스타킹(기억하시겠지만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펠트제 스타킹은 남성도 착용했다.)(그림 3-227, 그림 2와 동일) 에 새겨져 있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1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남성 2

 

그림 1과 그림 2의 두 남성이 스키타이 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깔모자와 아키나케스 검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남성과 유사한 모자와 복장을 한 사람은 6~7인(그림 3-217, 218, 221, 223 224?, 그림 4-237, 239)인 정도 더 있다. 평면판 위에 그림이 선명하지 않은 것은 제외했다. 그림 4-236은 턱수염이 아니라 콧수염이어서 스키타이 사람에서 제외했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1

 

그림 4.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평면판 2

 

먼저 포스팅에서 이야기 했지만 이 평면판의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면이 아닌 측면을 표현했고 두 손에 들고 있는 기물등은 동일한 사건? 혹은 동일한 상황을 연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스크를 쓴 남성은 궁금하다. 아마 1년 전만 해도 이 유물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 텐데...지금 우리처럼 마스크를 쓴 스키타이 남성은 왜 마스크를 썼을까?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 p.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J. Curtis, N. Tallis. Forgotten empire: the world of ancient Persia (неопр.).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5.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5. 12:59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금제품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이다. 그 가운데 제작기법은 스키타이 기법이지만 문양은 전통적인 문양이 아닌 유물이 있다. 한점은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Gorgon)으로 추정되는 유물이고, 다른 한 점은 사자의 얼굴이다.

 

도깨비?와 비슷해 보이는 인간형상의 얼굴이 있는데, 달턴은 이 유물을 스키타이 지역의 서부지역에서 출토되는 고르곤(Gorgon)과 비교했다.

뿔이 달리고,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며 특히 귀가 과장되었으나, 사람얼굴을 변형시킨 것이다. 아래쪽 테두리와 귀의 바깥쪽 가장자리 및 뿔 주변에는 점열문양이 각인되어 표시되었다. 이 유물은 주로 앞면에 체이싱하고 뒤에서 펀칭해서 눈과 귀와 같은 얼굴 특징의 윤곽을 잡아서 눌러서 제작한 것이다. 뒷면에는 고리가 납땜질로 부착되었다. 특히 눈과 어금니 주변에는 끌로 깍아 낸 흔적(chasing)이 뚜렷하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도깨비 얼굴, 직경 4.1cm

 

사자얼굴(그림 2)이 남아 있는 원판유물은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스키타이 황금 제작 기술인 chasing, punching, repousse이 모두 확인된다. 사자라고 알 수 있는 것은 갈기가 있기 때문인데, 갈기의 윗부분과 작은 뿔, 귀가 있다. 테두리에는 대각선으로 눈김이 새겨져 있다. 그림 2 하단의 사진에서 눈과 눈썹 등 사이에서 체이싱 기법이 그대로 잘 보인다.

 

그런데 이 사자는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보이는 포효하는 모습의 사자와는 다르다. 유물속의 포효하는 아케메니드 사자는 주로 갈기로 표현되며 이를 위해서 profile을 그린다(포스팅 참고). 그러나 이 유물은 사자의 정면이다.

 

2020/05/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1호분] -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에서 발견 된 페르시아의 사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2500년 전 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그 안에 통나무관을 넣고, 다시 무덤구덩이를 층에 따라서 흙과 돌로 채워서 만들었다. 무덤구덩이에는 말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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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사자, 직경 4.1cm

 

그림 1 유물이 그리스 신화 속의 고르곤이라는 해석(달턴)도 그리스 신화속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신을 찾으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반인반수’는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분에서 나온 캐노피에 등장한 바 있다. 이 보다 더 오래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속에서도 등장한다. 고르곤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면 반인반수의 한 형식으로 이 유물을 볼 수 있다.

 

 

그림 2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나온 사자문양은 모두 페르시아와 관련시켰으나,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과 같이 아케미니드 왕조의 사자와는 다른 형상도 발견된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문양이 있는 카페트도 처음 발굴되었을 때 페르시아에서 수입되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문양은 페르시아의 것이며 유물자체는 알타이에서 제작되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도 같은 원리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니 문양 자체도 이미 스키타이에서 있었을 수 있다. .

 

 

참고문헌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2. 13:3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강은 타지기스탄과 아프카니스탄 국경지역에 위치하며, 죽어가고 있는 아랄해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는 전후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그리스인, 스키타이인, 페르시아 인들이 서로 만난 흔적이 남아 있다. 유적을 발견한 사람들은 아마도 상인?들이었을 가능성이 큰데, 도굴되어서, 정확하게 유적의 성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나온 유물들은 페르시아 아파다나 궁전의 벽 조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물들이 많은데, 그리핀이 달려 있는 오메가 모양의 개방형 팔찌도 그 중 한 유물이다. 이 유물을 들고 있는 대표단은 시리아(Schmidt E. 1953) 혹은 리디아Barnett R. 1968 대표단이라고 한다.

 

그런데 팔찌 앞에 들고 가는 사람은 손잡이가 없는 그릇을 나르고 있다. 손잡이 없는 그릇으로 흔히들 bowl이라고 하는 기형이다. 아무다리야 유적에서는 3점이 발견되었는데, 금제품 2점과 은제품 1점이다.

금제품 중 1점은 매우 낮은 기형인데, 크기가 12.1cm밖에 되지 않는다. 바닥에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가장 중앙에는 원형 그 가장자리로는 6개의 물방울? 혹은 아몬드 모양으로 도드라지도록 눌러서 표현했다. 원형과 6개의 아몬드는 태양을 닮았다. 그 가장자리에는 좀 더 큰 아몬드 6개가 방향을 달리해서 양각되었고 그 사이에는 12개의 반인반수가 표현되었다. 뒷다리 2개로 서 있는데, 앞다리 중 오른쪽 앞발은 위로, 왼쪽은 아래로 내리고 있으며 2마리는 꼬리를 맞대고 있다. 얼굴은 인간인데, 몸통은 사자와 날개가 달려 있다.

반인반수는 앗시리아부터 전해진 문양으로 아케메니드 왕조에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한 유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4세기의 유물이다(달턴 1905).

 

그림1.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금제 그릇의 바닥

 

은제 볼도 페르시아의 제품으로 생각된다. 바닥의 중앙에는 로제트 장식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가장자리로도 꽃 잎장식이 49개가 채워져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은제 그릇의 바닥, 직경 14.5cm

이 유물은 아무다리야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5세기라고 생각한다. 페르시아의 대표적인 그릇문양이다. 이 문양이 표현된 그릇은 벽화 속의 그림과 같이 동체부가 한번 꺽어져서 구연부가 벌어지는 기형이다.그래서 그림 2의 그릇도 벽화와 같은 모양으로 생각된다. 

 

또 하나의 금제 볼은 아무 장식이 없는 그릇이다.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 출토, 가장 앞의 금제 그릇,  직경 9.9cm

 

그런데 반인반수가 있는 금제 그릇(그림 1)과 꽃 잎이 표현된 은제 그릇(그림 2)은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흑해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그릇과 비슷한 문양이다. 두 그릇은 금제 그릇이었는데, 아몬드 문양과 비슷한 문양이 그릇의 표면이 양각으로 표현된 유물 1점과 그릇의 바닥에 꽃 문양이 음각된 그릇이다. 이 두 그릇은 앗시리아에서 제작되어 스키타이 유적에 남게 된 것이다.

 

2020/08/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스키타이 왕의 무덤에 들어간 앗시리아의 황금 잔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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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은 바닥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형(그릇의 형태)은 그림1, 그림2와 비슷하다. 그림 3의 기형은 구연부(입술)로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로, 벽화에 묘사된 그릇과는 형태가 달라서 대표단이 들고 있는 그릇과는 다르다. 그림1과 그림2를 벽화 속의 그릇으로 생각해 본다면 페르시아 그릇이라고 생각했던 그릇을 시리아 혹은 리디아 대표단이 들고 페르시아 왕에게 선물 주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외국 왕에게 주는 선물을 그 나라의 물건으로 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결국 로제트 문양의 실버 그릇, 반인반수와 아몬드 문양의 금제 그릇 모두 이미 소속감이 불명확해진다.

 

스마트폰이 한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삼성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안다. K-POP을 팝 음악의 본고장인 미국 혹은 영국 음악이라고 하지 않는다.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앗시리아 유물은 수입품이었지만 이미 기원전 5~4세기에 스키타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는 문양을 페르시아 문양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참고문헌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Schmidt E. 193, Persepolis. Vol. 1.1: Structures, Reliefs, Inscriptions, Chicago vol.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1. 12:53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 유적의 유물 가운데는 스키타이 스타일의 동물장식(7점은 동물장식 1점은 도깨비?)가운데 그리스의 쿠로스(kouros) 입상으로 추정되는 인간형상물(그림 1,2)도 발견되었다.

아시다시피 쿠로스는 그리스 Archaic period in Greece에 발견되는 입상으로 옷을 입지 않은 남성입상을 돌에 조각한 것이다.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발견된 입체의 인간형상물은 대부분 옷을 입고 있는데, 금으로 제작된 것이고, 옷을 입지 않은 채 발견된 1점은 그리스 쿠로스 상에 많이 비교한다. 이 유물은 은제품인데, 머리에 쓴 모자만 금으로 제작되었다.

 

그리스 쿠로스상은 손을 아래로 뻗었으나 아무다리야 소년상은 주목을 움켜 쥐고 90도 각도로 내 밀고 있다. 움켜쥔 손에는 물건을 위한 구멍이 있다. 또한 그리스 쿠로스 상에는 없는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다. 모자의 앞쪽이 앞으로 불룩(그림 1)하게 튀어나오도록 된 것으로 고깔모자와는 다르다. 그런데 모자는 쓰고 옷은 입지 않은 아이러니 한 유물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남성상. 높이 29.2cm

 

그림 2. 그림 1과 동일 유물

 

이 유물을 처음 연구한 달턴은 그리스 거울의 손잡이에 장식된 인간형상물과 비교해서 기원전 5세기 유물로 생각했다. R. Barnett(1968)는 무엇보다 모자에 주목해서 아폴로 미트라(Apollo Mithra)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6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5세기 초의 그리스 유물과 비슷하지만 늦게는 기원전 4~기원전 3세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쿠즈미나(1976)는 R. Barnett의 의견에 따라서 그리스 화된 미트라의 이미지 및 신으로 표현된 통치자의 초상화 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사카족(스키타이인들 가운데 중앙아시아 지역민)과 거리가 먼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알렉세예프도 이 사람이 쓴 모자는 미트라의 금을 상징하고 쿠로스 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년이 손에 무엇을 들고 있었는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른데 새 혹은 연꽃을 들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제이말 1979)이 있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 유물을 소개했을까?

물론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스키타이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는 점 자체가 흥미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들 추측하셨겠지만 비슷한 유물이 시베리아 남부의 투바에서 2009년에 발견되었다. 부굴리 유적의 1호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 3점이다. 인간형상물의 머리만 발견된 것이다(그림 3). 머리에 쓴 모자는 모자가 앞쪽으로 쏠린 형태이다. 이 유물은 청동으로 주조된 것이고 금으로 도금되었다. 부굴리 유적은 최소한 기원전 3세기(늦어도 기원전 3세기, 더 빨리 올라 갈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이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는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추구노프 2014). 모자가 앞으로 기울고, 이마는 가리고 귀는 내어놓는 스타일이다.

 

 

그림3.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부굴리 1호 출토품, 길이 1.7cm, 너비 1.3cm

 

필자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나온 모자 쓴 남성입체상(그림 1)은 아이러니 하다고 했다. 그리스의 쿠로스라 불리는 입상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옷도 입지 않았다.  유물 속의 그리스인은 항상 거의 반 이상 벗거나 몸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스키타이 인들이 벌거 벗은 채로 등장한 예는 한 점도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을 스키타이 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런데 남부 시베리아에서 왜 비슷한 모자(고깔모자와는 다른 앞이 무너진 모자)를 쓴 사람이 나오는지는 너무 궁금하다.

 

참고문헌

 

Dalton O.M. The Treasure of the Oxus with Other Objects from Ancient Persia and India Bequeathed to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by Sir Augustus Wollaston Franks. London, 1905.

Barnett R. The Art of Bactria and the Treasure of the Oxus. — «Iranica Antiqua», Leiden, 1968, vol. 8, p. 34-53, pl. II-XIV.

Чугунов К. В. Захоронения «золотых людей» в традиции номадов Евразии (новые материалы и некоторые аспекты исследований) //Диалог культур Евразии в археологии Казахстана. Астана, 2014. С. 714–725.(추구노프 2014, 유라시아 유목민 전통과 황금인간의 무덤)

Кузьмина E.E. Греческий курос в Бактрии. — Краткие сообщения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М., 1976, вып. 147, с. 27-33.(쿠즈미나 1976, 박트리아의 그리스 쿠로스)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Oxus_Treasure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0. 13:08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스타일과 제작기술로 만들어진 유물은 8점으로 파악된다. 광학현미경과 주사전사 현미경을 사용해서 분석한 결과이다(Scythians 2017).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동물장식이 있는 개방형 금팔찌, 그리핀 장식, 반지, 활 통 장식물, 원판형 유물 3점(동물문양, 동물의 얼굴, 도깨비? 얼굴이 그려짐)이다. 그 중에서 어제 소개한 개방형 금팔찌는 주조해서(거푸집이용) 제작되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금판과 금으로 된 선(와이어)을 손으로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금판은 원하는 모양과 두께로 망치질 되었고, 앞면과 뒷면 모두 잔 손질을 해서 납작한 금판을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것이다. 금속은 해머링(망치질)과 가열냉각(annealing)을 통해서 모양이 변형되었다. 망치질에 의해서 생성된 내부 응력을 제거하기 위해 금속을 수백도까지 가열했다가 다시 식히는 것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면 금속은 연화되고 균열없이 금속의 형태가 변형되어 다른 형태로 보일 수 있다.

 

사자그리핀의 꼬리도 따로 부친 것이 아니라 두드려서 만든 것이다. 금판을 뒤에서 망치로 두드리는 금속작업을 reposse(push)라고 하는데, 체이싱 기법과 함께 결합해서 많이 사용된다. 체이싱(chasing)기법은 금표면을 따라 무딘 날이 있는 송곳을 이용해서 부드럽게 두드려서 윤곽을 만들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 금속을 아주 얇게 깍아내는 방법이다. 이 체이싱방법은 스키타이 금제 유물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에 하나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유적의 사자 그리핀, 길이 6.16g, 금 77%, 은 20%, 구리 3%

 

 

 

또 하나의 기술은 유물을 더 세밀하게 보이도록 하는 펀칭방법이다. 펀칭 방법은 기원전 1천년 중반에 모든 금제 공인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스키타이 유물에는 좀 더 특수한 방법을 이용했다. 예를 들면 맹수장식 묘사된 반지이다. 이 유물은 금판 자체가 은의 함량이 높아서 다른 원판형 유물에 비해서 더 두꺼운 판으로 앞면은 체이싱기법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서 금속을 절단해서 제작되었다. 이 유물은 뒷면에서 누르기 기법을 이용하지 않고 앞쪽에서 작업해서 동물모양을 입체감 있게 표현했다.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가장자리는 날카롭게 절단되어 있다. 호랑이는 몸을 말고 있지만 날개가 있는 모습으로 그리핀이다. 날개부위에 절단한 흔적이 잘 남아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출토된 반지, 몸을 말고 있는 날개 달린 호랑이, 그리핀, 직경 2.5cm, 무게 10.5g, 

아래의 사진에서 잘라내고, 깍아낸 흔적이 그대로 보인다.

.

 

사자는 페르시아의 상징적인 동물이지만 이 유적에서 발견된 사자 그리핀은 스키타이 금속 기술로 제작된 유물이다. 사자 그리핀이 출토되었다고 모두 페르시아의 영향으로만 보기는 힘들다. 이 유물은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여성 미라의 목제 목걸이 장식 그리핀과 특히 유사해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2020/03/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알타이의 2500년 전 뿔 달린 그리핀

 

알타이의 2500년 전 뿔 달린 그리핀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도굴당했지만 상당히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1940년대 후반에 발굴된 이 유적의 무덤은 1990년대 발굴된 아크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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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초창기 연구들은 사자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해석되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유물 자체의 제작기술을 살펴보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이 생겨나는 것 같다.

사자 그리핀의 용도는 뒷면에 2개의 길다란 핀으로 보아서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보았으나, 뒤에 달린 핀이 납땜으로 아주 단단하게 고정된 점으로 보아서 펠트제 고깔모자장식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12~319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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